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97)
바다새와 늑대 (296)화(297/347)
#140
화
“음, 고민?”
“무슨 고민?”
“그……. 내가 검은바다와 더 엮일 필요가 있나, 하는 고민 말이야.”
헤더의 말에 네토르는 가만히 눈썹만 치켜올렸다. 네토르는 ‘아, 그래?’ 하고 대화를 끝마치고 싶었으나 그렇게 한다면 기껏 편한 소파에 앉은 자리가 가시방석이 될 게 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떨떠름한 얼굴로 헤더를 보다가 물었다.
“그냥 들어달라고 말을 해라.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야?”
“웃겨, 딱히 그런 건 아니었거든? 그냥 때마침 네가 나온 거지.”
헤더가 볼멘소리로 투덜거리는 것에 네토르는 고개만 까딱여 턱짓했다. 어디 할 말 있으면 해 보라는 몸짓이었다. 그 모습에 헤더는 불쑥 짜증이 치솟았지만, 지금처럼 누구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기회는 세라무티에서 지내며 많지 않았다. 헤더는 상대가 네토르인 것이 유감스러울 뿐 대화 자체는 달가웠다.
“생각해봐, 난 아버지가 검은바다에 있으니 여태 그에 맞는 일을 해온 거지만, 지금은 아버지도 돌아가셨고, 클루스도 삼촌과는 완전히 척을 졌고…….”
“그래서 검은바다에 연관되지 않은 일을 하고 싶다?”
“그래. 마침 지금 시기가 딱 제격이기도 하잖아. 혁명단에 들어 와있고, 검은바다와는 접점이 끊겨가고….”
헤더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네토르는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 생각도 없었긴 하지만 말이다. 그는 헤더를 보며 약간 심드렁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려고 했으면 진작 떨어질 수 있었잖아. 지금까지 우리와 다닌 이유는 아닌 척해도 랄티아와 로트렐리를 생각해서 아니었나?”
“정확히 말하자면 로트를 위해서였지. 그 애에게는 빚진 게 있으니까….”
헤더는 느리게 말하고는 한숨을 내쉬며 소파 등받이에 몸을 파묻었다. 네토르는 그녀의 그런 방만한 자세가 에퀘야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혁명단과 지내면서 이런 것만 배웠군. 그는 헤더를 보며 소파 옆 탁상에 있는 견과류를 손에 올렸다. 바스락거리며 껍질을 까는 소리와 네토르의 느린 손짓을 보던 헤더가 입을 재차 열었다.
“그런데 랄티아 생각은 다른 모양이고. 난 그 애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솔직히 난 랄티아에겐 도움이 안 되는 모양이지.”
“그래, 그리고 진짜 실감하는데, 이 자리엔 차라리 브레딕이 있는 게 나았겠다.”
“보통 그런 걸 고민 듣는 중간에 대놓고 말하진 않지, 망할 놈아?”
헤더의 말에 네토르는 어깨만 으쓱였다.
“아직 얘기 안 끝난 거였어?”
“넌 정말 망할 놈이야.”
“알았어, 계속해.”
네토르는 껍질을 모두 깐 견과를 입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심드렁하다 못해 성의가 없어 가루가 된 모습이었다. 헤더는 그런 네토르를 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됐다, 망할 놈. 네 말대로 브레딕이 오면 그때 얘기해 봐야겠어.”
“아니면 더 나이 먹은 사람은 어떤가?”
헤더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에퀘야였다.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탓에 이미 알고 있던 네토르는 견과를 더 집어 껍질을 까는 것에만 집중했다. 헤더는 당황한 얼굴로 네토르를 보았다가 그것을 보곤 할 말 많은 얼굴로 질색을 했다. 에퀘야는 헤더가 앉은 긴 소파의 옆자리에 앉으며 웃었다.
“그래, 우리 혁명단으로 완전히 전향하겠다고?”
“꼭 그렇게… 보기엔…….”
헤더는 머뭇거리며 말을 흐렸다. 에퀘야는 헤더의 대답에 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기양양한 얼굴로 웃으며 다리를 꼬았다.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자세였다. 그것을 보자 헤더는 다시금 혁명단의 미래가 걱정되었다. 대체 이렇게 경계심이 없어서야 정보 보안이 정말 괜찮은 게 맞을까? 그런 헤더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퀘야는 입꼬리를 씨익 올려 웃으며 말했다.
“우리야 언제나 사람이 부족하니 네가 온다면 환영이지.”
“그, 아직 안 정했다니까요.”
“내 생각에 넌 혁명단이 더 맞는 것 같아. 그 어린애 뒤치다꺼리보다 말이지.”
“어린애 뒤치다꺼리라고 하지 마세요.”
헤더가 불편하다는 얼굴을 하자 에퀘야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 뭐, 어쨌든. 아직 시간은 있어. 하지만 그 애의 계획대로 수배된 마녀에게 소식을 전하게 되면 그땐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갈 거야.”
“……알아요.”
“그래, 내 말은, 결정을 빨리 내려야 한다는 뜻이지.”
“…….”
헤더는 이도 저도 아닌 얼굴로 에퀘야를 보며 머뭇거렸다. 혁명단에 몸담을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에퀘야가 이렇게 나오는 이상 자신을 놔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헤더도 혁명단이 그렇게 싫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헤더는 그렇다고 해서 과감하게 선택을 하기엔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헤더를 보며 에퀘야가 말했다.
“그거 알아? 결심과 실행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 그 전에 하는 걱정과 잡생각들이 그것을 어렵게 만드는 거지.”
그 말에 헤더는 자신 없는 얼굴로 에퀘야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견과나 깨작이며 먹던 네토르는 그들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존재를 상기한 듯 따라서 시선을 옮긴 에퀘야와 헤더에게 네토르가 입을 열었다.
“뭐, 둘이서 짝짜꿍 미래 계획 알차게 세워보시고. 나도 나가서 세라무티나 돌아보고 온다.”
“위험하지 않겠어?”
세라무티가 안정되고 있다고는 해도 불안한 게 사실이었다. 그들이 지내는 요 며칠간 광장에서는 갑자기 테러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네토르는 태연하게 눈썹을 들썩이며 턱짓했다.
“클레인스랑 브레딕이 랄티아 끌고 나갈 땐 그런 걱정 했냐? 그 녀석들보다 나 혼자가 더 안전해. 잊었어?”
네토르는 주머니에서 제국인 신분증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 그에 헤더는 금방 납득했다. 얇은 외투를 걸친 그는 가볍게 발걸음을 떼며 헤더에게 말했다.
“그리고, 다 좋은데, 확실히 결정하기 전까진 괜히 어린애들한테까지 그 이야기 말하진 마라.”
“웬일로 충고 같은 말을 하네. 근데 나도 그 정도는 이미 알아.”
“뭐, 그래. 다녀온다.”
네토르는 헤더에게 손을 내저어 보이고는 건물을 나섰다. 네토르의 뒷모습을 보던 헤더는 한숨을 쉬었다. 그런 그녀의 옆에서 에퀘야가 헤더의 손등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우린 마저 이야기해야지?”
헤더는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으나 이내 침착하게 에퀘야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