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65)
바다새와 늑대 (264)화(265/347)
#108화
우투그루와 도멤은 거의 저택을 뜯어온 수준이었다. 약간 저조한 기분으로 입을 다물고 있던 나는 돌아온 그들을 보고 얼빠진 얼굴을 했다. 챙겨온 물자들을 갑판과 선실에 내려놓은 도멤이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다행히 해열제가 있더라. 키이엘로한테 먹여야겠는데, 지금은 어때? 로트 네가 먹을만한 약도 챙겨왔어.”
“난 됐어. 그리고 키이엘로는 아직 안 일어나던데. 아니, 그것보다 이게 다 뭐야?”
“저택에 지하실까지 있더라! 그리고 의외로 뭔가 많던데? 마장석도 있었어. 괴물이 배를 타진 않을 것 같은데 신기하지 않아? 우리는 이제 앞으로 인파가 많은 곳에 가기 힘들 테니까 최대한 챙기다 보니…….”
도멤의 설명을 들으며 약간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끼는데, 마찬가지로 짐을 내려놓던 우투그루가 나를 보고는 눈썹을 휘어 올렸다.
“너, 손이 멀쩡해졌네? 진짜 바다에 담가보기라도 한 거야?”
그의 말에 도멤 역시 뒤늦게 내 손을 보고 놀란 눈을 했다. 그러게, 약은 그냥 상비약으로 둬도 되겠다……. 그렇게 중얼거리는 도멤이 우투그루와 비슷한 의문을 담고 나를 보았다. 나는 무어라 말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렇게 됐어.”
“총상도?”
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에 도멤은 할 말을 가득 삼키는 얼굴로 나를 지긋이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래, 그럼 키이엘로에게 해열제를 먹일 방법만 좀 고민하면 되겠다.”
그가 부러 화제를 돌리는 것을 안 나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런 배려가 전무한 우투그루는 물자를 정리하며 혀를 찼다.
“그래, 이제 네가 바다를 뒤집는대도 그다지 놀랍지 않을 것 같다.”
도멤은 그런 우투그루를 한 번 힐난하듯 노려보고는 나를 지나쳐 키이엘로에게 다가갔다. 그가 키이엘로를 조심스럽게 깨우는 것을 들으며 나는 도멤의 어깨에 검은 뱀을 걸쳐주었다. 우투그루는 목재를 챙겨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다.
우투그루를 도와 목재와 도구들을 짊어진 나는 그와 함께 선실을 나와 배에서 내렸다. 안전하게 항해하기 위해서는 제국군의 포격으로 상한 부분을 고쳐야 했다. 내가 말없이 자신을 따라 나와 배의 수리를 하고 있자, 우투그루가 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냥 내가 할 테니까 들어가 있어.”
“됐어. 부상도 없는데 뭐 하러.”
내 말에 우투그루는 뭐라고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나와 우투그루는 조용히 배가 고쳤다. 한참을 조용히 망치질만 뚱땅거리고 있는데, 우투그루가 연신 나를 힐끔거리더니 참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뭐야? 상황은 좋아진 거 아냐?”
“뭐가?”
나는 미간을 좁히며 우투그루를 돌아보았다. 그는 답지 않게 내 눈치를 살피는 것처럼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인상을 찡그리고 말했다.
“네 상처가 감쪽같이 나았고, 괴물을 무사히 없애서 물자도 충분해졌지. 그런데 그 표정은 뭔데?”
“내 표정이 왜?”
“오만상을 쓰고 있잖아.”
그의 말에 나는 약간 뜨끔한 기색으로 배의 나뭇결을 째려보다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날카로워져 있긴 했지. 나름 갈무리한다고 생각했는데 고스란히 티가 났던 모양이었다.
나는 잠시 망치질을 하다가 팔을 내리고 그를 돌아보았다. 우투그루는 아예 하던 일을 멈추고 선측에 기대 나를 보고 있었다.
“난 그냥 이 모든 게 달갑지 않아서 그런 거야. 원래라면 난 내 동생과 새로운 삶을 시작해서 완전 지루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을 거라고.”
“……그런데?”
우투그루는 무어라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 얼굴을 했지만 꾹 참고 내게 물었다. 무슨 말을 쏘아붙이고 싶은지는 대강 예상이 갔던 나는 부러 그것을 짚지 않았다. 대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깨를 들썩이는데도 찢어지듯 아프지 않다는 것에 부상이 나았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그런데 지금 이런 상황이지. 온갖 일에 휘말리고 있는 기분이라고. 검은바다만 생각해도 골치 아픈데 수배니 뭐니, 게다가 웬 이상한 뱀들이……. 말하다 보니 정말 어이가 없네.”
나는 부러 능청스럽게 말을 얼버무리고 고개를 돌려 다시 목재에 망치를 가져다 댔다. 그러나 우투그루는 자세를 바꾸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에 뺨이 다 따가울 지경이었다. 결국 나는 다시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왜?”
“넌 아마 네 동생과 다른 섬에 내렸어도 그다지 평탄하지 못했을걸.”
우투그루의 확언에 나는 잠시 얼이 빠졌다. 인상을 찡그린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제국의 눈을 피하기는 좀 어려웠겠지. 하지만 한적한 시골 섬은 있는 법이잖아. 그런 곳을 찾아서 살면 뭔들…….”
“언젠가는 걸렸겠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나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우투그루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식으로 짜증을 부리는 게 평소엔 우투그루의 역할이었다는 생각이 스쳤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우투그루는 느리게 선측에서 몸을 떼더니 조용히 말했다.
“어쨌든 일어났을 일이고 일어난 일이라는 거지. 짜증 부리지 말고 네 할 일이나 생각해. 넌 원래 그랬잖아?”
그 말에 나는 말문을 잃었다. 우투그루는 다시 배를 고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나는 망치를 쥔 손을 보다가 입술을 깨물고 도로 팔을 들었다. 내 기분이 어떻든 지금 당장은 배를… 고쳐야 했다.
검은 모래밭 위로 한참 동안 망치질 소리만 둔탁하게 울렸다. 나와 우투그루는 관성적으로 움직이며 부실한 작은 배를 고쳐갔다. 그러다 우투그루가 불쑥 말했다.
“내가 가진 것은 대부분 내가 온전히 얻어낸 게 아닐 때가 많더라.”
금발의 전직 부선장, 현재 무직이자 무장 강도인 녀석이 웅얼거렸다.
“내게 닥친 불행이 명확히 나만을 노린 의도성이 있는 게 아닐 때도 많더라고.”
“…….”
“그런데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내가 뭘 해야 했던 거야? 우투그루의 검은 눈이 마찬가지로 까만 해변을 응시했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답을 알고 있다. 그도 답을 알고 있다. 우리는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와 부딪치는 타인도 모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다가 충돌하는 것이지. 나는 그 점이 진절머리가 났다. 그런 것을 생각하고야 마는 머리가 짜증이 났다.
어쩌면 내가 이런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게 된 건 모두 발카와 만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온전히 발카의 탓이 아니었다. 내가 그 새벽에 바다로 나갔다. 내가 더 과거부터 바다를 열망했고, 결국 바다에서 발카와 만났고, 거절할 수 있었음에도 발카를 택했다. 상황이 나빠진 탓이었지만 혼인을 결심했고, 랄티아를 찾겠다 결심했고…….
어디부터가 나의 책임이고 어디까지가 타인의 책임일까? 그런 것은 아무도 모른다. 초월자조차 모를 것이다. 어디서 흘러온 물인지 모르게 뒤섞인 파도가 몰려오는 바다에서 나는 그냥 앞으로 나아가기만 할 뿐이다.
이건 항해도 뭣도 아닌, 표류야. 나는 표류하고 있어. 나는 불쑥 자신감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배를 고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지? 나는 그저 표류하고만 있는데…….
나는 그제야 우투그루가 왜 굳이 우리와 동행하고 있는지 알아챘다. 그 역시 길을 잃은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누구보다도 그를 이해했다. 나 역시 랄티아를 되찾으려 하고 있지만 그러기 위해 무얼 해야 하는지는 깜깜하기만 하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우투그루와 나는 배를 고치고 있었다. 아마 나 혼자였다고 해도 나는 이 배를 고쳤겠지. 심지어 당장 그 뒤에 무얼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더라도…….
해변의 너머엔 망망대해가 있었고, 수평선 위의 검푸른 하늘에는 별이 많았다. 나는 불현듯 우스워져서 우투그루에게 말했다.
“오늘 밤하늘이 맑다. 배 고치면서 별이나 구경하자.”
그 말에 우투그루가 망치질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뭐?”
“키이엘로는 앓아누웠지, 뱀들은 헛소리에, 너나 나는 우울하지. 누가 그러는데, 이런 우중충할 때는―”
“별구경이 최고야.”
우리의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멤이었다. 밤하늘을 등에 지고 난간에 팔을 걸친 그가 소년처럼 웃으며 우리를 보았다. 우투그루는 눈썹을 휘어 올리며 해괴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앓아누워서 별 못 보고 있는 놈은 불쌍하게 됐군.”
그 말에 나와 도멤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고쳤어? 한참 웃다 진정한 도멤이 여상스럽게 물어보며 공구를 들고 내려왔다. 키이엘로는? 내 물음에 도멤은 가뿐하게 아까보다 좀 낫다고 말하며 우리를 도와 배 수리를 돕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과 고치는 중인 작은 배를 올려다보며 선체에 손을 얹었다. 당장은 커다랗지도, 딱히 좋은 배도 아니지만 나는 이 배를 타고 바다를 가로질러야 했다. 우리가 헤매고 있다고 해도, 어쨌든 배는 바다 위에 있어야 했다.
표류하고 있다고 해서 가라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