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88)
바다새와 늑대 (287)화(288/347)
#131
화
“황녀? 황녀 이야기가 왜 나오는가?”
“그 황녀가 단순히 골목대장 노릇을 하고자 백려까지 왔겠는가? 황녀는 우리에게 전쟁을 제안했고…. 내가 거절했음에도 몇 번 설득하려는 시늉을 한 후에는 별반 미련이 없이 이야기를 끝내더군.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그러면서 전서 향까지 주고 말이야.”
샤를리나 황녀는 어쨌거나 곧 제국과 관련해 어떠한 사달이 날 것이라고 계산을 했던 것이다. 그러니 세운이 거절한 것이 안타깝기는 해도 크게 미련을 갖고 매달릴 정도로 커다란 변수도 아니었던 셈이다. 세운은 그것에 약간의 감탄을 하면서도 속이 쓰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 어린 황녀의 손속에서 놀아나는 기분이 된 것이 못내 불쾌했다.
세운은 협탁에 둔 샤를리나 황녀의 전서 향을 보았다가 한숨을 쉬며 새로운 종이와 먹, 붓과 벼루를 꺼내왔다. 원은 그가 벼루에 먹을 갈아내는 것을 보다가 물었다.
“결론은?”
“…….”
세운은 먹물에 붓을 느리게 눕히며 침묵하다가 곧 그것을 종이 위로 가져갔다.
“칼란투와 함께 해야지. 그러나 그 전에 우리에겐 앞서 순서가 있네.”
“누님에게 알리려는 목적이군.”
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한 일은 도현 왕도 알아둬야 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이 혁명단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을 것이니 혹시라도 백려가 휩쓸릴 일을 대비해야 했다. 누님이라면 충분히 방비를 해두시겠지. 원은 낮게 중얼거렸다. 도현에게 보낼 서신을 적은 세운은 곧장 다른 종이에 다른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로트에 관한 이야기였다.
칼란투와 에퀘야에게 각각 보내기 위해서 세운은 같은 내용의 서신을 두 번씩 써야 했다.
동지들에게.
동부는 칼란투의 염려에 깊이 공감하는 바이오. 따라서 우리도 그대들의 의견에 따를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놓겠소이다. 허나 당장의 행동으로 그것을 보일 수 없는 점, 우리의 사정을 아는 그대들이 양해해주길 바라오. 제국의 기술을 경계하고 그 내막을 알아야 한다는 의견에는 깊이 동감하는 바라오.
한 가지 알릴 것이 있소. 수배된 마녀는 나와 안면이 있는 자요. 그녀는 선량하고, 평범하며, 일견 비범하긴 하나 딱 그 또래의 청년이지. 그에 더해 그녀에게는 소중한 동생이 있소. 염려하는 바는 익히 알겠으나 그렇다고 너무 무정하게 그녀를 대하지 않길 바라겠소.
동부의 세운 백.
그 서신이 에퀘야에게 닿은 것은 에퀘야가 이끄는 서부 혁명단의 캐럭이 세라무티 근처에 닿을 때였다. 중간 경유지에 흩어진 서부 바다의 세력들을 모으기로 결정한 에퀘야는 그 경유지를 세라무티로 결정했다. 이유는 세라무티에서 일어난 반란을 세라무티 내에서는 물론이고 제국도 섣불리 손을 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혹시 모를 사태를 피하기 위해 세라무티로 정찰대를 파견한 에퀘야는 선장실에서 세운의 서신을 받았다.
“세운은 대체 어쩌다 그 마녀와 알게 된 건지…….”
에퀘야는 한숨을 쉬다가 세운의 서신을 한 차례 더 읽어 외운 뒤 불에 태웠다. 그 뒤 그녀는 무르하에게 말했다.
“지금 똑똑이 일행은 어쩌고 있지?”
“동행이 길어지는 것에 약간의 불만은 있는 것 같지만 그 외의 특이점은 없어 보여요. 아…, 여전히 정보를 필요로 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 정보는 아무래도 ‘로트’를 찾기 위해서인 것 같지.”
“아무래도요…….”
에퀘야와 무르하는 그간 예지에 약간의 추리를 더했다. ‘로트’라는 인물과 무르하가 가장 최근에 본 예지의 인물이 어쩌면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유는, 초월자가 나서서 경고할 정도의 인물과 마녀라고 불리며 재앙이 되리라는 예지를 받은 인물이 따로 존재할 것 같지 않아서였다. 현재 제국이든 아니든 그만한 존재감과 화두가 된 존재는 바다새의 주인인 마녀뿐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누군가의 눈에 푸른빛만 감돌아도 유심히 그를 들여다보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에퀘야가 말했다.
“세운이 마녀와 일면식이 있고, 똑똑이는 전에 우리에게 동부 바다의 대장과는 특별히 협력하지 않아도 좋다고 했지. 이제 그 이유를 알겠군. 마녀의 정보가 우리에게 알려질 것을 걱정한 거야. 동부 대장의 정보에 의하면, 똑똑이는 마녀의 동생이 되는 거로군. 이것 참 대단한데.”
“그거 좀 이상하긴 하네요…. 우리가 먼저 알았다면 그들을 보호해줄 수 있었을 텐데 왜 숨긴 걸까요?”
“우리야 모르지.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린 이상 우리로서도 마녀를 가만히 두기 애매해졌으니……. 사실 우리가 먼저 알았다고 해서 마녀를 쉬이 찾아내 보호했었을 거라고도 장담할 수 없군.”
그 잘난 제국도 못 잡아서 내내 허탕만 치는 중이니 말이야. 에퀘야의 말에 무르하는 눈만 굴렸다. 그 제국이 못 잡는 사람 중엔 혁명단도 있었으나 에퀘야는 그걸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똑똑이가 우리를 이미 경계하고 있는 판에 정보를 알고 있다고 티를 내서 좋을 것은 없겠군. 계속해서 모르는 척을 하자고. 의심이 많으니 괜히 제 언니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간 도망갈 거야.”
“그럼……. 칼란투에게서 온 정보는 어떻게 하나요?”
무르하의 말에 에퀘야는 재가 된 세운의 서신 옆, 쟁반에 놓인 또 다른 서신을 보았다. 칼란투에게서 온 검은바다에 관한 정보였다. 에퀘야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세라무티에서 알려주는 것으로 하지.”
세라무티로 갔던 파견단이 돌아온 것은 그날 저녁의 일이었다. 문제가 없다는 소식에 곧바로 세라무티로 배를 댄 후에도 에퀘야는 별다른 명령이 없었다. 그에 여유가 생긴 것은 단원들이었고, 그 사이에서 랄티아 일행이 있었다.
“제국과 점점 가까워지는데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랄티아의 말에 네토르가 가볍게 말했다.
“네가 파란 눈도 아니고 뭐 어때서? 어디에 네 초상화를 남긴 것도 아니고, 검은 머리에 회색 눈은 비교적 흔한 편인데.”
“누가 봐도 언니랑 닮았잖아요.”
“로트 누나와 그렇게 닮은 편인가요?”
로트렐리는 물론이고 랄티아의 이목구비도 선명히 알지 못하는 클레인스의 물음에 랄티아는 눈썹을 비죽 올리며 말했다.
“엄청이요.”
“사실 로트가 키가 더 크고 근육질이고, 시원시원하게 생기긴 했지만.”
“랄티아는 로트보단 아기자기하게 생겼지.”
헤더의 말에 브레딕이 맞장구를 쳤다. 네토르가 그에 덧붙였다.
“로트 놈이 더 못생겼어.”
일견 자신을 향한 칭찬으로 들릴 수 있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랄티아는 과격할 정도로 경악을 하며 네토르의 발을 밟았다.
“우리 언니만큼 멋진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러는 네토르 그쪽이 더 못생겼거든요?”
그에 브레딕이 와하하 웃음을 터트렸으나 랄티아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언니가 적색 양파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어. 퀭하고 눈만 부리부리해서는 어디 우리 언니한테 못생겼대?”
“진정해요.”
“진정하게 생겼어요?! 클레인스 너도 눈이 더 밝았으면 저 말에 경악했을 거라고요!”
일행과 조금 떨어진 채 그 대화를 고스란히 듣고 있던 무르하는 남몰래 생각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