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52)
바다새와 늑대 (251)화(252/347)
#95화
와, 이렇게까지 성격 좋은 초월자 처음 본다……. 도멤은 그들에게 실례인 생각을 했다. 그야 자신이 듣고 봐온 초월자는 신을 죽이거나 바다의 주인을 죽이거나 코앞에서 친구들을 납치하거나 하는 이상한 작자들뿐이었으니까….
도멤이 딴생각을 하는 도중에도 뱀들은 번갈아 가며 연극을 하듯 말했다.
『아니, 기다려라, 벨라우라그. 그것을 모든 인간에게 주는 것은 과하다.』
『하지만 누구에겐 있고 누구에겐 없다면 형평성에 문제가 생긴다. 나는 그들 모두에게 줄 것이다.』
『우리는 애초에 네가 아끼는 인간 외는 허가하지 않을 셈이었다. 네가 다스리는 이들 중에서도 소수에게만 그것을 넘겨라.』
『다른 초월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그녀는 결국 쿨라와비투의 소수에게만 축복을 하사했고, 그것이 곧 에른이 되었다.』
“신기하네…….”
도멤이 낮게 감탄했으나 키이엘로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희미하게 웃고 있었으나 그다지 기뻐 보이지 않았다.
“근데 축복인데 왜 매번 힘을 쓰면 이렇게… 피죽도 못 얻어먹은 꼴이 되는 거지?”
“네 눈에 지금 내 꼴이 그렇게 보이는구나….”
거참 새로운 사실이네. 키이엘로가 중얼거리는 것에 도멤이 입을 막으며 미안, 하고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나 도멤이 그러거나 말거나 키이엘로는 밭은 숨을 내쉬며 고개를 늘어뜨렸다. 뱀이 말했다.
『원래는 이런 제약이 없었어. 우리도 봉인되어 있었으니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그러나 쿨라와비투와 벨라우라그의 심성을 보았을 때, 에른에게 문제가 생겨서 그런 제약을 만들었겠지.』
“제국 탓이야.”
키이엘로의 말에 도멤과 요르문간드가 일제히 그를 돌아보았다. 키이엘로는 눈을 반쯤 뜨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들이 쿨라와비투를 공격해서 에른은 제국에 반격했어…. 하지만 그게 평화를 사랑하던 위대한 어머니 대지의 심기를 어지른 것이지. 그녀는 에른을 징벌했고, 모든 에른이 자기가 일으킨 불에 잡아먹히고 나서야 실수를 깨달았다…. 화약을 들고 온 제국군은 그녀가 알던 순박한 인간이 아니었기에.”
그래서 벨라우라그는 인간을 버리고 섬을 영원히 유폐하는 것으로 결정했어. 키이엘로가 말을 마치자 가장 먼저 검은 뱀, 간드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벨라우라그가 인간을 버려? 그녀가 순박한 인간만을 알아? 무슨 소리야? 벨라우라그는 그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꽃밭 대가리….』
요르의 꼬리가 간드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 그건 넘어가고. 어쨌든 의외군. 벨라우라그가 고작 인간끼리 치고받고 싸웠다고 에른에게 가혹한 짓을 할 작자가 아닌데 말야.』
“어머니께서 확장 전쟁 때 바다를 건너온 분이셨구나.”
키이엘로는 대강 고개만 끄덕였다. 이십여 년 전에 있었던 제국의 왕성한 식민지 확장 시기를 다들 ‘확장 전쟁’이라고 불렀다. 그때 발생한 난민은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근래 바다로 밀려 나오는 사람들을 전부 합해도 그때의 난민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는 소리도 있었다.
도멤은 키이엘로의 이마를 닦아주며 말했다.
“이야기는 이만하고 어서 자. 너 열이 점점 심해진다.”
“어머니는 쿨라와비투에서 어느 부족 족장의 딸이셨어.”
그 말에 도멤의 손이 멈췄다. 키이엘로는 열이 끓어 어지러운 것 같았다. 자신이 무어라 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가 가물거리는 눈으로 중얼거렸다.
“행복하게 살 수 있던 분인데… 제국 때문에 강제로 이주하셨지. 제국이 당신을 포주에게 팔았는데도 자유를 찾아서 그곳에서 나가려고 하셨어…….”
“키이엘로.”
도멤이 당황한 어투로 그의 목덜미를 짚었다. 맥박도 빠르고 열이 심했다. 그렇게나 불을 많이 썼나? 그때 도멤은 뒤에서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우투그루가 소독약과 붕대를 들고 문가에서 키이엘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키이엘로는 그런 우투그루를 보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그런데 하룻밤 다녀간 작자가 나라는 혹을 그녀에게 붙여뒀지.”
“…….”
“창부의 아들이 될지언정 죽어도 그 해적의 아들은 되지 않아.”
도멤은 서둘러 키이엘로의 입을 막고 우투그루를 돌아보았다. 반쯤 열에 취해 한 말인지 키이엘로는 뜨거운 숨만 몰아쉬며 잠든 상태였다. 도멤은 울고 싶었다. 열이 나면 조용히 자야지 왜 폭탄을 던지고 그래!
그러나 우투그루가 길길이 날뛰며 키이엘로를 걷어찰 거라는 도멤의 예상과는 달리, 그는 말없이 둘을 지나쳐 로트렐리에게로 다가갔다. 우투그루가 가는 대로 시선을 옮기던 도멤은 까무러치게 놀랐다.
로트렐리가 푸른 눈을 부릅뜨고 비스듬히 앉아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던 것이다.
“로, 로트? 언제 일어났어?”
“네가 ‘신기하네’라고 할 때부터.”
“말을 했어야지!”
“빌어 처먹을 뱀 새끼들한테 욕이나 한 바가지 하려고 했는데 말았어.”
로트렐리는 사납게 말했다가 이내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피를 흘린 탓에 로트의 안색이 희게 질려 있었다. 도멤이 그런 로트렐리를 보고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상태는 좀 괜찮아?”
“……미안해. 예민해져서 그랬어. 보니까 군함은 따돌린 모양이네.”
“응.”
대화하는 둘을 뒤로하고 우투그루는 간이침대에 앉아 쇠로 된 쟁반에 붕대와 핀셋, 소독약을 두고 입을 열었다.
“유감이네. 기절해있는 쪽이 더 나았을 텐데.”
“뭣 같은 뱀 새끼한테 잘난 독 더 뽑아내라고 해.”
『의외로 회복이 빠르군. 독을 더 써야 하나? 어느 정도로?』
“관둬, 돌팔이 새끼들…….”
로트렐리는 기분이 더러운 것을 감추지 않고 욕을 마구잡이로 내뱉으며 어깨 쪽 셔츠를 찢어냈다. 우투그루는 속으로 과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터프함이라고 생각하며 가져온 천을 둘둘 말았다. 로트렐리는 일어나서 의자를 끌고 와 앉고는 침대를 턱짓했다.
“키이엘로나 눕혀.”
“너는 어쩌고?”
도멤이 되물으면서도 키이엘로 어깨 아래로 팔을 넣자 로트렐리는 고개만 까딱였다.
“총알 뽑는데 드러누울 필요는 없잖아.”
“이거 물어.”
우투그루가 천을 내밀자 로트렐리는 심란한 얼굴을 하다가도 얌전히 입에 물었다. 암만 그녀라도 실수로 혀를 깨물고 싶진 않았다. 우투그루가 로트렐리의 어깨에서 총알을 빼내는 동안 도멤은 키이엘로를 눕혔다.
도멤은 식은땀을 흘리는 로트렐리와 키이엘로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이게 웬 난리란 말야. 곧 떨그렁, 하고 쇠 쟁반 위로 탄환이 굴러떨어졌다. 우투그루가 상처를 동여매는 동안 로트렐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입에 물었던 천을 내던지고 이를 갈았다.
“그 망할 학자 때문에 이게 뭔 고생이야?”
“그러게.”
“아니지. 애초에 이 뱀 새끼들만 아니었어도…….”
로트렐리의 시선이 칼날처럼 날카로워지자 요르는 서둘러 도멤의 소매 안으로 몸을 감췄다. 반면 간드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물었다.
『배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그것에 대답한 것은 우투그루였다.
“내가 그간 뱃길을 허투루 다닌 게 아니라면, 생각해둔 곳으로 가겠지.”
『어디?』
간드가 다시금 묻자 로트렐리의 어깨를 모두 처치한 우투그루는 짧게 말했다.
“검은 해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