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59)
바다새와 늑대 (258)화(259/347)
#102화
『얌전히 있어…. 그러면 고통스럽진 않을 것이다.』
피를 쫙 빨아먹을 생각이면서 저게 뭔 개소리란 말인가? 나는 어림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초면이라 나를 잘 모르나 본데, 난 원래 남이 나한테 원하는 걸 잘 안 내줘.”
『뭐?』
“잘 있어라!”
나는 곧장 뒤돌아 창문으로 뛰어갔다. 벽면을 꽉 채운 창문은 뛰어내리기 딱 좋게 와장창 깨져있었다. 그에 내 목에 감긴 뱀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니지? 인간, 네가 암만 미쳤대도―』
나는 망설임 없이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뱀이 비명을 질렀다.
『미친 인간아! 넌 여기서 죽으면 안 된단 말이다!』
누가 죽는댔냐고! 물론 죽을 만큼 아프긴 할 테지만, 여긴 끽해야 2층이었고 아래는 푹신한 흙과 잔디가 깔린 정원이었다. 나는 조금 우스꽝스럽게 구르긴 했으나 땅에 안전하게 착지했다.
비에 젖은 땅에서 물이 뒤섞인 흙냄새가 풍겨왔다. 진흙이 뺨에 튀고 내리는 빗줄기가 빠르게 어깨와 머리를 적셨다. 데구르르 구른 탓에 다친 어깨가 찢어질 듯 아파 왔다. 내가 이럴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페낭가란이 날카로운 쇳소리를 냈다.
검은 뱀은 어지간히 놀랐는지 헐떡이다가 말했다.
『넌 정말 미친 인간이구나? 요르가 왜 그런 반응이었는지 알겠군.』
“쫑알쫑알 시끄러워 죽겠네. 입 좀 다물어!”
사실 발카가 있었다면 이렇게 꼴사납게 구를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다새가 있다는 걸 알면 페낭가란이 창문을 신경 쓰지 않았을 거라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페낭가란도 공중을 날아다니니 발카가 위험하기만 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재빠르게 진흙이 묻은 로브를 털어내는데, 내 쪽으로 무언가 쏘아졌다. 흠칫 놀라 몸을 피하자 잔디밭을 적신 액체가 고약한 냄새를 내며 땅을 부식시켰다. 고개를 들자 창문으로 날아온 페낭가란이 충혈된 눈을 하고 이를 갈았다.
『도망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예……. 뭐 그러시겠죠……. 근데 설마 저 액체 페낭가란이 뱉어낸 거야? 그런 생각이 스치기 무섭게 괴물이 독을 뱉어냈다. 나는 기겁해서 피하며 외쳤다.
“길에 함부로 침 뱉으면 안 되는 거 몰라?!”
『여긴 내 집이야!』
그랬다. 집도 없고 가진 건 훔친 돈과 배뿐인 우리와 달리 이 부지런한 괴물은 자기 집도 있고 날아다니는 능력도 있었다. 그곳으로 우리는 강도질을 하러 들어온 거고 말이다. 그래, 그러면 뭐 침 좀 뱉으셔도 뭐라고 못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얌전히 페낭가란의 침을 맞아주겠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나는 야트막한 뒤뜰에서 페낭가란이 뱉어내는 독을 피하며 주변을 살폈다.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뒤뜰은 저택의 뒷문을 찾지 않는 이상 나갈 방도가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페낭가란을 죽이자니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페낭가란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데다가, 속도도 빠르고 독을 뱉어내며 내가 가까워지는 것을 견제했다. 이러다 내가 지쳐서 나가떨어지면 페낭가란은 원하던 대로 먹이와 뱀을 얻게 되는 것이다.
불현듯 우투그루에게 생각이 미쳤다. 그 녀석이 저택을 나갔을까? 도멤을 불러오려나? 솔직히 도멤은 페낭가란의 모습을 보자마자 겁에 질릴 게 뻔했다. 누가 봐도 유령이나 귀신 따위에 딱 걸맞은 모습이었으니까 말이다.
그걸 우투그루도 충분히 인지해주면 좋겠는데! 그때 저택의 구석이 쿵쿵 울리는가 싶더니 낡은 벽이 후드득 부서져 내렸다. 그에 악착같이 나를 노리던 페낭가란이 당황한 얼굴로 저택을 돌아보았다.
『무슨….』
그 틈에 나는 페낭가란에게 검을 던졌다. 창살처럼 날아간 검을 흠칫 피한 페낭가란이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면서도 나를 비웃으며 말했다.
『무기를 버리다니! 멍청하긴!』
“미안하지만 난 원래 검을 두 개 쓰던 사람이라.”
내 허리춤엔 검이 또 있었다. 내가 검을 새로 뽑아 들자 페낭가란이 이를 갈았다. 나는 그사이에 부서진 벽을 힐끔 보았다. 아무리 낡았대도 저택의 벽이 쉽게 무너질 수 없었을 텐데…….
그러나 흙먼지가 가라앉고 보인 벽에는 나무문이 보였다. 그것을 보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저택의 뒷문을 막아둔 거였어!
그 순간 뒷문이 쾅 열리며 우투그루가 외쳤다.
“멈춰!”
그의 말에 페낭가란이 마치 주술에 걸린 것처럼 공중에서 빳빳이 굳어졌다. 나는 페낭가란에게 침 뱉는 양아치라고 구시렁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우투그루는 품에 무언가를 끌어안고 칼을 든 상태였다. 그가 붙든 것을 본 나는 황망해졌다.
그가 인질처럼 붙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페낭가란의 몸뚱이였다. 식초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몸에서 풍기는 시큼한 냄새가 내가 있는 곳까지 끼쳐올 정도였다. 쟨 정말 비위도 좋다! 내가 우투그루에게 감탄 아닌 감탄을 하는 동안 페낭가란이 끽끽거리는 소리로 새되게 외쳤다.
『망할…… 인간! 내 몸을 내려놔!』
“누구 좋으라고? 우릴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우투그루가 무시무시한 얼굴로 페낭가란에게 윽박질렀다. 나는 그의 얼굴이 일그러진 이유가 식초 냄새 때문일 거라는 것에 손목도 걸 수 있었다. 페낭가란은 갈피를 못 잡는 것처럼 씩씩거리며 나와―어쩌면 뱀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 우투그루를 번갈아 보았다.
우투그루가 날카롭게 재촉했다.
“어서!”
『약속한다면 내 몸을 도로 얌전히 둘 게냐?』
“아니, 못 믿으니까 적어도 해변까지는 끌고 갈 거다.”
『잔인한 놈! 내 몸이 얼마나 연약하고 가녀린지 알기나 해?』
페낭가란이 새되게 소리치자 우투그루는 몸뚱이에 칼을 바짝 들이밀었다. 그에 페낭가란은 샤악 소리를 내며 움츠러들더니 이를 갈았다. 단단한 이가 부딪는 소리가 찰캉찰캉하고 울렸다.
『오호, 오호…. 저 인간은 참 똑똑해. 페낭가란의 약점이 몸뚱이라는 것을 알아챘잖아.』
검은 뱀이 낄낄 웃으며 낮게 말하는 것에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속삭였다.
“다른 약점이 더 있어?”
『페낭가란의 약점? 많지. 저것은 호두 깨는 망치 따위를 무서워하는 머저리니까……. 가시 돋친 식물도 두려워해.』
호두 망치라니. 우리는 그런 잡스러운 도구를 들고 오지 않았을뿐더러 그것을 페낭가란이 두려워한다면 저택을 암만 뒤져봤자 없을 게 분명했다. 가시 돋친 식물? 별달리 쓸모없는 정보였다. 식물을 들고 훠이훠이 위협하는 게 칼을 들고 위협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결국 우리가 효과적으로 페낭가란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은 우투그루가 붙잡은 몸뚱이였다. 나는 우투그루에게 가기 위해 걸음을 떼었다. 그러자 페낭가란이 예민하게 반응하며 나를 홱 돌아보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