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48)
바다새와 늑대 (247)화(248/347)
#91화
우리가 뒤로 물러나는 것을 알아챈 제국군이 외쳤다.
“멈춰라!”
“총을 거둬.”
키이엘로가 위협적으로 말했다. 키이엘로의 팔 안에서 목동이 발버둥을 치다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키이엘로를 노려보았다.
“망할 폭도 놈! 우리 할아버지를 이용하더니 이제는 나를 인질로 잡아? 너 같은 범죄자는 제국군에게 탄압받아 마땅해!”
“멜러! 조용히 해라, 자극하지 마!”
델라종이 희게 질려서 소년을 만류했다. 나는 목동의 말에 분노가 치솟아 속부터 서리가 끼는 것을 느꼈다. 네가…… 너희가 우리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어? 울렁이는 속마음처럼 하늘에서 우르릉, 하고 먹구름이 꾸물대는 소리가 울렸다.
제국군 분대의 한쪽에서 다시금 총을 발사했다. 내가 키이엘로의 앞을 반쯤 가로막고 있어 위협 사격에 그쳤지만 언제 저들이 마음을 바꿀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내게도 총알 몇 발쯤 박아서 숨만 쉬게 해두고 키이엘로를 해칠지도 모르는 일이지. 나는 불안한 눈으로 키이엘로를 살폈다.
키이엘로는 멜러의 목을 옥죄며 내게 작게 말했다.
“뒤쪽으로 물러나, 로트.”
“넌 어쩌고!”
“인질이 있잖아.”
키이엘로가 안심하라는 듯 부드럽게 말했으나 그 말에 멜러의 얼굴은 더욱 험악해졌다. 목동은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모를 험한 욕을 하며 키이엘로의 다리를 걷어찼다. 그러나 키이엘로는 꿈쩍도 하지 않고 제국군을 응시했다.
“나쁜 놈! 어른들이 그랬어, 너 같은 실패자들이나 주제를 모르고 제국에 반항하는 거라고! 날 놔줘, 이 망할 놈아!”
멜러가 대차게 외치며 발버둥을 쳤다. 그에 델라종의 얼굴이 시시각각 죽을 것처럼 흑색이 되었다. 목동이 무어라 떠들든 미동도 없던 키이엘로가 다시금 슬쩍 뒤로 물러나자 분대가 우리를 얕게 포위하기 시작했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검을 뽑아 들었다. 총의 사거리 안에서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지만 무기라도 들고 있어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나는 마음 같아서는 시끄럽게 떠드는 목동을 한 대 때리고 싶었다. 인질로 잡힌 주제에 뭐 저리 말이 많단 말인가?
서늘한 분노가 내 머리 한구석을 연신 부채질하는 것 같았다. 앞길을 막는 것을 닥치는 대로 다 해치우고 도망치고 싶었다. 괜히 억울하기도 했다. 우리는 잘못 없어. 먼저 우리의 주머니에 손을 댄 것도, 우리를 신고한 것도 모두 저들이고, 더 너머에는 시답잖은 욕심으로 나를 노리는 제국이 있었다.
그게 어떻게 우리의 탓이야?
키이엘로는 주변을 빠르게 살피고는 아직 제국군이 없는 쪽으로 발을 옮겼다. 그것을 저지하듯 쏘아진 총이 키이엘로의 어깨를 스치고 날아갔다. 나는 놀라서 그를 보았다가 이를 갈며 제국군들을 보았다.
델라종이 외쳤다.
“나는 너희를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싶은 것뿐이야! 순순히 따라와 주게, 최대한 편의를 봐줄 테니, 내 손자도…….”
“가난한 학자가 무슨 수로?”
키이엘로의 입에서 나왔다기엔 지나치게 싸늘한 어투였다. 그의 검은 눈이 가라앉은 채 델라종을 응시했다.
“제국은 당신 같은 떨거지를 신경 쓰지 않아. 당신의 손자도 신경 쓰지 않지. 죽으면 죽는 대로 그들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을걸.”
“웃기지 마, 제국은…….”
“너도 상황 파악을 하는 것이 좋을 거야, 꼬마야.”
키이엘로는 그르렁거리듯 한숨을 뱉으며 멜러에게 말했다.
“내가 좀만 더 무도했다면 넌 내게 욕을 하던 순간 죽은 목숨이었어. 저들이 너를 구해주려는 것처럼 보여? 아니, 되도록 화약을 아끼는 방향으로 우리를 잡고 싶은 것뿐이야. 그렇지 않다면 인질이 있는데 위협 사격을 왜 하겠어? 인질범을 자극할 수 있는 일인데…….”
나는 낯선 눈으로 키이엘로를 일별했다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매정한 말이지만 그가 맞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가차 없는 말을 키이엘로가 했다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키이엘로의 말에 멜러는 기가 죽었는지 어깨를 들썩대며 덜덜 떨고만 있었다.
그때 제국군의 총이 재장전되는 소리가 울렸다. 나는 키이엘로와 시선을 마주쳤다. 더 시간을 끌고 싶지만 이제 슬슬 위험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런 뜻을 그도 알아챘는지 희미하게 턱을 움직여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짧게 생각했다. 절대로 저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가게 할 수 없어. 그게 생포된 나든, 죽은 키이엘로든 말이다. 우리에게, 정확히는 키이엘로에게 겨눠진 총구를 보며 나는 검 자루를 고쳐 잡았다. 일순, 키이엘로가 멜러를 제국군 쪽으로 내던졌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키이엘로가 던진 목동이 제국군을 덮쳐 열이 무너졌고, 그 틈에 키이엘로는 제국군이 없는 쪽으로 내달렸다. 제국군이 총을 쐈다. 순간 나는 키이엘로를 따라 뛰다가 그를 잡아 몸을 숙이게 했다.
곧 날카로운 통증이 내 어깨를 파고들었다. 나는 내 검 중 하나를 놓쳤다.
“―윽!”
“로트!”
나는 용케 발로 검을 차올려 다치지 않은 손으로 잡아챘다. 어깨의 고통에 일순 다리가 휘청여 넘어질 뻔했으나 나는 앞으로 계속 내달렸다. 발치에 핏방울이 떨어졌다. 어깨 말고도 팔뚝도 곳곳이 욱신거렸으나 어깨만큼 심각하진 않았다.
그때 키이엘로가 욕을 짓씹으며 홱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물기 어린 밤공기 사이로 화약의 냄새가 났다. 나는 그것이 제국군의 총에서 나는 것인지 키이엘로에게서 나는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뒤늦게 키이엘로를 돌아보자 훅, 뜨거운 열기가 끼쳐왔다. 타오르는 황혼의 태양이 코앞에 들이 밀어진 것 같은 빛이 눈을 찔렀다. 팔뚝에서 불길을 일으킨 그가 불씨를 뿌리듯 팔을 내저었다. 순식간에 제국군의 앞길을 막아선 불길이 사납게 일렁였다. 당황한 제국군 사이로 눈을 부릅뜬 델라종이 보였다.
넘실대는 불길 사이로 늙은 학자와 짧게 눈이 마주친 나는 이내 나를 붙잡는 키이엘로의 손에 이끌리듯 달음박질쳤다. 불이 꽤 크게 번졌는지 꽤 멀어진 뒤에도 어슴푸레한 붉은 빛과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키이엘로의 손은 불이 사라졌음에도 난롯불처럼 뜨끈했다. 그때 콧잔등 위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빗방울이었다. 나는 화끈거리는 어깨를 부여잡고 이를 악물고 뛰었다.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비는 이윽고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진작에 왔어야지, 기껏 키이엘로가 불을 지르고 튀었는데 이렇게 절묘할 건 또 뭐란 말이야?
나와 키이엘로는 목 끝까지 차오른 숨을 거칠게 내뱉으며 항구까지 달려갔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그러나 그때 키이엘로가 나를 붙잡아 뒤로 밀었다. 골목 벽에 달라붙어 숨을 몰아쉬며 바깥을 보자 제국군이 흩어져 순찰하는 것이 보였다.
골목에 쌓인 잡동사니 뒤에 숨은 우리는 스르륵 주저앉아 숨을 헐떡였다.
“망할, 빌어먹을, 진짜 뭐 이딴 염병할…….”
“괜찮아, 로트?”
온갖 욕을 중얼거리는 내게 키이엘로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가 비에 젖은 얼굴을 손으로 닦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개빡쳐서 아픈 것도 몰랐네.”
“배로 돌아가면 치료할 수 있겠지. 일단 지혈이라도 해두자.”
“그래…….”
키이엘로가 침착하게 말하며 제 셔츠 소매를 찢었다. 로브를 벗어 팔에 건 나는 그가 내 어깨를 동여매는 것을 보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앞쪽으로는 핏자국이 없는 걸 보면 총알이 안에 박힌 것 같았다. 나는 저절로 속으로 쌍욕이 튀어나왔다.
우리 배에 구급상자는 있어도 술은 없으니 맨정신으로 저 총알을 뽑아내야 할 것이다. 망할, 그냥 머리에 맞고 죽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키이엘로도 그걸 알아챘는지 내 어깨를 힘줘 지혈하면서도 안색이 어두웠다. 나는 내 부상에 관한 생각을 밀어두고 물었다.
“넌 괜찮아? 아까 그건 그럭저럭 넘어갈 수준의 불은 아닌 것 같던데.”
“……당장은 괜찮으니까 난 됐어.”
대답의 앞에 침묵이 좀 길었으나 키이엘로는 정말로 멀쩡해 보였다. 나는 다치지 않은 쪽 팔을 들어 그의 이마에 손을 댔다. 혹시나 열이 있나 살필 생각이었으나 우리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비 때문에 피부가 차게 식어 그다지 잘 짚이지 않았다.
나는 혀를 차고는 미련 없이 손을 거뒀다.
“일단 배로 가야 하는데……. 뭔가 생각이 있어?”
“미적거려 봐야 좋지 않다는 건 알겠어.”
“그래, 그렇지.”
그 생각은 나도 같은 의견이었다. 고립된 섬에서 암만 잘 숨어 봐야 제국군이 각 잡고 사람을 풀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니 제국군은 우리가 항구로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들의 권한이라면 일시적으로 항구를 통제하는 것도 가능할 테니 최대한 치고빠지는 식으로 갈리니 섬을 벗어나야 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어깨의 통증을 삭히다가 고개를 들었다.
“당장 출항할 수 있게 준비해두라고 했으니 배로 도착하기만 하면 돼.”
“내가 널 업고 뛸까?”
“…….”
그 말에 나는 잠시 키이엘로를 바라보았다. 내가 빤히 바라보자 심각하던 표정을 미묘하게 비틀며 ‘다른 생각 있으면 말을 해줘,’하고 말하던 키이엘로에게 나는 짤막하게 입을 열었다.
“나한테 생각이 있어.”
내게 계획을 들은 키이엘로는 멍한 얼굴을 했다.
“로트, 미쳤어?”
“기발하잖아.”
“…….”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얼굴을 하던 키이엘로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