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4)
바다새와 늑대 (23)화(24/347)
#23화
대충 훑은 신문에는 그 외의 별다른 소식이 적혀있지는 않았다. 베제는 심드렁하게 다 읽은 신문을 훌쩍 키이엘로에게 넘기고는 한숨을 쉬었다.
“신문은 시간차가 너무 많이 나.”
그 말에 프라세가 눈을 둥글게 뜨고 물었다. 최근에 발간한 신문이라고 쓰여 있는데요?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최근에 쓰인 건 맞았다. 다만 그 기사에 쓰이기 위해 정보가 수집되는 시간 따위를 고려하면 적어도 한 달은 더 된 소식일 것이다. 신문사가 제국과 그 근방에만 모여있는 것을 생각해도 말이다.
키이엘로는 받은 신문을 들고 다시 한번 살펴보더니 말했다.
“그래도 오로라에 관한 건 말을 해둬야겠어.”
“그래, 아무래도 숲의 바다 이야기가 나온 걸 보면 산하 해적이 정말 엄청난 사실을 말하지 않는 한 결정된 이야기겠지.”
베제가 안경을 손가락으로 올리며 코끝을 찡긋거렸다. 그러더니 입꼬리를 삐죽 올려 웃으며 말했다. 이거 모험하는 것 같아서 두근두근한걸? 나는 혀를 차다가 문득 루루미가 다시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초월자들은 서로 어떤 관계인 거지?
초월자들이 공통적으로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그대로 홀로 완벽한 걸까? 그러고 보니 「이전의 바다」에서 초월자들은 범람하는 바다에서 섬들을 건져냈다고 했다. 신화 같은 이야기지만 그런 신화적인 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다는 걸까.
그 정도의 힘이 있다면 홀로 있어도 외롭진 않나? 세상에서 강한 자로 손꼽히면 비슷하게 강한 자는 불편하고 약한 자는 하찮게 느껴지는 걸까?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도멤에게 물었다.
“숲의 주인과 바다의 마녀는 사이가 좋을까?”
“로트, 초월자한테 관심이 되게 많구나.”
아님 바다의 마녀한테 많은 건가? 도멤의 말에 나는 속으로 찔끔했지만 태연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신기하잖아……. 내 말에 텐은 떨떠름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바다새를 파트너로 두고 옆에 말하는 늑대가 있는 놈이……. 키이엘로가 텐의 옆구리를 슬쩍 쳐 말렸다.
그사이, 도멤은 딱히 어떻게 확답을 못 한다며 고개를 기우뚱했다.
“초월자를 본 사람도 적은데 초월자가 두 명 이상 모여 있는 것을 본 사람? 더더욱 적지. 아무도 몰라. 그래도 사는 곳도 서로 동떨어져 있는데 교류가 활발하진 않을 것 같은데.”
나는 가볍게 수긍하며 시선을 돌렸다. 다만 약간 의문이었다. 그들이 서로 친하지 않다면 바다의 주인이 죽었을 때 어떻게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섬을 건져내는 둥 협력할 수 있었던 거지? 그때 나는 조금 멀리서 짐을 꾸려 장소를 옮기려는 것 같은 네토르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곧장 인상을 찡그리자, 네토르는 애매한 얼굴로 내 시선을 피하더니 마저 짐을 싸매더니 걸음을 옮겼다.
키이엘로는 그걸 보고 미심쩍은 얼굴을 했다. 저기까지 들렸을까? 도멤이 금방 무슨 소리인지 눈치를 채고는 어깨를 까딱였다. 에이, 그냥 짐 싸려고 온 거겠지. 하여간 도멤은 넉살도 좋은 놈이었다.
베제가 프라세를 데리고 배로 가겠다고 하자, 우리는 각자 가져온 것을 챙겨 같이 돌아가기로 했다. 키이엘로는 신문을 챙기며 한숨을 쉬었다. 신문에 대한 것을 간부진에게 보고하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사실 그가 왜 그렇게 간부진을 경계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사람 성향이야 다 다른 거지, 하고 이내 관심을 거뒀다.
빛나는 산호와 백금 같은 해변과도 이별할 때였다. 배로 가까이 가자, 곧 출항할 것을 모두 알아챈 듯 가벼운 짐들을 다시 배로 가져가는 선원들이 가득이었다. 갑판 위에서 디겔이 그런 선원들을 체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뒤에서 누가 부른 듯 난간 너머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키이엘로가 내려온 사다리로 발을 걸치며 말했다.
“우투그루만 없으면 좋겠다.”
“크라켄도 제 말 하면 온다던데…….”
내 중얼거림에 키이엘로가 조금 진지한 척을 하며 입을 꿰매는 시늉을 했다. 우리는 배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키이엘로가 신문을 꺼내 드는 사이, 갑판 아래에서 우투그루가 어떤 남자와 함께 나오는 것을 보았다.
크라켄도 제 말 하면 온댔잖아…….
나와 도멤의 얼굴이 침착하게 가라앉는 것과 동시에 우투그루가 우리와 마주치고 인상을 구겼다. 키이엘로도 다르진 않았다. 베제는 나와 도멤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우리의 짐을 가지고 프라세와 함께 튀었다. 배신자……! 도멤이 작게 분개했다.
우투그루가 혀를 차고 대놓고 불쾌하다는 티를 냈다. 키이엘로는 한숨을 쉬더니 미간을 좁히고 우투그루를 삐딱하게 쳐다보았다. 미친 형제지간이었다. 그때 도멤이 우투그루의 옆에 서 있던 남자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어? 요한!”
“오, 도멤 아녀!”
사투리 억양이 강한 그는 구릿빛 피부의 턱에 수염이 멋들어지게 나 있었고, 이마 한가운데에서 갈라진 머리카락은 헤어밴드로 뒤에서 짧게 묶여 있었다. 그는 웃는 인상이 강했다. 나는 예전에 잔치 때 일을 설렁설렁하면 혼을 낸다는 ‘요한’을 떠올리고 그를 다시 보았다.
생각했던 것만큼 우락부락한 인상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도 간부진인 것이 분명했다. 도멤이 이젠 거의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그에게 소개했다. 얘는 로트. 로트, 이쪽은 요한이야. 나는 대충 고개를 까딱였다.
“우리의 주방을 총 책임 지고 있지.”
나는 그 말에 내심 찔끔했다. 혹시라도 도멤이 그에게 진주에 관해 물어본다면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멤은 별달리 묻는 말 없이 말했다.
“간부진이지만 대부분 주방에 처박혀있어서 잘 안 나와. 뭐, 하몬만큼은 아니지만.”
“주방 일이 많긴 허잖냐.”
요한이 가볍게 대꾸하는데, 옆에서 슬금슬금 껄끄러운 기운이 밀려왔다. 나는 식은 눈빛으로 옆을 보았다가 한숨을 쉬었다. 우투그루와 키이엘로가 서로를 죽어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미친 형제…….
도멤과 요한도 둘을 보고 떨떠름한 얼굴이 되었다. 얘들은 진짜 지치지도 않나? 만나기만 하면 저 모양이네. 속으로 꿍얼거리는데, 텐은 이미 예전부터 포기했다는 듯 떫은 얼굴로 키이엘로의 옆에서 그를 빤히 보고 있었다.
『화해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이는군.』
텐의 말에 키이엘로는 황당하다는 듯 늑대를 흘끔 일견하고 다시 불쾌한 얼굴로 우투그루를 쏘아보았다. 우투그루도 지지 않고 키이엘로를 노려보자, 도멤이 내 옆에서 슬쩍 속삭였다.
“쟤네들은 꼭 이런 때에만 기운 넘치는 것 같아.”
“그러게……. 만사 심드렁하던 놈들이 이럴 때만…….”
나는 별생각 없이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사랑이라고 봐줄 수 있겠어……. 내 중얼거림이 닿았는지, 키이엘로와 우투그루가 동시에 나를 홱 돌아보았다.
“로트, 말이 심해!”
“너 정신 나갔냐?”
열렬한 반응 감사합니다. 나는 그렇게 뚱기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지만 사실이잖아. 우투그루는 부선장의 직책에 최선을 다한다는 느낌은 있지만, 그건 단지 자신이 부선장이기 때문으로 보였다. 게다가 그의 평소 분위기는 믿을 수 없게도 꽤 얌전한 편이었다.
도멤은 우투그루를 보고 잘 훈련되어서 ‘기다려’를 수행하고 있는 군견 같은 느낌이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우투그루는 사실 부선장이 아니라면 키이엘로 못지않은 한량이 되었을 것이 자명해 보였다.
그리고 키이엘로는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심드렁하고 심지어는 부선장의 직책에도 그다지 의욕이 없었다. 게다가 타인과의 관계를 쌓는 데에도 방어적이니 그는 우투그루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았다.
그런 놈들이 둘이 마주치기만 하면 불꽃을 튀기며 싸우는데 옆에서 보면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우투그루가 콧잔등을 찌푸리며 일갈했다.
“이런 놈과 싸잡지 마.”
“누가 할 소릴…….”
도멤이 조마조마해 하는 것을 보며 나는 그냥 한숨이나 쉬었다. 우투그루는 키이엘로의 중얼거림에 울컥했는지 뭐? 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키이엘로의 고개가 불량하게 기울었다.
키이엘로가 시니컬하게 말했다. 싸잡혀서 불쾌한 건 이쪽도 마찬가지거든. 얌전한 녀석이 저렇게 불량한 모습을 하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우투그루는 그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다고 우투그루가 한풀 꺾였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는 마치 독을 머금고 상대를 물어뜯을 준비를 하는 독사처럼 턱이 씰룩일 정도로 이를 악물더니, 짙은 시선으로 키이엘로를 응시했다.
“책임감이란 것도 모르는 짐승 새…….”
“얌마!”
그 순간 요한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투그루가 일순 찔끔하며 말을 멈추자, 요한은 둘 사이에 끼어들어서 한숨을 푹 쉬었다. 문제아의 부모 같은 내공이 돋보이는 한숨이었다. 도멤이 내게 속삭였다. 단전에서 끌어오는 깊은 한숨이군……. 요한은 우투그루에게 삿대질을 하며 잔소리를 했다.
“아니, 이놈의 똥강아지 쉐끼덜은 만나기만 허면 싸우고 난리래야, 어?! 느네가 지금 뭐 섬에 있간? 한배에 탔으면서 그러는 거 아녀!”
“아니, 요한, 잠깐 비켜봐…….”
우투그루가 황당함과 귀찮음을 담은 얼굴로 요한을 옆으로 밀려고 했으나, 요한은 꿋꿋하게 버티며 바락바락 잔소리했다. 고향 섬에 할머니가 있었던 것 같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구수한 잔소리였다.
“비키긴 뭘 비켜! 어?! 키이엘로 너! 너도 그러는 거 아녀……. 어머니는 달라도 같은 아버지 아래 있는 형제지간에! 얼굴도 둘 다 잘생겨 갖고는 만날 때마다 인상 쓰고! 다른 아저씨들이 얼마나 보면서 마음 아프겄어! 어?! 암만 그래도~ 하늘 아래 단 하나뿐인 형제이고 끊을 수 없는 것이 혈연인디 느이가 사이 안 좋은 모습만 보여 봐라. 클루스도 아저씨도 말은 안 함서도 속 많~히도 썩힐 것이여. 어?! 내가 느네 똥기저귀 갈 때부터 맛난 것만 먹이고 키웠더니―그런 적 없잖아―시꺼! 어른이 말을 허면 그런갑다, 하고 들어!”
“…….”
놀랍게도 이쯤 되자 우투그루와 키이엘로의 얼굴에서 전의가 사라졌다. 대신 성가시다는 공통된 감정만 남았다. 나는 시골집 할아버지처럼 둘에게 훈수를 두는 요한을 보며 도멤에게 고개를 기울이고 물었다. 원래 저래? 도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한이 좀…… 유별난 편이긴 하지.”
나는 도멤의 대답에 눈을 굴리곤 발카를 한 번 보았다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한 마디를 얹었다.
“그래, 사랑싸움은 남들 안 보는 곳에서 하자.”
“로트!”
“야, 너!”
키이엘로와 우투그루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질색하니 재미있네. 악동 같은 생각을 하는 나를 보며 도멤이 해괴한 걸 다 본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도멤의 표정이 미묘하게 나를 보고 의외라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내 그것도 이어지는 요한의 잔소리에 흐려졌다.
“마, 이거 봐라, 이놈들 지금 로트 보고 또 버럭버럭! 어! 형이 글케 가르쳤드냐? 세상을 그렇게 삐딱하게 살면 앞으로 사회생활이 고달파지는 법이여!”
“아, 좀…….”
“좀? 좀? 마 느 내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충고를 하는디 좀? 뭐가 좀이여, 뭐가! 나는 이걸 하루 종일 해도 모자라는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