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
바다새와 늑대 (2)화(3/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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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하하, 내 자리?”
나는 장난치지 말라며 그녀의 부리를 톡 치고 다시 부둣가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꽤 가까이 온 그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투그루와 그는 과연 한 핏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색조부터 분위기까지 서로 전혀 닮은 부분이 없었다.
그가 서늘한 그늘을 지나치자 쨍한 햇빛이 기다렸다는 듯 그 위로 내려앉는 것이 마치 대단한 조명효과라도 되는 것 같았다. 약간 탄 피부는 다른 해적들보다 매끄러워 보였고, 얼핏 적갈색을 띠는 검은 머리는 햇빛을 받을 때마다 불타는 것처럼 붉은색으로 보였다. 진한 눈매 안의 눈동자 역시 검은색이었다가 빛을 받는 순간 붉은 가루를 뿌린 듯 변했다.
붓으로 그린 듯 날렵한 눈매가 그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요사스럽게 휘어졌다. 아무렇게나 잡아맨 것 같은 짐 꾸러미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일어나면 그의 키만 할 것 같은 검은 색의 커다란 늑대가 짐들을 등에 얹고 그의 뒤로 따라오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끌었다.
부둣가의 사람들이 모조리 그를 힐끔거리며 감탄했다.
진짜 둘이 안 닮았다. 클루스도의 길쭉한 피를 잘 물려받은 듯이 키가 큰 것만이 우투그루와의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형제가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그는 클루스도와 똑 닮은 색소를 갖고 있었다. 우투그루는 모계고 저 녀석은 부계인가? 나는 시답잖은 것을 퍽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우투그루도 나름 잘생긴 편이었다. 저 남자를 보고 나니 약간 빛이 죽는 것 같긴 했지만.
디겔 아저씨가 그를 향해 후크를 흔들며 외쳤다.
“키이엘로! 오랜만이다!”
“오랜만이에요.”
키이엘로라고 불린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절로 감탄을 내뱉으며 내 어깨의 발카에게 작게 말했다.
“그래, 만약 그런 자리가 있다면 인정해야겠다.”
발카가 키득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저거야말로 미친 외모였다.
“저 녀석이 있는 한 나는 이제 얼굴에 대한 칭찬은 받지 못할 게 분명해.”
정말로 깜짝 놀랄 만큼의 미인이 거기 있었으니까 말이다. 적어도 이 세상 남자의 얼굴은 저 이상 아름다울 수 없을 것이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클루스도와 닮은 색과 눈썹이나 입 같은―사실 클루스도의 입은 수염에 가려져서 잘 보이는 편이 아니었다―것을 제하면 그는 제 가족과 궤를 달리하는 요사스럽고 화려한 사내였다. 장신구로 꾸민 것이 아닌데도 그랬다.
나는 침착하게 생각했다. 맨날 꼴뚜기들만 보다가 사람을 보니 눈이 적응을 못 하는군.
『거봐, 내 말이 맞지?』
그래, 이 도도한 새 같으니. 나는 뭐라 쏘아붙이려다 옆으로 붙은 어떤 선원의 기척에 말없이 그녀를 흘겼다. 혼잣말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싫으니까…….
어느새 배로 올라온 초면의 부선장은 하나둘 사 온 것들을 내려놓고 풀었다. 종이로 포장된 치즈, 버터, 빵, 파이부터 항해하며 뺄 수 없는 사과, 라임, 오렌지, 레몬, 자몽 등의 과일. 그리고 가장 큰 한 짐은 몽땅 진한 색의 유리병에 담긴 럼주와 보드카 등의 술이 한가득이었다. 계속해서 나오는 식료품과 기타 물품, 무기…….
유독 사과가 많은 것 같긴 했지만, 그럭저럭 항해에 필요한 것을 모두 챙긴 것 같았다. 짐이 갑판의 한구석을 채워가는 동안에도 특별한 환대는 없었다. 보통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다가 귀환한 이가 있으면 반갑게 인사를 하지 않나? 살가운 인사라고는 디겔이 한 것뿐이라 나는 그들을 이상하게 보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뭐, 내 알 바는 아니지.
선원들이 우르르 몰려가 각자 짐을 옮겨 정리하기 시작했다. 늑대의 등에 올려두었던 것들을 익숙하게 내려놓던 키이엘로는 어느 정도 짐이 내려지자 허리춤의 가죽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클루스도에게 와서 건넸다.
“잔돈입니다, 선장님.”
“……예상보다 적게 남은 것 같은데?”
돈주머니를 확인한 클루스도가 그렇게 말하자 부선장은 잠시 입을 딱 다물었다가 혀로 입술을 한 번 축이고 말했다.
“아……, 그게 말이죠, 요즘엔 육지에서 할 일이 많더라고요…….”
“……딱히 따지진 않으마.”
모호한 눈으로 키이엘로를 훑어본 클루스도가 이내 알만 하다는 얼굴로 말하자 키이엘로는 민망한 얼굴로 헛기침했다. 옆에서 우투그루가 그를 경멸하는 것처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들이 서로 눈이 마주치자, 우투그루가 맹렬하게 말했다.
“더러운 짓거리만 하고 다니지 마라.”
씹어뱉는 것 같은 말투만 아니면 진지하게 충고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다. 우투그루의 말에 키이엘로는 잠시 짜증을 참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가 여유롭게 고개를 설설 저었다. 솔직히 말해, 참는 기색치고는 비아냥거리는 어투였다.
“걱정하지 마, 난 깨끗하게 놀거든.”
그러자 우투그루가 더욱 인상을 찌푸렸다. 나 역시 조금 가까이 온 키이엘로에게서 슬쩍 한 발짝 멀어졌다. 맥락상 초면의 부선장이 육지에서 무엇을 하고 왔다는 것인지 예상이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가까워진 키이엘로에게서 풍기는 미묘한 사과 향이 어쩌면 어딘가에서 묻어온 향수일 수도 있었다.
내 기척에 고개를 돌리던 키이엘로가 날 발견했는지 눈썹을 휘어 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옆으로 다가온 늑대가 나와 발카를 보더니, 콧등을 찡그렸다. 나는 그걸 보며 그 늑대의 얼굴이 상당히……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키이엘로는 내 어깨에 앉아 있는 발카와 날 몇 번 번갈아 보더니 경계를 한 꺼풀 덮은 것 같은 미묘한 얼굴로 말했다.
“이쪽은 처음 보는 얼굴이네요.”
예상치고는 상당히 정중한 목소리로 키이엘로가 운을 뗐다. 내가 선원인지 객식구인지 재보는 눈이었다. 그에 클루스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 전에 만난 신입이다. 우리가 실수로 이 녀석의 배를 포격해 버렸지 뭐냐.”
“신입이라고요?”
“그래. 찾는 해적이 있다고 했거든.”
클루스도의 목소리에 나는 일순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기분이 침잠하기 시작했다. 뱃멀미를 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키이엘로는 그걸 듣고야 알았다는 듯 눈을 옆으로 스르륵 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우홉피아주를…….”
“야! 로트!”
나는 그들이 뭐라 할 틈도 없이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도멤이었다. 나는 그가 이렇게 반가운 적이 없었던 것 같다고 생각하며 다시 고개를 돌려 세 부자를 보고 말했다.
“도멤이 부르네요. 저는 이만…….”
그렇게 말하고 걸음을 옮기는데, 클루스도가 턱하고 내 어깨를 붙잡았다. 젠장! 나는 나도 모르게 쭈뼛 일어선 어깨를 간신히 누그러뜨리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는 여전히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었다.
“도멤이 부르는데…….”
“선장보다 도멤이 중요한 게냐?”
그건 당연히 아니죠……. 급기야 도멤이 내가 붙들린 것을 보고 급한 것이 없다는 듯 가까이 와 키이엘로와 반가운 듯 손을 마주치고 있었다.
나는 울렁거리는 속을 다스리다가 고개를 가볍게 까딱이며 도멤을 가리켰다. 네, 해결됐네요. 그러자 클루스도가 껄껄 웃으며 내 등을 팡 때리고―등짝에 불나는 줄 알았다.― 키이엘로에게 말했다.
“음! 이번 신입 로트라고 한다. 친하게 지내라. 로트, 이 잘생긴 녀석은 내 아들 키이엘로 트라페다. 우투그루와 함께 부선장을 맡고 있지.”
“어―, 난 키이엘로라고 해.”
“……로트.”
클루스도의 기대에 부응할 생각인 듯 어색하게 손을 내미는 키이엘로의 모습에 나는 머쓱함에 몸을 뒤로 빼고 싶은 걸 필사적으로 참으며 그의 손을 붙잡고 강하게 한 번 흔들었다. 불에 델까 두려운 것처럼 얼른 손을 떨어뜨리자 키이엘로는 슬쩍 눈썹만 위로 올렸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도멤이 그의 뒤에서 우리를 마구 비웃고 싶은 것처럼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일그러뜨리고 입을 꽉 막고 있었다. 나는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슬쩍 주먹을 들어 보여주었고, 도멤은 곧장 표정 관리를 했다. 진작 그랬어야지. 우투그루는 클루스도의 옆에 서서는 메뚜기가 서로 인사하는 걸 보는 얼굴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젠장, 그따위로 쳐다보지 마, 나는 쏘아붙이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애써 딴청을 부렸다.
“음, 그래서 우홉……, 그 녀석들을 찾는 이유가 있대요?”
갑작스럽게 클루스도에게 묻는 키이엘로의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내 눈치를 보고 있었던 듯, 고개를 들자마자 마주친 눈이 빠르게 클루스도에게로 돌아갔다. 내가 조금만 더 둔했다면 눈이 마주친 지도 몰랐을 것 같은 반사 신경이었다.
그나저나 이 녀석 방금 굳이 우홉피아주의 이름을 말하지 않은 건가……? 내가 불편해하는 걸 알고? 아니, 그럴 리 없지. 자의식과잉 예방하고 건강한 삶 되찾자, 하고 속으로 되뇌고 있을 때였다.
“그건 본인에게 묻는 건 어떻더냐?”
우라질. 클루스도는 어른이 아이들의 관계에 섣불리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물론 우리가 꼬꼬마 애들이란 말은 아니지만, 그러니까, 적어도 스무 살 이상 먹은 애들끼리 대화를 하든 말든 주책 부리며 상관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의 말에 키이엘로의 시선이 내키지 않는다는 듯 느릿하게 내게로 향했다. 아니, 이 녀석도 별로 내키지 않는 것 같은데 왜 굳이 클루스도의 말에 따른단 말인가? 이게 그건가? 상명하복?
나는 잠시 멀뚱히 불씨가 일렁이는 것 같은 그의 검은 눈동자를 보고 있다가 도멤이 작게 야, 하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바보처럼 조금 더듬거리는 말씨로 입을 열었다.
“아, 그, 동생을 찾으려고.”
클루스도가 날 걸음마 떼는 아기를 보는 것처럼 흐뭇하게 보았다. 그 얼굴은 진짜 짜증 났다……. 클루스도는 이만하면 되었다 싶었는지, 헤죽헤죽 웃으며 마저 대화하라며 걸음을 옮겼다. 자연스럽게 따라나서려던 키이엘로를 나와 도멤 사이에 밀어 넣듯 세우고는 말이다.
그런 키이엘로를 비웃듯 우투그루가 클루스도의 뒤로 따라붙으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멍하니 그가 선장실로 향하는 것만 보고 있는데, 귓가에서 들리는 날갯짓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여태 조용히 있던 발카였다. 내가 그녀를 보며 어깨를 으쓱이는데, 발카의 시선은 내가 아니라 키이엘로의 옆에 꽂혀있었다. 검은 늑대가 노란 눈을 빛내며 발카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잠시 두 동물을 보다가 슬쩍 발카를 품에 안았다. 발카가 순순히 당할 새는 아니지만, 그래도 저 늑대가 설마 공격하진 않겠지.
“텐.”
그때 나무라는 듯 작게 읊조린 소리에 늑대가 킁, 하며 숨을 내뱉고는 고개를 돌렸다. 키이엘로가 잘난 얼굴을 민망한 표정으로 뒤덮고 제 목덜미를 문지르며 말했다.
“미안, 내 늑대가 새를 별로 안 좋아해서……. 나중에 단단히 말해둘게.”
“……부탁할게.”
근데 사람 말로 말한다고 늑대가 알아듣기나 하나……. 나는 현명했기 때문에, 이 말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저 어색한 얼굴로 대꾸하는데, 도멤이 나와 키이엘로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낄낄거렸다.
“아이고, 사회성 없는 놈들 둘이 있으니 똑같아 보인다, 야!”
아니. 전혀.
키이엘로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 도멤을 보다가 이내 그의 얼굴을 손가락만으로 밀어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몇 번 이리저리 굴리던 그는 한숨을 쉬고는 도멤의 팔에서 빠져나왔다. 사실 그가 도멤보다 훤칠하게 컸기 때문에 도멤의 팔을 걷어내는 건 쉬워 보였다.
“오랜만이야, 도멤.”
“어색하게 말고, 우리 좀 즐겁고 유쾌한 말로 인사하면 안 될까?”
“……아직 잇몸은 튼튼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