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86)
바다새와 늑대 (285)화(286/347)
#129
화
“나와 아바마마의 의견이 엇갈려서 말이네. 백려의 왕자가 우리 제국에 불만이 많은 것을 알고 있으니 한 번 좀 제국 좀 긁어주지 않으려나 싶었지.”
“긁는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
“물론. 대차게 긁어줘야겠지. 전쟁을 일으킨다든가.”
그 말에 세운보다도 엘레나가 더 놀랐다.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그녀는 기겁해서 샤를리나를 보며 생각했다. 그래서 황녀는 이 백려까지 와서 한다는 말이 ‘전쟁하지 않을래?’라는 건가? 그 전에 전쟁이 그렇게 쉽게 거론할만한 이야기인가? 엘레나는 저절로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제국의 확장 전쟁과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고자 하는 건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 어린 황녀님은 알고 있는 건가? 그때 엘레나의 혼란을 뚫고 세운이 말했다.
“우리는 자신의 의지를 가진 인간이고 사람이오. 제국을 치는 것이야 바라마지 않는 일이나 어찌 당신 같은 황녀의 수작에 놀아나길 기꺼이 자처하겠소?”
경칭도 사라진 목소리에는 은은한 분노가 깔려있었다. 엘레나는 이 의원 역시 자신과 비슷한 경악을 했으리라 추측했다. 그러나 샤를리나는 스무 살은 더 많은 어른이 뭐라 하든 기세를 굽히지 않았다.
“왜 이러시나, 의원. 순진하게 굴지 말라고. 막말로 지금 제국 밖에서 설치는 이들이 제국을 친다고 해서 제국이 패망하겠어? 나도 이 말을 그냥 하는 건 아냐. 제국도 어느 정도 손해를 보겠지만, 계산해봤을 때 이편이 더 나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지.”
“대관절 무엇을 위해서?”
세운은 의심한다. 황녀가 이것을 빌미로 백려를 더욱 압박하거나 혁명단의 꼬투리를 잡으려 들지는 않는가 재보는 그의 시선에 엘레나가 걸렸다. 엘레나는 샤를리나의 결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국에서 초월자 네르갈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싶고, 그러기 위해 일단 황제의 수족이 되는 애시포드 남작을 처리하고 싶다면서 그걸 굳이 이렇게 백려를 부추겨 전쟁을 내야 할까?
그러나 샤를리나는 이 방법을 택했다. 엘레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이유였다. 세운은 엘레나를 보며 샤를리나가 확실히 황제와 반대되는 이유로 그를 부추긴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말에 옳다구나 제국을 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어차피 샤를리나도 후에 제국의 주인이 될 자가 아니던가.
샤를리나가 대답했다.
“우리 제국에는 무수한 기술과 인력이 있지. 개중엔 해군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해군이 너무 아버지의 의지에 따르는 중이라 내겐 영 방해가 된단 말이야.”
“이해가 안 되는 말이로군.”
세운의 말에 샤를리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단순히 황제에게 복종하는 것이라면 샤를리나에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황제 뒤의 네르갈이다. 그의 의도와 목표가 무엇이든 간에, 애시포드를 방해해야 네르갈을 방해할 수 있다. 그러나 샤를리나는 그런 것까지 일일이 세운에게 설명할 생각은 없었다.
“네 이해가 필요한가? 간단하게 생각해. 제국에게 피해를 주긴 하지만 내가 갖게 될 제국은 무너지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일이 잘 풀린다면… 백려가 독립을 이룩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
그 말에 세운의 눈썹이 씰룩 움직였다. 세운으로 말하자면, 그는 원래가 그렇게 극성스러운 혁명 분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겪어온 일련의 일이 그를 뒤흔들었고, 현재는 동부 바다의 혁명 대장이었다. 그런 그는 샤를리나의 말에 ‘기회다’ 싶기는커녕 ‘이 자식이 나랑 장난하나?’ 싶은 기분이 드는 게 당연했다.
“제국과 협력해서 독립을 얻으라고? 적어도 훗날 자네가 제국의 황제가 된다면 어떤 식으로 또 꼬투리를 잡을 줄 알고?”
“맹세라도 할까? 나는 분열이 있는 제국이 아니라 온전한 제국을 갖고 싶은 거야. 지금의 제국은, 물론 편하기야 하지만 너무 커…. 안팎으로 소모가 꽤 된단 말이지.”
“그래서 가지치기하듯 식민지들을 자비롭게 풀어주겠다, 그건가?”
“아니. 제국 안쪽을 정리해야지.”
샤를리나는 희끄무레하게 웃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원래 전쟁을 하면 내적으로 뭉치는 법 아닌가?”
그 말에 세운은 숨기지 않고 인상을 찡그렸으며, 엘레나 역시 속으로 경악했다. 이 어린 황녀님은 전쟁의 무게를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혹은 지도자나 정치인이 으레 그렇듯 전쟁의 참혹함이 와닿지 않는 거리에 있어 연연하지 않는다거나. 어쨌거나 샤를리나의 이야기는 세운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세운은 고민했다. 품에 의료도구인 양 감춰온 칼이 있다.
그것으로 지금 이 황녀를 죽일까? 저절로 그의 시선이 매서워지는 찰나였다. 샤를리나가 입을 열었다.
“내 말이 지금이야 경악스럽겠지만, 약간의 피를 봐서 제국을 조금 축소시키고, 나는 온전한 제국을 얻는 쪽이 더 좋지 않겠어?”
“제국을 멸망시키면 될 일을 우리가 왜 그리하겠소?”
“멸망시킬 수는 있고?”
그 말에 세운은 주먹만 움켜쥐었다. 당장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어떤 함정이 있는지 모를 샤를리나의 손을 덥석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장담하건대, 우리 아바마마가 바라는 대로 하게 되면 제국은 앞으로 더 강해지기만 할걸? 이 상태로 한 세대만 더 지나도 너희 가엾은 백려인은 물론이고 다른 식민지 사람들도 제국의 지배를 당연히 여기겠지. 물론, 나도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아. 내 제국은 크면 클수록 좋겠지.”
“하면 굳이 제국을 긁으라고 하는 명확한 이유는?”
“아버지 뒤의 인물을 막기 위해.”
그 말에 엘레나는 놀라 움찔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세운은 기민하게 그것을 알아챘으나 내색하지 않고 샤를리나만 쳐다보았다. 원래 이런 자리는 기선제압이 중요한 법이다. 샤를리나는 힐난하듯 엘레나를 짧게 흘겼다가 말을 이었다.
“아버지 뒤에 버티고 있는 인물이 꽤 대단한 사람이라서 말이야. 나는 그가 내 세대까지 오지 않길 바라고 있거든.”
“제국에 비선 실세가 있었다니 놀랄 만한 이야기로군.”
“비선 실세? 하하, 그렇게 말하니 웃기군.”
샤를리나는 호방하게 웃었으나 속으로는 장이 꼬이는 기분이었다. 네르갈, 그 작자가 비선 실세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대단하고 무서운 자라서 문제지만. 샤를리나가 몇 번이고 더 비슷한 이야기로 전쟁을 제안했으나 세운은 말했다.
“전쟁은 일으킬 마음을 갖고 행할 만한 일이 아니고, 무엇보다도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하여 무조건적으로 우리 백려에게 이득이 오리라 생각되지 않네. 사람을 잘못 찾았군.”
“왜지? 나는 적절히 너희에게 정보를 제공할 정도로 편의를 봐주는 것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것이 황녀의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소?”
폐부를 찌르는 세운의 말에 샤를리나의 입이 다물렸다. 세운은 피곤하다는 듯 안경을 벗고 콧대를 누르며 말했다.
“어리다는 이유로 이렇게 판단하고 싶지는 않으나 자네는 자네의 그 위치에 비해 아직 순진하긴 하군. 자네의 아버지 되는 자가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면 그것을 모르는 척 자네에게 정보를 기꺼이 나눌 거라고 장담할 수는 있소?”
“내가 그 ‘비선 실세’를 특별히 거부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못 할 것도 없겠지.”
“그리하여 자네가 우리에게 정보를 주었을 때 우리가 무조건 승전보를 올릴 수 있다고도 장담할 수 있소?”
“왜 못해? 우리 제국을 무시하려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로운 점이 있으니 해볼 법하지 않은가?”
“전쟁의 승패란 자고로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나는 법이오. 그 상황에 닥치지 않으면 보장할 수 없는 것이 승패고 확실하다고 여겨도 어느 순간 뒤집히는 것이 승패지.”
“지금 날 가르치려 드는 건가?”
샤를리나의 눈썹이 비죽 올라갔으나 세운은 아랑곳하지 않고 안경을 쓴 뒤 말을 이었다.
“하물며 전쟁은 단순히 승패만 논하는 장기 놀이판처럼 볼 수 없소.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고, 땅이 파헤쳐지고, 수많은 산업이 멈추는지 아시오? 그것뿐이겠는가? 제국이 전쟁을 한다고 했을 때, 오로지 제국인으로만 군인을 징집하겠는가? 당장 속국들에서 강제로 사람들을 끌고 가겠지. 하물며 제국은 백려에게는 이미 그러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결론은 싫다는 거로군.”
“만일 나와 백려를 설득하고 싶었다면 더 그럴듯한 것을 들고 오는 것이 좋았을 것이오.”
세운의 말에 기분이 나쁠 법도 했으나 의외로 샤를리나는 산뜻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는 등 뒤의 창에 팔을 걸치며 말했다.
“그래, 유감이긴 하군. 애초에 나는 제국을 싫어한다는 백려의 왕자를 보러왔더니 애먼 의원과 이런 잡다한 이야기나 나누고 말이야.”
“…….”
“백려 왕자 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다무는군. 확실히 그대가 그 왕자와 아는 사이인 것 맞는 것 같군, 그래.”
세운은 옅게 한숨을 쉬었다. 샤를리나는 확실히 나이에 비해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편이긴 했다. 어쨌거나 시치미를 뗄 정도로만 행동하면 된다. 무엇보다 세운이 혁명단의 대장직을 하고 있다는 정도는 모르는 것 같으니 그는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때 샤를리나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하지만 명심하게. 나는 만일 전쟁이 일어나면 어느 정도는 식민지들을 도와줄 의향이 있으니 말이야. 내가 일으키는 전쟁이 아니라면 그대들에게 꽤 고단하겠지만.”
그렇게 말한 샤를리나는 엘레나에게 손짓했다. 그에 엘레나가 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을 본 세운의 굳어 있던 얼굴이 기묘하게 비틀렸다. 엘레나가 꺼낸 것은 작은 병이었다. 손가락만 한 길이에 호리병 같은 모양을 한 그것은 얼핏 향수병처럼 보였으나 세운은 그게 무엇인지 금방 알아챘다.
전서 향이었다. 샤를리나가 그것을 받아 세운에게 건네며 말했다.
“갖고 있어서 나쁠 건 없지 않겠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