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16)
바다새와 늑대 (215)화(216/347)
#59화
인어는 수면 위로 반짝 고개를 들었다. 최근 바다 위를 오가는 배가 많아졌다. 제국의 침략은 줄어들었지만, 그것은 곧 제국이 가치 있는 섬들을 이미 대부분 차지했다는 소리와 같았다.
하여, 제국은 자신들이 차지한 섬에서 막대한 자본과 물자를 착취하고 있었다. 그 탓에 땅 위의 사람들이 바다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본래 제국과 그 지배하의 섬 주민의 장거리 항해는 제국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대부분이 해적처럼 무허가 항해를 감행하고 있었다. 다소의 범법을 저지르는 것이 법망 안에서 사는 것보다 덜 고달프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인간들의 사정을 모르는 인어는 다들 비슷하게 생긴 배를 보고 불퉁한 얼굴로 입에 고인 바닷물을 주륵 뱉어냈다. 그 애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해적들이 타고 있는 검은 배를 찾아야 했다.
형태가 닮으면 갈색이고, 검은색이라서 다가가면 모양이 다르고, 형태와 색이 닮아도 막상 다가가 보면 전혀 다른 배였다. 게다가 수도 전에 없이 많아져서 찾기 힘들었다.
인간들은 왜 이렇게 비슷비슷하게 사는 거지? 인어는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수면 밖으로 뺀 눈으로 배들을 노려보았다. 그때 가까이 있던 배에서 누군가 난간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짙은 색의 피부와 갈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였다. 한쪽 눈썹에 삐죽 흉터가 났음에도 그는 굉장히 유순한 인상이었다. 바다를 살피던 그가 물결 속에서 고개를 내민 인어를 보고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어? 웬 사람이……. 저기요!”
그에게 발견되었음을 깨닫자마자 인어는 물속으로 고개를 집어넣고 사라졌다. 그 재빠른 잔상에 난간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던 남자는 얼떨떨한 얼굴로 푸른 수면을 보았다.
우윳빛을 띠는 진주색 눈이 혼란스럽게 파랑의 틈새를 살폈다. 갑판의 뒤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다.
“무르하! 뭐 해?”
“그게, 사람이 있는 것 같았어요!”
그와 닮은 체격이 다부진 여자가 난간으로 다가와 바다를 살폈다.
“아무도 없잖아.”
“하지만, 에퀘야, 난 정말 봤는걸요. 어쩌면 파도에 휩쓸린 조난자일 수도 있잖아요.”
그가 안절부절못하며 말하자 여자는 짧게 한숨을 쉬고는 겉옷을 벗었다. 난간을 뛰어넘어 바다로 뛰어든 그녀는 잠시 후 수면 위로 올라와 한탄하듯 외쳤다.
“없잖아, 멍청아!”
“그, 그래요? 어라, 하지만 정말로 봤는데…….”
그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착각이었나? 그가 혼란스러워하는 동안 여자는 갑판 위로 올라와 젖은 옷을 쥐어짜며 머리칼을 손으로 헝클어 물기를 털어냈다.
머리의 반은 까까머리고 나머지 반은 구불거리는 단발을 한 그녀가 남자를 한 대 쥐어박고는 말했다.
“아상트라로 뱃머리를 돌렸어. 그곳이 이제 슬슬 준비가 되었다는 것 같더군.”
“아…….”
여자의 말에 얼빠진 소리를 낸 남자에게 그녀가 다시금 주먹을 들어 보이며 고약하게 소리쳤다.
“아, 가 아니라 빨리 움직여야지! 당당하게 제국의 속령에 정박할 셈이야?”
“아, 네, 네!”
어리바리하게 대꾸한 남자가 허겁지겁 뛰어갔다. 그런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찬 여자는 젖은 옷을 탁 털어 몸에서 떼어내고는 난간을 짚었다.
섬에 당도하면 습하고 더워지는 공기가 잉걸불처럼 뜨겁게 끼쳐올 것이다. 도착할 곳은 바다의 소금기보다 사람의 땀과 눈물의 짠기가 더 스몄을 섬이다. 여자의 매서운 눈길이 수평선 너머를 노려보았다.
검푸른 물결이 땅 위에서 살지 못하고 몰려나온 이들을 비웃듯 출렁이고 있었다.
* * *
“우투그루도 요르문간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진짜 의외다. 난 또, 내가 로트랑 키이엘로랑 어울리니까 특이한 게 전염됐나 싶었지.”
“말하지 마, 상기시키지 마. 진짜 싫으니까.”
스튜를 먹던 우투그루가 도멤의 말에 핼쑥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도멤의 말에 움찔 몸을 떤 키이엘로가 그런 우투그루를 미묘하게 찡그린 얼굴로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물도 비교적 여유가 있겠다, 물자 보충을 위해 뱃머리도 돌렸겠다 바싹 말라가는 빵과 다른 음식들을 넣어 도멤이 솜씨를 부린 참이었다.
덜어준 작은 그릇에서 머뭇머뭇 따끈해진 빵을 물던 세계의 뱀에게 시선이 모였다. 와중에 키이엘로는 ‘뱀이 빵을 먹네…….’ 하고 중얼거렸다. 여하간 세계의 뱀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현재야 형제와 떨어져 유명무실한 상태지만 과거 세계를 운행하던 법칙이며 자연의 구성이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나를 자연스럽게 느끼고,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지.』
“그러니까 이런 소리가 듣기 싫다고…….”
우투그루가 숟가락을 탁 내던지며 머리를 싸맸다. 도멤이 그를 타박했다. 숟가락 던지지 마! 가만히 스튜를 떠먹던 나는 문득 네토르가 떠올랐다. 그때 네토르는 못 들었던 것 같은데.
하긴, 그때는 다른 선원들도 뱀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워낙 소란스러웠던 탓이리라. 덕분에 그 당시에는 도멤도 동물과 같이 다니는 괴짜 삼인방에 얼렁뚱땅 끼게 되긴 했지만, 본인이야 억울하지도 불만이지도 않은 것 같았고.
와중에 숟가락을 다시 주운 우투그루가 연신 짜증을 냈다.
“한 마리가 가니까 한 마리가 오네. 그것도 시끄러운 한 마리가!”
“야…….”
도멤이 키이엘로의 눈치를 흘끔 살피며 발로 우투그루의 다리를 걷어찼다. 우투그루는 ‘어쩌라고?’ 하는 얼굴로 도멤을 노려봤다가 스튜나 팍팍 떠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둘이 그러든 말든 키이엘로는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사실 키이엘로는 정말로, 자신이 관심을 끄기로 한 상대에 관해서는 가차 없을 정도로 매정한 녀석이었다. 그래서 키이엘로는 우투그루가 어지간히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게 아닌 이상 그냥 무시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래도 둘이 싸우지 말라는 말을 잘 지켜주고 있는 것 같으니 도멤과 나로선 고마울 뿐이었다. 그때 발카가 말했다.
『이 방향으로 가면 나오는 섬엔 풍요의 호수가 있는 거로 유명해.』
“풍요의 호수?”
『호수의 색과 경관이 매우 아름답거든. 나도 아주 먼 옛날에 몇 번 가 봤어. 아주 거대한 호수인데, 정말 예뻤지.』
나는 발카의 말을 일행에게 전하며 물었다.
“그럼 관광지인 건가? 사람이 많으면 주목받지야 않겠지만…….”
“풍요의 호수? 그런 곳 들어본 적 없어.”
우투그루가 미간을 좁히며 끼어들었다. 그 말에 나는 눈썹을 들어 올리며 발카를 보았다. 발카 역시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말했다.
『유명한 곳인데. 그만한 아름다운 자연을 쉽게 해쳤을 리도 없고. 차라리 관광자원으로 활용했을 거야.』
“글쎄……. 생각보다 세상에 여러 일이 일어나니까.”
나는 그렇게 대꾸하고 어깨를 으쓱였다. 우투그루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혀를 차며 말했다.
“상점이 많은 섬이라면 해도라도 사야겠어. 기억에만 의존하려니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한 게 아냐.”
“우리에겐 발카와 로트가 있잖아.”
도멤이 낙천적으로 말했다. 그에 우투그루가 다시금 혀를 찼다.
“그래서? 가까운 섬을 알고 항해하는 것에 문제는 없다지만 우리는 섬을 골라가며 정박해야 하는 처지야. 지금처럼 불명확한 상황에 당면해서 좋은 건 없어.”
“당면 먹고 싶다.”
“너 내 말을 듣고 있긴 하냐?”
도멤의 뜬금없는 소리에 우투그루가 바락 화를 냈다. 듣고 있으니까 말하지! 도멤이 반박하는 것을 보며 나는 낄낄 웃다가 키이엘로와 눈이 마주쳤다.
의아하게 바라보자 그가 내게 말했다.
“호수를 관광자원으로 사용하는 섬은 얼마 없어. 그런데 그중에서도 특이한 호수가 있는 섬을 고른다면 하나 예상이 가는 곳이 있는데…….”
생각해 보니 그랬다. 어마어마하게 큰 호수나 관광자원이 될 만한 호수는 손에 꼽았다. 그러니 큰 호수가 유명한 섬이라면 추려낼 수 있을 것이다.
키이엘로가 말을 이었다.
“풍요의 호수라는 이름은 모르지만, 근처에 죽음의 호수가 있는 건 알아.”
“죽음의 호수?”
내가 의아하게 되묻는데, 도멤과 우투그루도 그 말을 듣고 아는 체를 했다.
“아, 확실히. 이 근처에 호수는 죽음의 호수가 유명하지.”
“참고로, 관광지는 아냐. 용의 능선처럼 위험한 곳으로 유명하면 모를까.”
『죽음의 호수? 그런 곳 들어본 적 없는데.』
나는 곧바로 풍요의 호수가 현재의 죽음의 호수라고 확신했다. 다른 일행들도 금방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도멤이 피로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가려는 곳마다 영 찝찝한 곳들뿐이야.”
내가 물었다.
“죽음의 호수는 어떤 곳인데?”
“말 그대로 들어가면 죽는 호수야.”
“굉장히 간결한 설명 고맙다.”
나는 더 자세히 말하라며 우투그루를 타박했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다가 입을 열었다.
“물이 붉은색으로 보이는 곳이야. 이유는 모르지만 그 호수에 들어가면 점차 비쩍 말라서 죽어가고, 실제로 그 호수에도 그렇게 말라 죽은 시체가 즐비하다더군.”
도멤이 덧붙여 내게 말했다.
“듣기로는 메두사가 사는 호수가 아니냐는 소문도 있어.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그 근처에 사람이 살 리는 없지……. 오히려 그런 호수라서 다른 괴물이나 짐승이 오질 않거든.”
“그런 곳에 용케 사람이 잔뜩 사네.”
내 말에 가볍게 웃은 키이엘로가 말했다.
“그냥 들어도 흥미로운 곳이잖아.”
“아하.”
그러니까 학자 같은 괴짜들이 자주 찾는다는 소리였다. 나는 한숨을 쉬며 턱을 괴고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스튜를 숟가락으로 긁으며 고민했다.
일전의 교훈을 본받아 앞으로는 어떤 섬이든 되도록 내 눈과 발카를 드러내지 않을 생각이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불안한 건 사실이었다.
나는 입을 비죽이며 말했다.
“슬슬 용모파기
1)
가 붙을지도 몰라.”
“푸른 눈과 바다새만 밝혀진 것으로도 충분히 눈에 띄는데.”
“어쩌면 이제는 우리의 구체적인 생김새까지 알려질지도 모르지.”
키이엘로의 말에 도멤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때 조용히 스튜 한 그릇을 꼴깍꼴깍 비운 뱀이 느릿하게 도멤에게 기어가며 말했다.
『그런가, 유감이군. 아마 그 호수 안에 나의 형제가 잠들어 있을 텐데.』
“…….”
우리의 사이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정작 폭탄을 떨어뜨린 뱀은 느긋하게 도멤의 팔목에 감겨서 골골대는 고양이처럼 혀만 날름거렸다.
나는 숟가락을 역수로 쥐고 뱀의 모가지를 잡았다. 도멤이 곧바로 내 팔뚝을 붙잡고 빌었다.
“로트, 참자! 한 번만 참자! 이 뱀도 사정이 있는 거겠지!”
“그놈의 사정 두 번 있다간 아주 삼도천도 건너라고 하겠어? 이참에 이걸 없애고 우리 모두 편해지자.”
“동물 학대야!”
“이게 평범한 뱀이었다면 백 번 동의했을 거야.”
우투그루는 일언반구 없이 가만히 있었고, 키이엘로는 허허 웃으며 관망하고 있었다. 나와 몇 번이고 실랑이하던 도멤이 기어코 꺅 비명을 지르며 매달리자 결국 나는 뱀을 떨치듯 놓고 숟가락을 내던졌다.
그러자 안도하던 도멤이 나를 타박했다.
“숟가락 던지지 말라니깐!”
『거, 거친 인간이군. 정말이지, 메흐와 똑 닮았어…….』
뱀이 바들거리며 도멤의 소매 안으로 숨었다.
『나와 형제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도 그는 우리를 죽이려 했지. 무서워, 무서워……. 분노에 찬 인간은 정말로 무섭다니까.』
뭐래, 뱀 새끼가. 나는 뚱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뱀을 노려봤다. 도멤이 내 눈치를 보며 뱀에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할 텐데 괜찮은 거야?”
『방법이야 찾아보면 있겠지.』
결국 자기도 당장은 모른다는 거잖아!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