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81)
바다새와 늑대 (280)화(281/347)
#12
4
화
“아, 네. 주술을 전문적으로 배운다면… 기본적으로 초월자를 얼추 알아야 합니다…….”
“왜요?”
“주술의 힘이 되는 심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그들을 엿보고 체화할 줄 알아야 하거든요…….”
무르하는 희미하게 말을 마무리하고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일행은 그것이 이상한 태도라고 생각했으나 이내 관심 없다는 듯 우두커니 있던 랄티아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래요, 다 이해했어요. 그중에서도 무르하는 초월자가 은혜 좀 베푼 걸 받아서 더 짱 센 주술사가 되었단 거네요.”
랄티아는 대충 말하고 대화를 정리했다. 그러자 에퀘야도 무르하도 더 말할 것은 없었는지 일행을 적당히 선장실에서 내보냈다. 사실 에퀘야는 무르하의 기색을 기민하게 알아차리고 그들을 축객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나, 어쨌든 일행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선장실을 뒤로하고 선실로 향하며 랄티아가 네토르에게 물었다.
“그 의형제라는 사람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물어보고 싶던 것을 드디어 물어본 랄티아는 약간 속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에 네토르는 간단히 대답했다.
“대단한 사람이었지. 나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그래서 난 가끔 그가 질투 나기도 했어.”
“연금술이 뛰어나서요?”
“뭐, 그게 아니어도.”
“하긴, 당신은 연금술을 연구한 건 아니라고 했죠.”
랄티아의 대수롭지 않은 말투에 네토르 역시 비슷한 어조로 그래, 하고 대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걔는 좀 묘한 놈이었지. 세상만사를 다 통달한 것처럼 굴 때가 있었거든.”
“그게 대단했어요?”
“그래.”
“질투가 날 정도로?”
랄티아는 상상이 안 된다는 듯 네토르를 보며 물었다. 그가 단순히 짜증이나 무례함이 아닌 친애로 사람을 대하는 것도 그다지 상상이 안 되긴 했지만, 그가 질투하면서도 끝내 누군가를 소중히 여겼다는 것은 더더욱 상상이 안 되었다. 랄티아가 뭐라고 생각하든 네토르는 랄티아의 질문에 대꾸했다.
“그래. 진정으로 대단했으니까.”
“얼마나 똑똑했으면 그렇게 대단하다고까지 말하는 거야?”
뒤에서 따라 걸음을 옮기던 브레딕이 물었다. 그러자 네토르는 흠, 하고 소리를 내더니 어깨만 으쓱였다.
“똑똑하기보단 범접하기 힘든 사람이었어. 말하자면 지내다 보면 가끔 경외감이 드는 거지.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싶기도 하고.”
“아하.”
그 말에 브레딕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웃으며 말했다.
“로트 같은 사람이었군.”
그 말에 대번에 네토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 의형제를 모욕해? 죽고 싶어?”
“아, 진짜 웃긴다. 하지만 로트도 가끔 그러잖아. 너만 인정 안 하는 거일걸.”
그렇지? 그렇게 말하며 브레딕은 동의를 구하듯 다른 일행들을 보았다. 랄티아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고, 헤더와 클레인스는 잠시 생각하다가 곧 순순히 수긍했다. 그에 네토르는 혀를 세차게 차며 못마땅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걔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었어.”
“그래, 그랬겠지.”
브레딕이 알았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네토르는 자신의 숙적(?)인 로트렐리와 자신의 의형제가 동일시된 것이 기분이 어지간히 나빴던 모양이었다. 그는 그 이후로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선실에 들어오며 마지막으로 랄티아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런 대단한 사람이 어쩌다 우홉피아주에게 당한 거예요?”
그러나 한 번 심기가 비틀린 네토르는 그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 * *
에퀘야는 물담배의 연기를 깊게 빨아들이며 눈을 굴려 무르하를 보았다. 랄티아 일행이 나간 이후 무르하는 연신 혼란스러운 얼굴로 생각에 잠겨있었다. 제국의 연금술에 관해 어떤 식으로 캐볼지 상의하려던 에퀘야는 생각에 빠진 그를 일단은 가만히 두기로 했다. 현명한 주술사는 때때로 저렇게 혼자 알아낸 비의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상념을 빼앗기곤 했고, 그것을 꽤 오래전부터 알아 온 에퀘야는 다행히 참을성이 있는 혁명가였다.
에퀘야가 물담배의 용액을 삼분지 일쯤 비워낼 때가 되어서야 무르하는 생각에서 깨어나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에퀘야는 깊게 연기를 뱉으며 웃었다.
“그래, 이제 뭘 그리 골똘히 생각했는지는 좀 알려주지 그러나?”
“아, 죄송해요, 에퀘야.”
무르하가 주섬주섬 사과하는 것을 대강 손을 내저어 말린 그녀가 고개를 까딱였다. 어디 한번 말해보라는 태도였다. 그에 무르하가 여즉 찜찜한 얼굴이던 그대로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이전에 제가 했던 예언 말인데요.”
“아, 배반자니 어쩌니, 했던.”
에퀘야는 무르하가 가리키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예언을 듣고 비밀스럽게 단원들을 한 번씩 모조리 캐보았으나 이렇다 할 간자가 보이지 않아 한참을 허탈해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퀘야는 애초에 그 예언이 상당히 이전의 것들과는 궤를 달리한다고 여겼다.
보통 무르하의 예언은 꿈의 수호자, 그러나 이제는 죽어버려 그 능력조차 유의미하지 않은 어떤 기원에서 온다. 지금은 숲의 주인이 그 은총을 대리 점지하고는 있으나 어쩐 일인지 에르노리는, 그녀를 포함한 다른 초월자들은 좀처럼 필멸자들에게 간섭하지 않는다. 때문에 무르하가 가진 꿈의 수호자 비우나우의 파편은 에르노리의 손을 떠난 채로 매우 단편적이거나 직설적인 예언밖에 하지 못한다.
그 예언조차 무르하에게는 부담이 되기도 하고 말이다. 에퀘야가 담배 끝을 물고 웅얼거렸다.
“이번 예언은 뭔가 이상하기는 했지. 그렇게 추상적이고 장황하며 명백한 예언이라니.”
“그리고 에르노리의 분노를 느꼈죠.”
“그래.”
에퀘야와 무르하는 가타부타 않고도 서로가 무엇이 이상하다고 여기는지 알 수 있었다. 비우나우가 죽은 이후로 예언은 정말 희미하게 남은 섬광과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것이 아군이 된다거나, 적이 된다거나, 조만간 마주친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런 예언에는 누구든 ‘감정’이랄게 실릴 이유가 없다.
그런 조각난 예언을 가지고 살을 붙여 구체적인 정보로 만들어내는 것은 그간 혁명단이 해온 일이다. 그러니 그 예언을 듣고 에퀘야는 물론이고 무르하까지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에퀘야는 다시금 길게 연기를 뱉고는 눈썹을 추켜올렸다.
“그 예언이 의문점이 많긴 했지만, 아까 ‘똑똑이와 그 친구들’과의 대화 도중 그 생각에 빠져야 할 화두는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몇 가지 의문점이 들어 파고들다 보니 생각이 예언에까지 뻗쳤어요.”
“뭐였길래? 차근차근 풀어보자고.”
에퀘야가 서두를 것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자 무르하는 느리게 입을 뗐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