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37)
바다새와 늑대 (236)화(237/347)
#80화
반군과의 작전 회의는 꽤 빨리 끝났다. 에퀘야는 한쪽으로 모아 핀으로 찔러둔 머리칼을 풀고 까까머리 쪽을 긁적이며 하품을 했다.
“그럼 아상트라 반군의 지원은 이 정도로 된 거겠지?”
“충분합니다.”
잡혀간 수장을 대신해 반군을 이끄는 중인 부대장이 진중한 어투로 말하며 에퀘야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에퀘야는 그에게 물었다.
“거사는 신중히 하도록 해. 우리와 자네가 죽음을 불사한다고 해서 그게 당연히 목숨을 내던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니까.”
“물론이죠. 수장이 잡혀간 것만으로도 출혈이 큽니다.”
에퀘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물었다.
“아상트라에 남아주지는 않으시는 겁니까?”
“우리 애들을 두고 가니까 걱정하지 말게. 나는 또 다른 섬으로 가야 하니까.”
“그렇군요…….”
그때 뒤에서 다가온 무르하가 에퀘야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대화하던 반군의 부대장과 에퀘야가 무르하를 돌아보았다. 그러자마자 부대장은 놀란 얼굴로 그를 보았다.
“괘, 괜찮으십니까?”
무르하는 눈에서 핏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얼굴이 굳은 에퀘야가 서둘러 그를 붙잡고 부대장에게 말했다.
“잠시 자리를 파하지.”
“예, 예……. 그러십시오.”
누군들 사람이 눈에서 피를 흘리고 있으면 기겁할 수밖에 없다. 부대장은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빈 천막을 내줬다. 몹시 서러운 사람처럼 피눈물을 흘리는 무르하를 앉힌 에퀘야가 서둘러 물었다.
“뭘 봤어?”
“모, 모든…….”
무르하가 벌벌 떨며 말했다.
“모든 여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배반자를 골라내는 일…….”
“뭐?”
에퀘야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무르하를 보았다. 그녀는 서둘러 수건을 꺼내 무르하의 눈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내려 했다. 그러나 순간 무르하가 에퀘야의 손을 낚아채 붙잡고는 말했다.
“우리 중 배반자가 있어요.”
* * *
그레고리는 차를 주르륵 뱉어냈다.
“잘 못 들었습니다?”
“에른이 존재한다고!”
“…….”
수일 만에 찾아와서 초장부터 하는 말이 ‘야, 에른은 존재해!’라니? 그레고리는 ‘그래, 산타도 존재하고 이빨 요정도 존재하고 침대 밑 부기맨도 존재하지. 이런, 자기 전에 침대 밑을 조심하세요!’하고 말하고 싶다는 얼굴로 캐시언 후작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불손한 얼굴을 하든 시원스럽게 무시한 후작은 황홀한 얼굴로 양손을 모아쥐며 말했다.
“자네가 준 해적 나부랭이들이 말이야, 아주 좋은 이야기를 해줬다네. 그 검은바다라는 해적선에서 어떤 녀석이 불을 썼다더군.”
“기름 좀 뱉으면서 서커스라도 했나 봅니다.”
“게다가 괴력을 가졌다고! 아름다운 인간이!”
“차력 쇼 출신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연신 초를 치는 그레고리의 말에 후작은 혀를 쯧쯧 차며 가녀리게 모았던 손을 풀고 팔을 엇걸었다. 핏빛 폭포처럼 내려온 머리카락이 비스듬하게 그의 어깨 위에서 흘렀다.
“왜 그리 불퉁한가? 에른이라니까?”
“……그래서요?”
그레고리는 불안하다는 얼굴로 후작을 보았다. 이 괴짜 후작이라면 분명 이 뒤에 상식적인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무인도 지대에도 에른이 있는 게 확실하다는 거지!”
“…….”
그레고리는 말없이 턱으로 흐른 찻물을 닦아내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후작이 얼른 그를 달래며 말했다.
“그래, 이런 반응일 줄 알았네. 하지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그보다 나은 이야기를 들으면 충격이 상쇄되곤 하지.”
“뭡니까?”
“그 검은바다 말일세. 나도 얼른 그들을 잡아야겠네.”
아니, 애초에 그들이 보았다는 존재가 에른일지 아니면 그냥 주술사인지도 모르는 마당에 무슨……. 하지만 후작의 말마따나 워낙 황당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후자는 훨씬 나았다. 상식적인 이야기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레고리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저야 좋지요. 돈으로 많이 도와주십시오.”
“정보상은 좀처럼 쓸모가 없다던데?”
“바다의 정보를 아는 건 좀 힘들긴 하죠. 게다가 유명한 해적도 아니니…….”
차라리 우홉피아주처럼 관심 좀 달라고 설치는 놈들이었다면 나았겠으나 검은바다는 얌전한 해적들이었다. 해군과 땅의 정보원들로는 그들의 정보를 얻기 힘들었다. 그나마 모이는 정보도 우홉피아주가 건재하던 때의 정보뿐이라 신선도가 떨어졌다.
모처럼 있는 정보 주머니가 머리를 좀 잘 쓰면 좋으련만……. 자신의 보좌관인 필립 곁에 붙어있을 얼간이 테드를 떠올린 그레고리는 속으로 낮게 혀를 차고는 찻잔을 들었다.
“후작께서 갖고 계시는 투견들과 경제적 지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투견이라니. 내 걸작들을 보고! 호문쿨루스라는 멋진 이름이 있네!”
“아, 예…….”
길잖아……. 그레고리가 속으로 질색을 하든 말든 목이 탄 후작이 차를 한 번에 들이켰다. 후작의 기기괴괴한 재주를 생각하던 그레고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그 호문쿨루스라는 건 언제부터 만들기 시작하신 겁니까? 비슷한 연구가 선행되었다는 문서는 본 적이 없습니다만, 후작가에서 전해지던 업인 겁니까?”
“아니? 내 대에서 만들기 시작했네. 우리 자기가 임신하기 싫대서 말이야. 그럼 다른 방법으로 사람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싶어 시작했네.”
그 말에 그레고리는 후작의 광기에 감탄해야 할지 천재성에 감탄해야 할지 헷갈렸다. 천재와 미치광이는 종이 한 장 차이라니까, 지금이 그 상황인 건가? 딱히 후작의 앞에서 감정을 숨기지 않는 해군 소장의 표정을 보고 그런 생각을 눈치챈 후작은 낄낄 웃으며 말했다.
“내가 애초부터 호문쿨루스 제작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맞지. 아주 오래된 고서가 우리 가문에 보관되어 있었거든. 머나먼 과거, ‘신살자’ 바다의 주인을 복제하고자 했던 미치광이 집단의 이야기 한 문단……. 그게 내 심장을 뛰게 했어.”
‘그렇군요, 미친놈아.’ 하고 대꾸하고 싶은 것을 찻잔으로 막으며 그레고리가 고개를 까딱이며 호응했다. 그럼 후작은 정말로 얼마 걸리지 않은 채로도 그 괴이쩍은 일을 해냈단 말인가? 돈이 깨지든 인력이 갈아 넣어지든 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황제께서 내게 호문쿨루스를 만드는 수식을 전해주셨네.”
“……예?”
“놀랍지? 황궁에 그런 물건이 있을 줄이야. 나야 처음엔 아자,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왔다네. 난 그때 젊었으니 말일세.”
딱히 젊지 않아도 누가 그런 걸 주면 날름 받아먹을 인간이 후작이었지만, 그레고리는 딱히 딴지를 걸지 않았다. 후작은 느긋하게 웃다가 그레고리와 눈을 맞추며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이제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그건 황제의 의지가 아니라 더 높은 곳에 임한 분의 의지였다는 것을.”
“더 높은 곳에 임한 분이라뇨.”
제국은 몇 대 전까지는 교황에게 대관식을 받았으나 그 이후로는 종교를 처참할 정도로 말살해버렸다. 초월자들이 긍정한 적도 없는 허황한 우상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황제는 스스로가 초월자에게 선택받은 자임을 자처하며 계급의 꼭대기에 올라앉은 상태였다. 그러니 후작의 발언은 위험했다. 그러나 후작은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여태 황제들이 주장한 것처럼 초월자에게 선택받은 것이 맞다면, 이전에 말한 황제 뒤에서 암약하는 자는 분명 초월자겠지.”
“아직도 황제와 그 측근이 바다의 주인을 되살리려 한다는 것을 신뢰하는 겁니까?”
그레고리가 못마땅한 어조로 묻자 후작은 혀를 쯧쯧 찼다. 마치 어린 동생을 놀리는 듯한 태도였으나 그레고리는 그 모습이 더 짜증 난다고 생각했다.
“이럴 때일수록 상황은 간결하고 직관적으로 봐야 하는 법이야. 그럼 달리 뭐가 있겠는가?”
“단순히 후작에게 옛 문서를 줘서 실험을 시키고 강화 군인을 만들어 다른 섬과 나아가서는 초월자까지 해치우려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레고리의 말에 후작이 말을 잃었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진중한 눈으로 그레고리를 보았다.
“그것도 말이 되는군.”
이 인간 정말로 짜증 난다! 그레고리는 탁자를 뒤엎고 싶은 다혈질을 꾹 눌러 참았다. 후작은 유쾌한 농담이라도 나눈 것처럼 우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