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36)
바다새와 늑대 (235)화(236/347)
#79화
자신도 불안정한 마당에 뭐가 그리 자신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자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클레인스는 다짐했다. 랄티아가 사람을 체스 말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게 하리라. 적어도 자신은 그게 옳다고 배웠으니까. 그렇게 다짐하는 클레인스의 머리 위로 브레딕이 손을 얹었다.
“이제 좀 기운 났나 봐?”
“네?”
“내내 조용히 있더니 이제 좀 평소 같아서.”
……제가요? 클레인스는 다소 당황해서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나 브레딕이나 헤더는 물론 네토르도 더는 가타부타 덧붙이지 않고 셋이 대화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사이로 혁명 단원들이 다가와 작전의 성공에 관해 말을 꺼내며 전우애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옳다구나 흥이 붙어서 떠들기 시작한 헤더와 브레딕을 뒤로하고 슬쩍 빠진 클레인스와 네토르는 뒤에서 다가오는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랄티아였다. 네토르는 랄티아를 보고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건 무슨 꼴이냐?”
랄티아는 화려한 무늬가 들어간 천을 둘둘 두른 채 질색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음에 갈 곳의 특산품이라면서 줬어요.”
“바틱
1)
천이네.”
“잘 알아요?”
클레인스가 의외라는 듯 네토르를 바라보자, 네토르는 어깨를 으쓱였다.
“전에 본 적이 있어. 중부 바다에 있는 누카르아의 특산품이었을걸.”
짧게 대꾸한 그는 미간을 좁히며 랄티아에게 물었다.
“근데, ‘다음에 갈 곳’이라고? 아상트라 반군과 접선에 성공한 게 이제 막인데 어딜 간다는 거야?”
“말을 들어보자니 여기에 혁명단 몇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다시 떠날 생각인가 봐요. 전서 향을 교환하더라고요.”
전서 향은 전서구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훈련시키는 특유의 향이었다. 개인보다는 단체 단위로 향을 얻게 되는데, 혁명단이나 반군처럼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각 섬의 관련 기관에서 향을 보관한다.
통제의 의도는 아니고, 단순히 편의를 위한 관리 기관이었다. 향이 겹치는 문제도 방지할 수 있고 말이다. 오히려 제국에서는 항해 중인 이들과 연락을 할 때가 아니면 전서구를 잘 쓰지 않는 추세였다. 제국 내에서는 기차 등의 교통이 정비되어 있으니 굳이 새를 날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정식 기관의 편의성에 통제 의도를 묻히지 않을 제국이 아니다. 어쨌거나 혁명단의 입장에서는 정식 기관에 향을 맡기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혁명단에서 아상트라 반군과 접선이 안 된다고 죽치고 발로 뛰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혁명단의 전서 향이 알려지면 보안에 구멍이 뚫린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혁명단과의 연락은 사람이 직접 다니거나 혁명단 쪽에서 먼저 전서구를 날리곤 했다. 그렇게 하면 혁명단의 전서 향을 몰라도 답장을 써서 같은 새에 묶어 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쌍방으로 연락이 중요해진 시점이기에 에퀘야는 반군의 부대장과 전서 향을 교환하는 중이었다.
네토르는 흐음, 하고 침음을 흘리다가 소란스러운 뒤쪽을 흘겼다.
“뭐, 알아서 하겠지. 그나저나 다들 조금 친해진 것 같은데, 넌 안 놀아?”
“제가요?”
목과 머리를 두른 바틱 천을 내려 어깨에 두르며 랄티아가 기막히다는 얼굴로 네토르를 흘겼다. 클레인스가 네토르를 두둔하며 입을 열었다.
“다 같이 좋게 지내면 좋잖아요.”
“알게 뭐예요, 우린 정보만 알면 되는데.”
그래, 그렇게 답할 줄 알았다. 클레인스는 한숨을 내쉬기만 했다.
에퀘야와 혁명단이 반군을 도와 물자를 옮기고 몇 가지 작전을 짜는 동안, 랄티아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해식동굴 구석에 앉아 있기만 했다. 사실 랄티아는 힘이 넘쳐나는 사람이 절대 아니었기 때문에 혁명단도 딱히 그녀에게 노동력이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는 일도 없었다.
랄티아를 제외한 일행들은 혁명단과 어울리며 일손을 돕고 있었다. 랄티아는 그것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일전에 그들이 숙소에 있을 적 창문으로 돌을 던진 이는 반군이 맞았다. 자초지종을 듣고 사과를 받아 다른 일행은 크게 따지는 기색이 아니었으나 랄티아는 그것마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에퀘야의 말에 따르면 며칠간 반군과 있다가 떠날 계획이라고 했다. 랄티아는 자경단에게 잡혀간 반군의 수장과 일원들을 구할 계획을 짜는 자리에 여러 번 불려갔고, 몇 번은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그것이 혁명단 내에서 어떤 친밀감이 되어 돌아오고 있었으나 랄티아는 그런 일과 상관없이 초조한 상태였다.
정보……. 정보가 필요했다. 언니의 정보가. 답답함과 초조함에 잔뜩 예민해진 랄티아는 혁명단이 제게 호의를 보이든 말든 ‘빨리 정보나 알아낼 것이지’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랄티아의 경계심과 배척이 모두에게도 느껴졌는지 혁명단은 랄티아와는 데면데면하게 지냈다.
헤더는 그런 랄티아에게 슬쩍 다가와 물었다.
“저기, 혁명단과 있는 게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마음에 들 리가 있어요? 정보 때문에 위험한 집단에 가담하게 되었는데.”
“왜 굳이 로트의 정보를 숨기려고 한 거야? 로트의 이야기를 밝히고 도움을 구했다면…….”
헤더의 말에 랄티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헤더는 랄티아의 매서운 눈초리에 어깨를 움츠렸다.
“혹시라도 단독으로 판단해서 언니 이야기를 흘릴 생각 따윈 하지 말아요. 이들이 우리 자매 이야기를 들으면 아, 정말 안타깝다, 도와줘야겠다, 뭐 그럴 것 같나 봐요?”
“하지만…….”
“저들은 우리를 제국에 대항할 도구로 이용할 거예요! 언니는 여태 그 바다새 때문에 마을에서도 이용당했고, 해적에게도 이용당했어요. 이제는 제국이 언니를 노리는 상황이라고요. 그럼 혁명단에 몸을 의탁하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제국이 노리는 질 좋은 미끼를 이들이 놓칠 것 같아요?”
“진정해.”
헤더가 침착하게 랄티아에게 말했다. 헤더는 랄티아의 태도가 당황스러웠다. 랄티아의 말이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지만, 역으로 혁명단에 가담해서 안위를 보장받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런 헤더의 생각을 눈치챈 것처럼 랄티아는 인상을 찡그리고 그녀를 보았다.
“헤더는 이해 못 하죠? 애초에 헤더는 자기가 스스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도 알지 못하죠. 그러니까 겨우 언니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우리와 함께 있는 거죠.”
“뭐? 너 여태 그렇게 생각했어?”
“그럼 아니에요? 헤더는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고 이리저리 이끌리듯 지내니까 혁명단에게 의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겠죠. 지금이야 우리가 혁명단을 만나 이러고 있지, 언니를 만났다면? 그땐 어땠을 것 같은데요? 분명 언니가 가는 길을 고스란히 따라갈 생각만 하겠죠. 헤더는 그런 사람이니까.”
랄티아의 말에 헤더는 입을 벙긋거렸다. 그러나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렇지……. 헤더는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랄티아가 자신을 묘하게 낮잡아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실 헤더도 어느 정도는 납득하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스스로가 그다지 도움이 되는 인력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헤더는 울컥한 기분을 억누르며 말했다.
“난… 로트에게 의지하려는 생각으로 그 애를 찾는 게 아냐.”
“언니의 목표에 이끌려서 주관 없이 동행하려는 게 언니한테 의지하는 게 아니면 뭐죠?”
“…….”
헤더는 어안이 벙벙해져 랄티아를 바라보았다. 그게 정곡을 찔려서인지 어이가 없어서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타인이 자신을 생각보다 더 꿰뚫어 보고 있다는 감각은 생각보다 통렬했다. 랄티아는 헤더에게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저는 더 이상 언니가 누군가에게 휘둘리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전 제 한계를 알아요. 제 부족한 점을 메워줄 사람들의 목표를 모아서 기우는 것도 일이에요.”
“그렇다면 너도 내가 필요하잖아. 내게만 야박하게 굴지 마.”
“……헤더가 계속 우릴 위한다는 명목으로 헛짓만 하지 않으면요.”
그 말에 헤더는 상처받은 얼굴을 했다. 그러나 랄티아는 그런 헤더를 한 번 흘기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랄티아는 자신이 과하게 민감하게 군 게 아닌가 되돌아보았다가 고개를 저어 생각을 흩어냈다. 어차피 자신이 이렇게 말해도 헤더는 언니를 만나기 위해 계속 함께할 테니까 상관없는 일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