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47)
바다새와 늑대 (246)화(247/347)
#90화
도멤의 물음에 검은 뱀이 답했다.
『정확히는 우리의 분리가 그것을 일으켰다. 메흐 하나를 살리자고 세상의 순환을 멈춘 거야!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가른 초월자들을 저주했지.』
『그들은 새로이 열릴 세계를 보지 못하며 그 어떤 말도 함부로 하지 못하리라.』
『더는 세상이 너희의 것이 아니고, 너희의 실수를 너희의 손으로 기워낼 수 없으리라.』
『메흐가 빚어낸 세상이 너희의 손에 망가져 가는 것을 그저 관망하기만 하거라!』
그리 큰 소리도 아니었건만 뱀들의 선언은 어딘가 스산한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 말에 우투그루는 미간을 좁히기만 했다.
“그럼 결국 초월자는 너희를 도와주지 못하게 되잖아.”
『그러니 메흐의 남겨진 힘을 되찾아 우리를 다시 엮으라는 것이지.』
“……그게 가능해? 일개 인간이 메흐의 힘을 얻는다는 게?”
우투그루가 미심쩍은 얼굴로 묻자 요르문간드는 서로를 바라보고는 히죽 웃었다.
『이미 얻은 이가 있지 않더냐?』
“그럼 걔를 찾아가.”
『아니, 너희 중에 있다.』
뱀의 속삭임에 우투그루와 도멤은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뇌리에 스친 인물이 누구인지 금방 눈치챈 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히죽였다.
『그래, 그 분노에 휩싸인 인간……. 푸른 눈으로 메흐의 족적을 따르고 있는 자 말이다.』
선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우투그루는 우두커니 있다가 슬쩍 도멤을 바라보았다. 도멤은 미묘한 얼굴로 뱀을 보고 있었다. 우투그루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어내고 뱀을 보며 입을 열었다.
“로트렐리에게 그딴 말을 하면 너넨 이번에야말로 나비매듭으로 묶여서 바다로 내던져지거나 뱀술로 담가질 거다.”
『그거 무섭군.』
빈정거리듯 우투그루를 비웃는 검은 뱀과 달리 하얀 뱀은 그의 말에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도멤이 희미하게 물었다.
“왜 하필 로트야? 다른 사람도 많을 텐데 왜…….”
『글쎄다. 운명의 농간이라고 해둘까.』
“난 갑판으로 나가 있는다.”
운명 운운하는 소리에 우투그루가 듣기 싫다는 듯 학을 떼며 성큼성큼 선실을 나갔다. 도멤은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뱀들을 직시하며 말했다.
“로트라면 운명이라고 해도 무시할걸. 그런 애니까. 그걸 너희가 어쩔 수 있어?”
『우리가 그 애를 아무리 높게 치고 있다 해도 아직은 그저 일개 인간이다.』
『운명에 저항한다고? 큰 물결에 저항한다고? 초월자조차 하지 못하는 일을 일개 인간이?』
“로트에게 그런 이상한 일 강요할 생각하지마.”
도멤이 드물게 화난 어투로 낮게 말했다. 그에 뱀들은 그를 놀리듯 혀를 날름거리며 웃었다.
『우리는 물론, 강요하지 않아.』
『허나 우리는 순환이다. 일의 인과는 이미 분명해졌고 언젠가는 선택할 때가 올 것이다.』
“그 인과를 그렇게 잘 보는 주제에 초월자들이 너희를 갈라둘 것을 예상하지 못했나 봐?”
도멤의 말에 뱀들의 입이 맞춘 것처럼 딱 다물렸다. 도멤은 세계의 뱀들을 초록색 눈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우리가 너희 같은 이상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건 네가 말했듯 일개 인간인 탓이야. 게다가 로트는 미신 같은 걸 싫어해. 그런 미신에 휘둘리는 자들 탓에 오랫동안 하고 싶던 일을 못했기 때문이겠지. 키이엘로도 큰일에 휘말리는 걸 싫어해. 걘 이미 고민할 일이 많아서 자기 일만으로도 벅찬 애야. 우투그루도 너희를 싫어해. 걔는 생각보다 바라는 게 소박해서 이런 일에 휘말리지 않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리면 정말로 평화롭게 브레딕과 살 수 있을 거야.”
뱀들은 숨을 죽이고 도멤을 응시했다. 도멤은 인상을 찡그린 채 그런 뱀들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는 그냥 친구들이 행복하게 지내길 바라니까. 우리가 일개 인간으로 보이면 그냥 일개 인간으로 살게 둬.”
『…어쩌면 우리조차도 운명에 휘둘리는 것인지도 모르지.』
“그 운명 타령 좀 하지 말라니까?”
『아니, 지금이야말로 강렬히 깨닫는다.』
뱀들은 빨갛고 파란 눈으로 도멤을 응시했다.
『어쩌면 수천 년 전 메흐가 죽는 순간의 인과가 지금 이 순간마저도 결정짓게 된 건지도 몰라.』
도멤은 뚱한 얼굴을 했다. 로트 말대로 수천 년 묵은 뱀이라 그런가, 사람 말 안 듣고 과하게 독립적이었다. 그때 두 뱀이 도멤에게 고개를 들이밀고 속삭였다.
『우리는 너에게 지혜를 빌려주겠다, 그리 약속했지.』
『그에 더해 한 번, 단 한 번…….』
『너에게 운명을 멈출 천칭을 알려주마.』
* * *
상황 한 번 개 같았다. 나는 재빠르게 눈을 굴리며 주변을 살폈다. 델라종이 우리에게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번에야말로 알려주십시오……. 그 뱀은 무슨 존재입니까?”
“……망할, 진짜 상또라이한테 잘못 걸렸네…….”
나는 잇새로 욕을 짓씹으며 키이엘로를 흘끔 보았다. 그는 긴장한 얼굴로 델라종과 그 뒤의 제국군을 보고 있었다. 제국군의 장전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 와서 피하기엔 너무 늦었다. 총알을 피한다 해도 한두 군데에는 바람구멍 날 각오를 해야 했다.
나는 델라종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저 인간은 물론이고 그 손자에게도 내 눈이나 발카를 들킨 적은 없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가 명확하게 마녀니 어쩌니 하며 우리를 고발했다면 세계의 뱀에 관한 이야기가 학자들 사이에서 꽤 유명하거나, 아니면 그냥 뒷걸음질에 쥐 잡은 격이거나 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울화가 치솟기엔 충분했다.
옆구리에 매달린 멜러를 끌고 델라종이 잔뜩 흥분한 기색으로 우리에게 한 발짝 다가왔다.
“그런 커다란 뱀……. 초월자에 관련된 존재겠지요? 그렇지요?”
“다가가지 마시게.”
제국군 가운데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며 델라종을 경계했다. 그러나 제국군이 우리를 총으로 겨누고 있자 늙은 학자는 마치 우리 안에 갇힌 맹수를 보듯 긴장감이 사라진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그냥 연구에 눈이 멀었든가.
“이렇게 행운일 수가……. 그런 뱀과 함께 마녀를 잡아가면 난 학파에 큰 공을 세우게 되는 거야. 그 뱀은 아까 도망간 이들 중에 있죠? 그렇죠?”
“어쩔 거야?”
나는 긴장한 얼굴로 우리에게 겨눠진 총구와 키이엘로를 번갈아 보며 작게 물었다. 키이엘로는 말이 없었다. 문득 나는 총구가 미묘하게 내게서 빗겨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제야 묻어뒀던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푸른 눈은 생포하고 나머지 폭도는 사살하라!’
나는 퍼뜩 몸을 옮겨 키이엘로의 앞을 가로막았다. 내내 무슨 생각 중인지 앞의 이들만 노려보던 키이엘로가 그때서야 흠칫 놀라며 나를 보았다.
“로트.”
“망할 놈아, 넌 왜 이렇게 키가 크냐.”
나도 키로는 어디서 안 지는데 키이엘로는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총알로부터 몸을 막아주면 뭐 하는가, 머리에는 총알 하나만 박혀도 곧장 죽을 텐데. 어쨌거나 우리가 자신의 말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자 델라종은 조급해진 것 같았다.
“그 뱀! 무슨 뱀이냐고! 나는 알아야 해! 다른 학자들이 가로채기 전에…….”
“그런 것은 체포한 이후에 실컷 하시게. 지금은 저들을 잡아야 하니 비켜.”
제국군이 말하자 델라종은 어깨를 떨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어느새 제국군의 포위보다도 앞서 나와 있었다. 그에 그가 지레 놀라 뒤로 들어가려던 찰나였다.
내 뒤에 있던 키이엘로가 부지불식간에 나를 제치고 그에게 손을 뻗었다. 그가 잡아챈 것은 목동인 멜러였다. 제국군이 총을 쏘려 하자 키이엘로가 소년의 목을 팔로 감싸고 마치 방패처럼 내세웠다.
델라종이 질식할 것처럼 놀라 외쳤다.
“안 돼, 쏘지 마시오!”
키이엘로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불안한 눈으로 키이엘로와 시선을 맞췄다. 그에 키이엘로는 무언가 할 말이 많은 듯 입을 달싹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는 대신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소년의 목덜미에 겨눴다. 델라종이 기겁하며 제 머리를 쥐어 싸맸다. 그러나 여전히 제국군은 우리를 향해 총구를 들이밀고 있었다.
“총 내려놔.”
키이엘로가 낮게 을렀으나 제국군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에 키이엘로의 품에서 멜러가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그를 쥐고 있는 것은 키이엘로였다. 해적들 사이에서도 이길 수 없는 악력의 소유자인 그를 일개 소매치기 목동이 이길 리가 만무했다.
“그 애를 놔줘!”
델라종이 가래가 끓는 듯 거르렁거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키이엘로의 손아귀에 잡힌 소년이 울먹이며 델라종을 불렀다. 나는 대치가 길어지는 상황을 살폈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간을 더 끌면 그때는 비가 올 것이다. 그럼 화약이 젖을 테니 총을 겨누는 제국군 따위 무섭지도 않았다. 그러나 뜻밖에 제국군은 멜러가 인질로 잡혀 있든 말든 총을 발사했다.
탕! 한 발의 위협 사격이었으나 그에 사색이 된 것은 우리보다도 델라종이었다. 머리 옆을 스친 총알에도 키이엘로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에 델라종이 희게 질린 얼굴로 제국군을 돌아보았다.
“제 손자를 보호해주십시오!”
“우리의 목표는 마녀의 생포일세.”
짧은 대꾸에서 거부의 뜻을 읽은 델라종이 얼굴을 구기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덤벼든 델라종에 놀란 제국군은 서둘러 총구를 하늘로 올렸다. 허공을 향해 쏘아진 총소리에 귀가 먹먹해졌다.
델라종이 제국군의 분대장을 붙들고 외쳤다.
“당신들이 그러고도 제국군이야? 아이가 인질로 잡혀 있잖아!”
“본인의 과실이니 우리가 책임질 이유는 없다.”
그렇게 말한 제국군은 델라종을 총열로 밀쳐냈다. 분대장이 총을 재장전하며 제국군에게 손짓했다. 그에 키이엘로는 내게 눈짓하고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나 역시 그를 따라 물러나며 제국군을 살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