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66)
바다새와 늑대 (265)화(266/347)
#109화
배를 대대적으로 수리하는 것에 무려 나흘이 걸렸다. 물론 우리가 부러 여유로운 시늉을 하기도 했지만, 마땅히 갈 만한 곳을 정하는 것에 의견 차이가 크기도 했다. 그 사이에 제국군이 배를 몰고 들이닥치지 않은 것이 행운이었다. 키이엘로의 상태도 나빴고 말이다.
다행히 키이엘로는 이틀째에 열 기운을 떨쳐 내고 병상에서 일어났다. 이참에 에른의 후유증에 관해 자세히 알아두려는 나와 도멤에게 키이엘로는 곤란한 어투로 자신도 잘 모른다고 대꾸했다.
불을 쓰면 일단 열이 나고, 잠시 호전되었다가, 도로 악화된다. 이때 앞선 열과 호전되는 기간 등등은 그때마다 천차만별로 다른 모양이었다. 불을 다루는 것 자체는 매우 유용했으나 후유증이 성가시기 그지없었다. 나와 도멤은 되도록 불을 쓰지 말라고 키이엘로에게 단단히 을렀다.
키이엘로는 내 총상이 사라진 것에 대해 듣더니 별말 없이 내 어깨를 두드려주기만 했다. 그 행동에 나는 기분이 좀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한편 키이엘로를 대하는 우투그루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다.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으나 마지막에 그가 들었던 키이엘로의 날 선 말을 떠올려보면 악화되지 않는 것이 희한할 정도였다. 물론 키이엘로는 자신이 열에 들떠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발카와 어색해질지도 모른다는 나의 생각과 다르게 바다새는 내 발언에 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언제나 내 곁에 붙어있었고, 도멤의 목덜미에 몸을 감은 뱀들도 내게 더 이상 무언가를 떠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더 불안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발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새의 머릿속을 모르겠다는 생각은 예상보다 훨씬 뼈아팠다. 하지만 내가 나서서 그 화두에 관해 말을 꺼내는 것도 영 내키지 않아 나는 불안감을 상기하지 않으려 애썼다.
일주일은 더 걸렸을지 모를 배 수리―를 가장한 농땡이―가 쫑난 것은 키이엘로의 호전과 함께였다.
“이만큼이나 고쳤다고? 도와주지도 못하고 내내 누워있어서 미안해.”
그렇게 말한 키이엘로가 매우 모범적인 태도로 수리를 도왔기 때문이었다. 셋이 어슬렁어슬렁 걸어가서 설렁설렁 옮길 목재를 그는 혼자 거뜬히 어깨에 짊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키이엘로는 보통의 경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량이었으나 맡기로 결심한 일에서는 매우 성실했다.
정말이지 왜 이렇게 성실하게 구는 거야? 검은바다에서 부선장직을 이렇게 했으면 얼마나 좋아? 어쨌든 덕분에 배는 모두 수리되었지만 동시에 나름 평화로웠던 검은 해변에서의 나날도 끝이 났다.
내가 말했다.
“사란을 불러볼 생각이야.”
그에 도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부를 생각이 들었구나.”
“그래. 여태 괜히 수색에 차질이 있을까 봐 안 불렀지만, 이제는 우리도 목적지가 필요하니까.”
내 말에 우투그루가 순순히 수긍하며 덧붙였다.
“그렇지. 만약 그 인어가 아직도 검은바다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면 어디에서 그들을 못 찾았는지라도 알 수 있을 거야. 소거법으로 있을 만한 바다를 알아내야지.”
“어쨌거나 다시 출항이구나.”
도멤이 생경하다는 듯 웅얼거렸다. 그가 불러온 생경함이 나에게도 닿았다. 나는 바다로 나가는 것이 생각보다 그리 기대되거나 설레지 않는 게 낯설었다. 어렸을 땐 바다에 나갈 생각만으로 굉장히 들떴던 것 같은데. 섬 밖과 푸르고 넓은 바다를 한 번 경험해서 감상이 달라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해변에서 사란을 불렀다. 빠르게 나타난 인어는 나를 보고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사란에게 말을 걸었다.
“전에 부탁한 것 말인데, 검은바다 말이야. 찾았어?”
“…….”
사란은 잠시 망설이는 기색으로 내 눈치를 살폈다. 그에 나는 침묵을 견디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못 찾은 거야?”
“아, 아니. 찾았어. 찾았는데…….”
사란은 무언가 탐탁지 않은 얼굴로 허공을 쏘아보았다가 무어라 꿍얼대고는 대답했다.
“네 동생이 검은바다를 탈출했어.”
“뭐?”
인어의 말에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우투그루 역시 희게 질린 얼굴로 인어를 보았다. 랄티아가 기어코 탈출했다면 남은 이들의 처우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나는 문득 헤더와 베제, 브레딕과 네토르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때 인어가 말을 이었다.
“같이 떠난 이들이 있다고 했어.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던걸. 어떤 안경잡이 해적이…….”
“베제인가?”
“베제 말고 네 이야기를 인어에게 전할 안경잡이 해적은 검은바다에 없어.”
우투그루의 단호한 말에 우리는 쉽게 수긍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랬다. 랄티아가 혼자 탈출한 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같이 갔다면……. 같이 탈출할 만한 사람이 누가 있지? 헤더? 브레딕?
생각나는 이름은 얼마 없었다. 베제가 검은바다에 남은 것을 보면 아무래도 프라세와 동행하거나 두고 갈 수 없어서 남았을 텐데…. 나는 걱정과 안도가 섞인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쨌거나 검은바다를 마주치긴 했다는 소리네. 어디에 있었어?”
“…….”
인어의 입이 다시 조개처럼 딱 다물렸다. 그에 우리는 모두 미심쩍은 얼굴로 사란을 보았다. 그에 사란은 우리의 눈치를 살피며 시선을 피하더니 우물우물 웅얼거렸다.
“제, 제국으로…….”
“뭐?”
우투그루가 대번에 날 선 반응을 보였다. 키이엘로와 도멤 역시 당혹스러운 기색이었다. 검은바다가 제국으로 갔다고? 왜? 나는 억눌렀던 불안감이 더 크게 꿈틀거리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사란에게 물었다.
“랄티아의 행방은 모르지?”
“……그 애도, 제국에…….”
그 말에 나는 아연한 얼굴을 했다. 랄티아가 제국에 갔다고? 사란은 내 눈치를 살피며 수면 아래로 고개를 넣었다 뺐다 하며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침착함을 되찾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 랄티아가 제국에 갔다고? 왜?
내가 잠시 말을 잃고 우두커니 서 있자 나선 것은 도멤이었다.
“정확한 거야? 그 애가 왜 제국에 가겠어?”
“정확할 거야…….”
사란이 다소 어물거리는 어투로 말했으나 나는 그게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우투그루가 말했다.
“진정해. 너무 과하게 반응할 필요 없어. 제국 놈들이 네 동생을 알지는 못할 거 아냐? 네 동생은 너와 달리 특정되기도 힘들어. 바다새가 걔한테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말에 나는 가까스로 산만하던 머리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래, 어쩌면 그 애는 정보를 위해 제국에 갔을지도 몰라. 어쨌거나 사람의 정보가 가장 빠르게 도는 곳은 제국이니까. 랄티아는 똑똑하니까 아무 계획 없이 제국에 갔을 리는 없어.
길게 한숨을 내쉰 나는 이내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하지? 제국에 가야 한다는 건가?”
“그건 그리 쉽게 정할 사안은 아닌 것 같군.”
우투그루의 말에 우리는 모두 수긍했다. 지금껏 겪은 일이 있지 않은가. 그것도 지금껏 제국과 그리 가깝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매번 제국에 쫓겨야 했다. 키이엘로가 말했다.
“다른 것보다 검은바다가 제국으로 향했다는 게 제일 불안한데.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우리가 제국으로 가지 않을 것을 알 거 아냐?”
“어쩌면 우리의 수배 소식이 닿지 않은 걸지도 모르지.”
도멤이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러나 우투그루가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 우리가 수배된 지 이미 꽤 시간이 지났어. 아무리 소식이 느린 바다에 있다고 해도 한 번만이라도 상선과 마주치거나 뭍에 정박했다면 모를 수 없겠지.”
“우리가 이미 붙잡혔다고 생각하나?”
“웃기는 소리 마. 우리가 제국에 잡혔다면 검은바다가 와서 뭘 할 수 있는데? 아버지가 제국과 전면전을 하려 들겠어?”
결국 왜 갔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잠시 묵묵히 생각하던 키이엘로가 내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어떻게 하고 싶어? 제국으로 갈까? 아님 일단 다른 섬으로 가서 기회를 엿보는 게 나을까? 그것도 아니면 여기서 체류할까?”
그의 물음은 결국 내가 당장 마주해야 하는 선택지를 늘어놓고 있었다. 키이엘로는 내가 뭘 선택해도 따라가겠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