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33)
바다새와 늑대 (232)화(233/347)
#76화
랄티아가 소서러라는 사실에 경악하는 혁명단의 분위기는 에퀘야의 말대로 랄티아가 그간 봐온 소서러와 달랐던 이유 탓인 모양이었다. 안도한 랄티아가 에퀘야와 함께 선장실에서 나오자 네토르와 브레딕이 서둘러 그녀에게 다가왔다.
“헤더랑 클레인스는요?”
“잠시 다른 녀석들에게 불려갔어. 금방 올 거야.”
침착하게 대답한 브레딕은 걱정이 스민 눈으로 랄티아를 보았다.
“괜찮아? 소서러라고 하니까 어째 분위기가…….”
“듣자 하니 별다른 문제는 아니었어요. 제가 그간 본 다른 소서러와 차이가 커서 놀랐대요.”
“우리도 그 이야기는 들었어.”
네토르가 그렇게 대꾸하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게 뭐가 그렇게 놀라울 정도라는 거지?”
“글쎄요.”
“너도 모르는 거야?”
“크게 연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요.”
랄티아의 여상스러운 어투에 네토르는 미묘한 얼굴을 했다. 왜 그렇게 봐요? 랄티아가 떨떠름한 기색으로 그에게 묻자 네토르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말했다.
“만사 다 철두철미하게 굴려던 네가 어물쩍 넘어가는 게 신기해서.”
“계속 신기해하세요.”
이게 무슨 대화야……. 둘 사이에 서 있던 브레딕의 눈썹이 비죽 들렸다. 동시에 어디론가 걸음을 옮긴 에퀘야가 갑판에 있던 단원들을 불렀다.
“내가 부르는 녀석들을 데려와.”
에퀘야는 단원에게 몇몇을 호명했다. 그에 몇은 갑판 아래로 내려가고 몇은 일행 쪽으로 다가왔다. 브레딕은 아직 불안이 가시지 않았는지 랄티아에게 몸을 기울였다.
“진짜 소서러에게 해코지한다는 말은 안 했지?”
“설령 그렇더래도 저 혼자 피 보겠죠. 지금 언니가 있었다면 그쪽한테 쫄지 말라고 욕했을걸요.”
“어떻게 안 쫄겠니. 우린 소수잖아.”
“바다로 뛰어드세요, 그럼.”
“어떻게 뛰어들겠니. 그럼 물고기 밥이잖아.”
아, 그럼 혁명단 밥 하시든지! 랄티아는 짜증이 스멀스멀 오르는 것을 느끼며 브레딕을 홱 째려보았다. 브레딕은 반쯤은 놀리던 것인지 이크, 하고 얼른 몸을 뒤로 물렸다. 그런 그를 보며 네토르가 작게 혀를 찼다.
사실 브레딕이 걱정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꽤 옛날의 일이지만 소서러는 제국에게 사냥당했었고, 덕분에 지금까지도 소서러에 대한 인식이 나빴다. 그러니 소서러와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멀쩡한 사람까지 싸잡혀 피해가 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주술사가 섬마을의 부흥을 책임져주는 샤먼 역할을 주로 맡게 되는 것과는 상반된 일이었다. 랄티아는 자신이 소서러라는 것을 남들에게 숨겼지만 로트렐리에게 저주를 걸었던 누고와 그 가족들은 마을에서 좋은 대우를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맘때의 랄티아는 자신이 주술사가 아니라 소서러인 것이 싫었었다. 가뜩이나 부담뿐인 로트렐리에게 소서러라는 비밀을 하나 더 얹은 것 같아서….
그때 그들 쪽으로 다가온 선원이 랄티아에게 작게 말했다.
“대장이 부릅니다. 같이 가시죠.”
“어디를요?”
“작전을 짜야 하니까, 회의실로요.”
그런 곳도 다 있어? 네토르와 브레딕이 그렇게 묻는 것 같은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브레딕은 ‘진짜 소서러라고 차별받는 건 아니지?’하고 묻는 얼굴이었으나, 랄티아는 이제 와서 에퀘야가 자신들에게 해코지할 리도 없다고 판단했다.
랄티아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갑판 아래에서 올라온 클레인스와 헤더가 일행을 보고 가까이 왔다.
“괜찮아요?”
“네.”
“정말 괜찮아?”
“네. 이로써 네 번씩 같은 답을 해야 했네요. 저는 곧 소서러를 관두고 앵무새가 될지도 몰라요.”
빈정거리는 것인지 농담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랄티아의 말에 가볍게 웃는 헤더의 뒤로 선원이 어서 오라며 손짓했다. 네토르가 불퉁하게 인상을 찡그리며 작게 말했다.
“왜 너를 부르는 거야? 우린 전부 말단 아니었나?”
“모르죠, 정보를 두둑하게 쥐여줘서 협박하려는 걸지도.”
“어떻게 혁명단의 정보를 쥔 게 협박 수단이 될 수 있어?”
네토르가 황당하다는 듯 되묻자 조용히 있던 클레인스가 중얼거렸다.
“그게 가능하다는 걸 누가 알려줘서…….”
괜히 속이 찔린 랄티아는 눈썹을 휘어 올렸다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물론 아상트라에서 암호를 자경단에게 흘린 사내와 그들은 입장이 달랐다. 그 사내에게는 혁명단을 밀고할 제대로 된 정보는 전무했으나, 혁명단과 얽히거나 찬동한다는 증거는 차고 넘쳤다.
물론 그 증거도 랄티아와 에퀘야가 만든 것이지만. 여하간 에퀘야의 지나친 신뢰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그 속내는 알 수 없으나, 일행이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는 한 편의를 봐준다는 말은 허언이 아닌 셈이었다. 랄티아가 미적거리자 선원이 몇 번이고 손짓하며 재촉했다. 결국 랄티아는 한숨을 쉬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안내에 따라 선실로 들어가자, 에퀘야와 무르하는 물론이고 몇몇 혁명 단원이 원탁에 둥글게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같이 혁명단 내에서 한 자리씩 차지한 것처럼 보이던 단원들이었다. 랄티아는 그들의 눈에서 생각보다도 더 경계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혼란스러웠다. 이 정도로 무르하의 ‘눈’을 믿는다고? 종교쟁이들인가?
다소 무례한 생각을 하는 랄티아를 뒤로하고 선실의 문이 닫히자, 에퀘야가 거두절미하고 말을 꺼냈다.
“아상트라의 반군과 접선하는 일에 차질이 생겼다. 반군 내의 정보가 샌 모양이야.”
에퀘야의 말에 선실 내의 모두가 심각해진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반면에 에퀘야는 랄티아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이 똑똑이의 추측에 따르면 반군의 대장이 체포되거나 실종상태일 거라더군. 반군은 자경단의 눈을 피해야 하는 상황이라 우리와 접선하기 위해 돌아다닐 수가 없어. 우리의 암호도 자경단에 넘어갔다.”
“그걸 보고만 있었습니까?”
단원 중 긴 머리를 가진 남자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그 탓에 에퀘야가 말을 멈추면서 ‘전 여기서 나갈게요’라고 말하려던 랄티아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 망할 혁명단과 얽히면 도통 일이 계획대로 되질 않았다.
“자경 단원이 너무 많았어. 고발자는 입막음했고 새어나간 것은 암호뿐이니 그리 암울하진 않아.”
“암울하지 않다니요? 자경 단원들이 우리 혁명단으로 위장해서 반군과 접촉하기라도 하면…….”
“별수 없었다고! 그 녀석들, 총을 갖고 있던 건 너희도 봤겠지. 제국이 뒤를 본격적으로 봐주기 시작한 모양이라고. 게다가 우리가 이미 한 번 그쪽에서 자경단을 쥐어팬 탓에 아주 꽁꽁 무장을 하고 왔더군.”
에퀘야가 거칠게 말하자 긴 머리의 단원은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랄티아는 손을 들었다.
“뭐지?”
“저는 왜 여기에 낀 거예요?”
“네가 들어야 하는 문제라서.”
“왜요? 저는 일시적인 협력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깊숙한 곳으로 저를 끌고 가려고 하시네요.”
랄티아의 말에 에퀘야는 혀를 찼다. 눈치가 너무 빨라, 똑똑이. 랄티아는 차가운 얼굴로 그런 에퀘야를 보았다.
“우리는 그쪽이 바라는 대로 도움을 주긴 하겠지만 혁명단에 완전히 가담할 생각은 없어요.”
“그래, 그 도움.”
에퀘야가 손가락을 튕기며 랄티아에게 말했다.
“지금 네 똑똑한 머리로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봐. 그럼 당장이라도 나가게 해주지.”
“…….”
랄티아는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렸다. 그건 댁들이 할 일이지 내가 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에퀘야가 일전에 ‘실패하면 버리고 날라 버릴 것이다’라며 으름장을 뒀던 것은 허풍인 게 분명했다. 랄티아에게는 차라리 혁명단이 그들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훨씬 나았다.
물론 그녀도 혁명단이 ‘버린다’라는 것을 입막음을 위해 목숨에 큰 지장이 있게 만든다는 일임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랄티아는 문득 언니처럼 사방에 주먹질하며 화를 내고 싶다는 욕구가 움텄다. 순간 불쾌감이 치솟은 그녀는 에퀘야를 노려보며 말했다.
“무르하의 눈만 믿고 저를 데려온 거라면 사람 잘못 짚었어요. 전 혁명이고 뭐고 관심 없고, 댁들 좋으라고 여기 있는 것도 아니에요.”
“알아, 하지만 그러면 어쩌게? 혼자 떠나지도 않고 있잖아.”
에퀘야의 말에 랄티아는 칼에 찔린 듯 그녀를 보았다. 에퀘야는 능글맞은 얼굴로 웃으며 랄티아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난 네가 마음에 들어. 무르하의 눈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런 정신머리로 혁명단을 운영하는데 아직까지도 제국에 박살 나지 않았다니 신기할 지경이네요.”
랄티아의 야멸찬 악담에도 에퀘야는 껄껄 웃어댔다. 다른 단원들은 랄티아를 흘끔 곁눈질할 뿐, 둘의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다. 한참을 웃던 에퀘야가 웃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네가 혁명단과 함께 해주면 정말 좋을 거야.”
“거절할게요.”
“네가 찾는 정보와 연관이 있는 건가?”
“혁명단 자체가 체질에 안 맞아요.”
능구렁이처럼 위화감 없이 넘어가는 랄티아를 보며 에퀘야의 미소는 더 짙어졌다. 아닌 척하긴. 하지만 이 말을 꺼내면 정말로 랄티아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갈 것 같아 에퀘야는 다른 말을 꺼냈다.
“하다 보면 맞을 거야.”
“아뇨, 안 맞아요. 제가 알아요.”
랄티아는 반골 성향인 제 언니를 누구보다도 사랑했지만, 동시에 언니와 같은 반골 성향을 굉장히 환멸 어린 시선으로 보았다. 언니는 그 작은 섬마을에서 작은 혁명을 꿈꾸었지만 실패했다.
그런 작은 혁명도 그 정도인데 제국에 대항하는 혁명단이라니. 실제로 에퀘야의 출신지인 케르헤티 역시 완전히 되찾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쟁터로 변모해 버렸지 않은가? 그렇다고 랄티아가 ‘그러니 제국이 차라리 낫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이렇게 분쟁을 만들고 다투는 일 전체에 신물이 났다. 언니는 조금만 더 기다렸으면 자유로워졌을 거야. 내가 그렇게 했을 테니까. 내가…….
“그럼 적어도 머리를 싸매고 있는 우리에게 작은 적선을 해주는 건 어떤가?”
사념을 가르고 들어온 에퀘야의 목소리에 랄티아는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 중이었는지도 잊어버렸다. 랄티아는 이 뻔뻔스러운 여자의 앞에서 말문이 막힌다는 얼굴을 했다가, 이내 한숨을 쉬었다.
“속도전이 될 거예요. 자경단은 암호를 알아냈지만, 반군과 접선하기 위해서 위장하려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그것만 믿고 늑장 부리면 반군은 자경단에 발각되고 혁명단은 아무런 수확 없이 아상트라를 떠야 해요.”
“그건 우리도 안다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