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58)
바다새와 늑대 (257)화(258/347)
#101화
창문을 돌아보며 입을 연 나는 말을 끝마치기 전에 욕설을 내뱉으며 뒤로 굴렀다. 창문에 아까의 여자가 달라붙어 있던 것이다. 기겁하며 물러나는 순간,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유리창이 산산조각 났다. 우투그루가 서둘러 옆구리에 끼고 있던 물건들을 뒤로 던지며 칼을 뽑아 들었다.
로브로 유리 조각들을 막아낸 나 역시 옷자락을 털어내며 검을 뽑았다. 검은 뱀이 서둘러 소매를 타고 올라와 내 목에 몸을 감았다.
『납시셨군, 페낭가란!』
검은 뱀의 말에 페낭가란이 반응하듯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페낭가란의 모습에 솜털이 쭈뼛서는 것을 느꼈다. 페낭가란은 흰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평범한 사람과 달리 옷 아래의 부피감이 일절 없었다.
목에 꼭 맞는 탓인지 흰 천은 괴물의 목에 매달리듯 늘어져 있었다. 그 아래로 비가 채 가리지 못한 푸르스름한 월광에 비치는 실루엣은 누가 봐도 몸뚱이가 아닌 내장이었다. 그야 그렇겠지, 우린 아까 부엌 벽장에서 저것의 몸뚱이를 보지 않았는가!
나는 빠르게 생각했다. 어깨에 총을 맞았던 탓에 평소처럼 검을 잘 쓸 수 없는 상태다. 방은 넓은 편이었지만 가구가 들어차 있어 번거로웠고, 나가자니 문은 하나뿐이고 좁았다. 우투그루가 챙긴 의자와 침구 따위를 날렵하게 들고 나를 수 있다는 기대는 별로 되지 않았다.
결국 어느 정도 시간을 끌며 싸울 필요가 있다는 말이었다. 생각을 마친 내가 검날을 세우는데, 페낭가란의 입이 가늘게 열렸다.
『요르문간드? 세계의 뱀이 이런 곳에 다 있다니.』
페낭가란이 말을 하는 것에 나와 우투그루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내 목에 감긴 검은 뱀이 쉭쉭 소리를 내며 말했다.
『신기할 일인가? 바다의 주인이 죽은 뒤로 수천의 세월이 지났다. 이제 바다도 움직일 때가 되었어.』
『누구 맘대로?』
페낭가란이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지었다. 날카롭게 올라간 입꼬리와 커다랗고 희번덕거리는 눈 때문에 소름이 다 돋을 정도였다.
『너희 초월자와 뱀들의 시답잖은 다툼에 치이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하지만 이왕 얻은 자유…. 다시 뺏길 이유는 없지.』
그 말이 끝나자마자 페낭가란이 나를 향해 쐐액 날아들었다. 검을 세우며 뒤로 물러난 나는 우투그루에게 외쳤다.
“우투그루, 밖으로 나가!”
그 역시 실내에서 싸워봐야 좋을 게 없다는 것을 계산했는지 서둘러 문가로 달려갔다. 그가 나가는 것에 나 역시 몸을 틀어 나가려 했다. 그러자 페낭가란이 샤악, 하는 기이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쾅! 큰 소음과 함께 문이 저절로 닫히자 우투그루가 밖에서 이를 갈며 칼로 문고리를 콱 찔렀다.
“로트렐리!”
『소용없다. 이 저택은 나의 쥐덫이야.』
페낭가란은 히득히득 웃는 얼굴로 말하고는 나를 돌아보았다.
『뱀을 내놔. 그것을 씹어 먹고 힘을 얻으면 너희 인간은 봐주마.』
나는 얼른 대답했다.
“어, 그래. 잠시만 기다려.”
『미친 인간! 저 말을 믿느냐!』
못 믿을 건 또 뭔데! 나는 불편한 쪽으로 검을 쥐고 검은 뱀을 목에서 떼어내려 했다. 그러나 검은 뱀은 안간힘을 쓰며 내 목에 달라붙어 바락바락 외쳤다.
『나를 먹는다고 해서 힘을 얻을 수는 없어! 세계는 더욱 혼돈으로 빠질 뿐이다!』
『그럼 더더욱 좋지.』
페낭가란이 음산하게 키득거리며 말했다.
『망할 메흐……. 우리를 저 깊은 심해에 가두면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겠지. 그러나 이제 그가 죽었다! 심해에서 그 무거운 압력에 짓눌리며 허덕여야 했던 것도 모두 과거의 일이란 말이다!』
페낭가란이 히스테릭하게 외치며 다시금 덤벼들었다. 나는 잽싸게 피하며 소리쳤다.
“망할, 뱀을 주면 안 건들겠다며!”
『네가 안 주고 있지 않느냐?』
“좀 기다려주면 어디 덧나냐?!”
기다릴 생각도 없어 보이는구만! 나는 짜증스럽게 페낭가란을 피하며 외치고는 검은 뱀을 흘끔 보았다. 빨리 안 떨어져? 그렇게 말하듯 노려보았으나 검은 뱀은 빨간 눈을 빛내며 혀만 날름거렸다. 싫다는 의미였다.
이… 쓸모없고 성가신 뱀 새끼! 나는 이를 갈다가 후다닥 페낭가란을 피했다. 우투그루는 밖에서 여전히 문고리를 칼로 내리찍고 있었으나, 낡아빠진 문은 보이는 것과 다르게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눈앞의 괴물이 무언가 한 것이 분명했다.
소용없다고 친절히 알려줬지만 질릴 때까지 실험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우투그루가 그걸 일일이 증명해보고 있을 뿐이었다! 페낭가란은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연처럼 방을 날아다녔다. 섬뜩한 여자처럼 생긴 머리와 징그럽게 늘어뜨린 것들이 아니라면 위협적으로 느껴질 구석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페낭가란은 날아다닐 때마다 날카로운 쇳소리를 냈다.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다고 했으니 적어도 송곳니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공중을 날아다니는 능력이 따로 있는지 속도도 매우 빨랐다. 그때 페낭가란이 외쳤다.
『바다의 주인을 되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건 루루미도 안 된다고 이미 못 박은 지 오래인데! 나는 황당하다는 듯 페낭가란을 보다가 내게 달려드는 괴물에 재빨리 몸을 물렸다. 그래서 뭐야? 지금 저 괴물이 세계의 뱀과 죽은 메흐에게 악감정이 있다는 건가?
하지만 바다의 괴물들은 메흐와 얼추 평화적으로 심해에 있기로 합의한 게 아니었나? 사란은 분명 그렇게 알려줬던 것 같은데? 이 바다에서 오래 산 작자들은 다들 치매가 오셨는지 각자 알려주는 내용도 천차만별이었다.
나는 검은 뱀을 목에서 떼어내려고 붙잡아 당겼지만 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썩을 놈이……. 나는 검은 뱀에게 버럭 외쳤다.
“어떻게 해 봐! 너 때문에 저 괴물이 화난 것 같은데 왜 내가 감당해야 해?”
『이 저택에 발을 들인 이상 페낭가란과 붙을 것은 예상한 것 아니었나?』
물론 그랬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이렇게까지 페낭가란이 화딱지가 나서 덤벼올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고, 끽해야 둘하스 정도의 지능을 생각했으니 저렇게 말을 할 거란 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우투그루가 드디어 문을 부수는 것을 포기했는지 문밖에서 버럭 외쳤다.
“어차피 저 괴물은 뱀을 주든 안 주든 상관없을걸? 그냥 싸워!”
『아니? 나는 너희를 보내 줄 수 있어……. 그러니 뱀을 내놔…!』
『속지 마, 속지 마! 애초에 난 네 목에서 안 떨어질 거니까!』
아주 사방팔방에서 시끄러워 죽겠네! 나는 이를 갈며 한 번 더 뱀을 잡아당겨 봤다가 소용없는 것을 깨닫고 페낭가란을 검으로 찔렀다. 날렵하게 내 검을 피한 페낭가란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이를 드러냈다.
『뱀을 내놔!』
“나도 주고 싶거든? 미친 괴물이……. 평화적으로 기다리면 안 되겠냐고!”
『내가 인간을 믿을 것 같나?』
“아, 그래, 상호 간에 신뢰가 없는데 거래를 하려니 이 꼴이지!”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버럭 외치고 검을 휘둘렀다. 흰 원피스의 끄트머리가 찢어지자 페낭가란은 쇳소리를 내며 신경질적으로 입을 벌렸다. 나는 페낭가란과 닫힌 문을 번갈아 보다가 외쳤다.
“우투그루! 저택을 나가! 난 알아서 빠져나갈 테니까!”
“돌았어? 무슨 수로!”
우투그루가 황당하다는 어투로 버럭 지르는 소리에 나는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괴물을 보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잖아.”
페낭가란이 깨버린 창으로 비바람이 들이쳤다. 사실 구멍이 있어도 사람은 솟아나지 못하는 법이지만 말이다. 나는 페낭가란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래서 뭐야, 날 죽인대도 이 뱀을 먹을 수나 있어?”
『당연하지. 그것들은 지금 아무런 힘도 없어. 덩치만 큰 뱀이지…….』
“망할, 진짜 쓸모없는 놈들이었네.”
『우린 쓸모없지 않아. 나와 요르는 수많은 지식과 흐름을 읽을 수 있고 그것을 너희에게 귀띔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닥쳐.”
그런 점쟁이 발언은 외려 내게서 신뢰를 떨어뜨리는 걸 이 뱀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 순간 페낭가란이 교묘하게 웃는 것 같더니 다시금 날아들었다. 괴물은 문을 등지고 공중에 떠서 킬킬거렸다.
『됐어, 너는 꽤 맛있어 보이는군. 너를 잡아먹고 그 뱀도 끌고 가면 될 일이다.』
“…끌고 간다고? 어디로?”
『푸른 사막, 깊고 어두운 심해로…….』
한 마디로 묻어버리겠다는 의미로군. 나는 홀로 납득했다. 나는 페낭가란 뒤의 문을 흘끔거렸다. 그러나 페낭가란은 자신이 문가에 위치한 것이 이롭다고 여겼는지 비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