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07)
바다새와 늑대 (206)화(207/347)
#50화
두런두런 대화하는 이들이 가까워지기를 기다리던 우투그루는 그들이 근접하자 곧장 튀어 나갔다. 쏘아지듯 달려든 그가 검집으로 그들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소리지를 틈도 없이 얻어맞은 둘을 대충 떨쳐 내고 우투그루가 일행에게 손짓했다. 어서 도망가라는 것처럼 발소리가 등 뒤에서 무수히 울렸다. 키이엘로는 서둘러 부둣가에서 배 하나에 뛰어들어 조타실을 열었다. 마장석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작은 크기의 배들은 마장석 기구가 조타실에 곧장 붙어있는 구조였다. 배들을 살핀 키이엘로는 몇 번의 허탕 끝에 마장석이 가득 찬 배를 찾아냈다.
키이엘로가 일행을 부르자 다른 배를 살피던 일행이 빠르게 모여 배에 올랐다. 키이엘로가 마장석 기구를 작동시키자마자 로트렐리가 조타를 잡았다. 순식간에 배가 출발했다. 부둣가로 몰려온 마을 사람들이 뒤늦게 그들을 부르며 무어라 고함을 질렀다.
도멤은 희게 질린 얼굴로 그것을 보고 있다가 우투그루가 제 어깨를 치는 것에 흠칫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갑판 아래로 가서 마장석 여분이 있나 살펴봐.”
“…….”
도멤은 입을 뻐끔거리다가 이내 경황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도멤의 어깨를 잡고 키이엘로가 말했다.
“내가 다녀올게.”
어두컴컴한 아래로 그가 내려가자 우투그루는 혀를 차고는 짐을 내려놓았다. 챙길 것은 다 챙겼지만, 식량의 경우 상황이 급박했던 탓에 양이 부족했다.
그때 로트렐리가 욕설을 지껄이며 속도를 높였다. 마을 사람들이 배에 올라타 쫓아오려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도멤은 가슴께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때마침 도로 조타실로 올라온 키이엘로가 말했다.
“다행히 마장석은 여유가 있어.”
“좋아, 걱정을 덜었네. 속도를 더 높일게.”
로트렐리가 조타를 쥐고 마장석 기구를 만지며 말하자마자, 배는 마치 큰 물살에 오른 것처럼 나아가기 시작했다. 마장석 기구만의 덕은 아니었다.
휘발되는 마장석보다 나아가는 거리가 더 컸다. 우투그루는 문득, 바다새의 가호가 있다면 이런 것인가 상기했다.
그때였다. 와장창, 유리가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조타실의 창을 뚫고 갈퀴가 날아와 꽂혔다.
“망할!”
급하게 몸을 숙인 로트렐리가 새되게 외쳤다. 우투그루가 당장 갈퀴를 뽑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가 그것을 뒤로 쫓아오는 배를 향해 던지자 도멤이 놀라 외쳤다.
“우투그루!”
“뭐! 이번엔 왜, 또!”
우투그루가 신경질적으로 대꾸하며 도멤을 돌아보았다.
“넌 아직도 저들이 무해한 민간인으로 보여? 아직도?”
“난…….”
“정신 차려, 도멤! 저 인간들은 우릴 팔아치우려고 했어! 네 물렁한 정신머리는 저런 작자들한테 된통 당하기만 하지 하등 도움이 안 된다고, 알아들어?!”
도멤이 무어라 하기 전에 우투그루가 그의 말허리를 끊고 야멸차게 을렀다. 도멤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난 널 탓하려는 건 아니었어. 그냥, 그냥……. 아냐. 갑자기 소리쳐서 미안해.”
그 침착한 목소리에 우투그루도 멈칫거리다가 화를 가라앉혔다. 뒤늦게 너무 과민반응했다는 생각이 그에게 스쳤다. 우투그루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꾹 깨물었다.
그때 배가 살짝 기울어졌다. 로트렐리가 방향을 튼 것이었다. 마을의 이들을 뒤로하고 북쪽을 향해 뱃머리를 돌리자, 그들을 쫓던 배들이 주춤거리며 멈춰 섰다.
그것을 보고 도멤이 의아한 듯 웅얼거렸다.
“왜…… 멈춰 섰지? 더 쫓지 않는 건가?”
의아하게 그들을 바라보는 우투그루와 도멤 사이로 키이엘로가 나와 끼어들었다.
“어디 다친 곳 없어?”
“우린 괜찮아. 어디로 향하는 거야?”
도멤의 물음에 키이엘로가 답했다.
“제도에서 조금 떨어진 섬이 근처에 있대. 발카의 말로는 예전부터 무인도라나 봐.”
그렇게 말한 키이엘로는 차분한 얼굴로 우투그루와 도멤을 번갈아 보다가 말했다.
“밤이라 바람이 차다. 들어가자.”
* * *
그들이 완전히 방향을 정하고 나아가자 마을의 배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지켜보다가 섬으로 돌아갔다. 그것을 영 찜찜하게 보던 로트렐리는 발카에게 물었다.
“왜 우리를 계속 쫓지 않지? 물론 다행이긴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가려는 섬을 불길하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몰라.』
“검은 해변이 대체 어딘데?”
『말 그대로 모래가 검은 섬이야.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옛날부터 그곳은 사람이 살질 않았어.』
지금에 와서는 어떨지 확답할 수는 없지만, 저곳보단 낫겠지. 발카의 말에 로트렐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새의 말이 맞았다.
어디든……. 지금 도망쳐 나온 곳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때 선실을 살펴보러 갔던 도멤이 조타실로 들어왔다.
로트렐리는 그를 보고 키를 고정해둔 뒤 물었다.
“어때?”
“괜찮은 배인 거 같아. 적당히 쓸 만한 것들이 많더라.”
도멤이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마음이 불편해.”
“뭐?”
“물론, 물론 그 마을 사람들을 아직도 믿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잘 풀 수 있는 방법은 없던 걸까?”
도멤은 자신이 말하고도 바보 같았는지 한숨을 폭폭 내쉬며 얼굴을 문질렀다.
“난……. 난 그냥, 아무리 우리에게 해를 끼치려 했다지만 우홉피아주만큼 쓰레기인 것도 아닌 사람들한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나 봐. 그 사람들이 부지깽이를 들고 와도 우리는 무찌를 수 있으니까. 그리고 우투그루가 너무 냉소적인 것도 사실이잖아.”
로트렐리는 도멤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그러자 도멤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울상을 지었다. 미안해, 이런 말 하기 싫었는데. 그에 로트렐리는 나직하게 말했다.
“네가 잘못한 건 아냐.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 말고 우리를 먼저 생각하자. 어쨌거나 우리는 지금 그 마을을 벗어났잖아.”
로트렐리의 말에 도멤은 애매한 낯을 했다. 도멤은 희미하게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로트렐리가 쉬라며 떠미는 손에 밀려 조타실을 나갔다.
로트렐리는 손으로 눈가를 문지르다가 고개를 들었다. 날아든 갈퀴에 깨진 창의 너머로 우투그루가 서 있었다. 잠시 로트렐리의 푸른 시선을 마주 보던 그가 말했다.
“넌 도멤 편을 들 줄 알았는데.”
로트렐리는 눈썹만 치켜올렸다.
“편 들고 말고 할 게 어디 있어? 물론, 도멤 말처럼 네 의심이 기우라면 좋았겠지만…….”
로트렐리의 눈은 파랗게 가라앉고 있었다. 우투그루는 그 눈을 마주하고 일순 움찔했다. 로트렐리는 침착한 게 아니었다.
“우리는 최악을 상정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어쩔 수 없어. 난 무엇도 다른 이들에게 뺏기지 않을 거니까.”
새파란 눈에서 침잠하는 분노를 엿본 우투그루는 어쩐지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자신의 예상대로, 자신의 의심대로 되었지만 뿌듯하거나 기쁘지가 않았다.
로트렐리가 말했다.
“아무도 일이 이렇게 되길 원하지 않았어. 도멤처럼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을 믿고 싶은 건 잘못이 아냐. 그 믿음을 배반하는 게 나쁜 거지.”
로트렐리의 눈이 파도처럼 우투그루를 바라보았다. 우투그루는 왠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문이 막힌 채로 그녀를 바라보던 우투그루는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우투그루는 여전히 기분이 이상했다. 이 느낌은 대체 뭐란 말인가? 우투그루는 도멤처럼 태평한 생각을 순진해 빠졌다고 멸시하고 키이엘로 같은 방관자를 행동력 없는 인간이라고 증오한다.
그러나 그는 문득 자신의 의심마저 싫어지는 것 같았다. 속이 울렁거렸다. 보통 상황이 예상대로 흘러간다면 대체로 자신이 옳았다는 도취를 느끼는 것이 정상이지 않나? 그리고 우투그루는 이전까지는 대부분 그래왔다. 이전까지는 말이다.
조타실로 들어온 우투그루를 향해 로트렐리가 물었다.
“안 피곤해? 자두는 게 낫지 않겠어?”
“……너는?”
“일단 항로를 보고 있어야 하니까.”
로트렐리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조타실에 있는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우투그루는 잠시 망설였다. 그때 로트렐리가 먼저 말을 붙였다.
“넌 검은바다를 잘 알잖아. 그들이 어쩌고 있을지 예측되는 거 없어?”
그 물음에 우투그루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라고 검은바다에 관해 생각해 보지 않은 게 아니었다. 우투그루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말했다.
“아버지는 네 동생을 건들지 않을 거야. 함저 구역에 가둬두면 모를까. 그리고 지금은 인원이 많이 줄었으니 그때 우리를 도와준 녀석들도 죽는 것은 면했겠지.”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지?”
“우리를 찾고 있겠지만 동시에 아버지는 너를 알아. 제국의 눈치를 보면서 돌아다니면 네가 자신들을 찾아올 것이라는 걸 알겠지. 네 동생이 거기에 있으니까.”
그러니 사실 검은바다보다 로트 일행이 더 초조한 상황이었다. 검은바다 하나만 목표로 해도 머리 아픈데 심지어 제국의 수배까지 걸린 상황이다. 그 수배는 아마 검은바다에도 닿았을 테다. 우투그루는 그 이후부터는 좀처럼 클루스도의 의중을 읽기 힘들었다.
그는 어떻게 할까? 여전히 여유로울까? 혹은 그도 이제는 초조해질지도 모른다. 랄티아를 회유해보려 시도할 수도 있겠지. 우투그루는 문득 브레딕을 떠올렸다. 그가 처형을 당하지 않았다고 해도 채찍질을 피하지는 못했으리라.
‘난 약속 지켰다, 우투그루!’
선원들의 손아귀에 짓눌리면서도 외치던 브레딕이 떠오르자 우투그루는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때 로트렐리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너는 왜 돌아가지 않아? 네가 숙이고 들어가는 척하면 클루스도는 아마 좋다고 받아줄 텐데.”
“……브레딕이 기껏 날 빼냈는데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브레딕을 다시 보려고 우리와 함께하는 것 아니었어?”
로트렐리의 물음에 우투그루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건…….”
“지금 보니까 상황이 좀 심각하잖아. 검은바다에 돌아가서 브레딕을 빼돌리는 게 너에게도 편할 텐데.”
“……시끄러워. 어차피 지금 검은바다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모르잖아.”
우투그루는 어쩐지 로트렐리의 말이 퍽 불쾌하게 느껴졌다. 자신과 그녀 일행 사이로 선을 긋는 말이라 그런 것인가?
하지만 로트렐리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검은바다로 당장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때 우투그루는 이들과 함께 있었을까? 그는 그 화두에 대해 부러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우투그루가 다소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자 로트렐리는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검게 출렁이는 바다만 바라보았다. 침묵 사이로 조타실의 문이 열렸다. 씻은 모양인지 머리카락이 젖은 키이엘로가 들어오다가 조용한 조타실의 공기에 멈칫했다.
이내 태연하게 로트렐리에게 다가온 그는 작게 말했다.
“가서 너도 씻고 쉬어, 로트.”
“항로는?”
“굳이 네가 안 봐도 길이 틀어지면 발카가 알려주겠지.”
왜 있는 바다새를 내버려 두고 그러냐는 듯 어리둥절한 키이엘로의 표정에 로트렐리는 잠시 말이 없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자 우투그루도 조타실을 나가려 했다.
그때 키이엘로가 뒤에서 그를 불렀다.
“우투그루.”
우투그루가 반사적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키이엘로는 제 친구를 대할 때와는 정반대로 차게 식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앞으로 입조심 해.”
짧은 말이었다. 그러나 우투그루는 명치께가 서늘하게 식는 기분을 느꼈다. 키이엘로는 더 말을 섞지 않고 그대로 우투그루를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
그는 그들과 자신 사이에 선명하게 그어진 경계를 실감했다. 마치 생각 못 한 것을 마주친 것처럼 당혹스러운 것이 우스웠다. 그러나 동시에 우투그루는 이유 모를 답답함을 느꼈다. 가야 할 곳이 있는데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그는 그저 자조했다. 자신이 언제는 헤매기라도 했다는 듯이 생각하는 게 우스웠다. 그는 제 길을 떠나갈 깜냥조차 되지 못했다.
자신은 아마 평생을 그 검은바다와 섬에 묶여 있을 것이다.
평생을….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