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64)
바다새와 늑대 (263)화(264/347)
#107화
좋아, 이제 로트를 찾아가면 돼. 사란은 바다를 빠르게 헤엄치며 그 애가 부탁한 일을 완수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눈물의 바다에서 시취에 잠겨가고 있을 동족이 뇌리에 스쳤지만, 그것은 인어의 기분을 극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머지않아 그런 일들은 다 해결될지도 몰라. 아니, 해결될 거야. 사란은 간만에 되찾은 마음의 평온함이 좋았다. 메흐의 죽음 이후로 지속된 우울감이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훨훨 날아가 있던 것이다.
수면 밖으로 고개를 뺀 사란이 싱긋 미소지었다. 당장은 로트가 땅 위에 있는지 기운을 뚜렷하게 추적하는 게 힘들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훨씬 짙어진 기분이다. 인어가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방향을 보다가 도로 물속으로 고개를 넣으려는 찰나였다.
“오랜만이군, 사란.”
머리 위에서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사란은 파드득 놀라며 머리를 들었다. 언제 다가왔는지, 망망대해 위에 흰 치마저고리를 입은 루루미가 웃으며 인어를 오시하고 있었다. 사란은 몸을 긴장시키며 어깨를 움츠렸다. 인어가 수면 아래로 도망치려는 기색이자 루루미가 재빨리 말했다.
“도망칠 생각 마. 소용없는 거 알잖아?”
『…….』
인어의 시선에서 경계와 의심을 읽은 마녀는 느긋하게 허공에 앉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할 말이 있어 온 것뿐이니까.”
그러나 루루미가 말을 꺼내는 것보다 사란이 따지는 것이 더 먼저였다.
『대체 초월자들은 뭘 꾸미고 있는 거야?』
“음?”
『그 애를 두고 뭔가를 꾸미고 있지, 그렇지?』
사란이 따지는 것에 루루미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틀렸어.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 그래, 마음 같아서는 여러 가지 하고 싶은 일이 많지. 하지만 가만히 있잖아.”
『네가 그 애를 주시하고 있던 걸 알아.』
“맞아. 그래서? 내가 그 애에게 해가 되는 일을 했나?”
루루미의 물음에 인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사실을 따지자면 루루미의 말대로 마녀는 로트에게 해를 끼친 적은 없었다. 물론 로트렐리 본인이 듣는다면 ‘항해하는 배 앞으로 폭풍을 만든 건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야?’ 하고 따졌겠지만, 어쨌든 불멸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문제 될 일은 전무했다.
사란은 루루미를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응시하며 물었다.
『그렇다면 왜 아무것도 하지 않지?』
“이런, 언제는 꿍꿍이가 뭐냐고 하더니 이번엔 왜 아무 짓도 안 하냐고 묻네. 내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해?”
『이상하잖아. 메흐가 죽은 뒤로 오랜 시간이 지났어.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아? 너희 초월자들은 분명 뭐든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란의 말에 루루미는 입을 다물고 자색 눈을 가늘게 떴다. 마녀는 심드렁한 기색으로 인어를 보고 있었으나 미묘하게 불쾌한 눈치였다. 루루미가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냐. 오히려 너무 많은 일을 해서 이 상황이 된 거지.”
루루미의 대답에 인어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는 순간, 루루미가 손을 내저으며 늘어져 있던 상체를 일으켰다.
“됐어, 그런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니니까. 네 생각보다 난 바빠. 얼마 전에 에르노리가 쓸데없는 짓을 해서 멀리 숲의 바다까지 다녀왔거든?”
『내게 무슨 볼일인데?』
“너 지금 로트에게 가고 있지? 그 해적들과 동생의 행방을 찾았다고 말이야.”
사란은 루루미가 확신을 담아 묻는 말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루루미는 말을 이었다.
“제국으로 갔다고 해.”
『뭐?』
“네 동생은 검은바다에서 탈출해 제국으로 갔고, 검은 바다도 그 애를 따라 제국으로 갔다고 전하라고.”
『…왜 그렇게 전해야 하는데?』
사란이 의심의 눈초리로 루루미를 쏘아보았다. 처진 눈꼬리가 나름 매섭게 노려보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루루미는 역으로 흐응, 하고 콧소리를 내며 사란을 내려보았다.
“많이 컸네, 사란? 내게 토를 달기도 하고 말야…….”
그에 인어가 상어의 것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명백한 반항과 위협에도 루루미는 꼼짝도 않고 사란에게 물었다.
“내 말대로 해줄 거지?”
그 순간 청보랏빛의 인어는 거대하게 변해 루루미를 덮쳐들었다. 그러나 마녀는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은 채로 사란을 바라보기만 했다. 보이지 않는 손에 붙들린 것처럼 루루미의 코앞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세운 채 굳어있던 인어는 이내 수면으로 처박혔다.
도로 앙상한 인어의 모습으로 돌아온 사란은 흐느끼는 것 같기도 한 소리로 씩씩거리며 루루미를 노려보았다. 루루미는 입꼬리만 올리며 씩 웃었다.
“어딜 감히 주인에게 대들어.”
『넌 내 주인이 아냐!』
“하지만 날 해칠 수도 없지. 인정해.”
루루미가 가벼운 태도로 낄낄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사란은 라일락 빛깔의 눈동자를 치뜨며 이를 갈았다.
『바다의 그 누구도 너 같은 반쪽짜리를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루루미.』
사란의 날 선 말에 루루미는 장난꾸러기처럼 웃던 것을 그만두고 멀리 있는 수평선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상한 일이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인어에게 시선을 돌린 자색 눈동자는 분노보다는 정말로 순전한 궁금증이 담겨있었다.
“내가 ‘반쪽짜리’가 아니었어도 너희는 날 인정하지 않았을걸. 정말 이상한 일이야. 메흐도 그리 상냥한 작자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다들 그만이 바다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여기잖아.”
심지어 나조차도 말이야……. 루루미는 씩씩대는 사란을 보다가 다시금 빙긋 웃었다.
“하지만 사란, 착각하지 마. 나도 너와 비슷한 목표를 갖고 움직이고 있지. 모든 초월자…… 아니, ‘모든’은 아닌가. 여하간 내가 하는 말은 모두 그 애를 위해서야.”
『그걸 어떻게 믿어!』
“쉽게 알려주지. 만약 내가 그 애를 싫어한다면 당장이라도 그 애에게 가서 죽이면 돼. 혹은 그 애에게 가려는 너에게 이것저것 말하는 것보다 널 네 동족이 있는 바다 아래에 처박는 게 낫지.”
루루미의 냉기 어린 말에 사란은 호기롭던 기세가 꺾여 어깨를 움츠렸다.
“굳이 이렇게 움직이는 건, 그 애를 해칠 생각이 아니라는 뜻이야.”
『…….』
사란은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루루미를 살폈다. 바다의 마녀는 가뿐하게 물었다. 그래서, 내 말 들을 거야, 말 거야? 그에 인어는 잠시간 묵묵히 마녀를 응시하다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에 루루미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찰나였다. 무언가 파스슥 바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루루미의 뺨에 작은 실선이 생겼다. 마치 흰 도자기에 금이 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에 사란이 흠칫 물러나자 루루미는 태연하게 손을 내저었다.
“됐어, 이건 신경 쓰지 마.”
넌 그냥 내가 말한 대로 전하기만 하면 돼. 루루미는 웃으며 이르고는 나타났을 때처럼 돌연 사라졌다. 사란은 바다의 마녀가 있던 곳을 한참 동안 응시하다가 몸을 돌려 바다를 헤엄쳤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