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299)
바다새와 늑대 (298)화(299/347)
#142
화
“발카, 뭐가 문제야?”
『뭐가?』
“너 요즘 이상해, 알아?”
내 말에 발카는 심기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전에는 내가 말을 실수했던 것 같아. 그것 때문에 그러는 거지? 내가 미안해. 인정할게. 내가 말을 함부로 했지.”
『나를 원치 않았다는 소리 말이야?』
발카는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그러나 정말로 내게 되묻기 위해 말하기보단 그것을 되짚는 것에 가까웠다. 바다새는 의외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건 됐어, 사실이잖아. 네가 나를 기대했겠어? 내 존재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았는데.』
“그럼 왜 그렇게 토라져 있는 건데?”
『네가 날 원해서 찾아온 것도 아니지만, 내가 널 찾아간 것도 아냐, 로트렐리.』
발카의 말에 나는 조금 뜨끔한 기분을 느꼈다.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그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나와 발카의 만남 자체는 지극히 우연적이었고, 발카가 내게 함께하기를 먼저 제안하기는 했으나 결국 그걸 받아들인 것도 나였다. 나는 현재 상황에 분노하긴 했으나 그때에는 내가 최선의 선택을 했단 걸 부정하지 않았다. 나는 침묵하다가 물었다.
“여태 그걸 말하고 싶어서 그러고 있었단 말이야? 아니지?”
『넌 몰라……. 넌 알 수 없을걸.』
“그러니까 대체 뭘?”
『네가 점점 내 곁에서 벗어나는 것 말이야!』
발카가 터뜨리듯 외쳤다.
『넌 이제 키를 잡으면서 내게 의지하지 않잖아. 넌 이제 내가 아니어도 다른 인간들과 어울리잖아! 바다를 횡단하는 걸 더는 두려워하지 않잖아!』
얼핏 애절하게까지 들리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럼 내가 무슨 천년만년 발카에게 의존하고 발카와만 지내고 살아야 한다는 뜻인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발카,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원래 사람은 그래. 시간이 지날수록 경험의 폭이 늘어나고 인간관계도 생기고 새롭고 낯선 일에 내성이 생기는 법이라고. 넌 내가 언제까지 제 앞가림도 못 하는 어린애로 있기를 바라?”
『넌 내가 더는 쓸모없길 바라는 것 같아.』
그 말에 나는 허망한 얼굴을 했다. 이게 무슨 소리람? 울컥하려는 심정을 다스리며 나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네가 꼭 쓸모가 있을 필요는 없어. 넌 그냥 내게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정말이야, 발카.”
『……내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닌데.』
발카는 토라진 아이처럼 웅얼거렸다. 불현듯 나는 바다새가 더 이상 나보다 어른스럽거나 연륜이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를 일이었다.
“네가 바라는 게 뭔데?”
『나는 네…….』
발카는 무어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저절로 속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래서는 전혀 대화가 되지 않잖아……. 또다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건 마치… 그간의 발카와 나의 주도권이 완전히 뒤바뀐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간은 내가 발카를 필요로 하고 원했다면 지금에 와서는 발카가 나에게 집요하게 구는 것이다.
발카의 말대로 나는 이제 발카가 그렇게 간절할 정도로 필요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지금 옛날의 그 섬을 나와서, 조악하지만 나의 배와 나의 일행들을 데리고 항해를 하고 있었다. 발카의 존재가 있어야 바다와 연결될 수 있었던 때와는 차이가 있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그것을 새삼 깨닫자 그 사실이 꽤 어색하게 다가왔다. 그 기묘한 감각을 애써 무시하고 나는 입을 열었다.
“발카, 나는 솔직히 네가 나한테 뭘 기대하는 건지 모르겠어. 전에는 내가 심한 말을 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고, 이렇게 대화라도 하려고 치면 입을 다물잖아. 말을 안 하면 내가 네 생각을 어떻게 알아?”
『넌…. 나는, 나도 말하고 싶어! 하지만 넌 무슨 이야기든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것 아냐.』
“당연히 네가 말하는 내용에 따라 내 반응은 달라지겠지! 하지만 난 지금 너랑 소통을 하려고 하는 거잖아. 널 이해하려고 하는 거란 말이야.”
그러나 내 말에도 발카는 꿋꿋이 부리를 닫고 있었다. 내 참을성이 거의 바닥날 즈음에야 발카가 입을 열었다.
『난 네가… 날 믿어주면 좋겠어.』
“난 너 믿어. 전에 폭풍이 어쩌고, 했던 거 때문에 그래? 그건 나도 미안해. 난 널 못 믿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전보다 나아지고 싶어서 그런 거야.”
『그게 아냐! 난…… 난 네 어미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어.』
“뭐?”
『넌 그녀가 아무리 무능해도 믿고 의지하지. 나는 너와 지내면서 그것을 몇 번이고 보았어. 넌 절대 날 그렇게 여겨주지 않잖아.』
그거야 당연한 말이었다. 나의 어머니 루셀라는 정말 나의 어머니였고, 그와 달리 발카는 어머니보단……. 친근하고 가까운 어른 같았고, 나아가서는 친구 같았고, 지금은 차라리 내가 책임져야 할 존재 같았다. 그건 확실히 발카가 바라는 것과 다른 방향이지만…. 나는 당황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로 발카를 보았다.
내가 어렸을 때라면 바다새는 원하던 대로 부모님의 대역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발카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 자랐고, 지금은 성인인 것에 더해 부모님의 존재가 크게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발카를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과 함께 묘하게 억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넌 그게 반년 전에 비극적으로 어머니를 잃은 나한테 할 소리야?
하지만 아무리 나라고 해도 발카에게 그렇게 윽박지르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당최 뭐라고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내게 발카가 말했다.
『됐어, 이미 알고 있었어. 나는 짐승이고 사람인 너에게 그런 걸 기대할 수는 없다는 걸.』
“아니…….”
나는 당혹스러운 생각을 애써 정리하며 발카에게 무어라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도멤이 조타실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 더 빨랐다. 노크 후에 문을 연 도멤은 고개를 쑥 내밀고 나를 불렀다.
“로트, 밥 먹어야지. 선실로 가자.”
“……알았어.”
도멤이 먼저 선실로 향하자 나는 발카에게 팔을 내밀었다. 발카는 순순히 내 팔뚝 위로 날아와 앉았다. 나는 바다새를 보며 작게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발카. 난 더는 부모님이 필요하지 않아. 누군가로 두 분을 대체하고 싶지도 않고. 그리고 어머니는 무능한 분이 아니었어.”
『…….』
“그 밖의 관계도 많은데 왜 굳이 그런 것을 바라는지도 모르겠어. 난 어린애가 아냐, 발카.”
『봐, 너는 몰라.』
발카는 조용하게 말했다. 약간 지친 목소리였다.
『난 매번 시도하고 좌절해. 때론 대화하고 소통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게 있는 법이야.』
나는 왠지 그 말이 정말 듣기 거북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발카에게 ‘네가 당치도 않은 걸 바라니까.’하고 말하기에도 뭣했다. 그게 과연 소통일까? 나도 내 의견을 발카에게 강요하는 게 아닐까?
나는 점점 이런 일의 적정선을 알 수 없게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한정적인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립인지 단순히 내 사고력의 확장인지도 분간할 수 없다는 점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나는 발카를 데리고 조타실을 나서며 생각했다. 어쩌면 발카의 말이 맞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어서 그러는 걸지도 몰라.
우리는 매번 시도하고 좌절하지. 대화하고 소통하려고 해도 좁힐 수 없는 거리감이라는 건 존재하는 걸지도 몰라. 하지만 은연중에 나는 그것을 향한 반골 의식이 들었다. 그런 거리감이 존재한다고 한들 정말로 평생 그 간격을 좁힐 수 없는 걸까? 과연 정말로 그 어떤 노력을 다해도 그것을 해소하지 못할까?
발카와 나 사이에 부족한 게 대체 뭘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