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96)
바다새와 늑대 (295)화(296/347)
#139
화
쿵, 하고 울리는 소리에 네토르는 눈을 떴다. 형제의 꿈을 꾼 것 같은데, 딱히 떠오르는 바가 없었다.
잠기운에 겨운 그는 비척비척 침상에서 상체를 일으키고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창문을 보았다. 세라무티에서의 나날은 꽤 평온했다. 그러나 세라무티는 겉으로 보이는 위태롭기만 한 모습과 달리 내부에서는 수많은 격변이 일어나는 중이었다. 셀리팜의 공개적인 지원을 받아 섬 어느 곳에 가도 창과 칼을 쥔 여성들이 가득한 것이 가장 뚜렷하게 보이는 증거였다. 그 여성들과 뜻을 함께하기로 한 남성들 역시 마찬가지로 무기를 들었고, 제 가족들을 위해 싸우거나 일을 나누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여성을 자본이나 가축인 듯 옮겨다 강제로 결혼과 이주를 명령한 제국도 제국이지만 저들이 결혼할 여성이 부족하다고 전쟁을 일으키는 것들도 참 우스운 놈들이었다. 세라무티와 군도의 갈등은 과거까지는 그것이 주된 이유였다. 지금까지는 싸우려는 주변 군도 사람들과 세라무티의 이들을 말리기 위해 여성들이 누군가의 부인이나 어머니의 지위로 아이를 들쳐 매고 나가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던 이들이 날붙이를 들고 그만 좀 싸우라고 본섬과 군도를 모두 공평하게 두들기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그 광경이 오히려 역으로 바깥사람들에게는 공포스럽게 보이겠지만.’
어쨌든 언제 어디에서 군도의 이들과 본섬의 이들이 다시금 눈이 뒤집혀 공격을 감행할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항상 긴장하고 무기를 쥔 이들이 다니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세라무티는 안정되고 있었다. 다만 상황이 이 지경이 될 동안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제국은 세라무티와 군도를 손 놓고 지켜보고만 있었다. 싸우는 이들이 제국을 향해 이를 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세라무티에서 혁명단이 자리를 잡아도 크게 소요가 일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도 한몫했다. 혁명단은 셀리팜의 협력을 약속받은 것에 더해, 세라무티의 반제국적인 민심의 덕을 보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 와중 랄티아는 혁명군의 전단지에 자신을 거론하기로 결정했고, 어떤 식으로 언급할 것인지도 얼추 계획한 상태였다. 세라무티에서 전쟁 선포를 하는 때에 맞춰 그것을 살포하기로 한 랄티아는 혁명단이 준비되는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들에서 비교적 한 발짝 멀어진 채인 네토르는 거의 휴가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느긋하게 하품을 한 그는 창가로 다가가 건물 아래를 보았다. 커다란 궤짝들을 옮기는 사람들을 보며 아까의 소음의 원인을 찾아낸 네토르는 심드렁한 얼굴로 방 안쪽으로 돌아가 세숫물로 얼굴을 닦았다. 세숫대야 위에 붙은 지저분한 거울로 그의 피로한 낯빛이 비쳤다.
검보라색 머리카락은 어느새 조금 길어져 짧게 모아 묶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자색 눈동자는 피곤한 낯과 달리 형형했다.
“…요즘 푹 쉰 것 같은데 낯짝은 왜 하루가 멀다고 이 지경인 거지?”
서른에 가까워지는 나이라서 예전 같지 않음을 선명히 느끼는 건가? 더 나이든 이들이 들었다면 ‘넌 아직 젊어, 인마!’ 하며 역정을 냈을 법한 생각을 하며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낸 그는 문득 일어나기 직전 보았던 꿈을 떠올렸다. 네르갈…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네토르는 한숨을 쉬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랄티아와 일행들에게는 의형제라는 말로 그를 가리긴 했으나 네토르는 그것도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네토르는 네르갈과 갈라진 후 오래도록 그와 다시 만나질 못했다. 네토르는 네토르대로 열심히 네르갈을 위해 온갖 정보를 조사하고 공부했으나 결국 네르갈을 다시 만나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러다 네토르는 문득 로트렐리를 떠올렸다.
대체 걔는 뭐지? 로트렐리를 향한 적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가뜩이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네토르와 같은 학자들을 경계하고 증오하는 초월자들을 피하느라 힘겨웠는데 로트렐리로 말하자면 그 만나기 힘들다는 초월자들을 두 명이나 독대한 사람이다. 그리고 바다새를 갖고 있고, 그에 더해…….
‘바다의 주인을 구경할 수 있게 해주면 어떤가요?’
네토르는 아직도 기억한다. 사실,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그때의 광경을 잊지 못할 것이다. 바다의 주인을 무슨 이웃집 개 부르듯 언급하며 실제로 불러낸 모습을. 네토르는 미간을 좁혔다. 그러나 그의 근본적인 의문은 그곳에 있지 않았다. 메흐를 되살릴 수 없다는 게 다 무슨 소리이고, 그 사념체는 당최 무엇이란 말인가? 고개를 든 네토르는 창가로 비스듬히 들어오는 햇빛을 응시했다.
흰 빛무리 속에서 하얗게 빛을 반사하는 작은 먼지들이 한가롭게 부유하고 있었다. 밖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소음을 제외하고는 조용한, 한갓진 오후였다. 그럼에도 네토르의 가슴은 묘하게 비틀려 불편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로트렐리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모두가 ‘바다의 주인’이 죽었다고 말하지만, 네토르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사실 ‘메흐’는 그 이름을 ‘네르갈’로 바꾸어 지금도 살아있었다. 네토르의 의형제인 바로 그 ‘네르갈’로 말이다. 그는 그것을 지금까지 굳건히 믿고 있었다. 그러나 루루미의 단언으로도 흔들리지 않던 그 명제가 로트렐리의 등장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간 네르갈을 위해 네토르는 팔자에도 없는 모험을 강행하며 메흐의 파편이 스며든 이들을 족족 찾아내곤 했다. 검은바다도 그런 목표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우홉피아주에 의해 네르갈을 잃고 그를 찾는다는 이유는 부가적인 핑계다.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는데…….’
아마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때, 로트렐리가 메흐의 사념체를 불러내고자 파편들을 몸소 끌어당겼을 때 네토르는 모든 게 어그러졌다고 생각했다. 세계 곳곳에는 메흐의 파편이 있다. 다른 누군가로 태어나 많든 적든 그의 파편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네토르는 그런 사람을 찾아내 그들에게서 메흐의 파편을 회수했다. 좀 거칠지만, 확실한 방법으로는 파편을 가진 자를 죽이는 것이 빠르다.
그리고 그는 그것들을 네르갈에게 보내기 위해 간직하는 중이었다. 파편의 주인인 메흐가 버젓이 살아있으니 응당 주인에게 주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결론적으로, 네토르는 클레인스에게도 메흐의 파편이 있다는 것을 알고 검은바다에 접근했다. 중요한 것은 파편이다. 그것은 불편하게도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없고, 없다고 생각해도 불현듯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랬다. 그리고 확실히 파편을 갖고 있는 자라고 해도 그것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필요했고, 결정적으로는 그가 죽여야 했고….
여하튼 네토르는 그렇게 흘러 흘러 검은바다로까지 닿았다. 클레인스는 명백하게 메흐의 파편을 갖고 있는 녀석이었고, 그것이 꽤 벼려져 있기도 했다. 위험한 해적 일을 하고 있으니 죽은 뒤 파편을 거두는 것도 어렵지 않으리라. 그러나 로트렐리가 메흐의 사념체를 불러낸 이후, 그는 자신이 모아둔 파편은 물론이고 클레인스에게 있던 파편도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물론 최근에는 그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클레인스에게서는 아직도 종종 바다의 내음이 났다가 멎었다가 하곤 한다. 네토르의 입장에선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일 수밖에 없다.
이렇듯 로트렐리에 의해 모든 게 망쳐졌다면 그녀에게 적대감을 갖는 것이 맞을 텐데, 이상하게도 오히려 그런 배척은 이전보다 옅어졌다. 네토르는 이 모든 것을 전하고 정리하기 위해서는 이러나저러나 네르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불길한 자’, 그런 오명을 그가 하루라도 빨리 벗길 바라면서 말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의형제를 찾아야 한다는 목표에 관해서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네토르는 길게 날숨을 내뱉고는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뭐, 시간에 쫓기는 누구보다야 자신은 여유가 있는 편이니 조급해질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방을 나선 네토르는 복도의 난간 아래로 보이는 1층의 로비 소파에 헤더가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헤더의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다른 애들은?”
“클레인스는 랄티아 데리고 산책하러 갔고, 브레딕도 따라갔어.”
“랄티아가 그 둘이랑 산책을 갔다고? 별일이네.”
네토르의 말에 헤더는 어깨만 으쓱였다. 요즘의 랄티아는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헤더는 랄티아가 틀어박히기 전에 자신과 다퉜고, 좀 이상했다고 말했으나 그것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은 클레인스뿐이었다. 브레딕은 랄티아가 여기서 겪을 이상한 일이 뭐가 있겠냐는 태도였고, 네토르는 그냥 무관심했다.
그런 와중에도 랄티아는 알아서 계획을 짜서 일행들과 공유했기에 브레딕은 물론 헤더도 일시적인 컨디션 난조라고 여겼다. 중요한 점은 랄티아가 밖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네토르는 브레딕과 클레인스가 따라갔으니 알아서 하겠거니 생각하며 헤더의 맞은편에 있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럼 넌 여기서 뭘 하는데?”
재수 없게 들릴 수 있는 네토르의 어투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헤더는 유순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