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60)
바다새와 늑대 (259)화(260/347)
#103화
『움직이지 마!』
나는 멈칫했다가 다시금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자 페낭가란이 화난 얼굴로 혀를 길게 빼며 으르렁거렸다.
『움직이지 말랬잖아…!』
덩굴처럼 길게 늘어나는 혀를 보고 나는 그제야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페낭가란은 공중에서 혀를 날름거리며 씩씩 소리를 냈다. 나는 괴물의 눈치를 살피다가 뱀에게 물었다.
“몸뚱이를 공격하면 되는 거 아냐?”
『아니. 페낭가란은 몸뚱이를 아끼긴 하지만 아직 밤이잖아? 몸뚱이를 잃으면 죽기야 하겠지만 당장은 아냐. 밤이 지나기 전에 너희를 모두 빨아먹고 죽을 각오를 하게 되겠지.』
그것을 듣자 나는 우투그루의 판단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그는 정말이지 유능한 부선장이었다. 페낭가란은 자신의 몸뚱이가 비를 맞고 있는 것이 신경 쓰이는 기색으로 연신 씨근덕댔다.
『여기에, 여기에 몸을 둬. 그러면 너희를 해치지 않겠다. 정말이야….』
『속지 마. 페낭가란은 교활한 괴물이다.』
『넌 닥쳐, 요르문간드!』
페낭가란이 왈칵 성질을 내며 혀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위협하려는 목적이었던 듯 혀는 나와 거리가 있는 땅바닥을 후려치고 거둬졌으나 그것이 내리친 잔디가 꺼멓게 변하자 나는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좋아, 뭐 어떻게 된 원리인지는 몰라도 저 괴물은 독을 침 뱉듯 뱉어내고 혀에도 비슷한 성분이 있는 것 같으니까. 되도록이면 그것들을 피할 수 있어야 했다. 흘끔 우투그루를 보자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보던 우투그루가 숨을 가늘게 내쉬며 페낭가란에게 말했다.
“저 녀석이 내 가까이에 오게 둬.”
『내 몸부터 내놔!』
“몸에 흉터 좀 갖고 싶어? 난 말리지 않아.”
우투그루가 낮게 으르렁거리며 칼을 가까이 가져다 대자 페낭가란은 히익 소리를 내며 나를 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 말했다.
“내가 저 녀석보다야 신사적이라고 자부할게.”
“닥쳐.”
우투그루는 허튼소리 좀 그만하라는 듯 나를 째려보았다. 나는 페낭가란의 눈치를 보며 슬쩍 걸음을 옮겼다. 페낭가란은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으나 내 발을 잘라버릴 것처럼 바라보며 내가 우투그루의 곁으로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땅에 떨어져 있는 검을 주워 우투그루의 옆으로 가자 식초 냄새가 무지막지하게 풍겨왔다. 나는 얼굴을 구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그에게 속삭였다.
“넌 이 냄새를 버티고 있던 거야? 여러 의미로 대단하다.”
“시끄러워. 눈치를 보다가 바로 이 뒤뜰을 빠져나갈 거야. 알아듣겠어?”
『뭐라고 쑥덕거리는 거야! 이제 내 몸을 내놔!』
페낭가란이 버럭 외치는 것에 나는 우투그루를 보았다.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려는 찰나에 우투그루가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싫은데?”
『뭐?』
“미안하지만 욕심이 끝도 없는 게 사람 새끼라. 아직 놔주기엔 아쉬운 것 같아서 말이야.”
그에 페낭가란의 얼굴이 파랗게 변했다가 보라색으로 변했다가 하며 울긋불긋해졌다. 누가 봐도 단단히 분노한 얼굴에 나는 작게 을렀다.
“화를 돋우면 어쩌자는 거야?”
“그럼 이 상황에 의리 지키는 사람과 괴물 같은 동화 이야기라도 나올 줄 알았어?”
그건 그렇지만 저렇게까지 화나게 할 필요는 없었을 것 같은데. 나는 무어라 따지고 싶었으나 그런 건 나중에 해도 될 일이었다. 페낭가란은 위협적으로 혀를 날름거리며 새된 목소리로 을렀다.
『내 몸을 어떻게 할 셈이야!』
“딱히 안 정했어.”
『내 몸을…… 내놔!』
색을 현란하게 바꾸던 페낭가란의 얼굴이 허옇게 변하더니 괴물이 우리에게 날아들었다. 그에 우투그루가 욕을 지껄이며 뒤로 물러나자 나는 검을 세우고 날아오는 페낭가란에게 날을 세웠다.
빠르게 휘둘러지는 혓바닥을 검으로 쳐내자 하얗게 빛나던 검날이 마치 독에 닿은 은처럼 까맣게 변색됐다. 페낭가란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도로 공중으로 물러났다. 빗물과 독이 맺힌 검을 털어내고 미간을 좁히자 괴물이 이를 갈았다.
『망할 것들, 너희를 저주할 거야. 너희를 병들게 하고 갈가리 찢어 피를 마실 테다…….』
“로트렐리.”
우투그루가 작게 나를 불렀다. 눈만 굴려 그를 바라보자 우투그루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신호하면 뒷문으로 뛰어.”
나는 따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졌으나 역시 꾹 삼키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페낭가란은 우리의 틈을 재보며 공중을 둥둥 떠다녔다. 저 괴물은 정말로 자신의 몸뚱이가 소중해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그것을 보자 갈리니 섬에서 학자의 손자였던 멜러를 인질로 잡았던 키이엘로가 떠올랐다. 일련의 일을 상기하자 기분이 미묘해졌다. …지능이 있는 것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인질 삼아야 한다는 크나큰 교훈을 얻는군.
나는 냉소적으로 생각하며 우투그루의 신호를 기다렸다. 빗줄기가 점차 굵어지고 있었다. 뒤집어쓴 후드의 깃을 타고 물방울이 떨어졌다. 페낭가란과 우리 사이의 공기가 첨예해진 찰나였다.
“뛰어!”
우투그루가 몸뚱이를 아무렇게나 내던지며 외쳤다. 나는 곧장 뒷문으로 뛰어갔다. 우투그루 역시 뒷문으로 쓰러지듯 들어왔다. 페낭가란이 분노한 듯 카랑카랑한 소리를 내며 고함을 질렀다.
『감히!』
페낭가란이 우리의 뒤를 쫓아 날아오며 침을 뱉었다. 빠르게 고개를 숙이자 머리 위로 독이 날아왔다. 저택의 뒷문은 홀의 계단 아래쪽에 감춰져 있었던 모양이다. 저택의 커다란 문이 코앞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우리의 앞에서 저택의 문이 쾅 닫혔다. 급히 달음박질을 멈춘 나와 우투그루가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망했다. 그런 생각이 서로에게 스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순간 페낭가란이 뒤에서 한껏 소리 높여 웃었다.
『저택은 내 덫이랬지! 멍청한 놈들…….』
그러나 통쾌하다는 어조에는 미약한 분노가 스며있었다. 내 목덜미에서 검은 뱀이 중얼거렸다.
『몸뚱이가 내던져질 때 거꾸러졌나? 저런.』
“뭐? 무슨 소리야.”
우투그루가 빠르게 짓씹듯 물었다. 그러나 대답을 듣기 전에 우리에게 독이 쏘아졌다. 황급히 그와 좌우로 갈라져 피하자 낡고 녹이 슨 샹들리에 아래에서 페낭가란이 분개한 얼굴로 혀를 날름거렸다.
『너희를 죽여버릴 거야. 버르장머리 없는 것들……. 죽여버릴 거라고!』
페낭가란이 격하게 외쳤다. 우리가 몸뚱이를 갖고 협박할 때보다도 더 격노한 기색이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와중에 검은 뱀이 말했다.
『페낭가란은 몸뚱이 안으로 도로 장기를 밀어 넣을 때 목을 통해 넣지. 그런데 그 몸뚱이가 거꾸러져 있으면 장기를 어떻게 넣겠어? 영리해, 아주 영리해. 페낭가란을 훌륭하게 화나게 했잖아.』
검은 뱀의 목소리는 나직했으나 낡은 저택 안에 우렁우렁 울리기엔 충분했다. 그 말을 듣자 나와 맞은편에 있던 우투그루는 황망한 얼굴을 했다. 그럴 생각이 전혀 없던 게 분명했다.
그리고 페낭가란으로 말할 것 같으면, 검은 뱀이 자신의 속을 박박 긁어 약 올리려는 셈이라고 여겼는지 아까보다 더 얼굴의 색이 형형색색 바뀌어댔다. 나는 우투그루를 다시금 힐끔 보았다. 그러나 그는 이 상황을 돌릴 방법이 없다고 여겼는지 닫힌 저택의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페낭가란에게 말했다.
“진정해. 우린 그냥 도망치려던 것뿐이야. 네가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별수가 있겠어? 몸뚱이 때문에 그래? 도로 일으켜줘? 그럼 일단 뒤뜰로 다시 가야겠는데…….”
『닥쳐! 너희의 무얼 믿고!』
그야 그러겠지~! 어떻게 믿겠어! 나는 입을 다물고 검을 세웠다. 페낭가란은 깊은 슬픔에 빠진 여자처럼 흐느끼다가 악마처럼 돌변하며 외쳤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