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98)
바다새와 늑대 (297)화(298/347)
#141
화
요새 우투그루가 이상하다.
제국으로 뱃머리를 향하자고 결정한 이후 우리는 검은 해변에서 충당한 물자를 갖고 다시 항해를 시작했다. 다른 문제는 없었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문제는, 앞서 말했듯 우투그루였다.
우투그루는 그간은 잠잠하다가 제국령에 점점 가까워지자 사람이 변해갔다. 나는 그가 무슨 제국령에 닿으면 안 되는 증후군이라도 가진 줄 알 정도였다. 하긴 그가 신경질을 부리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긴 했지. 나는 태연하게 생각했으나 은근히 우투그루와 파장이 맞지 않는 도멤은 그런 그가 거슬렸던 모양이다.
조타실에서 모여있던 중 결국 도멤이 진력이 난다는 듯 말했다.
“좀 진정하라니까.”
“어떻게 진정하는데? 단번에 들킬 거야. 넌 잡혀가고 우린 처형될 거라고. 어떻게 진정하란 거야?”
“왜 이렇게 비관적이야?”
도멤이 기겁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조타기를 붙잡고 말했다.
“그래서 당장 제국령에 정박한다고 하진 않았잖아.”
“그래서 간다는 게 게슈베르송이라고?”
“거기는 늘 뒤숭숭하니 몸을 숨기기 좋을 거라고 말한 건 너였잖아.”
“하지만…….”
우투그루가 무어라 말하려다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대충 그가 뭐라고 하려던 것인지 짐작했다. 제국과 가까운 곳이라는 거지. 게슈베르송은 중부 바다에 있는 곳이었다. 제국의 바로 아래에 있다는 말이었다. 중부와 동부 사이에 있는 제국의 수도 알라프라리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곤 하나 사실 제국의 근처기만 하다면 우리가 안심할 수 있는 곳은 어디도 없었다.
제국과 가깝기는 백려가 가장 가깝긴 했다. 하지만 백려는 지나칠 정도로 제국이 간섭하려 들기 때문에 위험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과 좀 거리가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여러모로 따져보았을 때 게슈베르송이 가장 좋을 것 같다고 결정하고 항해한 것이 불과 하루 전이었다. 우투그루가 한숨을 쉬었다.
“뒤숭숭한 정세는 몸을 숨기기 좋을 수 있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어. 뒤숭숭해진 방향을 잘 봐야지.”
“왜 이리 말이 많아? 게슈베르송은 시민들이 거의 전부 반제국파라며. 그럼 그 사람들 사이에 숨어드는 건 어렵지 않을 거 같은데.”
“우리가 언제는 바라던 대로 된 적이 있냐?”
그 말에는 나 역시 조금 회의적으로 돌아설 뻔했으나,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언제 한 번은 원하는 대로 되겠지. 그리고 이제 와서 뭘 어쩌게? 다시 검은 해변으로 돌아갈까?”
“……됐어, 망할.”
우투그루는 도통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나를 노려보듯 쳐다보다가 홱 고개를 돌렸다. 그러니까 괜한 말을 하고 그런담. 어쩐지 그간의 일로 사람을 향한 나의 신뢰와 애정은 나날이 하향 곡선을 그리는 것과는 달리, 일행을 향한 무던함은 늘어가는 것만 같았다. 사실 이미 치여오는 고민이 많아서 반대급부로 오히려 아무런 생각을 안 하려 드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키이엘로의 어깨에 앉은 발카를 보고 짧게 날숨을 내뱉었다. 그래, 정말로 신경 쓸 게 많으니까 오히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 물자 목록을 적는 키이엘로의 옆에서 기웃거리며 오늘 식사를 고민하던 도멤이 물었다.
“그래서, 게슈베르송까지는 얼마나 걸려?”
“며칠은 더 가야 해. 그렇지, 발카?”
나는 부러 바다새를 부르며 물었다. 그러나 발카는 부리를 꾹 다물고 있을 뿐 별다른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떨떠름하게 새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런 나와 발카를 보고 키이엘로는 어색한 얼굴을 했다. 일행 중 거의 유일하게 발카와 나의 서먹함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을 고르라면 아마 그일 것이 분명했다.
나는 서둘러 말을 돌렸다.
“음, 어쨌든 검은 해변을 나와서 들렀던 섬들에서는 별문제 없었잖아.”
“우리의 용모파기가 나돌고 있었지만 말이지.”
“그것도 뭐 그다지 소용은 없어 보이던데.”
나는 키이엘로의 외모를 그려둔 수배지를 떠올렸다. 그간 봐온 어떤 사람보다도 아름다운 그의 외모를 십 분의 일도 표현하지 못하는 조악한 그림이었다. 뭐라고 줄줄 쓰여 있는 인상착의에 관한 설명은 수배자를 설명하기보다 웬 찬미하는 희곡이라도 써둔 줄 착각할 만한 내용이었고 말이다. 수배지를 유심히 보던 사람들이 ‘이런 사람이 존재하긴 하냐’, ‘여기 써진 게 진짜 다 맞으면 차라리 내 남편 삼는다’ 따위의 비아냥을 하는 것을 들은 입장에선, 솔직히 좀 우스울 정도였다.
나야 눈동자만 보면 신원이 특정되는 상황이고, 우투그루나 도멤 같은 경우엔 키이엘로만큼 화려하진 않은 부가설명 탓에 오히려 신원을 특정하기 어려웠다. 금발과 다갈색 머리를 한 남자 둘. 당장 어느 섬이든 가서 둘러보면 그런 사람들쯤이야 수없이 보게 되니 말이다. 물론 과하게 얼굴이 아름다운 녀석과 함께 다니면 좀 특정되기 쉽겠지만.
어쨌든 나는 말을 이었다.
“내 눈이야 내가 장님행세를 하면 될 일이야. 발카도 안 내보이고, 키이엘로 얼굴도 가리고.”
“맞아. 키이엘로 얼굴은 꼭 가려야 해. 뭐라고 했었지? ‘침몰하는 석양빛의 머리카락과 깊은 눈매, 날렵하고 미적인 턱에’…….”
“하지 마.”
도멤이 장난스럽게 말하는 것에 키이엘로는 얼굴을 붉히며 끙 소리를 냈다. 나는 도멤과 함께 낄낄거리며 그를 놀리다가 우투그루를 보았다. 그는 여전히 탐탁잖은 얼굴이었는데, 우리가 깔깔대며 노는 것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부러 입을 다물고 있는 것 같았다. 저 녀석도 요사이 참 많이 변했단 말이지. 사람이 변하면 죽을 때라던데.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아무튼, 설령 들킨다고 해도 우린 아예 전면전을 위해서 제국 가까이로 가는 거잖아. 검은바다도 랄티아도 제국으로 향했다고 하니까. 검은바다는 몰라도 랄티아 그 애는 뭔가 생각이 있겠지.”
“랄티아를 찾으면 그 애에게 브레딕의 행방도 묻고?”
“그래. 아마 랄티아와 같이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어쨌거나 내 동생은 무턱대고 제국으로 갈 만큼 바보는 아냐. 걔도 너만큼 걱정이 많다고.”
내 말에 우투그루는 손을 내저으며 등을 벽에 기대앉았다. 나는 그것을 보며 입을 다물고 조타나 마저 보았다. 우투그루가 저런다는 것은 ‘알았으니 네 일이나 봐라’라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 도멤은 먼저 식사를 준비하겠다며 선실로 내려갔고, 키이엘로는 낚시를 도전하러 갑판으로 향했다. 나는 그가 물고기를 낚아올 거라곤 전혀 기대하지 않았으므로, 우투그루에게 물자를 절약할 계획을 수립하라고 선실로 떠밀었다.
그렇게 조타실엔 나와 발카만 남았다. 나는 그제야 참아왔던 한숨을 들으란 듯 길게 내쉬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