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198)
바다새와 늑대 (197)화(198/347)
#41화
“그래서 대체 왜 나는 멱살을 잡혀야 했던 건데?”
지친 기색으로 모래사장으로 올라가며 옷깃의 물을 짜내던 우투그루가 불퉁거렸다. 마찬가지로 젖은 머리카락을 넘기며 모래사장 위로 걸음을 옮기던 내가 답했다.
“넌 안 뛰어내리고 일단 ‘왜?’라고 물어볼 것 같았어.”
우투그루는 무어라 토를 달고 싶은 얼굴이었으나 할 말이 없었는지 금방 입을 다물었다. 여름이 성큼 다가오고 있는 탓인지 물에 흠뻑 젖은 상태로 뭍으로 나왔어도 그다지 춥지 않았다.
“나, 다시는…… 이런 식으로 헤엄치고 싶지 않아…….”
도멤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뒤늦게 해변에 내려앉은 발카는 총총 모래사장을 뛰더니 내 어깨로 날아와 앉았다. 머리를 마구 휘저어 물기를 털어내는 도멤과 그 탓에 세찬 물방울을 맞고 허망한 낯을 하는 키이엘로를 뒤로한 나는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인어가 그곳에서 꼬리지느러미를 느긋하게 흔들고 있었다.
『불러줘서 기뻐, 로트.』
“그래……. 나도 네가 빨리 와줘서 고마워.”
여객선에서 뛰어내리며 곧장 사란을 부른 우리는 순식간에 나타난 인어 덕분에 망망대해를 가로질러 다른 섬으로 온 참이었다. 짧게 감사를 전하고 주변을 둘러본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그런데 사란, 혹시 여기가 어디인지 알아?”
『아니.』
“그래, 하긴 인어가 뭍사람들이 붙인 명칭을 알진 못하겠지.”
『잘못한 거야?』
“아냐. 안전한 곳에 데려다준 것만으로도 고마워.”
어깨를 늘어뜨리며 낙담하는 인어에게 말하자 사란은 금방 방긋 웃었다. 얼핏 졸려 보이는 처연한 얼굴이 활짝 웃자 보다 활기가 넘쳐 보였다.
“이제 다시 뭍에서 이동해야겠네. 혹시 또 위급한 일이 생기면 불러도 될까?”
『물론이야.』
“…좋아, 고마워.”
아직 파도치는 해변에 발을 담근 채로 허리를 숙여 사란과 대화하던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수그렸다. 그러자 연신 싱글벙글 웃고 있던 사란이 대뜸 내 뺨에 입을 맞췄다.
“……?”
『언제든 불러줘. 나는 계속 네가 말한 해적단을 찾아다닐게.』
“음? 아……, 어. 그래.”
물에 젖고 차가운 감촉 탓인지 붕어에게 뽀뽀 받은 기분이었다. 난데없이 웬 뽀뽀인가 싶어 내가 굽히고 있던 허리를 펴자, 사란은 꼬리지느러미를 한번 휘젓더니 물러가는 파도에 몸을 싣고는 사라졌다.
자주 불러줘서 기분이 좋았던 건가? 역시 인어의 갑작스러운 심경 변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나는 이내 물 밖으로 걸어 나갔다.
우리 넷은 모두 승무원의 코트를 그대로 입고 있었다. 검은 천에 샛노란 실로 자수와 장식이 달린 코트는 허리 위쪽으로 끊기는 기장이었다. 화려해서 갈아입고 싶었지만 다른 옷들도 모조리 젖어있는 상태였기에 별수 없이 그대로 입고 있어야 했다.
백사장을 터덜터덜 걷다가 작은 굴을 발견한 우투그루가 외쳤다.
“이리로 와! 몸이나 말리게.”
우리는 스멀스멀 걸어 굴 안으로 들어갔다. 모래사장에 쓰러진 채 말라 있던 나무를 주워들고 온 키이엘로가 대충 발로 차 그것을 쪼갰다.
도멤이 손뼉을 쳤다.
“역시 힘도 좋아. 키이엘로가 있어서 다행이야.”
“불씨도 필요하면 말해.”
어색하게 웃은 키이엘로는 부러 으스대는 척 말하더니 검지를 들고 마른 풀 위로 후 바람을 불었다. 작은 불티가 튀더니 촛불만 한 불이 풀에 붙었다.
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렇게 불을 써도 돼?”
“이 정도는 괜찮아.”
“어째 갑자기 생긴 능력은 아닌 것 같은 말투네.”
도멤의 예리한 말에 키이엘로는 다시 어색하게 웃었다. 더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기도 했고, 뭐 대단하게 궁금한 것도 아니었기에 우리는 구태여 캐묻지는 않았다.
불이 어느 정도 크기를 키우자 우리는 물을 잔뜩 먹은 짐을 풀어 말렸다. 키이엘로는 짐을 풀다가 다소 황당한 얼굴을 했다. 로지안나가 작은 놋쇠 냄비까지 넣어둔 것이다.
그것을 본 우투그루는 뭐라도 끓일 것이 있나 짐을 뒤지다가 바닷물에 젖어 흐물흐물 풀어진 비스킷을 보고는 혀를 찼다.
“그래, ‘짠물 먹은 비스킷’……. 못 먹는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말이지.”
“거부권은 없어.”
“먹을 셈이야?”
우투그루가 포장지까지 흐물흐물해진 비스킷을 내게 보여주며 냉소적으로 말했다. 오트밀 죽처럼 퍼진 비스킷이 젖은 포장지와 반쯤 섞인 꼴은 내가 봐도 구역질이 나긴 했다.
“…우리에겐 육포가 있잖아.”
“그래. 바다를 건너오며 염장까지 됐겠지. 얼마나 행운이야? 다양한 염장육을 먹게 되었으니.”
우투그루가 내 말에 곧장 비스킷을 모래밭에 내던지며 비아냥거렸다. 이 새끼 말하는 꼴 좀 봐……. 우투그루 몫의 육포를 빼버릴까 고민하는데, 키이엘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의 가장 가까이에 있어서인지 금방 옷이 마른 그는 어깨의 화려한 견장을 귀찮다는 듯 뜯어내며 말했다.
“주변을 좀 살펴보고 올게. 무인도인지, 아니면 사람이 사는 곳인지 알아봐야지.”
그 말에 나도 일어났다.
“좋아. 오는 동안은 물살이 너무 강해서 주변을 못 봤으니까.”
『나도 갈래.』
“발카 넌 쉬어. 계속 날아왔잖아.”
우리를 배려해서 천천히 왔다고는 하지만 인어의 속도는 매우 빨랐다. 과장 좀 보태서 총알에 묶여서 끌려가는 소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 탓에 가엾은 바다새는 몇 시간을 날아서 인어의 꽁무니를 쫓아야 했다.
그래도 용케 저체온증이 오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는데, 모닥불의 온기를 쬐던 도멤이 손을 흔들었다.
“난 좀 추워서……. 여기서 짐이나 보고 있을게.”
그에 내가 우투그루를 보자, 역시 다소 추웠던 것 같은 우투그루가 심드렁하게 도멤을 가리켰다.
“난 도멤이 저체온증이 오면 불씨라도 끼얹어 줄 생각이다.”
“우투그루……. 날 그렇게 생각해주다니, 감동이야.”
“봐, 벌써 헛소리를 시작하네.”
나는 어련히 알아서 하라는 듯 고개를 설설 젓고는 키이엘로와 동굴 밖으로 나갔다. 키이엘로가 걱정스레 내게 물었다.
“도멤이 너무 추워하는데 괜찮을까?”
“우투그루도 추워하던데……. 걔네가 바보도 아니고. 네가 불까지 피워줬으니 알아서 잘 싸매겠지.”
“음…….”
키이엘로도 차마 우투그루가 아무것도 안 하고 추운 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멍청이라고 할 수는 없었던 듯 금방 수긍했다.
한낮에 여객선에서 뛰어내리고 인어의 도움으로 이름 모를 섬까지 오는 데만 몇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가장 가까운 쿤트만 제도로 가려는 것을 바닷물을 먹어가며 안 된다고 말렸으니 망정이지. 당장 제국의 손아귀로 걸어 들어갈 뻔하지 않았는가.
석양이 내리는 해변을 걷던 나와 키이엘로는 이곳이 무인도에 가깝다고 결론 내리는 중이었다. 가까운 거리에 섬이 여럿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이 다닐 법도 한데 인기척이 없었다.
백사장의 끝에서 작은 조각배를 발견한 키이엘로가 그것을 살펴보다가 별다른 점을 찾지는 못했는지 느리게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별건 없지만… 이건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네. 그나저나 여기도 제도인가? 지도가 있다면 좋을 텐데. 어느 부근에 있는 섬인지 알 수 있게 말야.”
“그러게……. 쿤트만 제도는 아닐 테지만 거기에서 완전히 멀어지지도 못했을 거야.”
“그리고 저기 좀 봐.”
키이엘로가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그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가 미간을 좁혔다.
“저거 화산인가?”
“으음……. 활동 중인 건 아니겠지?”
우리는 잠시 침묵한 채로 화산을 바라보았다. 지금이야 잠잠하지만, 화산이 터지는 섬으로 온 것이라면 낭패였다. 그러다 나는 나무가 듬성듬성해지는 부분을 보고 고개를 기웃거렸다.
“저 멀리에 공터가 있는 모양인데. 산 중에 있는 건가?”
“가보자.”
어두워지기 전에 빠르게 둘러보기로 한 뒤 산어귀를 살폈다. 오솔길이 있었으나, 인적이 끊겨 다시 풀에 뒤덮인 것 같은 모양이었다.
역시 사람이 살진 않는 건가? 섬 주민들이 모두 이주해서 무인도가 된 곳인지도 모른다. 그때 부스럭, 하는 소리와 함께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걸음을 멈춘 나는 키이엘로와 시선을 교환했다. 그도 들은 것 같았다.
우리가 챙겨온 검을 슬쩍 쥐고 수풀을 치우자 풀과 초목을 베어낸 듯 작은 평지가 나왔다. 그곳을 보고 키이엘로가 깜짝 놀라며 중얼거렸다.
“……아이?”
웬 꼬마 애 두 명이 그곳에 묶여 있었다. 화들짝 놀란 우리는 주변을 짧게 살핀 뒤 별다른 게 없다는 걸 알자마자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입을 막고 있는 재갈을 풀자 남매로 보이는 아이 둘이 와앙 울음을 터트렸다.
“여기 왜 있는 거야? 누가 너희를 이렇게 뒀어?”
키이엘로가 당황하며 둘을 달래는 사이, 나는 주변을 더 살펴보았다. 습한 숲속이라 그런지 아니면 날이 점차 더워지는 탓인지 공기가 후텁지근했다. 별다른 함정도, 잠복한 기척도 없었다.
왜 이런 숲 한가운데에 애들을 둔 거지? 그러자 문득 조각배가 정박해 있던 것에 생각이 미쳤다.
“너희, 너희를 데려왔던 사람은 어디에 있어?”
내가 서둘러 물었으나 애들은 울면서 엉금엉금 기어가듯 숲 밖으로 나가려 했다. 결국 키이엘로와 나는 잠시 눈을 마주쳤다가 애들을 한 명씩 옆구리에 끼우고 동굴로 향했다.
다행히 도멤과 우투그루는 우리가 떠날 때보다 안색이 나아진 상태였다. 그러나 둘은 돌아온 우리를 보자마자 황당한 얼굴을 했다.
“왜 둘이 갔다가 넷이 되어 오는 거야?”
“애들을 납치했어?”
“미쳤어?”
나는 발을 휘저어 우투그루 옆의 짐을 치우게 한 뒤 그곳에 여자애를 앉혔다. 키이엘로도 도멤과 자신의 사이에 남자아이를 앉히고 고개를 기울였다.
“사람이 사는 곳 같지는 않은데 애들이 숲에 묶여 있더라고.”
“뭐어?”
도멤이 당장에 기겁했다. 애들은 열 살 안팎으로 보였는데, 숲을 벗어나 동굴로 오자 다소 안심이 되었는지 코만 훌쩍이고 있었다. 아이들을 살피던 내가 다시 물었다.
“왜 그런 곳에 묶여 있던 건지 먼저 알아보자. 얘들아,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저, 저희는 괴물한테 먹힐 거라고 했어요.”
“……그만 알아보자.”
내가 빠르게 말하자 우투그루는 희번덕거리며 날 노려보더니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되물었다.
“괴물이라니?”
“괴물이, 괴물이 이 화산섬에서 가만히 있어야 우리 섬으로 안 온다고……. 나중에 화산이 터지면 그때는 괴물이 죽을 테니까…….”
한참 횡설수설하는 아이들의 말을 듣던 우리는 이야기가 끝났을 때, 전부 허망한 얼굴을 했다. 남매의 말을 정리하자면 이랬다. 얼마 전부터 여러 섬이 모인 이 제도의 화산섬 한 곳에 괴물이 살기 시작했다.
그 괴물은 사람 잡아먹는 걸 좋아해서 많은 사람이 희생당했다. 섬사람들은 몇 번이고 제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제국은 도와주지 않았다. 결국엔 이 제도의 섬이 돌아가며 모두 괴물에게 잡아먹히자 주변 섬에서 꾀를 쓴 것이다.
사람을 두엇씩 주기적으로 먹이로 줘서 이 섬에서 괴물이 떠나지 않게 하자. 심지어 이 섬의 화산은 주기적으로 분화하곤 했으니 그때까지 시간을 끌 수만 있다면 괴물은 화산 분화에 휩쓸려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렇게 이번에 끌려온 제물이었다.
“…….”
“로트가, 그만 알아보자고… 했잖아.”
도멤이 띄엄띄엄 말했다. 잠시 침묵 사이로 모닥불의 불씨가 튀는 소리만 울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