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80)
바다새와 늑대 (279)화(280/347)
#12
3
화
“죄송하지만, 그 의형제와 떨어진 건 꽤 오래전의 일이에요. 기억나는 것도 얼마 없고,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지 어떻게 알아요?”
그에 브레딕과 헤더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가 검은바다와 합류했던 것이 5년 가깝게 되었으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클레인스가 말했다.
“네토르 형이 우리와 함께 다니게 된 게 저와 거의 비슷한 때였죠. 예전 일이니 틀린 말은 아니에요.”
“그렇지.”
소년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네토르가 에퀘야를 보았다. 에퀘야는 일행의 사정을 크게 모르고 있음에도 그럭저럭 납득한 것 같았다. 에퀘야는 잠시간 곰곰이 생각하며 테이블에 올려둔 보석을 손가락으로 건들면서 담배를 빨았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로 무르하가 말했다.
“하지만 연금술이란 건 기본적으로 물질의 성질을 바꾸거나 새로이 재창조하는 식의 기술입니다. 주술처럼 저주를 걸거나 이상 현상을 일으키는 종류가 아니에요.”
“물질적이긴 했죠. 눈의 성질을 바꿔서 시각을 상실하게 하고 주술사의 기혈을 틀어서 주술을 못 쓰게 했잖아요?”
네토르의 말에 에퀘야는 눈썹만 꿈틀 올렸다.
“연금술에 관해서는 모른다면서?”
“모르지만 얼추 어떤 학문인지 정의는 아니까요.”
“하지만 그 과정이 지극히 주술과 닮아있어요. 아니, 오히려 주술보다도 적은 준비물과 일개 매개체, 저 귀걸이만 갖고 있으면 누구든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술보다는 마법에 가깝습니다. 아무나 주술을 걸 수 있고, 아무나 그것을 해제할 수 있다니. 비의가 다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무르하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에퀘야는 고민하다가 랄티아를 흘끔 보았다.
“그렇다고 마장이 있는 것은 아니니 소서러의 그것과도 거리가 있고. 보통 연금술이 이런 것도 가능하다는 건가?”
“그것까진 모르겠군요.”
네토르 역시 어깨를 으쓱이며 모르겠다는 태도이자 귀걸이의 정체는 점점 미궁으로만 빠져갔다. 랄티아는 페데르의 경우와 주라만의 경우를 보아 어쩌면 매개체가 모두 보라색 보석일 수 있다는 가설이 떠올랐으나 에퀘야에게는 말해줄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표본이 너무 적다는 것도 랄티아 자신의 가설을 스스로 불신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랄티아는 더 상관하고 싶지 않은 혁명단의 고민을 미뤄두고 에퀘야에게 입을 열었다.
“그것보다 우리에게 줄 다른 정보가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은데요.”
“아까 막 전서구 날린 거 못 봤어? 조금 참을성 있게 기다려, 똑똑아.”
에퀘야의 말에 랄티아는 무의식중에 퉁명스러운 얼굴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만약에 이곳을 떠나야 할 때가 오면 우릴 보내주긴 할 거예요?”
“비밀 엄수만 지켜준다면.”
“물론 그럴 거예요.”
랄티아는 태연자약하게 말했으나 헤더는 어색하게 눈만 굴렸다. 에퀘야와 혁명단의 이런 안일한 태도가 영 걱정되었던 것이다. 헤더가 에퀘야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무르하의 눈만 믿고 우리를 이렇게 풀어주는 건가요?”
“아니, 물론, 그것도 믿기는 하지만. 떠나는 너희에게 저주를 거는 수도 있지.”
“저주라고요?”
인상을 찡그리는 랄티아에게 에퀘야는 껄껄 웃기만 했다. 다른 일행도 당황한 기색이자 무르하가 서둘러 부연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말만 저주지, 약간의 언령일 뿐이에요. 우리와 관련된 말을 하지 못하게끔 하는 거죠.”
“그러고 보니 궁금하네요. 주술사들의 저주는 일반 저주와 다른가요?”
네토르의 물음에 브레딕은 어색한 얼굴을 했다. 그가 네토르의 허리께를 팔꿈치로 찌르며 눈짓했다. 뭐 그런 걸 물어봐? 그러자 네토르는 어깨를 으쓱였다.
“로트 녀석이 저주에 걸렸던 거 기억 안 나? 주술은 주술 표식이 있어야 한다는데 저주는 그런 게 없었잖아.”
로트의 이름에 에퀘야와 무르하는 약간의 기시감을 느꼈다. 다행히도, 그들은 최근 사람의 정보를 들여다볼 일이 많았던 탓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랄티아는 아니었다. 그녀는 네토르를 노려보며 그의 발을 밟았다. 그러나 네토르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는지 랄티아를 내려다보며 ‘뭐?’ 하고 물었을 뿐이었다. 괜히 더 눈치를 주다가 에퀘야가 수상함을 알아채는 것이 더 성가셨기에 랄티아는 한숨만 쉬었다.
무르하는 침착하게 말했다.
“저주에는 주술 표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만큼 준비가 복잡하죠. 생물의 피를 내거나 하는 식으로 주술진을 그릴 매개가 있어야 하는데, 그 조건을 성립하게 준비하는 것도 그다지 여의찮은 경우가 있거든요.”
“아…. 그렇군요.”
어렴풋이나마 로트에게서 어쩌다 저주를 받은 것인지 들었던 헤더는 어색한 얼굴을 했다. 우홉피아주가 휩쓸고 간 마을에서 사람들의 피는 참 구하기 쉬웠을 것이다. 그렇게 로트는 저주에 걸렸고 말이다. 무르하가 말을 이었다.
“다만 저주는 그만큼 한정적인 대상에게만 걸 수 있고, 반영구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신중히 해야 한다는 것이죠. 종류에 따라 실패하는 것도 있고, 주술사의 심력을 크게 소모하는 종류도 있어서 평범한 주술사들 사이에서는 저주를 지양하는 분위기가 커요.”
랄티아는 눈만 굴리며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시골 섬의 샤먼은 그딴 거 신경 안 쓰던데. 그러다가 문득 떠올라 랄티아는 고개를 기울이며 무르하를 보았다.
“평범한 주술사는 저주를 지양하는데 무르하 당신은 딱히 그렇지도 않나 봐요? 우리 모두에게 저주를 걸려면 어쨌든 다섯 번은 저주를 걸어야 한다는 뜻인데.”
“부끄럽지만 신께 은혜를 받아 가능한 일이지요.”
“아, 그, 꿈의 수호자인가 하는 케르헤티의 초월자요.”
랄티아의 말에 무르하는 고개만 끄덕였다. 에퀘야는 바라보던 귀걸이를 옆의 작은 상자에 넣으며 심드렁하게 덧붙였다.
“케르헤티에서는 초월자가 아닌 신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지금은 그분이 죽었음을 케르헤티의 모두가 알지만, 어찌어찌 의지는 이어지고 있는 중이지.”
“죽었다고요?”
브레딕이 눈을 둥그렇게 뜨자 에퀘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몰랐나? 하긴, 그럴 수 있지. 초월자의 이야기 중 죽음으로 유명한 것은 바다의 주인이지만 케르헤티에서도 몇 세대 전 신의 의지를 받은 눈으로 꿈의 수호자인 ‘비우나우’의 죽음을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비우나우?”
처음 들어보는 초월자의 이름에 일행이 의아한 것 같자 에퀘야는 어깨만 으쓱였다.
“약소국을 돌보는 초월자, 그것도 수백 년 전 죽은 초월자를 알아서 뭐 하겠느냐? 별달리 회자 되지도 않는 존재가 으레 그렇듯 잊히는 거지. 지금 케르헤티에선 그나마 남았던 축복도 쇠퇴하는 중이고.”
“저희가 아는 초월자는 대체로 바다의 주인과 마녀, 숲의 여왕 에르노리나 무인도 지대의 초월자 정도니까요….”
브레딕이 민망하다는 듯 덧붙였으나 에퀘야는 별로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무르하는 마치 병아리들에게 새로이 알려줄 것이 생겨 기쁜 유치원의 초임 선생님처럼 웃으며 말했다.
“그들 외에도 많은 초월자가 있답니다. 교류가 없거나 죽거나, 기록에서 잊혀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지요. 앞서 말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던 꿈의 수호자 비우나우, 세상을 기록한다는 초승달과 천체의 상징 아우리아, 죽음을 찾아다닌다는 불길한 네르갈…….”
무르하는 잘만 말하다가 갑자기 말이 없었다. 그는 약간 비틀린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마치 잊고 있던 무언가를 떠올린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클레인스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그런 초월자를 알고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초월자들이라고 해봐야 사람의 일에 끼어들지 않고 존재감도 옅다. 그래서 그냥 신빙성 높은 미신으로 치부하거나 상관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가득한 세상이다. 케르헤티처럼 초월자를 종교적으로 믿는 사람도 있지만 그뿐이다. 초월자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고 하면 뱃사람 중에서도 약간의 오컬트 마니아라고 여기거나, 학자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전부였다. 당연한 의문에 무르하는 띄엄띄엄 말을 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