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55)
바다새와 늑대 (254)화(255/347)
#98화
“그는 왜 이런 책을 쓴 거죠?”
“그건 모르지. 기록용이든, 심심풀이든. 중요한 건 그가 글을 썼다는 거야.”
“…왜요? 뭔가 암호문이라고 들어있나요?”
엘레나의 신중한 말에 샤를리나는 눈을 둥그렇게 뜨더니 깔깔 웃었다. 열다섯 소녀에게 비웃음 받는 것이 그닥 유쾌하지 않았던 엘레나는 머쓱한 얼굴로 시선을 굴렸다. 이윽고 한참을 웃던 샤를리나가 말했다.
“하지만 비슷해. 글이란 어쩔 수 없이 쓰는 자의 의식 흐름을 반영할 수밖에 없으니까.”
샤를리나는 싱긋 웃으며 엘레나를 보았다.
“그러니 우리는 그 미묘한 물살을 짚어내야 하는 거야.”
“……그걸 읽고요.”
엘레나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물며 초월자가 그런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분명 선구자처럼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샤를리나는 뜻 모를 자신감을 내비치며 말했다.
“그들을 그렇게 대단한 존재 보듯 할 필요는 없어. 결국 이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어딘가에 적어둘 필요가 있는 작자들이란 뜻이니까. 초월자는 평범한 인간이라면 넘을 수 없는 어떤 한계를 초월했을 뿐이지 완전하고 완벽한 존재가 아냐.”
“…….”
엘레나는 굳이 따지려 들어 샤를리나의 노호성을 듣지는 않았으나 불신하는 표정을 감추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런 엘레나의 얼굴을 보지 못한 샤를리나는 소제목을 살펴 가며 책장을 넘겼다.
이내 샤를리나는 ‘바다의 주인’이 크게 적힌 부분을 찾아냈다. 엘레나는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
“겨울 바다의 마법이라고 했으면서 바다의 주인이 있네요?”
“뭐, 그렇지. 아주 연관이 없진 않다고 해.”
“흐음.”
샤를리나는 내용을 읽다가 미미하게 웃었다. 초월자가 쓴 책이란 과연 많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따로 밖에서 파는 책도 아니니 이런 정보가 퍼지진 않았겠지만.
바다의 주인은 태초의 신을 죽인 신살자가 되어 최초의, 그리고 가장 강력한 초월자가 되었다. 바다의 주인은 신의 몸에서 세계의 법칙을 뽑아낸 뒤 나머지 사체는 깊은 바다의 저편에 가라앉혔다. 그 이후의 초월자들은 제각기 뛰어났으나 바다의 주인만큼의 강함을 지니지 못했다. 그는 왜 그렇게나 뛰어났는가? 신을 죽이는 행위가 그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던가?
책을 읽던 샤를리나는 되바라진 어조로 비아냥거렸다.
“재미있는 짓을 벌일 생각인가 봐, ‘네르갈’?”
황실의 뒤에 있는 초월자의 이름을 가감 없이 부르는 샤를리나의 행동에 엘레나는 다시금 위장이 쓰려왔지만 애써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뭔가 발견하셨나요?”
영특한 소녀는 엘레나의 말에 싱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응. 아마도 신에 관한 이야기를.”
샤를리나는 의뭉스러운 말을 하고는 책을 덮었다. 엘레나는 샤를리나가 덮은 책을 흘끔 보았다. 고풍스러운 양장본의 구석에 저자가 쓰여있었다. 네르갈. 그 초월자의 이름이 지나치게 정직하게 쓰여 있는 것에 엘레나는 샤를리나의 말을 복기했다.
어쩌면…… 정말 황녀의 말대로 초월자들이 완벽하고 철두철미한 이들이 아닌지도 몰라. 그런 엘레나에게 샤를리나가 말했다.
“일어나, 다른 자료를 더 찾아봐야겠어.”
그 말에 엘레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떴다.
* * *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버려지다니.”
“말은 똑바로 하자. 네가 방향을 여기로 정했잖아!”
우투그루의 신열한 말에 도멤이 그에게 삿대질하며 외쳤다. 검은 해변에 도착한 우리는 어둑한 하늘 아래 더욱 새까맣게 보이는 모래사장 위에서 한숨만 쉬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중이었다. 키이엘로는 검은 해변에 오는 동안 좀 괜찮아지나 싶다가 다시금 열이 끓어 선실에 누워있었다.
운신이 자유로운 도멤과 우투그루, 나까지 셋만 섬에 내려 우두커니 서 있는 중이었다. 단단히 고정한 어깨에서 오는 통증을 무시하고 나는 멀리 밤하늘 아래로 보이는 첨탑 같은 지붕을 보았다. 도멤이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저 저택에 들어가자. 키이엘로 열이 심하잖아. 전에 그런 주술까지 걸려있던 걸 보면 저 안에 아무것도 없진 않을 거야.”
“그래, 우투그루도 그런 생각을 갖고 여기로 온 건 알겠지만…….”
여기가 암만 꺼려지는 무인도라고 해도 그렇지, 정말로 제국이 들이닥치지 않을까? 시간 여유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우투그루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표정이 영 더러웠다.
“그 새끼가 골골대든 아니든 상관없어. 항해물자 자체가 없으니 뭐든 뒤져야지.”
“그래, 대쪽같은 네 싸가지를 배려심으로 곡해해서 미안하다.”
이 자식은 저 안에서 해열제나 구급품을 발견해도 없는 척 뭉개지 않을까? 물론 그의 편집적이고 철두철미한 성격으로 미뤄봤을 때 그게 당장은 키이엘로를 위해 쓰이더라도 훗날을 대비해 가져오긴 할 거라고 믿지만.
키이엘로 한정으로 저 녀석의 지능이 좀 낮아지는 편이니 그냥 감시하는 게 나을지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간에, 우투그루는 욕을 중얼거리며 허리춤에 칼을 묶었다. 발카가 내 다치지 않은 어깨에 앉아 물었다.
『괜찮겠어? 쉬는 게 낫지 않아?』
“격하게 움직이지만 않으면 돼.”
『저 안엔 가고일이 있잖아!』
“그것들도 주술로 움직이는 게 아닐까? 뭐, 어쨌든 어떻게든 되겠지. 우투그루와 도멤 단둘만 보낼 수도 없으니까.”
“뭐야, 지금 무슨 대화 하는 거야? 내 실력을 의심하는 거야?”
우투그루가 눈썹을 씰룩이며 나를 보았다. 정확히는 네 선택적으로 하락하는 지능을 의심하는 거지.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던 나는 그냥 어깨만 으쓱여 주다가 총을 맞은 곳이 아파 인상을 찌푸렸다.
키이엘로의 옆에 흰 뱀을 두고 온 도멤의 목에는 검은 뱀이 걸려있었는데, 그 뱀은 나를 보더니 말했다.
『그냥 여기 있는 게 나을 텐데. 섬에 깔린 피와 식초 냄새를 보니 여긴 페낭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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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구역이군.』
“그런 것도 알아? 요르는 주술이 있다는 것밖에 몰랐는데.”
도멤이 신기하다는 듯 검은 뱀을 보자 뱀은 코웃음을 쳤다. 서로 알 수 있는 종류가 다른 것뿐이야. 그에 우투그루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페낭가란이 뭔데?”
『모르나? 하긴, 그리 악명 높은 괴물은 아니지. 일전에는 너희가 낮에 왔었나?』
검은 뱀의 물음에는 약간의 스산함이 있었다. 비슷한 불길함을 느꼈는지 우투그루는 약간의 뜸을 들이고 물었다.
“…그랬는데, 왜?”
『운이 좋았네. 낮에 페낭가란은 평범한 여자니까. 아마 식초 통에서 나와 평범한 사람들처럼 행동했겠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