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00)
바다새와 늑대 (299)화(300/347)
#143
화
발카는 그 이후로 내게 필요할 때가 아니고서는 별달리 말을 걸지 않았다. 나 역시 발카에게 말을 걸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행히 발카와 나 단둘만 있는 항해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발카의 일을 쉽게 의식의 뒤편으로 밀어 둘 수 있었다. 도멤이 한 요리로 끼니를 해결하며 우리는 자질구레한 수다나 떨었다.
사실 이야기할 소재가 항상 넘쳐나는 편은 아니었다. 같이 지내고 있는 데다 늘 비슷비슷한 항해를 하다 보니 새로운 일이라곤 그다지 없는 편이었다. 검은바다에 있을 적, 시도 때도 없이 위험한 바다에서 전투를 해야 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평화로움이었다. 종종 나오는 서로가 모르는 각자의 옛날이야기가 파편적으로 나오거나 오늘도 키이엘로가 물고기를 하나도 잡지 못했다, 특훈이 필요한 것 아니냐, 하는 시답잖은 이야기뿐이었다.
그때, 식탁을 정리하는 도멤의 어깨 위에서 요르문간드가 기웃거리자 키이엘로가 한숨을 쉬었다.
“뭘 그렇게 움찔거리는 거야?”
“움찔거리는 거였어? 난 춤 추는 줄 알았는데.”
내 어깨가 작은 파티장이 된 줄 알았지. 도멤의 능청스러운 말에 우투그루는 그게 말이 되냐는 식으로 눈썹을 치켜올렸다. 나는 그 뱀들이 발카보다도 더 거북했기 때문에 눈만 흘겼다. 그런 내 시선에 흰 뱀 요르는 몸을 움츠렸으나 검은 뱀 간드는 오히려 보란 듯 고개를 떳떳이 들어 올리며 말했다.
『우리가 너희에게 말해줄 수 있는 게 생겼으니까.』
“음~ 또 그 초월자 이야기야? 알았어~.”
도멤이 귓등으로도 안 들으며 마저 식탁을 정리했다. 우투그루 역시 치워진 식탁을 닦으며 눈을 굴렸다.
“저 뱀들은 뭐가 문제래? 원래 다들 나이 들면 저렇게 뭔가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나?”
“그 말 되게 웃기다.”
나는 우투그루의 말에 무심코 웃어버렸다. 우투그루야 검은바다에서 있었을 때부터 나이 지긋한 사람들을 자주 상대해왔기 때문에 저 말이 더 의미심장하게 들려왔다. 사실 세계의 뱀은 단순히 나이가 들었다고 보기엔 너무 까마득한 나이지만. 그런 와중 키이엘로만이 느긋하게 말했다.
“그래도 궁금하지 않아? 뭘 저렇게 말하고 싶어 하는지….”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말 몰라?”
“고양이가 왜 죽어?”
“맞아, 격언이라지만 너무 잔인하다.”
아니, 그 문제냐고. 나는 키이엘로와 도멤을 떨떠름하게 보았다가 우투그루를 보았다. 그는 시큰둥한 얼굴로 나와 뱀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더니 어깨를 으쓱이곤 말했다.
“그래서 뭐, 들어보자고?”
『그래! 우리 이야기를 들어!』
요르가 얼른 호응했으나 내가 흰 뱀을 쏘아보자 이내 기세가 죽었다. 그때 간드가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메흐가 신을 죽인 이후 세상이 어땠는지 알고 싶지 않나? 단순한 옛날이야기야. 너희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 그 어디에도 없는.』
그 말에 도멤과 우투그루 역시 입을 다물었다. 모르긴 몰라도 시간을 때울 거리가 필요하기도 했고, 솔직히 궁금하기도 했으니까. 나는 간드를 응시하다가 문득 도멤이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에 나는 곧장 좀 미안해졌다. 괜한 일로 친구가 내 눈치를 보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속으로 한숨만 내쉰 나는 먼저 물었다.
“지금보다 땅덩어리가 넓었다며? 그거 외에 뭐가 더 있어?”
내 물음에 간드는 낮게 웃으며 말했다.
『오, 당연하지. 원래부터 땅이 넓었던 게 아니야. 신을 죽인 이후에 메흐가 바다의 수면을 낮춰 물밑의 땅을 들어 올린 것이다. 많은 이들이 모르는 사실이지.』
우리는 간드의 말에 눈만 끔뻑였다. 솔직히 아무리 초월자라지만 일개 개인이 해수면의 높이를 좌지우지했다는 이야기는 실감이 안 나서 ‘그런가 보다’ 싶기만 했다. 그게 가능한가? 같은 감상을 느낀 키이엘로가 간결하게 물었다.
“다른 초월자들은 못 하는 것 같던데. 바다의 주인쯤 되면 그런 게 가능해?”
『아니지. 메흐는 바다의 주인이 되었기에 그것을 할 수 있던 게 아냐. 바다의 높이를 낮췄기에 바다의 주인이 될 수 있던 것이다.』
『바다의 주인에 관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
간드의 말을 요르가 받았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우투그루는 찜찜하다는 얼굴로 뱀들을 보다가 물었다.
“그럼 지금의 해수면 상태가 신이 살아있던 때와 같은 상태라고?”
『그래.』
『하지만, 아니. 전지전능한 신이 있을 적 해수면이 높던 이유는 신이 바다에 그 거대한 몸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희도 알지? 컵에 물을 붓고, 그 안에 물건을 넣으면 물건의 부피만큼 물이 넘치지 않더냐. 그 원리처럼.』
오…. 이 바다가 신의 반신욕 욕조였다니. 꽤 새로운 이야기로군. 나는 뱀들의 이야기를 반쯤 흘려들으며 딴생각을 했다. 바다가 짠 이유를 갖고 물고기가 흘린 눈물이니 어쩌니, 하던 놈들도 있던데 사실 신의 목욕물이라 그런 거였다면? 시답잖은 생각을 하는 나와 눈을 마주친 도멤은 무슨 생각을 하냐는 듯 내게 뱀들을 눈짓했다. 마치 수업 시간에 딴짓하지 말라며 눈치 주는 친구 같았다.
『신이 죽고, 그 시신의 사이에서 우리가 태어났지.』
『우리에게 신살자의 힘을 나눠준 메흐는 대신 우리의 지혜를 나눠 가졌다. 그리하여 그는 신이 창조물을 더 쉬이 다루기 위해 제 몸을 바다에 담그고 땅을 잠기게 한 채로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극적이네.”
내 말에 간드는 고개만 끄덕였고 요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오한을 느끼는 것 같은 몸짓이었다.
『그래. 그 극적인 분노…. 그는 진정 누구에게도 통제되지 않는 자였다. 신의 만행을 알아낸 그는 다시금 분노했어. 그리하여…… 해수면을 낮췄지.』
“그러니까 어떻게? 그냥 빡쳐서 ‘뿅’ 하니까 해수면이 알아서 꺼져준대?”
“로트, 말 좀.”
“음.”
도멤의 지적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키이엘로가 웃으며 말했다.
“왜, 난 로트 말하는 거 재미있는데.”
“키이엘로, 로트의 깡패 말투에 적응해버린 거야?”
“이젠 가끔 감명 깊을 정도야.”
“놀리는 건지 감탄하는 건지 정확히 해.”
내가 짐짓 위협하는 어투로 말하자 키이엘로는 어깨만 으쓱이며 입을 다물었다. 그런 우리 사이에서 우투그루가 요르문간드에게 물었다.
“그래서, 로트렐리의 요점은 이거지. ‘어떻게’ 했는데?”
『우리를 순환시켰다.』
“…….”
우리는 세계의 뱀이 한 말에 잠시 침묵했다. 그러니까, 저 뱀들이 원래는 굉장히 거대하고 서로의 꼬리를 물고 빙글빙글 돈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냥 쟤네가 돌기만 하면 바닷물이 알아서 줄어든다고? 우리는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수구 같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물의 소용돌이…….
우리가 하는 생각을 요르문간드도 알아챈 것 같았다. 과연 세계의 뱀이었다. 신통방통했다.
『우리가 순환하는 곳이 중요한 것이다!』
『너희의 무지함이 무례할 정도다.』
“뭐래.”
내 짧은 대꾸를 끝으로 요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푸른 사막의 위에서 순환했다.』
“푸른 사막?”
『그래. 망망대해가 끝도 없이 펼쳐져 거대한 우리의 몸으로 본 시야에도 땅끝 한 자락 잡히지 않는 드넓은 바다.』
“그냥 아무 바다는 아닐 것 같은데. 마땅한 위치가 있는 거야?”
『물론이다.』
그에 나는 전에 검은 해변에서 만났던 페낭가란을 떠올렸다.
「됐어, 너는 꽤 맛있어 보이는군. 너를 잡아먹고 그 뱀도 끌고 가면 될 일이다.」
‘…끌고 간다고? 어디로?’
「푸른 사막, 깊고 어두운 심해로…….」
원래 ‘푸른 사막’이란 뱃사람들이 망망대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었다. 푸른 물결만 펼쳐진 곳이 마치 푸른 모래로 들어찬 사막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페낭가란의 그 말을 들었을 때도 난 그저 ‘바다에 네놈을 묻어 버리겠다’ 정도의 위협으로 생각했지 정말로 존재하는 어떤 지리적 지칭일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뭐, 그런 곳이 존재한다고 쳐. 그럼 왜 그 위에서 순환한 거야?”
『일종의 봉인이고 바깥 것들을 보호하는 방벽이었지.』
“너희가?”
『그래, 우리가.』
키이엘로가 물었다.
“무엇으로부터?”
『검고 까마득한 것.』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것.』
『두려워하기도, 기꺼워하기도 하는 것.』
『늦든 빠르든 결국 모두에게 찾아가는 것.』
스무고개 같은 말이 오가는 것에 내가 질린다는 얼굴을 하는 것도 잠시였다. 가만히 그것을 듣던 도멤이 중얼거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