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95)
바다새와 늑대 (294)화(295/347)
#138
화
제국 황실의 깊숙한 곳에는 묘하게도 종교시설과 닮은 건물이 있다. 그러나 정말로 종교적인 행사를 한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작고, 황제를 제외한 이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혹자는 그곳이 황제가 망령에 씐 증거라고 이르기도 했다. 종교를 폐한 것이 제국인 주제에 제국의 황궁에 저런 것이 버젓이 있으니 흉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곳에는 초월자 네르갈이 기거하고 있다. 사람이 산다고 보기엔 제대로 된 편의 시설도, 역할별로 나뉜 방도 없었으나 그런 것은 초월자에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그 안에는 호화롭고 넓은 소파 하나와 넓은 책장, 커다란 창만이 있었다. 창문은 거대한 유리 전체가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며져 실내로 들어오는 빛은 모조리 형형색색으로 비추어졌다. 묘한 무늬가 새겨진 바닥으로 온갖 색의 빛이 조각나서 내려앉은 그곳은 얼핏 평화롭고 아름답게만 보였다.
그리고 현재 네르갈은 소파에 드러눕듯 앉아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는 중이었다. 온전히 그의 요구과 그의 묘사에 맞춰 만들어진 스테인드글라스에는 푸른 머리와 보라색 머리의 인영 둘이 바다에 서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네르갈은 딱히 할 일이 없다고 판단될 때면 소파에 죽은 듯 앉아 그것만을 빤히 바라보곤 했다. 그때 고요하던 한낮의 공기 위로 똑똑, 하는 소음이 끼어들었다. 네르갈은 깊게 눌러쓴 후드 아래로 파르스름한 눈만 데굴 굴려 문가를 보았다.
“들어와.”
그의 허락 이후에야 열린 문가엔 황제가 서 있었다. 체르주나 황제, 제국의 어버이였다. 동행하는 시종도 하나 없이 홀로 들어온 그는 황제 앞에서 아직까지 늘어져 있는 그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알려드릴 소식이 있어서 왔습니다.”
“무슨 소식? 바다새와 그 주인이 갈리니 섬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
네르갈의 꿰뚫어 보는 듯한 말에 황제는 잠시 숨을 멈췄다. 네르갈은 어디에도 나가지 않고 칩거하듯 황궁 안의 이 건물에서만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기묘하게도 종종, 그는 황제가 전해주지 않는 일도 알고 있곤 했다. 건물을 오갈 수 있는 사람도 황제뿐인 걸 제외하면 과연 초월자의 전능함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황제는 네르갈에게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혹여 모르실까 싶어 왔건만 쓸데없는 필멸자의 기우였군요.”
“뭐……. 갈리니에 마녀가 있었다며 꽤나 시끄럽게 굴지 않았더냐.”
네르갈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에 황제는 머뭇거렸다. 당시 마녀와 접점이 컸던 노인을 잡아 와 심문한 내용이 있었으나 그것도 영 쓸모없는 짓이었나 싶었던 것이다. 그때 네르갈이 먼저 말했다.
“갈리니 섬에서 얻은 정보가 있겠지? 읊고 가.”
‘…아는 정보도 있고 모르는 정보도 있는 건가?’
정보를 취사 선택하는 것인지, 아니면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종류가 있는 것인지. 후자라면 대체 무슨 기준인지 알 수 없었다. 황제는 네르갈 몰래 그를 유심히 살피다가 늙은 학자가 실토한 정보를 전했다.
“그들은 죽음의 호수에 볼일이 있어 갈리니 섬에 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죽음의 호수에 근접할 수 있는 학자에게 협박을 가해 협력을 요구했고,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죽음의 호수에?”
네르갈은 뜻밖에도 그 이유를 모르는 눈치였다. 네르갈이 알기론 죽음의 호수는 옛날엔 아름다운 곳이었다가 현재는 오염되었다는 것 외에 특이사항은 없었다. 황제는 저도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는 이어 말했다.
“듣기로는 거대한 뱀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심문 중에도 늙은 학자가 그것이 세계의 뱀이 아니겠냐며 흥분해서 떠들었다고 하는군요.”
그 외에도 그 노인이 캐시언 학파였다는 이유로 캐시언 후작이 호출되었었다. 후작은 심문을 받느라 녹초가 된 노인의 말을 유심히 경청하는 듯하더니 감방을 나와 이렇게 말했다.
‘흥미롭긴 하군요. 그러나 학자가 되어서 자신의 연구를 저렇게 떠벌려선 안 되지 않겠습니까. 폐하의 뜻대로 처리하셔도 좋습니다.’
황제가 그에게 죽음의 호수에 관해 연구를 해 볼 것이냐 묻자 후작은 눈만 굴렸다.
‘물론, 가치는 있지만, 저 말이 사실이라면 마녀가 이미 단물만 쏙 빼곤 떠난 상황 아닙니까? 그 이상의 연구를 지속할지 어떨지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후작은 황제가 마치 연구를 지속할 이유나 단서를 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황제는 후작이 네르갈의 존재에 관해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다는 것을 기민하게 알아챘다. 그러나 황제는 그에게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서로 협력하고 있다고는 하나 후작은 속이 시꺼먼 작자였다. 지극히 개인적인 흥미 본위로 움직이는 데다, 그 흥미의 범위도 감을 잡을 수 없어 다루기 까다로운 종자였다. 정보를 얻은 후작이 이상한 곳으로 튀어갈 바에야 입을 다무는 편이 나았다.
황제가 전해준 이야기를 들은 네르갈은 심드렁하던 몸을 느리게 일으켰다. 그는 조금 굳은 기색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뱀이라고?”
“예. 혹여 걸리는 점이 있으신 겁니까?”
“그래.”
네르갈은 순순히 답하며 빼빼 마른 흰 손으로 턱을 감싸 쥐었다.
“세계의 뱀을 데려갔다고…….”
“헛된 소리가 아니었던 셈이군요. 그것이 무엇이기에 그러십니까?”
“세계의 순환을 가져오던 존재지. 지금이야 초월자들의 손에 나뉘어 유명무실한 뱀들일 뿐이지만….”
“그 뱀들이 중요합니까?”
“중요하냐고?”
황제의 물음에 네르갈은 조소했다. 그에 기분이 상할 법도 했으나 황제는 태연했다. 사실 눈앞의 이가 네르갈이 아닌 일개 필멸자였다면 무엄하다고 질타했을 일이었으나 황제는 네르갈과 지내며 이런 일에 꽤 익숙해진 상태였다.
“모르겠나? 순환의 안에는 생과 사 역시 포함되어 있어. 자네와 했던 약속을 위해서는 그 뱀들 역시 내 편이 되는 것이 낫다.”
이어진 네르갈의 말에 황제는 눈을 크게 뜨고 초월자를 보았다. 그는 드물게 흥분한 기색으로 네르갈에게 가까이 붙었다.
“그 말은, 저 역시 초월자처럼 불멸에 가까운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이상한 것을 묻는군. 애초에 그것을 바라고 나와 협력한 것이 아니었나?”
네르갈은 여상스러운 말투로 답했으나 그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가장 인위적인 방법으로 초월자가 된 나에게 말이야.”
황제는 뒤늦게 전율에 휩싸였다. 네르갈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은 정녕 영원한 제국의 태양이 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되바라지기만 한 샤를리나 황녀에게 황위를 넘기지 않아도 되고, 초월자와 같이 군림하며 제국을 더욱 강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막 영생을 약속받은 황제는 문득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늙은 몸으로 계속 살아야 한다는 뜻인가?
…육체의 시간을 되돌릴 방법은 없나?
그러나 그것을 입 밖에 내기 전에 네르갈이 말했다.
“그러나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우리는 바다새와 그 주인을 잡는 것에 신경이 모여있건만 혁명단이 제국의 곳곳에 전쟁의 불씨를 놓고 있어.”
“전쟁 말입니까?”
“그래. 몰랐는가? 혁명단은 이미 식민지들과 결탁하여 전쟁을 준비하고 있어. 그들이 칼날을 겨눌 곳은 단 한 곳이지. 제국이다.”
네르갈의 말에 황제는 미간을 좁혔다. 확실히 그런 보고가 있기는 했으나 이미 제국은 막강한 군대를 갖고 있었다. 굳이 황제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명령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결할 것이다. 그러라고 있는 제후들이 아니겠는가. 그런 그의 해이한 마음가짐을 네르갈 역시 아는지 눌러쓴 후드 아래로 그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매끄러운 입술이 붉었다.
“자네라면 알겠지. 예전의 확장 전쟁 때처럼 소모되기엔 귀찮은 일이 많다.”
“물론입니다. 확장 전쟁 때도 많은 은혜를 받았지요.”
“그러니 명확히 말하지. 우리는 그깟 놈들의 전쟁보다 바다새의 주인이 중요하다.”
네르갈의 말에 황제는 고개를 조아렸다. 동의하는 몸짓이었다. 그것을 보며 초월자는 느긋하게 소파의 등받이에 몸을 파묻으며 만족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바다새의 주인을 붙잡고, 모든 일이 끝나면 그런 자질구레한 전쟁이야 어쩌든 상관없이 모두가 알게 되겠지.”
네르갈은 후드 아래로 여태껏 햇빛이 비스듬히 쪼개져 들어오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응시했다.
“진정한 바다의 주인이 누구인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