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79)
바다새와 늑대 (278)화(279/347)
#12
2
화
항해를 다시 시작한 혁명단은 그 시작이 얼마나 경황없었는지와는 관계없이 거침없이 항로를 정했다. 아마도 누카르아 이후에 어디를 갈 것인지 정해둔 바가 없이도 갈 곳은 많은 모양이었다. 다시금 나아가게 된 파란 바다에서 누카르아는 빠르게 멀어졌다. 파랑이 펼쳐진 갑판을 가로질러 선장실의 문을 연 랄티아는 자신의 옆으로 혁명단의 전서구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랄티아는 에퀘야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사람 들어오는데 새를 날리는 게 어디 있어요?”
“미안하다, 네가 곧장 들어올 줄은 몰랐지. 원래는 그 문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나간다고.”
에퀘야는 가벼운 어투로 대답하고는 오라며 랄티아에게 손짓했다. 그곳엔 랄티아의 일행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랄티아는 순순히 다가갔다가 선장실에 있는 카우치에 앉은 무르하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뭐예요?”
“주술이지. 이 보석을 매개로 했다더군.”
“주술 종류 같진 않은데요.”
“그래. 그리고 소서러의 능력인 것 같지도 않아. 안 그래?”
에퀘야는 그렇게 말하며 보라색 귀걸이를 내밀자 랄티아는 그걸 받아 잠시 살폈다. 랄티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귀걸이를 돌려주며 말했다.
“마장석은커녕 그 비슷한 기운도 안 느껴져요.”
“그래. 바로 그거야. 이상한 일이지. 그런데 때마침 네 일행 중에 이걸 아는 녀석이 있다고 해서 말이다.”
그 말에 랄티아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일행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헤더와 브레딕의 시선이 일제히 네토르를 향했다. 클레인스는 묵묵히 앞으로 고개를 향한 상태였지만 손가락으로 네토르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에 랄티아는 네토르를 보다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전 몰랐던 일이에요.”
“그래, 다들 몰랐던 것 같더군.”
“제국 출신인 건 알았지만.”
“그거야 뭐, 크게 상관은 없어.”
랄티아는 이번엔 에퀘야를 떨떠름한 시선으로 보았다. 보안 신경 안 쓰시냐구요. 에퀘야는 랄티아의 시선을 뒤로하고 가만히 앉은 무르하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고는 그의 이마에 보석을 가져다 댔다.
“바다가 그대를 용서하노라.”
에퀘야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보석이 청보라색을 띠며 한 차례 빛났다. 그러자 무르하의 검어졌던 홍채와 흰자위가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으으, 하고 짧게 앓는 소리를 낸 그가 우윳빛으로 돌아온 눈을 깜빡이다가 손으로 눈두덩을 눌렀다.
“오, 세상에……. 이제야 좀 살 것 같아요.”
“주술은 어때.”
에퀘야의 말에 무르하는 팔찌에 매달려 있던 구슬을 하나 떼어 손에 쥐더니 느리게 펼쳤다. 그의 팔찌가 희미하게 빛을 내는 것과 동시에 구슬이 손바닥 위에서 빙글빙글 공전했다. 무르하는 구슬을 낚아채 다시 팔찌에 꿰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 파훼법을 제대로 알아 오길 잘했지.”
에퀘야는 한숨 돌렸다는 듯 말하곤 선장실의 의자에 가서 털퍼덕 앉았다. 그러고는 언제나처럼 물담배에 불을 붙이고 선장실의 테이블 위로 보석을 내려놓았다. 이내 그녀는 네토르를 보며 눈썹을 올렸다.
“우린 제국에 관해 알면 알수록 좋아. 이것에 관해 뭘 알고 있지?”
그에 네토르는 약간 피곤하다는 기색으로 귀걸이를 노려보았다. 별로 내키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브레딕이 네토르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찌르자―사실 브레딕은 단지 네토르가 뭐라고 할지 궁금할 뿐인 것 같았다― 별수 없이 입을 열었다.
“내 형제가 연구하던 물건입니다. 제국에서도 아무나 다루는 건 아니고, 그 원리도 제가 세세하게 알진 못해요. 말하자면 주술이나 마장석보다는 연금술 그 근처에 가깝다는 것 외에는…….”
“연금술?”
에퀘야가 미간을 좁혔다. 그에 네토르는 설렁설렁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나 시큰둥하던 랄티아 역시 흥미롭다는 얼굴로 네토르를 보며 말했다.
“연금술이라면 일개 돌멩이를 금으로 만드는 연구를 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
“뭐, 최초의 시작엔 그 목표도 있었지.”
“제국이 연금술도 알고 있다고? 아니, 그래, 이상할 건 아니군. 학파 중엔 제국의 압력에 못 이겨 흡수된 이들도 있지. 그중 연금술 학파가 있었어도 납득이 돼….”
하지만 에퀘야는 말과는 다르게 무언가 걸린다는 듯한 표정으로 네토르를 보고 있었다. 조용히 앉아있던 무르하 역시 묘한 얼굴로 네토르를 보았다.
“그런 비밀스러운 이와 형제라고?”
“정확히 말하자면 의형제예요.”
네토르는 한숨을 내쉬며 보라색 머리카락을 벅벅 긁었다.
“내 형제는 꽤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난 아니었지만요. 어쨌든 난 그 귀걸이와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어요. 형제가 갖고 있던 물건이었으니까.”
그 말에 랄티아는 순순히 수긍하다가 문득 우홉피아주와의 결전을 떠올렸다. 그때 선장 페데르의 이에도 이 비슷한 보라색 보석이 박혀있었다는 것이 뒤늦게 생각난 것이다. 랄티아는 속으로 흠칫했으나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 헤로이핀이란 거구도 분명 우홉피아주가 제국으로부터 얻어온 것이었지.
랄티아는 기억을 더듬으면 생각했다. 우홉피아주가 제국과 모종의 협의가 있었다는 것은 이미 알아차린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대상이 어쩌면 언니와 혼인하려던 남작일 거라고 예상했었지. 헤로이핀을 다루는 것 같던 그 보라색 보석이 연금술의 산물이라면 헤로이핀도 따지면 연금술로 만들어졌단 뜻이리라.
랄티아는 미미하게 미간을 좁혔다. 애시포드 남작이 연금술과 연관이 있다고? 하지만 헤로이핀처럼 군사적으로 톡톡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기술력과 산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이 여태의 전쟁에서 그런 것을 선보였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었다. 랄티아는 침착하게 머리를 굴렸다.
그런 기술력이 있으면서 해군 측에서 굳이 숨길 이유는 없어. 오히려 현재 시점에서 그런 압도적인 기술을 보이게 되면 다른 식민지에 비참한 정도의 탈력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로이핀이 나타난 것은 전장이나 제국의 범위 내가 아니라 일개 해적끼리의 전투였지. 그것이 말하는 바를 짧게 요약하자면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헤로이핀과 연관된 기술이 아직 완성형이 아니라서 실험차 몰래 제공해준 것이다. 둘째, 애시포드 남작이 아닌 다른 이에게 해당 기술이 있다. 그것도 해군과 연관이 없는 이에게.
랄티아는 두 번째의 경우에 더 무게를 두자고 생각했다. 해군 자체에서 그런 기술이 있다면 굳이 우홉피아주에게 제공할 필요 없이 해군 내에서 실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홉피아주에게 주었다는 것은 그런 규모의 실험을 하기 여의치 않은 집단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개인 규모라거나. 그래서 해군인 그레고리 경에게 어느 정도 규모의 전투 상황에서 실험을 해주길 요청했겠지.
그러나 제국 입장에서 군내의 기술이 아닌, 연구 단계의 것을 함부로 내보일 수 없을 것이다. 완성형이 되기 전까진 대부분의 기술에는 기밀이 붙으니까 말이다. 결국 애시포드는 그것을 우홉피아주에게 제공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헤로이핀을 만든 사람이 해군 측에서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을 정도의 거물이라는 뜻이다. 최소 후작쯤부터 시작하는 작위를 갖고 있거나 제국의 경제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대부호겠지. 여기까지 생각한 뒤 랄티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네토르를 보았다.
그런데 그 비슷한 기술을 갖고 있던 사람과 의형제를 맺었다고? 말마따나 의형제가 어마무시한 신분일 것은 둘째치고 그만한 사람이 우홉피아주에게 습격을 받을 일이 뭐가 있었겠느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랄티아는 여기서 네토르를 추궁할 마음이 든 것도 아니었다. 이따가 물어보면 되겠지, 뭐.
오히려 에퀘야와 무르하가 있는 자리에서 물어봐봤자 네토르는 대답을 안 하려고 할 것이고, 애초에 혁명단에게는 자신들이 우홉피아주와 관계가 있었음을 감추고 있었다. 괜한 이야기가 줄줄이 나오게 되면 에퀘야는 네토르와 일행을 의심할 것이다. 뭐가 됐든 성가시기 그지없는 일이다.
“연금술에 관해 네가 아는 것은 없나?”
“전 그걸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압니까.”
“한 가지 더 묻지. 연금술에 어느 정도의 범위가 포함되어 있었지? 사람이든, 권력이든, 방향성이든 말이다. 아는 것은 최대한 말해주길 바라는데.”
에퀘야의 말에도 네토르는 어깨만 으쓱였다. 성의가 없다시피까지 느껴지는 태도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