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32)
바다새와 늑대 (231)화(232/347)
#75화
무슨 형제야……. 랄티아는 에퀘야의 뒤에서 질색했으나 적어도 사내에게는 효과적인 위협이었던 모양이었다.
“히, 히익!”
사내는 몸을 움츠리며 에퀘야의 손을 떨쳐 내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그의 두 배쯤 차이가 나는 에퀘야의 근육질 팔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옆에서 랄티아가 물었다.
“왜 배신했죠? 그런다고 자경단의 시선을 피할 수는 없어요.”
“나, 나는 무서워서, 그래서…….”
“그렇다고 동지를 팔아넘기려 하다니!”
“히익!”
에퀘야가 이를 갈며 얼굴을 들이밀자 사내는 볼품없이 떨며 팔로 머리를 가렸다. 랄티아는 빠르게 생각했다. 이 남자는 말단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경단에게 정보를 넘길 때보다 더 많은 것을 넘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는 것 없는 말단이고, 그래서 에퀘야의 말에서 묘한 위화감을 알아내는 것에 그쳤다……. 그리고 이런 말단이 공포에 사로잡혀 탈주하려 든다면.
“아상트라 반군의 대장은 이미 체포되었거나 실종상태인 거예요. 부대장이 있다면 그가 무리를 이끌고 있겠지만 현재 혁명단과 접촉할 정도의 여유도 없는 상황 같군요. 자경단이 생각보다 치밀하게 파고든 모양이에요.”
“…….”
에퀘야는 랄티아의 말을 듣고 그것이 타당한지 계산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에퀘야는 그녀에게 멱살이 잡힌 사내가 딸꾹질을 하며 랄티아를 귀신 보듯 쳐다보자 마음을 정했다.
“좋아, 일단 돌아가야겠군.”
“그 사람은 어쩌고요?”
클레인스의 물음에 에퀘야와 랄티아의 시선이 일제히 사내에게 향했다. 그는 벌벌 떨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에퀘야는 다른 손을 코트 안에 넣었다. 전처럼 너클을 꺼내려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그녀는 손을 멈추고 랄티아를 돌아보았다.
“어쩌면 좋겠느냐?”
“그 사람을요? 복잡한 방향으로요, 아니면 간단한 방향으로요?”
“일단 둘 다 말해봐.”
“음.”
랄티아는 입꼬리를 죽 내려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가 이내 말했다.
“제일 간단한 건 역시 바다에 물고기 밥으로 주는 거죠. 복잡한 건, 놔주되 자경단에 불지도 못하게 집에 장난질을 쳐놔서 빼도 박도 못하게 반군이 되게 하는 거고요.”
“좋군. 어쩌고 싶나?”
에퀘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번엔 클레인스를 보았다. 그에 클레인스는 입을 다물고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그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간절하게 자신을 보는 사내의 시선과 따가운 두 여자의 시선을 느끼다가 고개를 숙였다.
“되도록 죽는 사람은 없었으면 해요.”
“그렇다는군.”
에퀘야는 유쾌하게 랄티아에게 눈을 찡긋거렸다. 랄티아는 질색하면서도 클레인스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럼 그 사람 좀 기절시켜요.”
“음.”
에퀘야는 간단하게 손에 힘을 주고는 다른 손으로 사내의 머리를 탁 때렸다. 마치 인형의 태엽을 뽑은 것처럼 남자가 순식간에 축 늘어지자 랄티아는 기겁을 했다.
“죽인 건 아니죠?”
“기절만 시켰어.”
“대체…….”
힘 좋고 기운 넘치는 사람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랄티아였지만, 또 새로운 유형을 보자 놀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동시에 랄티아는 생각했다. 우리 언니는 그래도 온건한 사람이었던 거야.
지금 그 온건한 언니가 연약한 조손을 공포에 질리게 했으리란 생각은 하지 못한 동생이었다.
사내를 대충 바닥에 던진 그들은 에퀘야의 정보에 따라 혁명단에 가담했다는 증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실상 혁명단에 관해 아는 것도 없고 반군에서는 탈주한 사람이나 그것을 주장하고자 자경단에 랄티아가 만든 증거를 내밀어봤자 돌아오는 것은 의심과 고문일 것이다. 그것을 감수하고도 제국과 자경단에 밀고하려 들 정도로 용감한 것 같진 않으니 되었다.
대충 제국에서 금서로 지정한 책들의 목록과 혁명단의 전단 따위를 섞어놓은 랄티아는 에퀘야를 돌아보았다.
“대충 다 됐나? 이제 가지. 이건 빨리 단원들에게 알려야 해.”
“네.”
랄티아와 클레인스는 에퀘야의 뒤를 따라 항구로 다시 향했다. 그러나 항구로 가까워지던 그때, 클레인스가 다급하게 둘을 불러세웠다.
“누가 붙잡혔어요!”
“네?”
랄티아가 당황하는 사이 클레인스에게 달려간 에퀘야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안내하라는 뜻이었다. 눈치 빠르게 그들에게 달려온 랄티아를 다시 안아 든 클레인스가 빠르게 내달렸다.
아니나 다를까, 골목 사이에서 자경 단원들과 헤더의 조가 부딪치고 있었다. 에퀘야가 번개처럼 손에 너클을 끼우며 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혁명단에서 준 검으로 자경 단원을 막던 헤더가 고개를 돌렸다.
“에퀘, 아니, 대장!”
“숙여라!”
헤더가 반사적으로 몸을 수그리자 에퀘야의 주먹이 곧장 자경 단원의 머리에 틀어박혔다. 빠악, 하는 타격음과 함께 자경 단원이 확 나가떨어졌다. 에퀘야가 랄티아를 내려 주려는 클레인스에게 외쳤다.
“여긴 내가 맡는다! 너흰 전부 후퇴해!”
“예!”
헤더의 일행이 짧게 외치고는 항구로 뛰어갔다. 에퀘야를 돌아보면서도 혁명 단원들을 따라 뛴 헤더가 물었다.
“안 도와줘도 되는 거예요?”
“대장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헤더는 무어라 더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이내 입을 닫고 뛰었다. 뒤에서 클레인스에게 안겨 있던 랄티아가 고개를 돌렸다. 에퀘야는 노도처럼 주먹을 휘둘러 자경 단원들을 한 방에 쓰러뜨리고 있었다.
코뼈가 부러졌을 것이 분명한 이들이 앓는 소리를 내며 바닥을 기고 있었다. 저 정도면 확실히 에퀘야 혼자 정리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 랄티아가 클레인스의 어깨를 때렸다.
“잠깐, 멈춰서요!”
“네?”
“어서!”
랄티아는 급하게 외치다 못해 클레인스를 떠밀었다. 갑작스러운 발버둥에 클레인스는 랄티아를 놓쳤다. 땅바닥에 넘어진 랄티아를 일으키려는 그의 팔을 뿌리친 그녀가 가방 안으로 손을 넣었다.
소리를 들은 것인지 클레인스가 놀란 얼굴로 손을 뻗었다.
“잠깐, 랄―”
탕! 커다랗게 터져 나온 소리에 클레인스는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앞서 뛰어가던 헤더와 일행도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큰 소리 이후 귀가 먼 것처럼 느껴지던 고요가 가시자, 에퀘야의 뒤에 있던 자경 단원이 풀썩 쓰러졌다.
이제 에퀘야의 근처에 멀쩡히 서 있는 자경 단원이 없었다. 그러나 에퀘야는 눈을 부릅뜨고 랄티아를 응시했다. 뒤늦게 쓰러진 자경 단원의 손에서 긴 총이 덜거덕 바닥에 떨어졌다.
“……너.”
에퀘야는 크게 뜬 눈으로 랄티아를 보고 있었다. 랄티아는 피스톨을 손에 쥐고 입을 꾹 닫았다. 헤더 역시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쥐죽은 듯한 침묵을 깬 것은 클레인스였다. 그는 소란을 듣고 모여드는 발소리를 기민하게 눈치채고 랄티아를 휙 안아 올렸다. 그가 헤더의 조에게 손짓하며 항구로 뛰기 시작하자 얼떨떨한 낯으로 혁명 단원들이 따라 뛰었다.
그의 뒤로 빠르게 다가온 에퀘야가 창백한 낯의 랄티아를 보며 작게 말했다.
“배에 가서 대화하지.”
랄티아는 그 말에 눈을 질끈 감고 클레인스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 * *
“소서러라고?”
“네.”
랄티아는 에퀘야의 선장실에서 독대하는 중이었다. 에퀘야는 미간을 좁히며 랄티아를 눈으로 세밀하게 살폈다. 마치 정교한 기계를 보며 구조를 파악하려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소서러라니…….”
“새삼스럽게 소서러를 차별하는 곳인 건 아니겠죠?”
“우리가 놀라는 건 그게 아냐.”
에퀘야는 짤막하게 대꾸하고는 이전의 그 물담배에 불을 올렸다. 에퀘야의 답에 랄티아는 긴장해 있던 어깨를 살짝 풀었다. 연기가 뭉게뭉게 나오기 시작하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소서러 역시 제국에 의해 착취된 이들 중 하나다. 우리는 그들과 연대하지 못할망정 차별하지는 않아. 하지만 문제가 있지. 그걸 소서러는 딱히 바라지 않는다는 거야.”
“예?”
“나는 혁명단 일을 하면서 소서러를 많이 봐왔다. 제국 속령에서 착취되던 소서러를 구한 적도 많지. 그런데 하나 같이 그들은……. 사람 같지 않았어.”
되게 실례네. 랄티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건조한 시선으로 에퀘야를 보았다. 에퀘야는 그런 랄티아의 표정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이해가 돼? 그들은 제국에도 사람에도 관심이 없었어. 자신들이 어떤 취급을 당해도 상관없는 듯 굴었지. 해야 하는 일이 따로 있는 일족들처럼 말이야.”
“비약이 심하네요.”
“비약이 아냐. 소서러는 단순히 무미건조한 사람이 아냐. 그들은 뭔가가 거세된 작자들이라고.”
“…….”
랄티아는 이제는 해괴하고 불쾌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에퀘야를 보았다.
“전 명백하게 여성이고 거세당한 적 없어요.”
“그 거세 말고.”
“그럼 대체 뭔데요?”
“난 너처럼 감정적이고 사교적인 소서러를 본 적이 없어.”
그 말에 랄티아는 고개를 기울였다. 다른 이들에 비하면 랄티아는 좀 사교적이지 않고 감정보다 이성을 중시했다. 지금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게 맞나? 랄티아는 찜찜하다는 얼굴로 에퀘야를 보았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에 비하면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이지, 랄티아가 무슨 파이프로 연결된 기계처럼 군다는 뜻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지금 언니를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인 사람한테 말이 심하군. 에퀘야는 랄티아의 불퉁한 얼굴을 보며 물었다.
“너는 이해할 수 있나? 너를 억압하고 착취하고, 심지어는 끔찍한 실험의 재료로 사용하는 공간에서 구조된 뒤에도 세상만사에 관심 없는 투로 사람들을 흘끔 보았다가 자기 갈 길 가버리는 작자들을?”
“그냥 사람과 상종하고 싶지 않았나 보죠.”
“그들은 후유증도 보이지 않았어. 정신적인 충격을 내보이지도 않았어.”
“…….”
“알겠어? 나는 네가 소서러라는 소리를 들은 이후로 온갖 가설이 떠오르는 중이야. 잘 만들어진 인형인가? 제국이 소서러로 기어코 사람 같은 첩보 기계를 만든 건가?”
에퀘야는 그렇게 말하고는 랄티아에서 시선을 떼고 연기를 한 움큼 빨아들였다. 랄티아는 인상을 찡그리고 에퀘야를 보았다.
“웃기는 발상이네요. 제 내력을 설명하려면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어요. 제 선택으로 그렇지 않는 것뿐이죠.”
“그래. 너는 만들어진 것치고는 너무 인간적이야. 차라리 내가 봐온 소서러들이 제국 때문에 완전히 마모된 껍데기들이었다고 보는 게 쉬울 정도로.”
“그래도 시답잖은 이유로 한 독대라서 다행이군요.”
랄티아는 진심으로 안도하며 말했다.
“소서러가 싫다는 이유로 내치거나 때리려는 줄 알고 긴장했거든요.”
그에 에퀘야는 넋을 뺀 얼굴로 입에서 연기를 뱉어냈다. 느리게 흐르는 폭포수처럼 흘러나오는 연기를 보고 랄티아가 눈썹을 치켜올리자 그녀는 그제야 입을 닫았다. 에퀘야는 후우, 연기를 길게 뱉어내며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다.
“그게 다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저랑 별개의 사람들을 소서러라는 공통분모만으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나요?”
“…….”
에퀘야는 속을 모르겠는 얼굴로 물담배를 빨아들이며 랄티아를 응시했다. 그러나 랄티아의 얼굴에서 별다른 특이점을 찾지 못한 그녀는 느리게 연기를 뱉으며 시선을 돌렸다.
“……이건 무르하와 더 얘기해야겠군.”
에퀘야는 그렇게 중얼거린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식간에 눈높이가 뒤바뀐 그녀가 랄티아를 내려다보며 작게 미소지었다.
“네가 상관없다면 됐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밖으로 가자. 아상트라의 일을 상의해야 하니까.”
랄티아는 다소 의아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에퀘야의 뒤를 따라 갑판으로 나갔다. 랄티아는 소서러라는 이유로 멸시당할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멸시를 받아 계획이 어그러지는 것이 두려웠다. 그게 아니라면 되었다.
에퀘야가 만나온 소서러가 어땠는지는 몰라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기이할 정도로, 뒷맛 껄끄러운 것 없이 깔끔하게 마음을 털어낸 랄티아는 희미하게 여름의 냄새를 맡았다.
샛별이 가까이에서 눈을 뜨고 타오르는 것 같은 냄새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