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196)
바다새와 늑대 (195)화(196/347)
#39화
제국령의 어느 저택에서 담배 연기가 매캐하게 응접실의 소파로 내려앉는 중이었다. 소파에 앉아 파이프를 문 채 신문을 보던 사내가 종이를 구겨 던졌다. 커다란 글자가 신문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마녀, 목격되다!」
신문을 내던지고 드러난 얼굴은 젊었다. 이제 막 서른 중반에 다다르는 나이였으니 이상할 것은 없었다.
왼쪽 눈에 안대를 차고 헝클어진 회갈색 머리카락을 반쯤 깔끔하게 넘긴 사내가 하나뿐인 눈을 부리부리 치떴다. 그가 바로 그레고리 허스튼 애시포드, 그레고리 경이었다.
그레고리는 파이프를 문 채 웅얼거리듯 말했다.
“쿤트만 제도행 여객선에서 발견되었다는데.”
“예, 단델리온 백작 내외가 그 배에 있다더군요. 소식을 받아본 바로는 쿤트만 제도에 도착하기 대략 닷새 전 바다에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소파의 옆에 서 있던 보좌관이 말을 붙이자 그는 파이프를 빨았다가 연기를 내뿜었다. 성가시다는 기색이 그의 굵직한 얼굴선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단델리온? 그건 귀찮게 되었군. 그 백작 부인이 어지간히 성가셔야지…….”
해군 소장의 권한으로 수배령을 내리려 했던 때에도 반대 성명문을 들고 와 골치 아프게 했던 여자였다. 가뜩이나 쓸만하던 해적 놈들도 물고기 밥이 된 마당에 뜻대로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느긋하게 있을 틈이 없었다. 수배령은 거의 자충수나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다른 귀족들도 바다새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국에 바다새를 가져다 바치는 것은 반드시 자신이 되어야 했다. 그레고리는 혀를 쯧 찼다. 역시 우홉피아주가 못 쓰게 된 것이 아쉬웠다.
“기껏 후작이 보내준 투견도 내줬더니……. 속 쓰리게 되었어.”
그레고리가 중얼거리자 보좌관이 조심스럽게 고했다.
“하지만 잘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 녀석들은 이미 한 번 이쪽 뒤통수를 쳤으니…….”
“그렇지, 뭐. 그놈들은 내가 꿈에도 모르는 줄 알고 있더군.”
제국의 ‘청정바다정책’을 빌미로 우홉피아주와 접촉해 모종의 관계를 맺은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난 상황이었다. 우홉피아주의 약탈 수확을 일부 받는 대가로 그들의 횡포를 눈감아준다. 그것이 계약이었다.
계획에는 문제가 없었다. 페데르는 귀족 작위를 원했고, 그레고리는 부를 원했다. 그리고 바다새도.
영광스러운 제국은 수많은 것을 원했다. 화약과 자본의 독점, 소서러의 능력과 마장석의 독점, 주변국의 지배권, 그리고 바다까지도 움켜쥘 힘.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제국의 황제는 대대로 바다새나 초월자들에 대한 집착을 보였다. 그들 사정이야 알면 좋지만, 몰라도 괜찮았다.
어쨌든 바다새를 갖게 되면 어련히 알게 되리라. 다들 바다새를 황가의 허황한 욕심이며 환상이라 치부했지만, 그만은 그러지 않았다.
그러니 우홉피아주와 손잡으며 파란 새를 잡아 오란 명령도 내렸다. 정말 뜻밖에 실존하는 바다새가 형님에게 맡겨둔 영지에서 나타날 줄은 몰랐지만.
하지만 그 늙어빠진 미역 머리 사내가 전모를 눈치채고 그레고리보다 먼저 바다새를 차지하려 들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그 덕에 강등당하기나 하고……. 황제에게 바다새를 데리고 오겠노라 자신했는데 일이 이렇게 틀어지자 이때다 싶었던 귀족들이 그를 끌어내리는 안건에 동의했던 것이다.
망할 단델리온 나부랭이들……. 그레고리는 인상을 구겼다가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연기를 한숨과 섞어 내쉬었다. 덕분에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굴러들어왔을 바다새가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그레고리는 얼른 파이프를 빼 재를 털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접실 문이 열리고 어깨를 움츠린 남자가 들어오자 그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양팔을 벌려 보였다.
“그렇게 입으니 번듯해 보이는군, 테드 군.”
“남작님…….”
테드가 계면쩍은 얼굴로 그를 불렀다. 빳빳한 흰 셔츠와 재킷을 입은 그는 눈가가 수척했으나 이내 그레고리를 향해 웃어 보였다.
“이렇게 받아주셔서, 정말… 항상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 말은 이제 되었다니까 그러네. 자, 앉게. 필립, 차를.”
보좌관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찻상을 위해 응접실에 딸린 방으로 들어갔다. 테드가 손짓에 따라 맞은편 소파에 앉는 것을 웃는 낯으로 보던 그레고리는 몸을 숙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섬의 일은 유감일세. 나도 뒤늦게 알고 수습해보려 했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더군.”
그 말에 테드는 울상을 지었다. 그레고리는 유감이라는 듯 답답한 낯을 했다.
사실 성명문을 낸 뒤 오는 놈들 다 쏴죽인다며 엄포 좀 놓고 돈 좀 들이면 그깟 작은 섬을 원상복구 하는 일쯤이야 간단했다. 다만 그만한 노력을 기울일 가치가 더는 없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겨우 몇 개월 만에 그렇게 쑥대밭이 된 섬이나 그 섬에서 찾아온 코앞의 시골뜨기나 그레고리에겐 거기서 거기였다. 별 가치가 없는 일에 관심을 기울일 시간 따윈 없었다.
차를 갖고 나온 보좌관이 그들의 앞에 잔을 내려놓았다. 달큰하게 올라오는 향을 맡으며 찻잔을 들어 올린 그레고리가 점잖게 말했다.
“그래도 테드 군의 제보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네.”
“남작님께선…… 아직도 로트렐리와 결혼할 마음이 있으신가요?”
침울한 낯인 테드의 물음에 그레고리는 속으로 눈썹을 들썩였다.
“그건 그녀의 태도에 달렸지. 나는 사실 새신부도 바다새도 놓치고 싶지 않다네. 일이 어떻게 이렇게 틀어졌는지 만일 결혼한다면 평생 바가지 긁히며 살아야겠지만……, 하하!”
그레고리가 능청스레 말하며 웃자 테드는 맞잡은 양손을 꿈지럭거리다가 말했다.
“남작님의 명예가 실추될까 두렵군요.”
“새신부를 잡아 오는 것에 너무 과격한 방식을 쓰긴 했지.”
하지만 그런 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 그레고리에게 중요한 건 바다새였다. 오로지 바다새! 그 파란 눈깔 여자애 따위 어찌 되든 그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테드가 소심한 어투로 말했다.
“로트렐리는, 걔는…… 달라졌어요. 더는 남작님이 아시는 애가 아닙니다.”
애초에 남작은 로트렐리인지 샤를로트인지 모를 여자애에 대해 일절 알지 못했다. 바다새를 데리고 있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것이다.
그녀에 관한 정보를 통제하긴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새가 바다새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또는 보다 안전하게 바다새를 데려오기 위해서였지 로트렐리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테드가 무언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거나 많은 것을 모르는 것 같았지만, 굳이 그것을 지적하지 않은 그레고리는 어깨만 으쓱였다.
“사람이야 언제든 변하는 법이지.”
그렇게 말한 그는 테드에게 물었다.
“자네는 그녀가 변한 이유가 일전에 말한 해적선의 영향이라고 생각하는가? 뭐라고 했지, ‘검은바다’?”
“네, 그런 이름이었어요.”
“그래…….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군.”
페데르 그 중늙은이가 내내 욕을 하던 놈팡이들이었으리라. 그러나 그레고리의 말을 듣고 테드는 정의로운 해군에게 그 해적들의 이름이 알려진 것이라고 생각한 듯 기겁을 했다.
“남작님께서 이름을 들어본 적 있을 정도로 악명이 높나요?”
“그런 편이려나.”
그에 테드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더니 말했다.
“로트렐리를, 어떻게든……, 붙잡아야겠죠?”
“그야 당연한 말이지.”
그레고리는 눈앞의 청년이 퍽 우스웠다. 제대로 아는 것도 없는 것 같은 데다, 남작이 로트렐리를 꽤나 어여삐 여겨서 결혼을 제안한 줄 알 정도로 착각이 심했다.
며칠 전, 테드가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진실을 얘기한다는 듯 ‘로트렐리는 남작님을 돈줄로 봐요’ 하고 말했을 때는 천하의 그레고리도 웃음을 참기 힘들어서 허벅지를 꼬집어야 했다.
그는 그야말로 시골구석에서 어화둥둥 큰 순진한 얼뜨기였다. 헛기침으로 웃음을 참은 그레고리는 손뼉을 짝 마주치며 물었다.
“그래서, 테드 군. 내가 자네를 이렇게 부른 이유가 따로 있네.”
“네?”
그레고리의 말에 테드는 긴장했다. 내심 남작 가에서 식객으로 붙어있다가 귀중품을 챙겨 제국에서 터를 잡으려던 중이었다. 정보도 넘긴 자신을 뒤늦게 내쫓진 않을까 두려움이 불쑥 솟았다.
그러나 그레고리가 꺼낸 말을 전혀 상상도 못 한 것이었다.
“자네, 제국 해군에 적을 두는 것은 어떤가?”
“예?”
“입대하란 소리네.”
테드는 얼빠진 얼굴을 했다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군대 가란 소리잖아! 돌발적인 입대 권유에 놀란 테드가 말을 더듬었다.
“제, 제가 해군을요?”
“그래. 이래 봬도 인력난이거든.”
해군이 인력난이든 말든, 제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던 테드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그것을 눈치챈 듯 그레고리가 말했다.
“너무 긴장 마시게. 내가 설마 자네를 말단으로 보낼까.”
물론 필요성이 떨어지면 강등시킬 계획이었다. 그러나 어쨌거나 그레고리가 검은바다를 쫓기 위해서는 테드의 정보력이 필요했다.
처분하는 것은 그 이후에 해도 될 일이지. 그는 당황하는 테드를 보며 웃었다.
“내 보좌관의 조수로 들어오게 할 걸세.”
“아…….”
그런 것이라면 확실히 전선에 바로 서는 일은 아니었다. 테드가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레고리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남작님. 과분한 자리를 주시고…….”
“그래. 내 보좌관은 주로 항구의 감찰을 나가거나 내가 출정할 때 함께 다니지. 내 보좌관이 내게 하는 것처럼, 자네는 내 보좌관에게 그렇게 하면 되네.”
테드는 제 몫의 차를 내려와 홀짝이는 갸름한 인상의 보좌관, 필립을 흘끔 보았다가 고개를 재차 끄덕였다. 필립의 시선이 그레고리를 향했다.
별안간 쓸데도 없어 보이는 시골 촌놈을 왜 제게 붙여주는지 묻고 싶다는 눈빛이었다. 그에 그레고리는 눈썹을 들어 올리며 은근히 눈치를 주며 바라보고는 하하 웃었다.
“앞으로 잘해보자고. 그럼, 잠시 밖에서 기다리시게. 필립과 할 말이 있으니.”
차에는 손도 대지 못한 상태에 내려진 축객령이었다. 그러나 말에 담긴 업신여김을 알지 못한 테드는 어리숙하게 고개를 주억거리고 응접실을 나갔다.
그러자 곧장 소파의 등받이에 몸을 파묻은 남작이 파하, 하고 숨소리를 냈다.
“웃기는 놈이야, 그렇지?”
“왜 굳이 제게 붙이셨는지 물어도 됩니까?”
“별 이유는 없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찻잔을 흔들며 젓다가 한 번에 마셔버린 뒤 그가 말을 이었다.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며 얼굴이나 보여주고 다녀. 예시로 들 사람 면상을 여럿 보면 몽타주를 그리는 것도 쉬워지겠지.”
“귀찮은 일이군요.”
“그래도 해야지. 그 외에도 정보는 있는 대로 다 긁어내. 자네는 나보다야 아래 직급이니 좀 살살 어르면 금방 불 거야.”
테드가 그레고리에게 말한 정보 중 그레고리에게 수확이라고 할 만한 것은 딱 세 가지였다. ‘로트렐리’라는 여자가 바다새를 갖고 있다는 것, 검은바다와 함께 있다는 것, 우홉피아주가 그들의 손에 괴멸되었다는 것 말이다.
필립이 물었다.
“굳이 더 얻어낼 정보가 필요합니까?”
“검은바다와 함께 있어야 할 바다새와 로트렐리라는 여자가 왜 생뚱맞게 쿤트만 제도 행 여객선에서 발견되겠나?”
“그건…….”
필립이 말을 잇지 못하자 그레고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이 일어난 거야. 그게 뭐든 간에, 가장 최근까지 검은바다에 있던 놈을 놓칠 수는 없지. 단서가 될만한 이야기는 모조리 뽑아낸다. 해적단 개개인의 것이어도 말이야.”
테드 같은 시궁쥐들은 꼴에 감은 좋으니 더 말해보라고 닦달하면 지레 겁먹고 도주할 것이 뻔했다. 아직 얻어낼 것이 더 있을지도 모르니 조심히 다뤄야 했다. 그 말에 필립은 고요히 고개만 끄덕였다.
“참…… 웃기는 놈이야.”
그레고리는 했던 말을 나직하게 되뇌며 응접실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맑았고, 그는 미끄러진 만큼 올라가기 위해 칼을 갈고 있었다.
필립을 내보내고 빈 찻잔을 흔들며 창밖을 보던 그레고리가 뒤이어 도착한 차석 보좌관에게 손짓하며 뒤돌아섰다.
“자자, 일해야지, 일. 서류나 가져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