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54)
바다새와 늑대 (253)화(254/347)
#97화
“뭐 어때? 전설을 믿지 않는 이들도 전부 어느 정도는 예측하고 있을 거야. 그리고 지금 이곳은 사용인 수가 적어. 걱정 마.”
어떻게 걱정을 안 해! 엘레나는 얄미운 여자애를 대하듯 샤를리나에게 꿀밤이라도 놔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만약 당장 이 안에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게 그리 중요치 않은 하인이었다면 다음날 그 하인은 쥐도 새도 모르게 실종되었을 것이다.
이런 점이 엘레나를 못 견디게 만들었다. 원치 않게 맏언니의 손에 이끌려 이런 편집적인 장소에 있게 되다니. 상단을 꾸릴 정도로 돈을 얻을 수 있을 거라기에 덥석 수락한 자신이 바보였다. 엘레나가 속이 쓰려 하든 말든 샤를리나는 말을 이었다.
“어쨌든 의아하단 말이지. 단순히 바다새를 원하는 거라면 그 여자에게 마녀라는 이름의 수배를 내리기보다 포섭을 시도하는 게 더 낫잖아?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잡고 난 뒤에 하려고?”
“농담이지, 언니? 바다새를 잡기 위해 그 여자의 목숨이 중요하단 건 알겠어. 주인이 죽으면 바다새가 못 견딘다고들 하잖아. 물론, 전설에서. 여하간 그건 다 되었는데, 왜 굳이 굴욕적으로 생포하려드냔 말이야.”
샤를리나 황녀는 찻주전자를 아무렇게나 들어 찻잔에 차를 붓듯 따라냈다. 휘저어지는 손길을 따라 찻물이 이리저리 튀었으나 엘레나만 신경 쓰이는 기색으로 찻물이 융단에 스며드는 것을 볼 뿐 샤를리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건 바다새의 능력을 탐내는 자의 행동이 아니지. 멍청하거나 오만한 게 아닌 이상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 우리 아버지는 오만하긴 하지만 멍청하진 않으니까. 애시포드 남작의 수배를 눈감아준 이유는 바다새의 능력을 탐내기 때문이 아니라서야.”
“이해할 수 없네요. 그럼 왜 그 애를 수배하고 쫓는 거죠?”
“그걸 아바마마 뒤에서 암약하는 자가 꾸미고 있는 거지.”
샤를리나는 히죽 웃으며 엘레나를 보았다.
“그의 목적이 뭐든 간에, 바다새의 능력보다는 바다새와 그 주인이 필요한 일을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해. 바다새를 갖고 선전을 하고 싶었을까? 아니, 그랬다면 마녀가 제국의 바다새를 훔쳤다는 모양 빠지는 소식은 신문에 실려선 안 되지. 바다새를 다른 이에게 이전시키고 싶었나? 그랬어도 수배보단 포섭으로 마녀의 방심을 이끌어 내는 게 나았을 텐데.”
샤를리나는 이젠 아예 소파에 드러누워서 팔걸이 너머로 흰 발목을 까딱이고 있었다.
“생각해 봐, 포섭을 하려면 일단 마주쳐야 하지. 근데 그러기엔 너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잖아. 쿤트만 행 여객선에서도 돌연 나타나 바다로 사라졌다질 않나, 언니의 고향 섬에서 나간 지 반년이라는데 정반대의 섬에서 발견되지를 않나. 하지만 그래서 포섭을 포기하고 수배를 한다? 제국답지 않지. 수배라니. 그것도 목숨줄만 보장하는 거친 방법으로……. 이건 바다새와 그 주인이 그다지 존중이 필요할 만큼의 위치는 아니란 거야. 인재가 아니라 수단이라는 거지.”
샤를리나는 각설탕을 쥐어 찻잔에 퐁당퐁당 던지며 눈짓했다. 이 각설탕처럼, 보다 큰 목표를 위한 첨가물일 뿐인 거야.
“하지만 전체 그림을 알아보기엔 바다새와 그 주인인 마녀는 너무 생뚱맞은 조각이야. 어쩌면 그림의 중간지점에 있는 퍼즐 조각인 거지. 우리는 가장자리부터 그림을 맞추고 있는데 말야.”
“…….”
엘레나는 내색하지 않았으나 이런 샤를리나의 언행이 오싹했다. 황실은 초월자의 인정을 받았다는 명목으로 황권을 쥐고 있고, 어느 정도는 미신처럼 치부되나 황녀의 측근쯤 되면 모를 수 없었다. 황실의 뒤에는 정말로 초월자가 있다.
그리고 샤를리나는 황녀면서도 그런 초월자의 간섭을 굉장히 불쾌하게 생각했다. 그녀의 최후의 목적은 제국 황실에서의 초월자 축출이다. 겨우 열다섯 살이 갖기엔 살벌하고 까마득한 목표였다. 엘레나는 샤를리나가 아직 어려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예상되는 게 전혀 없나요?”
엘레나의 물음에 소녀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샤를리나가 작게 중얼거렸다.
“막 떠오른 것은 있는데…. 하지만 아냐, 그건 불가능해.”
팔걸이 너머로 고개를 젖히는 샤를리나 황녀의 이마 위로 녹색 머리카락이 새파란 덩굴처럼 흘러내렸다. 그 사이로 자색 눈동자가 응접실의 창 하나를 꾸미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응시했다. 푸른 유리들이 바다를 이루다가 한 사람의 형상이 된다.
파도를 두르고 검을 허리에 찬, 온 바다를 지배했던 이. 바다의 주인을 그린 색유리들의 빛깔이 샤를리나의 뺨에 색색의 그림자를 흩뿌리며 늘어졌다. 황녀의 보랏빛 눈동자가 어둡게 빛났다.
“어쨌거나 그림을 알아보고 싶다면 가장 중앙의 그림을 이루는, 그자의 목적부터 알아내야겠지.”
샤를리나는 히죽 웃으며 몸을 일으키고는 엘레나에게 말했다.
“옷을 준비해줘. 가봐야 할 곳이 있어.”
* * *
황녀가 엘레나를 데리고 간 곳은 황실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이라고 하면 공익을 목적으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에게 열린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실상은 황족과 그들이 데려온 인물들만 열람할 수 있는 자료실에 가까웠다. 어쨌든 엘레나는 스스로가 소시민과 같은 새가슴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이 거대한 자료실에 발을 들인 것이 영 껄끄러웠다.
“이곳엔 왜 오신 거예요?”
엘레나의 물음에 샤를리나는 사다리를 타고 높은 책꽂이까지 올라간 상태로 말했다.
“말했잖아. 그자의 목적을 알아내야 한다고.”
“그… 초월자인 분이? 이런 곳에?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둘 것 같지는? 않거든요?”
엘레나가 대놓고 쏘아붙이지는 못한 채 괴상한 말투로 반박하자 샤를리나 황녀는 눈썹만 꿈틀 움직였다.
“나도 알아. 그렇게 허술하진 않겠지.”
“그럼 왜…….”
“초월자들을 관통하는 자료가 필요해. 그는 실제로 그간 많은 기록을 남겼으니 그것들을 살피다 보면 그의 목적이 뭔지 대강 감이 잡히겠지.”
그래서 이 거대한 공동 같은 도서관을 모조리 뒤지겠다는 뜻인가? 엘레나는 골치가 아픈 것을 느꼈다. 자연히 지금의 신세를 한탄하는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난 돈을 챙겨서 상단을 하나 꾸리고 싶었을 뿐인데 어쩌다 이 말괄량이 황녀님께 걸려서…….
그때 샤를리나 황녀가 보랏빛 눈동자를 빛내며 책 하나를 꺼내 들었다. 위험하게 폴짝이며 바닥으로 내려온 황녀는 호화로운 소파로 춤추듯 걸어가 앉았다. 그런 샤를리나를 따라 엘레나가 옆에 앉아 황녀가 가져온 책을 보았다.
<겨울 바다의 마법>. 크고 두꺼운 책에 붙기엔 지극히 동화 같은 제목이었다. 엘레나는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그것을 보았다. 샤를리나는 그런 엘레나의 기색을 눈치챘음에도 별다른 언질 없이 거침없이 책을 펼쳤다.
제목과 달리 상당히 줄글이 많고 전문적인 내용이었다. 소제목마다 바다의 여러 현상과 괴물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삽화며 내용이며 뭐 하나 부족한 점이 없는 책이었다. 엘레나는 곁눈질로 그것을 살피며 속으로 신기해했다.
“이건 그가 쓴 거야.”
“예?”
엘레나도 황족의 뒤에 있다는 초월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원래는 몰랐으나 샤를리나의 옆에 붙어있게 되며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엘레나는 이전까지만 해도 시골 여자였기 때문에 초월자가 글을 쓰고 책을 엮는다는 생각을 하자 우스운 기분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