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45)
바다새와 늑대 (244)화(245/347)
#88화
“젠장, 제국군도 있는 줄은 몰랐는데. 그간 안 마주친 건 천운이었군.”
그의 말대로, 거주민이 많은 마을의 광장으로 장총을 멘 군인이 서넛이 순찰하는 중이었다. 학자들이 자주 온다고 했으니만큼 호위병이든 제국군이든 있을 법했다. 낮 동안은 순찰이 그다지 철저하지 않으니 마주칠 일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럴 건 또 뭐란 말인가? 도멤이 낮게 속삭였다.
“조용히 가기나 하자. 우린 관광객이잖아.”
“그렇지…….”
그러나 나는 벌써부터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망할 제국 때문에 쫓기고 자신을 가려야 하는 상황이 그들을 보자 다시금 현실적인 부피를 갖고 내게 끼쳐왔다. 발을 재게 놀리는 우리 사이로 키이엘로는 입을 다물고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제국군을 피해 델라종의 집에 도착했다. 델라종은 죽음의 호수에서 얻어온 자료를 정리하다가 우리가 들어오는 소리에 놀라 돌아보았다. 손자는 보이지 않았다.
늙은 학자가 헐레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일은 다 보셨나요?”
그는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는 것처럼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 태도에 우투그루의 눈이 단번에 가늘어졌다.
“손자는?”
“그 아이가 저녁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소매치기 중이로군. 우리는 빠르게 짐작하며 델라종을 보았다. 키이엘로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까 죽음의 호수에 왔었나?”
“예?”
델라종이 목이 졸린 것 같은 소리로 되물었으나 키이엘로는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자 델라종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급하게 우리를 보며 무릎을 꿇었다. 그것을 보자 나는 속으로 깜짝 놀라며 당황했으나 겨우 아무렇지 않은 척 서 있을 수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학자의 망할 호기심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참을 수 없어서…….”
델라종은 빠르게 말하며 변명했다. 그러면서 눈치를 살피며 처량한 눈으로 우리를 올려다보았다.
“제가 본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정말입니다!”
나이 든 학자가 그렇게 말하며 굽실거리자 도멤은 마음이 불편하다는 얼굴을 했다.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반대로 키이엘로와 우투그루는 꿈쩍도 하지 않고 델라종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여간 저 인간불신 종자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라서 굳이 둘에게 뭐라 할 생각은 없었으나 양심이 콕콕 쑤셔왔다. 차라리 우홉피아주 잔당이 이러고 있었으면 망설임 없이 머리를 쳤을 텐데.
우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보고만 있자 델라종이 재차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저는, 전 정말로 그 뱀의 정체가 뭔지 궁금한 것뿐이었습니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말도 모르나 봐요?”
은근히 날 선 말은 키이엘로에게서 먼저 튀어나왔다. 그는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걸치고 있었으나 기분 좋은 표정은 결코 아니었다. 그에 델라종은 눈에 띄게 움츠러들더니 그의 눈치를 보았다.
“정…… 걱정이 되신다면 차라리 저와 제 손자를 데리고 다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 소리에 우리는 모두 벙찐 얼굴을 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우투그루가 재빨리 나를 돌아보았다. 마치 내가 ‘그럴까?’하고 고민하고 있을 거라 예상한 것 같았다.
그의 예상에는 유감이지만 나 역시 황당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저 할아범 왜 저래? 우리가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인지 모르기 때문인가? 아니, 그렇다 해도 그 커다란 뱀의 모습까지 봐놓고 손자까지 끼워서 생판 모르는 사람과 동행하려 한다니 제정신인가?
나는 당연히 고개를 저었다.
“무리한 걸 바라는군.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나?”
내 말에 우투그루는 날을 세웠던 시선을 거뒀다. 저 자식이, 날 대체 어떻게 보고 있는 거야? 당장이라도 그의 옆구리를 꼬집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솟아났으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델라종은 반쯤 예상한 얼굴을 했으나 물러나지 않았다.
“제발, 부탁입니다. 학자들의 고질병을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 같은 작자들은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합니다.”
“그걸 우리가 굳이 해소해줄 필요는 없죠.”
키이엘로가 델라종의 말을 끊어내듯 말하고는 작은 주머니를 그에게 던졌다. 짤랑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아 돈이 들어있는 주머니 같았다. 나는 내심 당황했다.
언제 돈을 빼놨지? 설마 키이엘로가 부주의하게 우리 수중의 돈을 모두 내주진 않을 테니 적당히 빼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우투그루는 그 생각을 못 한 것인지 아니면 내주는 저 돈도 아까운 것인지 도끼눈을 하고 키이엘로를 쏘아보았다.
“그 돈으로 우리 약속은 지켰어요. 그것 때문에 온 것이니 사족 붙이지 말기로 하죠.”
키이엘로의 말에 델라종은 시무룩한 기색으로 돈주머니를 주워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늙은 학자는 도멤을 흘끔 보며 아쉬운 얼굴을 했다.
“그래요, 그래야겠죠…….”
말을 이렇게까지 했는데 미련을 놓지 못하는 델라종도 어지간히 중증이었다. 어쨌거나 돈도 줬고, 별다른 이상한 점도 느끼지 못한 우리는 이제 이곳을 떠나는 것에 어떤 미련도 남지 않았다.
그때 델라종이 말했다.
“저, 정말로…… 아주 약간의 질문도 안 됩니까?”
“네.”
잠시 고민하는 것 같은 도멤을 뒤로하고 키이엘로가 딱 잘라 말했다. 그가 잘 처신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키이엘로가 유독 날카롭고 적극적으로 구는 것에 의아함을 느꼈다. 평소라면 우투그루가 왁왁거려야 할 것 같은데.
희미한 의문을 흐리고 우리는 몸을 돌렸다. 그때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규칙적인 소리에 섞인 무장의 기척에 우투그루가 빠르게 창밖을 살폈다. 제국군이었다. 그의 얼굴이 사납게 굳어 델라종을 돌아보았다.
“이 망할 늙은이가……!”
“예, 예?”
의아한 기색의 늙은 학자에게 덤벼든 우투그루가 그의 멱살을 붙잡았다. 우투그루에게 잡힌 델라종은 어리둥절한 낯으로 눈을 굴려댔다. 제국군의 발소리를 들은 학자는 당황한 어투로 물었다.
“왜, 왜 그러십니까? 저들은 그냥 골목을 순찰하는 것뿐인데…….”
“뭐?”
그 말에 우투그루는 입을 다물고 바깥의 기척을 살폈다. 다가오는 제국군의 발소리에 나는 허리춤에 찬 검에 손을 올렸다. 그에 델라종의 창백한 시선이 내 허리춤으로 향했다.
그러나 집 앞까지 왔던 제국군의 발걸음은 그대로 집을 지나쳐 멀어졌다. 긴장으로 굳은 어깨를 늘어뜨리며 우투그루가 이를 갈았다. 그러자 델라종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눈을 빛냈다.
“제국군을 피하시는 겁니까?”
“알아서 뭐 하게? 미리 말하지만, 허튼짓이라도 했다간…….”
“이, 이곳은 제국군이 때때로 돌발적으로 집 내부 수색도 하곤 합니다.”
“뭐?”
델라종이 희망을 엿본 얼굴로 우리에게 말했다.
“시간도 늦지 않았습니까? 저는 학자입니다……. 연구자료를 뺏기지 않기 위해 비밀 공간 하나쯤은 갖고 있죠. 만약 제국군이 들이닥친다면 당신들을 숨겨드릴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우투그루는 갈등하는 것 같았다. 도멤과 나 역시 미묘한 눈으로 델라종을 보았으나, 키이엘로가 매서운 기색으로 그의 말을 거절했다.
“오늘 당장 제국군이 수색한다는 보장도 없어. 그리고 그냥 슬쩍 피해 가면 될 일이야. 오히려 오래 머무는 게 독이 될 수 있어.”
키이엘로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우리가 당장 떠날 기색이자, 델라종은 서둘러 우리에게 말했다.
“저, 그럼, 손자를 데리러 가는 동안만 동행해도 됩니까?”
“뭐요?”
“만약의 경우에 제 학파 소속증은 도움이 될 겁니다. 저도 손자를 슬슬 데려와야 하고, 절대 방해되지 않을 테니…….”
델라종이 우물쭈물해대며 말했다. 솔직한 말로 나이든 학자를 데리고 다니는 것보다 우리끼리 제국군의 시선을 피하는 것이 더 쉬웠다. 그러나 이쯤 되자 이 학자를 더 거절했다가 엿 먹어보라고 우리를 제국군에 신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자 결정하기 어려워졌다.
우투그루는 떨떠름한 얼굴로 델라종을 보았고, 나를 포함한 다른 이들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예민해져 있던 키이엘로 역시 섣불리 결정하지 못하자 결국 나는 한숨을 섞어 말했다.
“뭐, 그래. 하지만 우리는 굳이 당신이 필요하지 않으니까 적당히 붙어있다가 떨어져.”
“일행께서 이 마을을 벗어날 때까지만 있겠습니다.”
델라종 역시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집을 나와 걸어가며 도멤이 내게 몸을 기울였다.
“뭐 때문에 저렇게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학자의 망할 호기심이 도졌나 봐.”
“진짜 특이한 사람이야…….”
도멤은 학을 떼며 고개를 설설 내저었다. 아니나 다를까, 델라종은 걸음을 옮기는 때마다 우리에게 이것저것 물어댔다. 와중에 발 뻗을 곳은 살피는 모양인지 키이엘로와 우투그루에게는 좀처럼 질문하지 않았으나 나와 도멤은 개중 제일 나아 보인 모양이었다.
“뱀의 후두 기관이 여타 다른 개체와 다른 걸까요? 어디서 그 뱀을 구했나요?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니 괴물 종류인가요? 괴물을 길들인 거라면, 이건 정말 획기적인 발견입니다!”
“…….”
피곤해 뒤지겠다! 나는 입을 다물고 꿋꿋하게 걸어갔고, 도멤 역시 어색한 미소만 내비치며 델라종을 슬슬 피했다. 늙은 학자의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나는 것을 보아 도멤의 소매 속에 숨어 있을 세계의 뱀을 찾아대는 게 분명했다.
이러니 초월자들이 학자만 보였다 하면 죽이지. 성가시기 이를 데가 없으니. 다소 막돼먹은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기는데, 굳건하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우리에게 실망한 듯 델라종이 중얼거렸다.
“이번에야말로 연구 성과를 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포기하세요. 우리 덕에 죽음의 호수 연구는 진행할 수 있게 되었잖아요.”
도멤이 찝찝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델라종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 그것까지 우리가 알아줄 필요는 없었다. 그런 생각을 마찬가지로 한 모양인지 키이엘로가 말했다.
“연구 성과? 무슨 연구 성과를 말하는지 모르겠네요. 죽음의 호수에 관한 것이 아닌 우리에 관한 것은 비밀엄수라는 걸 잠시 잊은 모양인데…….”
“아니, 물론, 물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럼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는 것도 그만 하세요.”
키이엘로가 흐릿하게 웃으며 말하자 델라종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수그렸다. 그렇게 부지런히 걸어 마을의 변두리로 왔을 때였다. 마을의 주변을 둘러싼 낮은 돌담 너머의 들판에서 소년이 뛰어왔다.
“할아버지!”
“멜러!”
소년이 우리를 향해 와다닥 달려왔다. 그것을 보며 나는 태평하게 생각했다. 소매치기 중인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네. 그러나 그런 나의 나태한 생각은 키이엘로의 표정을 보자 싹 사라졌다.
키이엘로는 마치 올가미를 밟고 뒤늦게 알아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자 명치가 써늘하게 식어 내리는 것을 느꼈다. 설마. 그때 소년이 달려왔던 곳에서 사람이 한 무더기로 일어났다. 제국군이었다.
“여기, 이 자들입니다!”
델라종은 우리를 가리키며 외쳤다. 갑작스러운 일에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델라종이 다시금 외쳤다.
“이들이 그 마녀입니다!”
“뛰어!”
우투그루가 외치며 튀어 나갔다. 도멤 역시 그의 뒤를 따라 달려갔으나, 나는 왠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뱀을 보고 나를 추측해낼 리가 없었다. 나는 내 눈과 발카를 끝까지 숨겼고, 세계의 뱀을 보았다고 해서 나와 연관 지을 근거가…….
나는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격노에 오히려 손발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분노의 냉기가 머리를 마비시켰다. 죽여버리고 싶어. 칼이라도 뽑아 들고 싶다는 충동이 맹렬하게 들끓었다. 그러나 그 찰나가 지나는 순간, 키이엘로가 내 팔을 잡고 뛰어갔다.
“쫓아라!”
내달리는 탓에 내 후드가 뒤로 넘어갔다. 키이엘로와 나의 머리카락이 모닥불에서 내쫓긴 까만 나뭇조각처럼 휘날렸다. 나는 그제야 뒤에서 쫓아오는 소리에 이를 갈며 다리를 움직였다.
도멤과 우투그루가 벌써 훨씬 앞서 있었다.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뛰어가던 나와 키이엘로의 앞을 창고에서 뛰어나온 제국군이 막아섰다. 키이엘로가 낮게 욕을 짓씹으며 멈춰 섰다.
주변은 드넓은 밭과 들판이었다. 숨어 있을 곳이 없다고 여겼으나 아니었다. 각종 헛간과 창고 따위에서 제국군이 속속들이 튀어나왔다. 나는 누가 머리를 후려친 것 같은 아찔함을 느꼈다.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다.
이 늙은 학자는 우리가 진짜 수배자든 아니든 마치 찔러보듯 신고한 것이다!
그러나 멍하니 대치할 시간이 길지 않았다. 나는 대뜸 옆에 있는 창고의 창문을 걷어차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키이엘로 역시 내 뒤를 따라 창고 안을 가로질러 문으로 내달렸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낭패감을 느꼈다. 도멤 쪽과 떨어졌다! 뭉쳐서 함께 이동해도 모자랄 판에 갈라지다니…. 뒤에서 고래고래 외치는 소리와 발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왔다.
실제 하늘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어두워진 허공으로도 분명히 보일 만큼 먹구름이 지고 있었다. 나는 발카를 우악스레 잡아 말했다.
“발카, 우투그루와 도멤에게로 가 있어!”
『뭐? 싫어!』
“가서 상황이 되면 배에 미리 올라 있으라고 해. 우리가 합류하는 즉시 출항할 수 있게 준비하라고!”
『싫어, 로트렐리! 난 너와 있을 거야!』
“시키는 대로 해, 어서!”
내가 날카롭게 소리치고 허공에 발카를 놔주자 바다새는 내키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빠르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작은 벌새 크기고 어두우니 발카가 눈에 띄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발카의 대화를 들은 키이엘로는 이내 뒤를 돌아보았다. 군인들이 등에 짊어지고 있던 총을 내려 탄환을 장전하고 있었다. 우리를 포위한 제국군의 사이로 델라종이 앞서 걸어 나왔다. 긴장한 늙은이의 얼굴에 옅은 희열이 걸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