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56)
바다새와 늑대 (255)화(256/347)
#99화
식초 통? 일전에 이 섬의 저택에서 지독한 식초 냄새를 맡았던 것을 떠올린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피로 된 주술도 있었지. 그게 옛날에 누군가가 남긴 잔재가 아니라 현재까지 이 섬에 살고 있는 페낭가란의 짓이었단 말인가.
하긴, 저택에 가까이 갔을 때 콧노래 같은 것도 들었지. 콧노래를 부르고 주술을 만들 정도면 지능이 높은 괴물일 게 분명했다. 둘하스처럼 말이다. 그러면 그때 가고일에만 쫓겨서 차라리 다행인 건지도 모르지…….
그때 도멤이 말했다.
“평범한 여자는 식초 통에 안 들어가 있어. 로트를 봐. 오히려 식초 같은 거 싫어한다고.”
“쟨 페낭가란이 아니잖아.”
『그래! 로트는 그런 괴물이 아냐!』
『그래, 쟨 페낭가란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페낭가란 쪽이 평범한 여자가 아니란 뜻이지. 말이 잘못됐잖아, 간드.”
『애초에 쟤도 딱히 평범한 여자 범주는 아닌 것 같은데.』
“페낭가란보단 평범하지. 일단 로트는 사람이고….”
왜 그런 걸 따지고 있어.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고개를 기울였다.
“밤에 오면 뭐가 달라?”
『밤이면 그것은 몸에서 내장을 빼내 날아다니거든. 사람 피를 빨거나 임신부의 태반을 먹지. 그리고 아침이 되면 식초 통 속에 담가둔 몸에 장기를 도로 쑤셔 넣고 사람 행세를 하는 거야.』
태반이라는 소리에 나는 생리혈이라고 생각했던 피가 묻은 주술 표식을 떠올렸다. 그거… 설마? 태반이든 생리혈이든 어느 쪽이어도 좀 기분이 더럽네.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우투그루가 짧게 평가했다.
“역겹군.”
『특히 여성과 어린아이를 주식으로 삼아.』
그에 도멤이 덧붙였다.
“진짜 역겹다.”
『혹은 잠자는 중인 사람도 노리지.』
나와 도멤은 곧장 키이엘로에 생각이 미쳤다. 도멤이 다급하게 물었다.
“해변까지는 안 오겠지?”
“역시 내가 배를 지키고 있는 게 나을지도.”
내 말에 우투그루는 시니컬하게 말했다.
“만찬처럼 보이겠군.”
『떠들 시간이 있나? 빨리 저택을 털고 가는 게 나을 텐데.』
검은 뱀의 말에 우투그루는 끙 앓는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우리는 부족한 물자를 얻으러 온 거였는데 그러면 완전히 헛짓을 한 건가? 다른 섬을 수소문하며 오래 있을 여유는 없어. 이 근방의 바다를 떠야 해. 제국이 우리를 추적하고 있을 거라고.”
요컨대 우투그루가 검은 해변으로 뱃머리를 돌렸던 이유는 숲에 있던 저택과 뭇사람들에게 꺼려지는 섬이라는 이유 탓이었다. 그것들은 모두 우리에게 필요한 요소들이었다. 저택에서는 물자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꺼려지는 해역은 제국군이 섣불리 오지 않을 테니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스스로 위험으로 걸어갈 생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로브 아래로 비를 맞으며 까만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있던 우투그루가 씹어뱉었다.
“저 새끼 깨울까.”
“넌 아픈 애한테 그러고 싶어?”
우투그루가 시큰둥하게 말하는 것에 나는 혀를 차고 짧게 고민했다. 우투그루 역시 별 기대 없이 한 말이었는지 검은 뱀에게 물었다.
“낮에는 사람 행세를 한다면 먹이가 없는 이런 무인도보다 사람이 많은 곳이 낫지 않나? 왜 하필 이런 섬에 사는 거지?”
『일전에 와봤다면 알 것 아냐? 그것들은 식초 냄새를 풍기고 다녀. 먹이 수급이야 내 알 바야? 밤사이에 가까운 섬까지 날아다니는 모양이지.』
“겁나 부지런한 새끼네……. 괴물이 성실하게 살아서 뭐 하나 몰라.”
내 중얼거림에 도멤이 어색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괴물이 우리보다 열심히 사는 것 같아. 시답잖은 이야기가 도로 시작되려는 것 같자 등불에 불을 붙이던 우투그루가 서둘러 끊어내고 말했다.
“인원을 나누지. 도멤 네가 배를 지키고 로트렐리 네가 나와 같이 간다.”
“그 괴물이 로트를 공격하면 어떻게 하게?”
“일단 이 녀석이 내장 줄줄 흐르는 괴물이 다가온다고 겁먹을 것 같지 않을뿐더러, 부상 입은 녀석끼리 두는 게 더 위험해. 그렇다고 너랑 같이 저택에 가라고 하기엔…….”
우투그루는 말을 잇다가 나와 눈을 맞췄다. 나는 그가 말하고 싶은 바를 금방 눈치챘다. 그래, 도멤이 겁이 많긴 하지. 나는 설렁설렁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혹시 모르니까 넌 키이엘로를 지키고 있어라.”
“난 배를 지키라고 했는데.”
우투그루가 미간을 좁히며 트집을 잡자 나는 눈만 굴렸다. 그래, 그 배 안에 키이엘로가 있잖아. 피차 길게 떠들 생각은 없었던 우리는 빠르게 결정하고 발을 옮겼다. 도멤은 내게 검은 뱀을 건네준 뒤 배 쪽으로 갔고, 나와 우투그루는 로브를 눌러 쓰고 저택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대강 뱀을 팔에 걸치고 걷던 나는 문득 생각나 걸음을 멈추고 발카를 보았다.
“발카, 위험할 수 있으니까 너도 배에 가 있어.”
『뭐? 싫어! 거기서 말 통하는 놈은 뻗어있잖아!』
“뱀이 있으니까 괜찮잖아.”
그러나 발카는 세계의 뱀이 거북한지 영 내켜 하지 않았다. 나는 가타부타 않고 발카를 배 쪽으로 날려 보내고 나를 돌아보며 기다리고 있는 우투그루 쪽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그런 내게 우투그루가 물었다.
“왜 굳이 바다새를 돌려보낸 거야?”
“발카는 괴물과 싸울 능력이 있는 게 아냐.”
“아, 말하자면 걱정된다는 뜻이지?”
우투그루는 시큰둥하게 말하고는 걸음을 마저 옮겼다. 한동안 우리는 수풀을 헤집어 걸어가며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그러다 돌연 그가 미미하게 인상을 찡그리고 말했다.
“둘하스와 싸울 때를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던데.”
아까 했던 발카 이야기의 연속인 것 같았다. 나는 못 들은 척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발을 옮겼다. 우투그루는 내 태도가 불만인 것 같았으나 딱히 지적하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빨리 일을 보고 항해를 시작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여긴 모양이었다.
저택이 가까워지자 이전과 똑같이 식초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비가 오고 있음에도 냄새는 변함이 없었다. 지독한 냄새에 나와 우투그루는 코를 틀어막고 오만상을 찌푸렸다. 저택을 코앞에 두고 멈춰선 그와 나는 잠시 주변을 살폈다.
이전과 같은 주술 결계나 가고일이 있지는 않은지 훑어보는 것이었다. 다행인지 뭔지 일단 가고일로 보이는 석상들은 없었다. 예전에 가고일들이 앉아 있던 석대만이 남아있는 것을 본 우투그루가 긴장을 풀며 말했다.
“좋아, 일단 다수에게 처맞는 상황은 피했군.”
“냄새 진짜 지독하네……. 그냥 내가 배에 있을걸.”
“이미 늦었어.”
“나도 안다, 이놈아.”
내가 구시렁거리며 말하는 것에 ‘알면서 굳이 왜 투덜거리는 거야?’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 우투그루는 콧잔등을 찡그린 채 저택을 돌아보았다. 그때 내 팔에 걸쳐있던 검은 뱀이 말했다.
『주술은 없군. 이전에 너희에게 파훼 되었던 것을 수복하지 못한 모양이야.』
그 말에 나와 우투그루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머니에서 헝겊을 꺼내 코와 입을 감싸 머리 뒤에서 매듭지었다. 식초 냄새를 완전히 막아주진 않았으나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그나마 나았다. 그 위로 다시 로브를 뒤집어쓴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정말 무슨 무장 강도가 된 기분이군. 아니, 하려는 짓도 딱히 다르진 않나? 나는 속으로 꿍얼거리고 우투그루를 따라 저택으로 향했다.
굵지 않은 빗방울이 안개처럼 떨어지는 중이었다. 가고일의 방해가 사라지자 우리는 식초 냄새 탓에 고역스럽긴 해도 손쉽게 저택 안으로 발을 들일 수 있었다. 나는 우투그루와 잠시 눈을 마주쳤다가 이내 힘껏 문을 밀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