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75)
바다새와 늑대 (274)화(275/347)
#118화
브레딕은 미간을 좁히다가 클레인스가 돌부리에 걸려 휘청이자 그를 잡아주었다. 클레인스가 평범한 사람보다 더 민첩하게 움직인다곤 하지만 당연하게도 돌부리는 못 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 그에게 네토르가 혀를 찼다.
“잘 좀 살피고 다녀.”
“…….”
네토르의 말에 클레인스와 브레딕은 할 말을 잃은 얼굴로 그를 보았다. 브레딕이 클레인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기운 내, 원래 저런 놈이잖아.”
“네에…….”
일행은 너무 서두르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걸음을 옮겼다. 괜히 소란스러운 시늉을 하며 다녔다간 수상한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무르하의 주술도 없이 골목으로 들어간 단원들은 약간 헤맨 끝에야 에퀘야와 일행이 향한 장소를 찾아냈다.
사람들이 유난을 떨었던 것처럼 그곳에서는 한바탕 난장판이 펼쳐져 있었다. 어느 정도 소강 상태를 거친 듯 혁명단과 누카르아의 반군은 서로 약간 물러나 대치하는 중이었다. 일행은 곧장 단원들과 합류하는 동시에 반군을 경계했다.
브레딕이 말했다.
“이 정도로 난리가 났다면 제국 쪽 근위병도 오겠는데?”
“서둘러 도망가야죠.”
클레인스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기울였다.
“헤더 누나는요?”
“뭐? …그러게, 안 보이네. 어딜 간 거지?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그때 브레딕은 단원 사이에 주저앉아있는 무르하를 보고 놀라 그에게 다가갔다. 단원들은 반군을 경계하며 그를 엄중히 보호하고 있었다. 브레딕의 뒤를 따라간 클레인스 역시 당황한 눈치였다.
“어디 다쳤나요? 숨소리가 아픈 사람처럼 나는데요.”
“맙소사, 눈이 왜 이래요? 헤더는요?”
브레딕의 물음에 무르하가 답했다.
“에퀘야를 찾으러 실내로 들어갔습니다. 우선, 우선 이들을 도와 반군들에 대항해주십시오….”
무르하의 말에 브레딕은 당황했다. 헤더만 혼자 갔다고?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혼자 간단 말인가? 그는 다급하게 물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인데요? 헤더가 혼자 갔어요? 우린 당신들 사정보다 걔가 더 중요해요!”
“괜찮을 거예요, 그 애는 괜찮을 겁니다…….”
그때 네토르가 얼굴을 굳히고 무르하에게 바짝 다가갔다. 브레딕은 그가 화가 난 줄 알고 반사적으로 어깨를 잡았으나 네토르의 태도는 달랐다. 그는 무르하의 눈을 살피다가 당혹스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대체 누굴 만난 겁니까? 이건….”
“주라만, 그자의 소지품 중 저희가 그간 알지 못한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미리 알아채지 못한 게 패착이었어요.”
“앞이 안 보이고 주술을 사용하면 고통스럽고?”
네토르의 말에 무르하는 고개만 끄덕였다. 클레인스가 의아하다는 듯 네토르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상당히 잘 알고 있네요.”
“알다마다. 난 이걸 본 적 있어. 미리 설치한 주술에는 영향이 가지 않겠지만 새롭게 주술을 쓰는 건 어려울 거다.”
네토르의 목소리가 보기 드물게 떨렸다. 그가 이렇게 동요하는 것이 낯선 브레딕은 무르하와 네토르만 번갈아 보았다. 무르하 역시 생각 외의 정보를 듣고 놀란 기색이었다.
“이게 무슨 힘인지 아십니까?”
“옛날에 봤던 거라서 완전히 정확하진 않을지도 몰라요.”
네토르는 잠시 고민하는 듯 입을 다물고 있다가 물었다.
“그 주라만이라는 사람이 보라색 장신구를 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요, 나와 에퀘야는 그것에 당했습니다.”
그 말에 네토르의 얼굴이 기묘하게 변했다. 충격과 고통, 그리고 희망과 감격이 뒤섞인 얼굴이었다. 그러나 앞을 보지 못하는 무르하와 클레인스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오로지 브레딕만이 그것을 다소 찜찜하다는 시선으로 흘겼다. 브레딕이 네토르에게 느리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네가 아는 무언가가 맞는 거야?”
“그래. 일종의 강력한 주술이라고 볼 수 있어. 보라색 보석이 매개체로 작동하는 거지.”
“하지만 지금껏 이것을 해주하려 노력해보았지만, 일반적인 주술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이런 주술을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어요.”
“당연히 그렇겠죠. 일반적인 주술이 아니니까요.”
네토르의 말에 무르하는 약간 답답하다는 기색으로 말했다.
“일반적이든 일반적이지 않든 주술이란 기본적인 뼈대와 조건이 있어야 성립하는 것입니다. 이건 그런 것이 없어요. 그리고 이런 것은 주술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알아요, 안다니까요. 이런 것에 있어서는 아마 진짜 주술사인 당신보다 내가 더 잘 알걸.”
다소 오만하게 지껄인 네토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그는 브레딕에게 말했다.
“됐어, 저건 주라만이 갖고 있던 보석을 찾지 않는 이상 풀기 어려워. 우린 저 반군들이나 처리하자고.”
“이보세요….”
브레딕도 무르하도 황당하다는 얼굴이었으나 네토르는 어깨만 으쓱였다. 클레인스는 한숨만 쉬다가 네토르에게 말을 붙였다.
“간단한 이야기라면 지금 해줘도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요. 반군과도 지금은 대치 상태니까요.”
그 말에 네토르는 경계만 세우는 중인 반군을 보다가 묘한 얼굴을 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쟤네도 뭔가 믿는 게 있어서 안 덤벼 오고 시간을 끌고 있는 걸 수도 있잖아.”
“그렇다고 한들, 에퀘야 씨와 헤더 누나가 아직….”
클레인스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 네토르의 표정을 보던 브레딕은 짧게 내뱉었다.
“네 형제와 관련된 일이지?”
넌 항상 네 형제의 화두가 나올만하면 그런 얼굴이더라. 그 말에 네토르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쓸었다. 무르하가 허공에 헛손질하며 물었다. 형제? 그에 브레딕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있어요, 쟤가 찾고 있는 형제가. 저 녀석도 좀 괴짜라서요…….”
“어쨌든 지금은 반군들을 한 번 쓸어내야지. 내 이야기는 나중에 해도 되잖아.”
네토르의 말에 브레딕은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 그거 되게 쉬운 거라는 듯이 말하는구나. 결국 브레딕은 네토르를 더 추궁하는 것을 포기했다. 클레인스 역시 가타부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혁명단의 원군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반군 쪽도 슬슬 대치를 끝내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무르하가 여전히 고통의 여파가 있는 듯 허덕이다가 낮게 속삭였다.
“다치지 말고 무사히 다녀오세요, 이야기를 들어야 하니까요….”
“그것참.”
걱정인지 아닌지 모를 소리로군 그래. 그 말을 끝으로 골목에는 다시금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