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46)
바다새와 늑대 (245)화(246/347)
#89화
“젠장, 왜 일이 이렇게 된 거야?”
우투그루는 속이 끓는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제국군을 따돌린 도멤과 우투그루는 발카와 합류한 상태였다. 무어라 말하는 것 같은 바다새의 말을 전달해준 것은 흰 뱀이었다.
덕분에 배에 올라탔으나, 그들이 배에 오르자마자 제국군이 항구로 와 모든 배의 출항을 금지했다. 갈리니 섬을 떠나려던 이들이 항의했으나 수배된 마녀를 잡기 위함이라는 이유를 밝히자 그들은 불만 대신 호기심 어린 눈을 했다. 학자들이 또라이 아니랄까 봐!
몰래 항구를 살피던 우투그루는 혀를 찼다. 그때 도멤이 낮게 물었다.
“요르문간드와 로트는 상관관계가 없어. 그 학자, 대체 무엇을 근거로 우리가 수배된 이들이라고 짐작한 거지?”
“알 게 뭐야. 그 망할 늙은이 때문에 또 쫓기게 생겼는데.”
보통은 서로의 말을 거꾸로 했을 상황이었으나, 우투그루는 도멤의 의아함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그는 까맣게 침잠하는 시선으로 항구를 살폈다. 키이엘로, 그 자식 탓이다.
우투그루는 속으로 칼을 갈듯 욕을 잘근잘근 다지며 생각했다. 도멤의 뱀을 그 늙은이가 보았고, 괜히 키이엘로가 델라종의 심기를 긁어서……. 그러나 동시에 우투그루는 그때 키이엘로의 행동이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상대는 학자였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 외에 세계의 뱀과 ‘마녀’로 알려진 로트에 관해 무언가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동행하고 호수에서 있는 동안 추리한 것일 수도 있다. 애초부터 엮이면 안 되는 인물이었을 수도…….
우투그루는 끙 소리를 내며 이마를 짚었다.
“어쨌든 당장 출항할 수 있게 준비해두랬으니 닻을 올려둬야겠군.”
“더 밖에 있다가 들켜서 골치 아파지기 전에 들어가자.”
둘은 조용히 닻을 반쯤 올리고 선실로 들어와 물자를 살폈다. 우투그루는 다소 침통한 심정으로 빈 창고를 둘러보았다. 멀리 떠나기엔 식료품도 뭣도 전부 부족했다. 그때 끌끌 웃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래, 그래……. 그의 힘을 잇는 자들은 늘 이런 사건 사고에 휘말리곤 하지.』
놀라 뒤를 돌아본 우투그루는 도멤의 소매 밖으로 고개를 빼낸 검은 뱀의 붉은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우투그루는 황망한 얼굴로 뱀을 보다가 눈썹을 꿈틀 움직이며 되물었다.
“뭐?”
『메흐의 파편. 그가 분노와 증오에 휘둘리는 삶을 살았던 만큼 그의 파편을 품은 자들은 필시 그와 같은 일을 겪게 되리라.』
스산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에 우투그루는 당황해 시선을 헤매다가 도멤을 보았다. 도멤 역시 심각한 얼굴이었다. 도멤이 말했다.
“그치만 우리 시대엔 로트가 죽일만한 신이 없어. 이미 그 메흐가 죽였잖아.”
우투그루는 혀라도 깨물고 싶었다. 지금 그걸 따질 때냐고!
그래, 신은 죽었다. 뭐 철학적인 이야기 따위가 아니라 그냥 진짜로 초월자 왈, 바다의 주인이 빡쳐서 죽였댔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신이 있었으면 뭐, 로트가 그 신을 죽일 수나 있었겠는가? 이상한 곳에서 따지고 있어!
우투그루는 고요하게 복장이 뒤집히는 것을 느꼈다. 신이 없어도 세상엔 사건 사고가 많다. 저 망할 점쟁이 뱀들이 뭐라고 떠들든 로트렐리가 골치 아픈 일에 휩쓸린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의미겠는가? 로트렐리와 같이 다니면 자신들도 그 골치 아픈 일에 휘둘리게 될 것이란 뜻이었다! 우투그루는 검은 뱀을 보며 물었다.
“난 운명론 안 믿어. 하지만 이왕 신화 생물에게 그런 소리를 들었으니 묻는데, 사건 사고를 피할 방법이 있어?”
『우리를 원래대로 돌려놔야 해.』
“어떻게? 너희 둘이 만났으니까 알아서 바다로 기어들어 가든가.”
『우리가 다시 순환하기 위해서는 초월자가 필요하다.』
그 말에 우투그루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어쩌라고! 그리고 도멤은 골치 아프다는 듯 끙 앓는 소리를 내고는 물었다.
“그 초월자가 너희를 갈라뒀다며. 그런데 초월자들이 흔쾌히 말을 들어줄까?”
『그러니 그 방법은 너희가 찾아야지.』
“그냥 내버려 두고 이따가 로트 녀석 오면 똑같이 말해보라고 해. 아마 걔는 저 뱀들을 예쁘게 묶어다 바다에 던지려고 할걸.”
우투그루의 말에 도멤은 ‘그렇다는데?’하고 묻듯 검은 뱀을 보았다. 그러자 그 옆에서 흰 뱀이 일어나 긴 몸을 퍼덕이며 말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줘! 그, 그 경악스러운 녀석은 무섭다고!』
세계의 뱀을 겁에 질리게 하다니, 역시 로트렐리 아피나다. 우투그루는 속으로 로트의 막무가내 기질을 일찍이 눈치챈 자신의 안목을 칭찬하며 흘끔 흰 뱀을 보았다. 그때 그가 무어라 하기 전에 도멤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너희는 말만 했다 하면 어려운 이야기만 하잖아.”
『필요한 일이야. 우리와 초월자들, 그리고 이어져 온 메흐의 유지와 너희는 이미 이 세계의 거대한 연결고리로 엮여있어.』
『꼭 너희가 아니어도 될지 모르지. 하지만 우리는 이미 너희를 만났다. 마땅한 길을 걸어온 너희를…….』
“우리 안 걸어왔어. 배 타고 다녔지.”
『자꾸 이럴래?』
흰 뱀과 검은 뱀이 번갈아 가며 말하다 도멤의 사족에 왈칵 성질을 부렸다. 그러더니 둘은 서로를 바라보고 한숨을 쉬고는 도멤에게 말했다.
『초월자의 힘을 되찾으면 될 일이야.』
『메흐가 죽고 난 뒤 그의 힘은 모두 흩어진 것이 아냐. 루루미가 미련을 갖고 반쯤 봉인해 품고 있다.』
『그 힘을 되찾으면 루루미는 더는 바다를 호령하지 못해. 너희는 큰 힘을 갖게 될 거다.』
“…….”
우투그루와 도멤은 떨떠름한 눈으로 뱀들을 보았다. 이 뱀들은 인간을 작고 영악한 야망꾼으로 본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세계의 뱀에게는 유감스럽게도, 이 배를 탄 일행 중 세상을 호령하고 싶다는 앙증맞은 꿈을 꾸는 깜찍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관심 없어, 그딴 힘……. 지나치게 현실에 찌든 성인 남성 둘은 침착하게 뱀을 잡아 대충 자루 안에 넣었다. 그에 흰 뱀이 노발대발하며 다급하게 외쳤다.
『마, 말은 끝까지 들어! 세상이 바다에 잠기고 괴물이 들끓게 된 것은 우리가 갈라진 탓이야. 그러니…….』
“저기, 전에 인어한테 듣기론 멸망이 당장 우리 대는 아니래.”
『이 고얀! 네 후손과 그 후손은 고통 속에 간신히 연명하다 죽게 될 거다!』
“그렇게 말하니까 엄청 안타깝고 무섭긴 한데 난 아직 결혼 생각이 없어서…….”
『네 나이가 벌써 스물둘인데 무슨 소리야! 몇 해만 지나면 결혼해서 아이를 봐야 할 것 아냐!』
“뭐어? 너무 빠르다! 우리 부모님 대에서나 다들 그렇게 결혼했지, 요즘엔 안 그래! 너 진짜 늙다리 뱀이다!”
『느, 늙다리?!』
흰 뱀과 도멤의 엉망진창 대화에 우투그루는 배에서 내려 항구를 좀 걷고 싶어졌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제국군이 항구를 통제하고 있지 않던가. 이 난장판에서 벗어날 방도가 달리 없다는 뜻이다.
결국 우투그루는 한숨을 푹 내쉬다가 말했다.
“조용히 좀 해봐. 정 그렇게 우리를 설득하고 싶다면 차근차근 말해. 애초에 너희를 갈라둔 건 초월자잖아? 그럼 알아서들 해결해야지 왜 우리에게 이러는 거야?”
그 말에 도멤에게 ‘늙다리’ 소리를 듣고 충격에 빠져있던 흰 뱀은 정신을 차렸다. 시큰둥하게 히죽이며 흰 뱀을 보던 검은 뱀이 말했다.
『모든 문제는 메흐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되지. 메흐가 만든 법칙에 따라, 우리는 그가 죽자 그의 힘을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게 해 생명으로 잉태시켜야 했어.』
『그러나 메흐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초월자들이 메흐의 힘을 순환의 고리에 넣던 우리를 갈라냈다.』
『메흐의 순환을 막아 유지한 상태로 그를 부활시키려는 목적이었겠지.』
한 쌍의 요르문간드는 번갈아 가며 말했다. 그에 우투그루는 영 찜찜한 기분을 떨치지 못했다. 초월자는 대체 얼마나 더 존재하는 거지? 애초에 루루미는 메흐를 죽인 작자였다. 그러나 다른 초월자들은 메흐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런 것치고는 듣기로 숲의 주인과 바다의 마녀 사이가 그리 나빠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루루미는 바다의 주인을 되살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그런 와중에 자신이 메흐의 힘을 독차지할 욕심도 없는지 메흐의 힘을 가졌다는 로트를 가만히 두기까지 한다.
높은 곳에 임한 이들의 의도가 너무 깊어서 읽을 수가 없군. 우투그루는 짤막하게 한숨을 쉬며 이어질 요르문간드의 말을 기다렸다.
『현명하던 벨라우라그의 말대로 세상의 모든 것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있어. 수천 년 전 메흐의 죽음은 지금까지도 메울 수 없는 거대한 구멍이 되어 세상의 규칙을 망가뜨리고 수많은 것을 멸하고 있지.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순환이라는 우리의 존재가 필요하다.』
“전설 속에서 메흐의 죽음이 바다를 넘치게 하고 괴물들을 깨웠다는 부분을 말하는 거야?”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