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57)
바다새와 늑대 (256)화(257/347)
#100화
거슬리는 소음을 내며 열린 저택으로 들어가자 빗소리가 희미해졌다. 낡은 저택의 안은 어두웠는데, 단순히 어두운 목재를 쓴 건지 아니면 오래된 탓에 목재의 색이 변색된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희미한 등불의 빛에 의지하며 걸음을 옮기던 우투그루가 곰팡이가 슬어있는 마루를 보곤 미간을 좁히며 혀를 찼다.
“식초에 몸 담그고 있을 시간에 집이나 청소할 것이지.”
“…괴물한테 뭘 바라?”
나는 황당하다는 듯 그를 일별하고 마저 걸음을 옮겼다. 저택은 들어가자마자 커다란 홀과 양쪽으로 뻗어있는 계단이 있는 구조였다. 계단의 윗단에 여러 개의 방문이 보이고, 계단 아래로 양쪽으로 여는 커다란 문이 있었다. 그것을 보고 우투그루는 침착하게 말했다.
“마땅한 목재가 없으면 그냥 이 집을 뜯어가면 되겠는걸.”
“곰팡이 때문에 질색할 줄 알았는데.”
“문짝엔 곰팡이가 없잖아. 그리고 계단도 그나마 말끔해 보이는군.”
나는 그의 꿈에 부푼 것 같은 황당한 말을 무시하고 홀의 오른쪽에 있는 짧은 복도를 기웃거렸다. 순순히 내 뒤를 따라온 우투그루가 어두운 내부를 보았다. 부엌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나와 우투그루는 얼른 그 안으로 들어가 챙길만한 것이 있나 살폈다.
페낭가란이라는 괴물이 사람 피를 먹고 산다면 딱히 음식이 필요하진 않겠지만, 낮에는 평범한 사람 시늉을 한다는 것이 식사에도 포함된다면 식량이 있을지도 모른다. 내 소맷부리 아래로 비죽 나온 뱀이 쉿쉿거리며 말했다.
『음식이 있군. 저장식은 아니지만…. 아니, 염장의 냄새가 난다. 더 뒤져보면 분명 저장식도 있을 거야.』
“괴물이 별걸 다 챙겨뒀네.”
『낮에는 평범한 여자 시늉을 하는 것이 본능에 새겨져 있으니 보는 사람이 없어도 뭔가 해 먹곤 했겠지.』
아니, 정말이지 생각할수록 부지런한 괴물이 아닌가. 그렇게 부지런히 모은 음식을 가로채자니 좀 미안할 정도였다. 나는 영 찜찜하다는 얼굴로 열심히 부엌을 뒤졌다. 찬장과 벽장을 열어 음식을 가득 챙긴 우리는 의약품이 있나 마저 부엌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나는 뒤뜰로 향하는 문으로 보이는 것을 슬쩍 열었다가 식겁해서 닫았다. 요란하게 뒷문을 닫는 소리에 우투그루가 의아하게 물었다.
“왜 그래?”
“미친… 사람 몸이 있어.”
“뭐?”
우투그루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나를 밀어내고 살짝 문을 열었다가 나처럼 서둘러 닫았다. 나무 욕조 안에 담긴 몸을 본 모양이었다. 우투그루가 역겹다는 듯 오만상을 쓰며 물러났다.
“망할……. 저게 그 페낭가란의 몸뚱이야?”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
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왔던 식초 냄새와 목 없는 몸뚱이를 상기하자 다시금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나와 우투그루는 서로 짠 것처럼 조용히 부엌을 나와 저택을 돌아다녔다. 넓고 낡은 저택은 계단을 올라가자 소리로 겪어온 세월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바닥이 심하게 삐걱거리는 것을 신경 쓰며 위로 올라간 우리는 안타깝게도 별다른 수확을 얻지는 못했다. 다른 방에서 이불과 작은 의자를 챙겨 옆구리에 끼운 우투그루가 내게 와서 말했다.
“약 같은 것은 안 보이는군.”
“하긴 괴물이 약을 먹을 일은 없겠지.”
내 말에 가만히 있던 검은 뱀이 말했다.
『글쎄, 낮에 쓰는 몸뚱이는 평범한 여자의 몸뚱이랬잖아. 그걸 치료하려면 상비약 정도는 필요할 텐데.』
“…….”
생각보다 아는 게 많다? 검은 뱀에게 쏘아붙이고 싶은 것을 참고 나는 지저분한 방을 더 살펴보았다. 낡고 더러운 방은 걸을 때마다 먼지가 날려 입가를 천으로 가리고 있음에도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부엌도 식량이 있는 것치고는 그다지 위생이 좋지 못했지. 때에 맞지 않게 한갓진 생각을 하던 나는 미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낮에는 평범한 몸뚱이로 지내서 음식도 가져다 두고 약도 있을 거라고 추측하면서 정작 저택 안은 이렇게 지저분하다고?
평범한 시늉을 하고 싶다면 적어도 이런 먼지 구덩이에서 지낼 리가……. 하긴, 이런 커다란 저택이라면 청소하는 것도 일일 것이다. 아마 바닥만 쓸다가 낮이 다 지나가 버리지 않을까?
그때 더러운 유리창 너머로 뒤뜰이 보였다. 우리가 열었던 부엌 뒷문은 다른 벽장이었으니 저 뒤뜰로 향하는 곳이 분명 있을 것이다. 곰팡이와 때로 지저분한 창문 너머로 뒤뜰을 기웃거리는데, 뒤뜰의 구석에 작은 창고 같은 것이 보였다.
헛간인가? 그러나 그런 것치고는 상당히 넓은 건물이었다. 오두막? 물끄러미 그것을 보는 내게 뒤에서 우투그루가 타박했다.
“멍하니 있지 말고 너도 좀 도와.”
“아, 어.”
나는 대강 대꾸하고 시선을 돌리려다 얼어붙었다. 뒤뜰의 오두막에 있는 창문에서 누군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창문 탓에 얼굴조차 모두 보이지 않았으나 어떤 여자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고 있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굳어있던 나는 흠칫 뒤로 물러나 서둘러 우투그루를 돌아보았다. 그는 침대 옆의 서랍장을 열어보며 물건이 있나 뒤지는 중이었다.
“우투그루, 그만하고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뭐?”
“저기서 누가 우릴 보고 있는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