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71)
바다새와 늑대 (270)화(271/347)
#114화
“주라만이라니? 주라만이 나왔다고?”
에퀘야가 사납게 되묻자 전언을 가져온 단원이 어깨를 움츠렸다. 에퀘야는 이마를 짚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그에 결집한 단원들 역시 술렁이며 서로 소곤댔다. 네토르와 브레딕은 별로 그에 휩쓸리는 얼굴이 아니었으나 헤더는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술렁이는 단원들을 본 그녀가 브레딕에게 물었다.
“뭐가 문제인 건가? 주라만이 누구길래 그러지?”
“문제야 랄티아가 이미 예견했던 만큼 뭔가 있겠지…. 나한테 물어도 소용없어.”
“그건 그렇지만 지금 에퀘야 씨에게 가서 물어볼 수는 없잖아.”
“그렇지만 우리가 왈가왈부해서 좋을 것도 없을 것 같고 말이지.”
브레딕은 그렇게 말하며 어깨만 으쓱였다. 헤더는 영 탐탁잖은 눈으로 그를 보았으나 네토르나 브레딕이 원래부터 그다지 혁명단의 일에 관심이 없었단 걸 상기하고 시선을 돌렸다. 그에 클레인스가 말했다.
“아마 지금 상황에 나오면 안 되는 이름인 모양인데…. 뭐가 문제인지는 이따가 설명해주겠죠.”
그 말에 헤더는 제 편을 찾은 것처럼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 달리 대기가 길어지는 내내 에퀘야는 다른 단원들과 심각한 얼굴로 상의하고 있었다. 다른 일개 단원들에게는 물론 자신들에게 상황을 설명하지 않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중요한 일인가 싶었다.
랄티아가 여기에 있었다면 어쩌면 우리에게 먼저 말을 전했을지도 모르지만. 헤더는 그렇게 생각했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랄티아와 서먹한 사이가 된 것이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 자기보다 열 살 가까이 어린 애가 자신을 업신여기는 것은, 그래, 솔직히 기분 나쁘지만. 하지만 어떤 것은 납득되기도 한다.
당장 에퀘야부터 헤더 자신보다 랄티아를 더욱 흡족하게 여기는 거 같지 않은가. 랄티아는 혁명단에 그다지 좋은 태도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헤더는 시무룩한 기색으로 땅만 보다가 이내 훌훌 털어내듯 고개를 내젓고 머리를 높이 들었다. 등에 검과 함께 메고 있는 방패의 무게가 묵직했다. 누카르아에서 어쩌면 이 방패를 처음으로 쓰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 단원과 대화하던 에퀘야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일행에게 다가오는 거라고 생각한 헤더가 그녀를 보았으나, 에퀘야는 중간에 멈춰 서서 나무 상자 위로 올라갔다. 전체에게 공지하려는 모양이었다. 남몰래 괜히 머쓱해진 헤더는 시선을 굴리다가 정신을 차리고 에퀘야의 말을 경청했다.
“누카르아의 제국을 치는 일은 보류다.”
뜻밖의 말에 일행들은 물론이고 혁명 단원들도 술렁였다. 에퀘야가 말을 이었다.
“나와 동행할 소수만 나가서 누카르아의 반군을 만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이에 질문 있나?”
그러자 한 단원이 손을 들고 물었다.
“왜 굳이 이렇게 품이 드는 방식으로 움직이신 겁니까?”
“만일을 위해 몇은 여기 대기해야 한다. 우리가 정말로 제국을 치는 것을 선택할 때를 대비해서든, 만일의 일을 대비해서든 말이다.”
에퀘야가 몇몇 단원들의 질문에 대답해주는 동안 헤더는 손을 들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그것을 알아챈 것처럼 네토르가 말했다.
“관두는 게 좋지 않아? 우리가 질문한다고 해서 정보를 함부로 주겠어?”
“…….”
헤더는 그 말에 머뭇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브레딕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왜 그래.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넌 또 너무 물렁하게 대하고 말이지. 헤더, 너 괜히 깊숙하게 연관될 생각 하지 마. 아니면 정말로 혁명 단원으로 입적할 심산이야?”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것도 아닌데 왜 굳이 나서려는 거야. 정도를 지켜.”
네토르의 말에 기분이 상한 헤더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대화를 듣던 클레인스는 고개만 기우뚱 기울였다.
“헤더 누나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죠. 네토르 형이나 브레딕 형의 말은 그저 조언에 불과하니 원하는 대로 선택해서 실행하는 건 누나의 몫이에요.”
“…이젠 클레인스 너까지 날 가르치려 드는구나…….”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해요.”
소년이 주홍색 머리카락을 긁적이며 말하자 헤더는 고개만 저었다. 그녀가 이도 저도 아닌 채로 망설이던 그때 누군가 에퀘야에게 질문했다.
“어째서 주라만이 나온 겁니까?”
그에 헤더와 일행의 고개가 들렸다. 브레딕이 속삭였다.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확실히 나와서는 안 되는 이름이었던 모양인데.”
“알 바인가….”
네토르의 시니컬한 반응을 뒤로하고 헤더와 클레인스는 에퀘야의 대답에 집중했다. 에퀘야는 침착한 얼굴로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걸 알기 위해 가는 거지. 질문은 끝이다. 내가 호명하는 이들은 앞으로 나와 준비한다!”
그러더니 에퀘야는 몇몇 단원의 이름을 불렀다. 그 안에 자신들은 없을 것이 분명하다고 여긴 브레딕은 뒷덜미만 긁적였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에퀘야가 익숙한 이름을 호명했다.
“헤더!”
“엥?!”
헤더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가 다른 단원들이 자신을 보고 있자 서둘러 에퀘야의 근처로 향했다. 그것을 보며 네토르가 혀를 찼다.
“쟤는 불린 게 좋은가? 망설임 없이 가네.”
“헤더 마음이지….”
브레딕은 별생각 없는 듯 그러려니 넘기는 기색이었다. 클레인스 역시 헤더의 발소리를 쫓아 듣다가 어깨만 으쓱였다. 클레인스는 오히려 헤더의 행보를 지지하는 편이었으니 말이다. 소년은 자신이 하몬만 아니었다면 아예 혁명단에 발을 들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편 에퀘야는 단원을 꾸린 뒤 망설임 없이 그들을 이끌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헤더는 잠시 멀리에 남겨진 일행을 흘끔 보았다. 자신만 이렇게 와도 되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헤더는 에퀘야도 일행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거니 시선을 돌렸다. 에퀘야를 따라 다른 방으로 들어온 단원들 사이에서 어색하게 선 헤더는 에퀘야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주라만을 만나는 것은 다소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지켜야 할 비밀을 알게 될 수도 있다. 각오는 되어있나?”
그 말에 헤더는 지레 놀란 마음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단원들은 각기 모두 각오한 것 같았으나 그들 중에서도 몇몇이 헤더를 힐끔힐끔 곁눈질했다. 이상한 일도 아니다. 헤더 본인도 당혹스러운 참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헤더는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에퀘야가 턱짓하자 헤더가 눈을 굴리며 물었다.
“그, 전… 정식 혁명단도 아닌데 그런 자리에 껴도 되는 건가요?”
“안 될 게 뭔가, 랄티아 그 똑똑이도 여러 번 꼈는데.”
이거 보안 괜찮은 거 맞나요?! 헤더는 그렇게 되묻고 싶은 걸 꾹 참았다. 그러나 에퀘야 역시 다른 단원들을 설득할 필요를 느꼈는지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런 것 치고 그녀가 말한 내용은 간결하다 못해 황당했다.
“무르하가 선정했다.”
하지만 황당만이 가중된 헤더와 달리 단원들은 순순히 납득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무슨? 헤더는 일행들과 나눴던 무르하의 눈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랄티아는 무르하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긴 한 것 같다고 했었지.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마치 점쟁이의 말에 국가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광경을 마주한 기분이 된 헤더는 영 불편한 얼굴을 했다.
그러자 에퀘야가 탁자 위로 지도를 펼치다 말고 피식 웃었다.
“혁명단이 정말로 어찌 되든 좋은 사람이라면 이런 결정을 두고 그런 얼굴을 하진 않았겠지.”
“그렇다고 해도…….”
그렇다고 정말로 이런 식으로 자신을 데려가는 게 괜찮다고? 무르하의 조언 하나만으로? 헤더는 할 말이 많았지만 이내 수긍하고 에퀘야를 따랐다. 에퀘야 일행은 무르하의 주술로 감춰진 집결지를 나와 누카르아를 가로질렀다.
울창해진 나무들과 쨍한 햇볕이 완연한 여름을 알리며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럭저럭 관광을 온 외국인처럼 보였는지 일행에게는 몇몇 잡상인이 붙을 뿐 시선이 모이지는 않았다. 일행들이 무기를 들고 있음에도 그랬다. 길을 걸어다니며 골목을 힐끔 본 헤더는 생각보다 더 북적이고 활발한 것을 보며 에퀘야에게 속삭였다.
“제국과의 항전을 준비한다는 것치고는 너무 긴장감이 없는 모습인데요.”
“그래, 그것 때문에 최초의 의심을 했지.”
에퀘야는 순순히 대답해주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키가 작은 편인 헤더는 그녀의 보폭에 맞추기 위해 발을 크게 내디뎌야 했다. 에퀘야가 말을 이었다.
“물론 이런 분위기에도 전쟁은 갑작스레 일어나는 법이다. 저기 있는 주황색 시계탑이 갑자기 폭발하며 아수라장이 되는 거지.”
그 말에 헤더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주변엔 주황색 시계탑이 없었다. 어쨌든 주변의 무슨 건물이 갑자기 폭발할 수도 있다는 건가? 눈을 굴리며 헤더가 말했다.
“그만한 화약을 제국 몰래 공수할 수 있을까요?”
“적은 양이나마 어렵게 제작하거나 제국 쪽의 첩자를 얻으면 못 할 것도 없어. 혹은 이미 제국의 화약고를 강탈하기도 하지.”
그 말에 헤더는 약간 아득하다는 얼굴을 했다. 제국의 화약고를 강탈한다니……. 헤더는 주변을 조금 편집적으로 살피고는 물었다.
“그런데 작전을 바꾼 걸 보면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이군요?”
“정확히 말하자면 제국을 노린 방향으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누카르아의 반군 측 수장으로 주라만이 나온 시점에서 말이야.”
그놈의 주라만… 그게 대체 누구길래 그런단 말인가? 헤더는 잠시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서 물었다.
“그 주라만이라는 사람이 누군데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