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00)
바다새와 늑대 (199)화(200/347)
#43화
나는 서둘러 외쳤다.
“우투그루, 물러나 있어!”
“웃기지 마, 아직…….”
순간 둘하스가 우투그루를 향해 도약했다. 아차 하는 사이 우투그루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쾅, 하고 모래를 찍은 괴물이 즉시 앞으로 돌진했다.
“발카!”
『하여간에 성가시게 해.』
발카가 볼멘소리를 내며 다시 우투그루를 향해 날아들었다. 몸집의 크기를 조금 키운 바다새가 우투그루의 어깨를 쥐고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둘하스의 갈고리가 허공을 내젓는 것과 동시에 우투그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깨에 입은 상처를 발카가 잡은 탓인 것 같았다.
도멤이 내게 빠르고 나직하게 읊었다.
“저 괴물, 아무래도 우투그루가 쉬운 사냥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곧 죽어도 한 놈만 팬다 그거지……. 괜찮아, 우린 다구리 때릴 거니까.”
내 현실적인 대답에 도멤은 입을 뻐끔거렸다. 다구리라니…, 로트, 정말 깡패 같은 말이었어.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거나 시시덕거리며 농담 따먹을 여유는 없었다.
나는 둘하스를 향해 내달렸다. 내 기척을 알아챈 둘하스는 재빨리 우투그루를 포기하고 내 쪽으로 펄쩍 뛰며 돌아섰다. 그사이 도멤이 우투그루를 엄호하러 자리를 옮겼고, 키이엘로가 내 근처로 바짝 다가왔다.
그는 다소 냉정한 얼굴로 혀를 찼다.
“발카 말이 맞아. 성가시게 부상을 입네.”
“너 그거 우투그루한테 말하지 마라.”
안 그러면 우투그루는 둘하스를 핑계로 무심코 키이엘로를 칼로 찌를지도 모른다. 어깨 부상 때문에 칼날이 빗나갔네, 뭐 그런 말을 하면서 말이다. 내 말에 키이엘로는 알았다는 듯 눈을 슬쩍 굴리고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내 둘하스가 내 쪽으로 달려들었다.
발카의 말마따나 지능이 높은 편이라더니. 나는 옆으로 슬쩍 피하며 생각했다. 비교적 약해 보이는 것부터 노리는 거다. 키이엘로야 명실상부 가장 강한 전력이었고, 그에 비하면 옆에 있는 나는 상대적으로 약해 보였을 것이다. 우투그루가 부상당해 불리한 것처럼 보이자 그부터 노리던 것을 보면…….
하지만 사람 잘못 봤다, 괴물아. 나는 검날을 모아들고 둘하스의 팔을 향해 휘둘렀다. 어둑해지고 있는 하늘에 남은 샛노란 빛이 검날에 맺혀 궤도를 그렸다. 괴물은 타조에서 내려오게 된 뒤에도 커다랬다.
위안 삼자면 과녁이 넓어진 셈이었다. 그러나 내 검이 둘하스의 팔을 긁고 지나갔음에도 그다지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팔을 길게 베인 둘하스가 양팔을 교차하며 전방을 넓게 베었다. 서둘러 물러나지 않았다면 갈고리에 목을 내줘야 했을 터였다.
여름이 발걸음을 내딛듯 스며든 습기가 끈적하게 뒷머리에 달라붙었다. 그때 도멤의 창이 둘하스의 뒤에서 날아들었다.
퍽, 창날이 둘하스의 어깨를 찔렀다. 쇳소리 같은 비명을 지른 괴물이 움츠러들며 다시금 훌쩍 물러났다. 둘하스의 어깨에서 터져 나온 피가 백사장을 붉게 적셨다.
괴물이 막무가내로 달려들지도 않고 계속 틈을 보며 덤비니 긴장 상태만 길어졌다. 우투그루 역시 싸우겠다고 나서던 것과 달리 둘하스의 행동을 파악한 듯 입을 다물고 있었다. 도멤은 내찔렀던 창을 돌려 바닥을 짚고는 미간을 좁혔다.
“똑똑하긴 하네. 그대로 덤벼들었으면 목을 끊을 수 있었을 텐데.”
“우리가 다치는 일도 최소화해야 해, 알지?”
키이엘로가 침착하게 말했다. 나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세운도 없을뿐더러 전문적인 지식도 없었다. 조악한 솜씨로나마 치료하려고 해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도멤은 고개를 설렁설렁 끄덕이고는 다시금 창을 바짝 들어 올렸다. 둘하스가 다시 달려든 것이다.
괴물은 갈고리를 교차해 모래밭을 찍고 몸을 끌어당기며 기어왔다. 가공할 만한 속도였다. 서둘러 옆으로 비킨 도멤을 향해 횡으로 갈고리를 휘두르는 둘하스의 뒤로 내가 뛰어들었다. 도멤이 찔렀던 어깨로 검을 쑤셔 넣자 둘하스가 비명을 지르며 물러나려 했다.
어딜! 어깨에 박은 검날을 틀어 위로 베어 올리자 둘하스의 어깨가 덜렁 벌어졌다. 그 순간, 다른 쪽의 갈고리가 나를 향해 홱 꽂혀 들었다. 그러자 재빨리 날아온 발카가 발로 괴물의 팔을 잡았다.
둘하스는 잠시 멈칫했을 뿐이지만, 그때를 놓치지 않고 키이엘로가 괴물의 팔뚝을 잡아 꺾었다. 돌연 우투그루가 외쳤다.
“물러나!”
반사적으로 발카가 내 뒷덜미를 잡아채 뒤로 물러나고, 도멤이 키이엘로를 잡아 구르는 것과 동시에 내 뺨을 스치고 톱날 같은 이빨들이 지나갔다. 둘하스의 입이 여러 갈래로 찢어져 날아든 것이다! 다시 꾸물거리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괴물의 얼굴을 보며 도멤이 진저리쳤다.
“미친 거 아냐? 입으로 찰흙 놀이하고 있네!”
그냥 찰흙이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괴물의 입 안은 이빨로 가득 차 있었다. 예전에 보았던 세이렌의 입과 닮은꼴이었다. 둘하스는 양팔이 못 쓰게 되자 위기감이 든 모양이었다. 아니면 화가 났든가. 어쨌든 괴물의 심기가 좋아 보이진 않았다.
둘하스는 백사장에 누워있는 타조 사체를 한 번, 망가진 제 팔과 어깨를 한 번 보더니 이내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피에 젖은 두 팔을 늘어뜨리고 짧은 다리로 기어오는 모습이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도멤이 꽥 비명을 질렀다.
“무서워!”
“진정해.”
“로트, 왜 이리 침착해!”
비명을 지른다고 둘하스가 머쓱해져서 움직이는 걸 멈출 것 같진 않아서. 나는 그렇게 말하는 대신 갈라져 날아오는 괴물의 입을 쳐냈다. 사실 이걸 입이라고 할 수 있는지 고민이 되지만.
키이엘로 역시 맨손으로는 위험하다 싶었는지 다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나 몇 번 괴물의 공격을 쳐내던 우리는 낭패를 느꼈다. 거리를 두고 괴물을 경계하던 우투그루가 말했다.
“곤란하게 됐는데.”
그의 말이 맞았다. 톱니 이빨이 빼곡히 달린 입은 차라리 촉수에 가까웠다. 유연하게 움직이는 것을 피하려 몰두하다 보니 좀처럼 결착이 나지 않았다. 그 순간, 다시금 둘하스가 우리를 향해 입을 벌렸다.
여러 갈래로 갈라져 날아든 것을 도멤이 창으로 내리찍었다. 쾌재를 부를 틈도 없었다. 이번엔 키이엘로가 곧장 도멤을 잡아끌었다. 도멤이 있던 자리로 이빨이 날을 세워서 박혀 들었다. 도멤은 혀를 차며 창을 털어냈다.
그때 둘하스가 바닥으로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두더지처럼 땅 아래로 들어가 버린 괴물을 보며 얼이 빠진 키이엘로와 도멤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와 우투그루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소 긴장이 서린 얼굴로 바닥을 살피던 우투그루가 내뱉었다.
“이런.”
그와 동시에 우투그루의 아래에서 둘하스의 촉수가 치솟았다. 괴물이 그의 피 냄새를 맡은 것이다. 내가 서둘러 우투그루의 팔뚝을 잡았으나 바로 아래에서 튀어나온 것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톱니 이빨이 우투그루의 발목을 휘감는 모습을 보고 아차 하는 순간, 별안간 발카가 날아들었다. 그러더니 모래 사이로 드러난 둘하스의 얼굴을 발톱으로 할퀴었다.
우투그루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곧장 칼을 역수로 바꿔 쥐고 바닥을 찍었다. 우투그루의 발목을 감은 촉수가 고통에 움츠러들며 느슨해지자 나는 당장 그를 끌어당겼다.
우투그루를 뒤로 내던지듯 밀치자 그가 나동그라졌다. 어쨌든 다른 문제는 없는 걸 확인한 나는 검을 교차해 들고 둘하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발카는 여전히 둘하스의 얼굴에 붙어 퍼덕이며 발톱으로 괴물을 팍팍 긁어내는 중이었다. 둘하스가 비명을 지르며 발카를 향해 꺾인 팔뚝을 휘둘렀다.
“발카, 피해!”
『난 괜찮아!』
피하라고! 나는 울컥 화가 나는 것을 뒤로하고 둘하스가 휘두르는 팔뚝부터 완전히 베었다. 팍, 하고 피가 튀는 것과 동시에 괴물의 촉수 중 하나가 내게 날아들었다.
캉!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도멤의 창대가 그것을 가로막았다. 발카 역시 촉수를 피해 높이 날아오르는 것과 동시에 키이엘로가 둘하스의 머리를 붙들었다.
그러자 우투그루의 칼이 둘하스의 목을 향해 꽂혔다. 깊숙이 꽂힌 칼의 아래로 피가 울컥 새어 나왔다. 몇 번 몸을 떨던 둘하스는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우투그루가 숨을 몰아쉬며 칼을 뽑아냈다. 창을 거둔 도멤이 꼼짝 않는 괴물을 보고 고개를 기울였다.
“해치웠나?”
그러나 그 순간, 둘하스가 백사장을 완전히 빠져나오며 바다 쪽으로 빠르게 기어갔다. 우투그루가 버럭 화를 냈다.
“그런 말을 왜 해!”
“그래, 미안해! 내가 해결하면 되잖아.”
도멤이 끙 앓는 소리를 내며 투덜거리고는 창을 어깨에 걸쳤다. 투창의 자세를 잡은 그가 파도에 닿으려는 둘하스를 향해 창을 던졌다.
빠르게 날아간 창이 퍽, 하고 괴물의 몸뚱이를 꿰었다. 그 후에야 둘하스가 움직임을 멈췄다. 창 다루는 실력으로는 검은바다에서 따라올 자가 없던 만큼 깔끔하고 훌륭한 솜씨였다. 괴물의 근처로 날아가 피 묻은 발을 파도에 씻어낸 발카가 부리로 괴물의 몸통을 쿡쿡 찔렀다.
『심장을 꺼내야 해.』
“심장?”
『안 그러면 도로 되살아날지도 몰라.』
그 말에 나와 키이엘로는 사색이 되어 서둘러 둘하스의 시체 근처로 다가갔다. 도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우리를 따라오고, 우투그루는 제 부상을 살핀 후에 느긋하게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키이엘로가 도멤의 창을 뽑아 건네고, 맨손으로 둘하스의 몸통을 창상을 기점으로 갈라 쪼갰다. 피가 튀는 것에 으윽, 하며 한껏 메스꺼워한 우리는 이내 몸통 안에서 벌컥벌컥 뛰고 있는 심장을 보고 얼이 빠졌다.
“어떻게 아직도 심장이 뛰지?”
『둘하스는 잘 죽지 않아. 아마 바다를 통해 회복하려 했겠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메흐가 죽은 뒤로 몇몇 존재들은 바다에서 치유력을 얻을 수 있으니까.』
“난생처음 듣는데…….”
발카의 말을 궁금해하는 도멤에게 말을 전하자 도멤도 이상한 얼굴을 했다. 괴물이 치유력이니 뭐니 하는 주술을 쓸 능력이 다 있어? 그 옆에서 우투그루가 말했다.
“둘하스는 강한 악령이야. 주술을 쓸 수 있는 넉넉한 시간이 있다면 네 새가 말한 것쯤이야 어렵진 않았겠지.”
그럼 도멤이 창으로 꿰지 않았다면 꽤 성가셔졌을 거란 뜻이군. 나는 어깨만 으쓱였다.
“어쨌든 확실히 죽였으니 된 거지.”
“맞는 말이야.”
키이엘로가 내게 동조하며 뽑아낸 심장을 주먹으로 쥐어 으깼다. 심장이 터지며 나온 피를 뒤집어쓴 키이엘로는 한숨을 쉬고는 어정쩡한 얼굴로 그것들을 닦아냈다. 이렇게 피가 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참… 저렇게 피를 뒤집어쓰고도 빛을 내는 외모란 정말 흔치 않을 것이다. 키이엘로가 바닷물로 핏물을 닦아내는 사이, 우투그루는 지친 안색으로 말했다.
“좋아, 어쨌든 해치웠군. 하루는 이 섬에서 묵어야 할 것 같지만 말야.”
그렇게 웅얼거리며 그는 하늘을 가리켰다. 구름을 불태우며 빛을 내던 석양은 이미 바다 아래로 가라앉은 후였다. 어슴푸레하게나마 남은 푸른 빛이 사위를 청람색으로 물들인 상태였지만, 그마저도 곧 어두워질 것이 분명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검집에 꽂아 넣었다.
“다른 괴물이 더 없길 바라자고.”
“동굴로 돌아가자. 애들이 벌벌 떨고 있겠다.”
도멤이 우투그루의 팔 아래로 어깨를 넣어 부축하며 흔쾌히 말했다. 피를 다 씻어낸 키이엘로 역시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백사장 위의 시체 두 구를 가로질러 동굴로 향했다.
* * *
호화로운 서재에서 설렁설렁 책장을 넘기던 손이 뚝 멎었다. 어두운색의 로브를 걸친 사내의 길고 흰 손이 느리게 책을 덮었다. 지나치게 조용한 사위 때문인지 그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무언가 불편한 부분이 있으신지요.”
서재의 가운데에서 차를 들던 중년인이 묻자 그는 느리게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로브의 아래로 보이는 흰 턱선과 뱀처럼 구불구불 내려온 검보라색 머리칼이 요요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창백한 입술이 미미하게 비틀어졌다.
“좀처럼 잡히지 않는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