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7)
바다새와 늑대 (26)화(27/347)
#26화
그 말을 듣고 키이엘로는 내가 오로라를 잘 모른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키이엘로는 말을 할까 하다가 발카가 설명하려는 것을 알고 굳이 입을 열지는 않았다.
『오로라는 반짝반짝 예쁘니까 그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이들을 끌어당겨. 예를 들면 어린아이의 혼 같은 것 말이야.』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혼? 키이엘로가 도멤과 요한에게 보이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조금 씁쓸한 얼굴이었다. 발카가 마저 말을 이었다.
『바다에서 죽은 아이들은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게 돼.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바다는 넓으니까. 그 아이들은 결국 시간이 흘러 바다의 성질을 띠게 돼서 바다의 괴물과 같은 존재가 되는 거야.』
충격적이라면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바다의 괴물은 원래부터 바다에서 나는 존재가 아니었나? 바다에서 길을 잃어 바다의 괴물이 된다는 이야기는 어딘가 섬뜩했다.
『혼은 본래 형태가 없지. 그래서 보이지도 않고, 평소에는 이리저리 흩어져 있어서 크게 위협도 되지 않아. 하지만 오로라가 나타나는 날에는 이야기가 달라지지. 오로라를 보러 몰려든 아이들의 혼이 뱃사람을 상대로 장난을 치거든.』
장난이라고 말했지만, 딱히 장난으로 봐줄 귀여운 수준은 아닌 것 같았다.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발카는 꽤 살벌하게 말을 맺었다.
『아이들은 죄악이 무엇인지 몰라. 그렇기에 더 서슴없지.』
묘한 기분이었다. 그야 그렇지. 아이들은 죄악이 무엇인지 모른다. 당연하게 알고 있는 그 사실이 어쩐지 허점을 찔린 것처럼 새삼스러웠다. 키이엘로는 내가 어느 정도 정보를 알게 되자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말했다. 오로라는 꽤 골치 아프잖아.
“그 사이에 있는 ‘괴이’는 보이지 않으니까 한 번 마주치면 피해가 클 때가 있어.”
“이런 상황에서도 유리 바다를 지나쳐 숲의 바다로 가야 할 정도로 지금 상황이 어려운 거겠지.”
내 말에 키이엘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멤도 어느새 우리의 이야기에 끼어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바다 괴물을 마주치는 때가 잦아? 그 말에 셋은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순순히 납득했다. 그건 그렇지. 괴물을 쉽게 마주친다면 이 배는 이미 난파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나는 한숨을 쉬고는 생각했다. 이거나 저거나 쉽지가 않았다. 그때 도멤이 내게 물었다.
“바다 괴물이나 육지의 괴물을 잘 알아?”
“일단, 책에 있는 것들은.”
오로라에 대한 건 처음 알았지만. 물론 책을 읽는 건 주로 랄티아였다. 나는 그 옆에서 조금 엿보거나 랄티아에게 주워들은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런 책에 적힌 것들은 대체로 정확하지도 않았고, 적나라하게 말해 꿈동산 이야기 모음집에 가까웠다. 순 거짓부렁이란 뜻이었다.
막상 바다로 나오자 어쩌면 내가 랄티아에게 들은 것보다 괴물이 더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우홉피아주의 정보를 보장해 주는 것도 이젠 사라져버렸고. 내가 너무 안일했던 걸까. 애초에 홀로 랄티아를 찾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나?
하지만 이제는 이 배에 타서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만약 초월자를 만나도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하거나 초월자의 변덕에 죽게 된다면……. 숲의 바다에 도착하기도 전에 오로라의 괴이에 당하게 된다면…….
무엇 하나 뚜렷하게 보장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캄캄한 암흑에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우홉피아주와 엮이기 전에는 그래도 이런 막막한 기분은 없었던 것 같은데 왜 이리 곧 닥칠 미지가 두려운 것인지 모르겠다.
원래의 나는 어땠더라. 섬에서 뱃사람들에게 눈치를 받고 답답한 일만 겪어도 뚜렷한 목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얼마 지나지도 않은 그때가 너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적어도 내게 드리운 그늘을 벗어날 힘은 있었던 것 같은데……. 갑작스레 찾아온 무력감이 당황스러웠다.
그때, 갑판에서 종을 울리는 소리와 출항한다는 외침이 들려왔다. 요한이 탁자를 두어 번 치고 우리에게 이제 그만 해먹으로 가라고 말했다. 도멤과 키이엘로, 나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나란히 해먹으로 돌아왔다. 도멤이 덜 정리한 자신의 짐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피곤함에 해먹에 드러누웠다.
그때 도멤이 돌연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책 같은 건 일반적으로 없지 않아? 귀하잖아.”
나는 금방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눈치챘다. 나는 도멤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우리 집에는 있었어.”
“별일이네. 꽤 잘 사는 집 자식이었어, 로트?”
우홉피아주는 귀족도 좀 우습다, 하면 가리지 않잖아. 나는 도멤의 말에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랬을 리가……. 내 가족들은 평범한 어부 가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꽤 있었던 이유는……. 나는 생각하다가 간단하게 말했다.
“내 어머니가 귀족 집안 따님이었거든.”
뜻밖이었는지 키이엘로와 도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도멤이 얼떨떨한 듯 고개를 저었다. 어째 너랑 있으면 눈을 휘둥그레 뜰 일이 많은 것 같아. 나는 가볍게 대꾸했다. 좋은 일이지. 인생을 즐겁게 해주잖아.
도멤은 한 마디도 안 진다며 밉지 않게 툴툴거렸다. 나는 이참에 좀 더 얘기해주기로 했다. 너무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면 분명 의심을 살 수도 있었다. 사실 나는 입을 열면서도 정말 의심을 살 것을 걱정한 건지 이 둘에게 떠들 마음이 생긴 건지 분간하지 못했다.
“내 검술이 기사의 것 같다고 했잖아. 그거 어머니한테 배운 거야.”
“대단하다. 어머니가 기사셨어?”
키이엘로의 순진한 물음에는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엄마는 여자라는 이유로 기사가 되지 못했고, 반항심에 가문을 나와 어부와 결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의 가문도 곧 몰락했다고 들었다. 귀족들의 정치적 이유가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이미 끝난 연에 관심은 없었다.
나는 그냥 어깨를 으쓱이고 그렇진 않았다고 말했다. 그때 도멤이 갑자기 무대 배우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날 향해 절을 했다.
“오오, 고귀한 로트 님!”
“뭐, 뭐야.”
“푸른 피 로트 님!”
“우리가 귀한 분을 몰라뵙고!”
키이엘로까지 끼어 맞장구를 치자 도멤은 과한 몸짓으로 귀족들의 예를 흉내 냈다. 엉성하기 짝이 없었지만 귀족에게 하인이 예를 올리는 모습이라는 것은 알아볼 정도였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졌지만 이내 태연한 얼굴로 장난을 받아쳤다.
“이제야 날 알아본 거로군? 아랫것 교육이 이렇게 형편없다니…….”
“아이고, 귀한 나리셨네!”
도멤이 낄낄거리며 일어나 굽실대는 상인 흉내를 냈다. 결국 그 모습에 웃음이 터진 키이엘로가 관둔다며 해먹으로 쓰러지듯 누웠고, 나는 도멤에게 그런 건 어디서 배운 거냐고 낄낄댔다.
한참을 서로 웃어대며 시간을 보내다 지쳐 해먹에 누운 우리는 배의 삐걱이는 소음을 들으며 짤막한 대화를 했다. 오로라를 안 만나면 좋겠다. 도멤이 한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미약하게 끄덕이다가 대꾸했다. 숲의 주인이 성격이 좋으면 좋겠어.
내 말에 키이엘로가 한숨을 푹 쉬었다. 뭐 하나 불안하지 않은 게 없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뜻밖에도, 위로를 받은 기분이 되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만 불안한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일순 들었던 걸지도 모른다. 지금 상황은 이들도 처음 겪는 것일 터였다. 숲의 주인에게 가는 것도, 자신들의 정보를 갑자기 통제하기 시작한 우홉피아주도…….
문득 나는 내가 랄티아를 잃었을 때, 이들처럼 복수심에 사로잡혀 평생을 우홉피아주를 쫓게 될까 상상했다. 만약 그렇다면 그 여정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하지만 내가 지금 만약을 가정한다고 해서 그대로 행동할지는 또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새삼 나의 삶이 우홉피아주로 인해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주 잔잔한 깨달음이었다. 때론 모든 것을 떠나 홀로 살고 싶었던 때도 있었는데. 분명 이전에는 가족이 없어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막상 지금에 이르러, 나는 하나 남은 가족인 랄티아를 되찾는 일에 매달리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생각과 현실은 차이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이 순간에도 무엇 하나 단언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예전엔 분명히 하고 싶은 게 더 많았던 것 같았지만 지금의 나는 오로지 분노와 우울뿐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상실이란 무서웠다. 나는 이미 몇 번 겪어봤으면서도 아직까지도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잠시의 침묵 사이로, 도멤이 잠이 오는 듯 느리게 꿍얼거렸다. 어떻게든 되겠지……. 항상 그래왔듯이…….
나는 조용히 동의했다. 맞아. 어떻게든 될 거야.
내 말을 끝으로 우리 셋의 해먹에는 새근거리는 숨소리만 울렸다. 나는 그 순간 우리 셋 모두가 위로를 받았음을 깨달았다.
그래, 누구나 불안이 찾아올 때가 있지.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컴컴한 암흑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런 암흑 속에서 살고 있다. 시야 안에 닿는 것들을 먼저 해결하면서. 그렇게 하다 보면, 분명 어딘가로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눈앞이 깜깜한 와중에도 위축되지는 않았다.
편안한 암전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