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09)
바다새와 늑대 (208)화(209/347)
#52화
“그나저나 이 냄새는 대체 뭐지? 옛날에 식초라도 만들던 곳이었나?”
도멤이 콧잔등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택이 가까워지자 곳곳에 석상들이 보였다. 사람을 조각한 것도 있었고, 무슨 종인지 모를 동물을 조각한 것도 있었다. 돌로 된 석상들은 저택의 주변으로 가자 더욱 많아졌다.
고약한 식초 냄새 탓에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우리는 일제히 코를 틀어막고 저택의 울타리 앞에서 멈춰 섰다. 날카로운 울타리의 안으로 보이는 정원은 지독하게 살풍경했다.
키이엘로가 눈썹을 들어 올리며 주변을 보았다.
“석상이 많네. 부자가 살던 곳인가? 수집벽이 있던 사람이라든지.”
“글쎄다…….”
나는 애매한 목소리로 대꾸하며 울타리에 다가갔다. 식초 냄새는 확실히 저택에서 풍겨오고 있었다. 그 외의 특이점은 보이지 않았다. 코를 틀어막고 있던 우투그루가 인상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식초 냄새 때문에라도 더 들어가긴 싫은데. 방범용이라면, 칭찬해줄 만해.”
방범용이겠냐고……. 우리는 떨떠름하게 그를 보았으나, 말마따나 냄새가 지독했기 때문에 이내 저택에서 조금 물러났다. 도멤이 어깨를 으쓱였다.
“석상이 많은 걸 보면 메두사가 있는 걸지도 몰라.”
“괴물은 코빼기도 안 보였는데 이젠 그냥 있다고 치기로 한 거야?”
“추측하는 거지.”
석상이 많은 것은 확실히 메두사를 의심할 만했고, 오싹하기도 했다. 정말 메두사가 있다면 좀 위험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석상들은 정말로 누군가 조각한 것처럼 아름답기만 했지, 괴물을 마주하고 굳어버린 것처럼 섬뜩하지는 않았다. 그럼 메두사는 아닐 텐데.
나는 손부채질을 하며 지독한 초산의 냄새를 떨치려 노력했다. 그리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이 냄새는 어째 익숙해지지도 않냐. 다른 곳도 기웃거리던 일행은 모두 모여 고개를 가로저었다. 키이엘로가 말했다.
“겉으로만 봐서는 뭐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아. 그렇다고 저택 안으로 들어가 보자니…….”
“냄새가 너무 지독하지.”
“맞아.”
도멤이 질색을 했다. 이 냄새가 몸에 배면 우린 배를 타고서도 내내 이 냄새를 맡아야 할 거야. 그것참 끔찍한 말이었다. 잔뜩 허탕 쳤군. 그때 우투그루가 미간을 좁혔다.
“방금 무슨 소리 안 들렸어?”
“…….”
우리는 숨을 죽이고 주변을 살폈다. 지나치게 고요한 섬은 우리가 입을 다물자 바람이 스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치 조용했다. 키이엘로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무슨 소리 들렸어?”
“사람 소리가 났어.”
나는 곧장 여러 추측을 머릿속으로 늘어놓았다. 사이비 종교 집단인가? 사람처럼 생긴 괴물? 아니면……. 그러나 더 많은 예측을 늘어놓기 전에, 내 귀에도 소리가 잡혔다.
누군가 흥얼거리는 소리와 비슷했다. 여자 목소리? 도멤도 들었는지 고개를 들고 묘한 표정으로 우리를 돌아보았다.
“여자가 사나? 노랫소리 같은데.”
“이런 곳에서 산다고? 그래, 식초 스튜나 끓이면서 흥얼거릴 수도 있는 일이지. 다들 그렇잖아?”
“일단 물러나서…….”
습관처럼 비아냥거리는 우투그루를 뒤로하고 말하던 나는 뒤쪽에서 기척을 느끼고 획 뒤를 돌아보았다. 그에 흠칫하며 함께 뒤를 돈 우투그루가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이상하다. 뭔가 기척이 들렸는데.”
묘한 불안감을 담고 주변을 살피는데, 이번엔 보다 선명하게 소리가 들렸다.
투둑, 툭. 우리 넷은 일제히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석상들과 말라비틀어진 덩굴 사이를 응시하던 도멤이 등에 멘 창에 손을 가져가며 어색하게 웃었다.
“뭐지……. 무슨 소리일까.”
“그걸 알면 이러고 있겠어?”
“우투그루, 넌 미운 말 하는 횟수를 우리랑 정하는 게 낫겠다.”
“퍽이나.”
그러나 그러는 우투그루 역시 허리춤의 검으로 손을 올렸다. 조용히 주변을 살피던 키이엘로가 낮게 속삭였다.
“노랫소리가 멎었어.”
“…….”
순간, 가까이에서 다시금 투둑, 하는 소리가 울렸다. 나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입을 다물었다. 묘한 위화감이 등골을 긁었다. 주변은 조용하고, 딱히 기척을 낼 만한 동물조차 보이지 않는데도 소리가 났다. 그리고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면…….
항상 석상이 있었다.
그것을 눈치채자마자 나는 욕을 짓씹으며 검을 들었다. 그것이 신호가 된 것처럼, 사방에서 예의 그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가까이에 있던 석상이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우투그루가 낮게 외쳤다.
“가고일
1)
!”
가장 먼저 깨어난 것은 박쥐 날개가 달린 커다란 짐승의 석상이었다. 단단하게 보이는 외피를 따라 굳은 흙이 바스러지듯 돌조각들이 떨어져 내렸다.
도멤이 기겁하며 키이엘로에게 소리쳤다.
“어떻게 해봐, 키이엘로!”
“아무리 나라도 석상을 부수는 건 무리야!”
나는 그의 대꾸에 내심 ‘진짜?’하고 되묻고 싶은 것을 참으며 검집을 허리에서 풀어냈다. 가고일의 몸체는 물렁한 살이 아니라 돌과 보석 따위로 이루어져 있었다.
검날로 쳐봐야 날만 나갈 것이니, 베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내가 서둘러 외쳤다.
“일단 뒤로 물러나!”
“어디로?”
“딱 보면 몰라? 석상이 없는 곳으로!”
도멤의 물음에 와락 성을 낸 우투그루는 물러나다가 인상을 구겼다. 석상이 받침대 위에서 몸을 틀더니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도멤이 한탄하듯 말했다.
“이래서 욕심 없이 살라는 건가 봐. 물자 좀 있나 싶어서 들어왔다가 정말로 괴물을 만날 줄은 누가 알았겠어?”
“말할 틈 있으면,”
언제나 물에 빠지면 입만 뜰 친구에게 버럭 외치던 나는 서둘러 옆으로 몸을 물렸다. 피막을 조각한 날개의 뾰족한 끝이 우리들의 틈새를 갈랐다. 키이엘로가 재빨리 날개를 움켜쥐고 손으로 쾅 내리쳤다. 그러나 그는 이내 작게 끙 소리를 내며 물러났다.
“손 괜찮아?”
“부러지진 않았어.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안 되네.”
내 물음에 발갛게 변한 손 밑을 보여준 키이엘로는 미간을 좁혔다. 그래도 돌덩이를 맨손으로 내리쳐놓고 조금 붉어지는 것으로 그쳤다면 그건 그거대로 대단했다.
“뭔가 타개책이 있을 거야.”
“그야 그렇겠지.”
내 대꾸에 도멤이 말했다.
“좋네, 일단 그 타개책을 알아내기 전까지 살아남는 걸 목표로 할까?”
“넌 지금 이 상황에도 헛소리가 나와?”
우투그루가 사납게 윽박지르고는 가고일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다른 석상 받침대에서도 가고일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도멤은 입을 비죽이며 내게 말했다.
“절망하기만 한다고 해결이 되진 않잖아, 안 그래?”
“음…….”
낙관적이기만 한다고 해결이 되지도 않잖아…….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나는 어색한 얼굴을 하며 검을 들었다. 검은색 검집에 싸인 그대로의 검을 든 채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이었다. 가고일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다급하게 가고일이 휘두르는 발을 막아낸 나는 옆에서 들어오는 석상의 꼬리 탓에 구르듯 피해야 했다. 내가 있던 자리의 잔디가 퍽석 터지듯 뒤집혔다.
망할, 대충 한 대쯤 맞을 각오로 덤비기에도 위험했다. 상대는 돌로 된 괴물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둘하스 때처럼 우리가 수적으로 우위인 것도 아니었다.
역으로 머릿수가 완벽하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때 우투그루가 외쳤다.
“심장 부위를 노려!”
석상한테 무슨 심장? 저절로 퉁명스러운 소리가 나오려는 찰나, 두 발로 선 괴물 모양의 석상의 가슴팍이 열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정으로 쪼갠 것처럼 움푹 들어간 부분에는 둥근 구체가 있었다. 유리처럼 반쯤 투명한 재질이었다.
도멤이 황당하다는 듯 외쳤다. 누가 봐도 약점처럼 생겼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모두 근거리 전투에 특화된 검사와 창수였다. 가고일이 돌로 된 팔을 이리저리 위협적으로 휘두르는데 가슴팍을 찌르겠답시고 뛰어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도멤이 창을 던진다고 해도 그건 너무 낭비였다. 검은바다에 있을 적처럼 무기에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던진 창을 수거하는 것도 난감할 것이 뻔하지 않은가?
나는 돌연 랄티아와 베제가 지독하게 그리워졌다. 그리고 네토르 녀석도 아주 조금은 보고 싶었다. 가고일이 내게 아주 큰 변화를 주는군.
속으로 자조하던 나는 문득 땅에 널려 있는 돌멩이를 보았다. 곧바로 돌들을 주워든 나는 그것을 키이엘로에게 내밀었다. 반사적으로 받아든 그가 얼떨떨한 얼굴을 했다.
“진심이야? 나 보고 이거로 저것들을 맞추라고?”
“일단 해봐, 네 재능이 어디까지일지 시험해보는 거지.”
“말이라고 쉽게 한다…….”
키이엘로가 볼멘소리를 내었지만 나는 딱히 크게 걱정하지 않고 가고일이 덤벼오는 것을 피했다. 그는 일전에 나를 원판에 매달고도 맞추지 않은 실력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러나 키이엘로가 던진 돌은 위력은 매우 강했으나 가고일의 머리만 때리고 툭 떨어졌다. 나는 배신 당한 기분으로 키이엘로를 돌아보았다.
키이엘로는 내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목표를 정확히 노리려니까 오히려 더 안 되는 것 같아…….”
나는 문득 내가 운빨로 살아남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키이엘로가 어쩌면 사수에는 재능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함께였다. 어느 쪽이든 유감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가고일들이 다시 덤벼오고 있다는 것 또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우투그루가 분개한 목소리로 폭발하듯 외쳤다.
“답 없으면 튀어, 머저리들아!”
* * *
“이게…… 정말 될까?”
베제는 확신이 없는 얼굴로 되물었다. 랄티아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되든 안 되든 저희는 상관이 없죠. 저희는 그냥 소란을 틈타서 도주하기만 하면 되는 문제니까요.”
“하몬은…….”
“하몬이 바란 거예요.”
“난 이 배에 남을 거라고!”
“그 프라세라는 애만 잘 돌보시면 될 문제죠.”
아니, 그게 아니라! 베제는 속 터진다는 듯 랄티아를 보았으나 랄티아는 몇 번 반복된 이야기에 지친 듯 말을 끊었다. 그들 사이로 네토르가 끼어들었다.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백 년 천 년 이 함저 구역에 처박혀 있게?”
네토르의 말에 베제는 끙 소리를 내다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클레인스와 브레딕은 랄티아를 보며 미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대체 저 머리 어디에서 저런 꾀가 나오는 것인지 그들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클레인스가 머뭇거리는 기색으로 물었다.
“왜 하몬이 그런 걸 바란다고 생각했어요?”
그 말에 랄티아는 가만히 그를 돌아보았다.
“그건 그 사람이 보이는 행동만 좀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지 않나요?”
그러나 클레인스는 영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랄티아가 하몬에게 제안한 것은 반란이었다. 하몬이 바라는 대로 선상 반란을 일으켜 배를 뒤집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몬은 아주 흔쾌히 그것을 수락했다. 그 소란 중에 이들이 탈출하는 것은 그가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이 조건이었으나, 그것으로 서로의 이해관계는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클루스도는 반란의 소란으로 랄티아 일행이 탈출하는 것을 막을 여력이 없을 것이다. 또 하몬의 자리가 비면 마장석 기구를 움직일 인력이 없다. 일행을 곧장 추격할 여유가 사라진다는 이야기였다. 그에 더해.
어쩌면 클루스도의 묘한 여유를 앗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질긴 추격전 자체의 주도권을 랄티아가 가질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