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30)
바다새와 늑대 (229)화(230/347)
#73화
태연한 감상은 랄티아뿐이었는지, 다른 일행들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런 정보까지 알 수 있어요?”
“그래. 무엇보다 그 일이 서부 바다에서 일어났으니까 말이다. 그 우홉피아주라는 해적단은 제국의 폐단 중 하나로 우리가 주시하는 중이기도 했으니까.”
“주시한 것치고는 우리가 그놈들 쫓는 동안 간섭해 오는 놈들이 없던데.”
“그러게…….”
다소 빈정거리는 것 같은 네토르의 속삭임에 브레딕이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답잖게 떠드는 둘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찌른 헤더가 에퀘야에게 물었다.
“그들이 누구에게 당했는지도 알아요?”
“뭐, 그것까지는 관심이 없어. 우홉피아주와 싸운 해적단은 그냥 해적인 것 같고. 요즘 같은 세상에 해적들끼리의 싸움이야 놀랍지는 않지.”
“그냥 제국과 관련 없는 이들 같으니 신경 끈 거겠죠.”
“역시 우리 똑똑이야.”
랄티아의 말에 에퀘야는 눈에 띄게 반색하며 찡긋 윙크했다. 그에 질색한 랄티아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 해적들의 정보를 수소문해주세요. 나름 찾기 쉽게 이름을 알려드리자면 ‘검은바다’라는 해적이에요. 그리고 제국의 움직임을 저희에게도 공유해주세요.”
“그 해적들을? 그것들이 다른 쪽 바다로 갔다면 답이 없는데.”
“다른 바다의 대장들과도 협력할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흠, 그래. 뭐.”
에퀘야는 의아한 눈치였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헤더가 랄티아에게 몸을 기울였다.
“검은바다와 제국의 정보는 왜?”
“제가 탈출한 이상 그들은 언니를 찾거나 저를 찾으려고 할 거예요. 어쨌거나 우리는 그들을 피해야 하니까 동향을 알아둬서 나쁠 건 없어요. 그리고 제국은 무조건 언니를 수소문하고 있을 테니까 혁명단이나 다른 소동과 관계없이 이상하게 튀는 행적을 좇으면 언니와 연관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헤더는 이해했다는 얼굴을 했지만, 여전히 혁명단에게 로트렐리의 이야기를 하며 도움을 구하지 않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랄티아는 그 의문을 무시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속닥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네토르가 에퀘야에게 물었다.
“정보를 얻는 데에 얼마나 걸리죠?”
“그건 우리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늦진 않을 거다.”
“그럼 그 접선은 우리끼리만 가는 건가요?”
“아니, 나와 몇몇 단원도 동행한다.”
에퀘야의 말에 네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브레딕이 물었다.
“조를 짜는 건 저희가 하나요?”
“그것도 아니, 내가 짜줄 거야. 정확히는 무르하가.”
“으음…….”
“걱정 마, 무르하는 사람 보는 눈이 좀 좋으니까.”
소정의 거래를 완료한 에퀘야는 무르하를 불러 아상트라로 잠입할 이들을 나눴다. 클레인스와 랄티아, 에퀘야가 한 조, 네토르와 브레딕, 혁명 단원 하나가 한 조, 헤더와 혁명 단원 둘이 한 조였다.
헤더는 홀로 조가 지어진 것에 약간의 불안감을 느낀 것 같았으나 에퀘야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무르하가 너는 꽤 신뢰하는 모양이군.”
그 말에도 헤더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으나 에퀘야는 그 이상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혁명단 배의 갑판 위에서 하선할 준비를 마친 에퀘야가 일행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경단이 너희의 얼굴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무르하가 너희에게 간단한 주술을 걸 테니까 주술 표식을 주의하며 갖고 다녀라.”
그 말과 함께 무르하가 일행에게 작은 목걸이를 걸어주며 이마에 차가운 물 같은 것을 몇 번 콕콕 찍었다. 서로 보기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주술을 마친 무르하가 말했다.
“지속 시간이 그리 길진 않아요. 대략 세 시간이니까 그 안에 최대한 살펴보고 배로 귀환하세요.”
“신기하네.”
브레딕이 목걸이를 보며 신기하다는 듯 돌려보았다. 그에 무르하가 움찔거리며 말했다.
“약하니까 조심하세요. 표식이 망가지면 주술은 곧장 풀리니까요.”
“음, 네.”
브레딕이 목걸이를 얌전히 셔츠 안으로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퀘야가 크게 외쳤다.
“암호는 ‘아상트라의 찻물은 말랐습니까’다. 암호랍시고 남발하고 다니지 말고, 신중하게 접근하도록. 오늘 안에 접선할 거라 기대하지도 않는다. 조심히 움직여!”
“예!”
일행과 조가 짜인 혁명 단원들이 일제히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에 클레인스는 귀를 문지르며 한숨을 쉬었다. 랄티아는 클레인스, 에퀘야와 배에서 내렸다. 배에서 내린 이들은 조마다 빠르게 흩어졌다.
아상트라는 이전처럼 활발했으나 내력을 자세히 알게 된 뒤라서인지 어쩐지 스산함이 감돌았다. 에퀘야는 성큼성큼 걸어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랄티아는 에퀘야의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무르하라는 사람은 저 큰 배를 계속 감춰둘 수 있는 거예요?”
“물론, 저 주술을 걸 때는 좀 고생했지만. 한 번 걸린 주술은 더 강한 주술사가 밖에서 파훼하거나 표식이 파괴되지 않는 이상 풀리지 않아.”
“더 강한 주술사는 주술을 쉽게 눈치채나요?”
“아니. 듣기로는 위화감을 눈치채지 않는 이상 주술 자체를 꿰뚫어 보지는 못해. 무르하처럼 특별한 눈을 타고나지 않은 이상은 무리지. 그리고, 무르하는 생각보다 강한 주술사야.”
에퀘야는 그렇게 말을 마치고 골목 안으로 쑥 들어갔다. 아상트라의 대낮은 분주했다. 딴 찻잎을 말리는 사람들과 집안일을 하는 사람, 무역선에 차를 싣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골목의 세로 꼴로 갈린 하늘 아래 푸른 차밭이 보였다. 랄티아는 그 사이에서 점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에퀘야에게 물었다.
“당신들이 나서면 뭘 하는 거죠?”
“자경단 본부에 테러를 가할 거야.”
“그리고요?”
“아상트라의 동지들을 지원해야지.”
랄티아는 에퀘야의 뒷모습을 보다가 시선을 돌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랄티아는 이런 일이 거북했다. 그녀는 에퀘야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다 실패하면요?”
“뭐?”
“실패할 수도 있잖아요. 겨우 자경단 좀 폭파하고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제국이라는 세력이 사라지진 않아요.”
“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삶은 바뀌어.”
에퀘야는 걸음을 멈추고 랄티아를 돌아보았다. 랄티아는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안 바뀌면요?”
“……. 네가 뭘 생각하는지는 알 것 같지만, 착각 마. 우리도 모든 게 한순간에 바뀐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
“그럼 왜 아상트라의 사람들을 위해 왔어요? 소용없는 짓일 거예요.”
“이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불씨야.”
에퀘야는 눈을 가늘게 뜨며 랄티아를 응시했다.
“그들은 아상트라를 집어삼킬 불씨를 위해 도화선을 깔아두고 화약을 긁어모으는 중이지. 하지만 불을 피우기에는 방해하는 이들이 많아. 그러니 우리는 그들이 준비한 도화선에 불을 놓는 역할일 뿐이다.”
“제 말은 그게 아니라―.”
“한 번 붙은 불은 잘 꺼지지 않을 거다. 완전히 짓밟혀 불이 꺼지더라도 잿더미는 남고 화마가 긁고 간 자국은 쉬이 지워지지 않아.”
에퀘야는 랄티아의 말을 끊고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우리는 사람들의 머리에 불을 지르기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거다. 너도 지금은 좋든 싫든 우리와 함께해야 하지. 그렇다면 마음에 새겨둬.”
에퀘야는 랄티아의 가슴께를 손으로 쿡 찌르며 말을 이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 없는 게 냉소다. 불을 붙이지는 못할망정 냉소로 불씨를 꺼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그런 도움 안 되는 생각은 버려.”
“…….”
랄티아는 당혹과 못마땅함이 뒤섞인 얼굴로 에퀘야를 보았다. 그녀의 우윳빛 눈이 어둡게 깔려 랄티아를 내려다보았다.
“바뀌는지 안 바뀌는지의 계산은 중요하지 않아. 우리가 행동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서로가 움직이면, 그것은 곧 거대한 파도가 돼. 그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무언가를 바꾼 거다.”
하지만 언니는 실패했다. 랄티아는 입을 다물었으나 차가운 눈으로 에퀘야를 보았다. 이 공주님은 분명 대단한 혁명단의 서부 바다 대장이었다. 그러나 랄티아는 작은 섬마을조차 쉬이 바뀌지 않는 것을 알고 있다. 랄티아는 다소 분에 찬 얼굴로 에퀘야를 노려보았다.
“당신 가족들은 생각 안 해요?”
“…….”
에퀘야의 표정이 일순 흔들렸다. 그때 클레인스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짧게 둘을 불렀다. 랄티아와 에퀘야가 그를 돌아보았다.
“자경단이 또 사람을 잡아가네요.”
“어느 쪽이야?”
“조금 멀찍이 떨어진 곳이에요.”
“안내해.”
클레인스를 따라 에퀘야와 랄티아는 달리기 시작했다. 클레인스가 달리며 때때로 랄티아를 걱정스럽다는 듯 돌아보았으나 랄티아는 최대한 뒤처지지 않도록 열심히 뛰었다.
클레인스가 계속 돌아보는 것이 의아했는지 뒤를 본 에퀘야는 오만상을 쓰며 달리는 랄티아를 보고 풉, 하고 웃음을 입 안 가득 물었다. 그에 랄티아는 불쾌감도 잊고 얼굴을 붉혔다.
“우, 웃지 마요!”
“으하학, 똑똑아 너, 너 달리는 꼴이 왜 그래?”
“말 걸지도 말아요!”
힘들어 죽겠는데 말을 걸고 앉았어! 다행히 랄티아의 체력이 떨어지기 전에 그들은 자경단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골목 건너편에서 자경단 둘이 어떤 사내를 곤봉으로 두들겨 패며 옷깃을 우악스레 잡아끌고 가고 있었다.
랄티아는 숨을 허덕이며 물었다.
“어, 어쩌려, 고요?”
“어쩌긴.”
에퀘야는 씩 웃더니 주머니 안에 양손을 쑤셔 넣더니 확 꺼냈다. 밖으로 꺼내진 그녀의 손에는 황금빛의 너클이 끼워져 있었다. 랄티아는 숨을 몰아쉬면서도 그 과한 번쩍임을 보고 입을 벌렸다.
미친 사람, 뭐 저리 번쩍거리는 너클을 갖고 다녀?!
“어이, 거기!”
“엉?”
에퀘야의 호탕한 부름에 자경단 중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마자 그의 얼굴에 에퀘야의 주먹이 꽂혀 들었다.
“이거나 드시게!”
자경 단원이 단번에 나가떨어지며 골목을 굴렀다. 그에 놀란 나머지 자경 단원이 곤봉을 휘두르기 전에 에퀘야는 팔꿈치로 그의 턱주가리를 갈기고 발을 휘둘러 그의 무릎 뒤축을 걷어찼다.
자경 단원이 풀썩 무릎을 꿇자마자 그의 머리 옆으로 너클을 낀 주먹이 날아들었다. 퍽! 관자놀이에 맹렬하게 틀어박힌 주먹에 자경 단원이 그대로 쓰러졌다. 뒤를 돌아본 에퀘야는 먼저 나가떨어졌던 자경 단원을 제압한 클레인스를 보고 후,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시원스레 입꼬리를 올렸다.
그사이에 겨우 숨을 고른 랄티아는 자경 단원에게 얻어맞고 있던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가, 감사합니다아…….”
“괜찮으세요?”
“왜 이것들이 그쪽을 잡아가려 한 거야?”
랄티아가 기계적으로 그 사람의 옷을 털어주며 묻자 에퀘야가 끼어들었다. 남자는 얼굴에도 멍이 들어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코를 감싸 쥐더니 쓰러진 자경 단원을 보고 말했다.
“모, 모르겠어요……. 제 이름과 집을 묻더니 다짜고짜 끌고 가려고 했습니다.”
“……주변에 자경단에게 잡혀간 지인이 있나?”
“예? 에……. 아, 네, 네. 있어요.”
사내는 덜덜 떨며 더듬더듬 말했다. 자경 단원의 목덜미를 내리쳐 기절시킨 클레인스가 자경 단원의 몸뚱이 위에서 일어나며 사내를 보았다.
“이 사람 너무 떠는데요. 진정시키는 게 우선일 것 같아요.”
“이것만 묻지. 아상트라의 찻물은 말랐나?”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