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01)
바다새와 늑대 (300)화(301/347)
#144
화
“죽음?”
『그래.』
“죽음이 물을 빨아들이고 있었다고?”
“아니, 애초에 죽음이라는 게 어떤 형태로 실존할 리가 없잖아.”
우투그루가 날카롭게 지적했으나 뱀들은 우투그루의 말을 무시하고 도멤의 물음에 답했다.
『생명을 대신해서 물을 삼키고 있는 거지.』
『그리고 너무 많은 물을 삼켜 바다가 마르지 않기 위해 우리는 항상 일정한 정도의 생과 사를 죽음에게 주고 가져오며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그 말에 우리는 다시금 아연한 얼굴을 했다. 요르문간드가 해주는 이야기의 방향이 상상도 못 한 곳으로 튀어 나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갈라지며 마땅한 방어벽도 죽음에서 순환되어 재탄생하는 것도 사라졌다.』
『메흐는 죽은 자들이 그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길잡이를 해주곤 했지. 그러나 그도 죽어버렸다.』
『너희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안다. 오로라와 괴이들을 보았지?』
『길 잃은 자들, 오로라라는 요람으로 품는 것에도 한계에 봉착한 작금. 그들은 모두 바다에서 길을 잃은 자들이다.』
그 말에 나는 문득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아버지……. 유리 바다에서 보았던 아버지의 형상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것이 단순히 헛것이 아니라 정말 아버지였단 말인가? 속이 조금 울렁거렸다. 그러나 내 기분이 어떻든 요르문간드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본래 오로라는 죽은 아이들을 위해 메흐가 만든 수단이었다. 바다에 비친 오로라의 형상에 숨을 불어 넣어 산만하고 미숙한 이들이 잘 따라올 수 있게 한 것이었지.』
『그러나 이제 그가 없다…. 다른 초월자들은 푸른 사막의 위치를 알지 못해. 심지어 우리도 정확한 곳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저 빙글빙글 돌기만 했을 뿐이야.』
“그럼…… 그래서 다 어떻게 된 건데?”
우투그루가 약간 경악 어린 시선으로 세계의 뱀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뱀들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말했다.
『우리의 법칙 아래에서 풀려난 죽음은 거대한 재앙이야. 죽음이 빨아들이던 바닷물을 모두 뱉어내고 생명을 삼키기 시작했다.』
『메흐의 죽음 이래 해수면이 도로 높아지며 생긴 수많은 죽음, 그 이후로 수많은 동물과 인간의 죽음… 전쟁, 기근, 재난, 질병, 그 모든 것들.』
『그리고 죽은 것들은 순환하지 못해 괴이쩍은 존재가 되어간다. 그러다 소멸하거나 자아조차 없는 괴물이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재탄생하지 못하는 생명 탓에 태어나는 생명은 나날이 적어진다. 혹은 태어나서는 안 될 것들이 태어난다.』
『본래 메흐를 도와 죽음의 범람을 막던 괴물들이 이지를 잃어간다. 세이렌, 아름다운 모습과 목소리로 죽음의 인도를 하던 일족은 모조리 오염된 바다에서 쇠퇴하였고.』
『둘하스, 용맹하던 푸른 사막의 기마병이자 총명하던 정령(Jinn)
1)
은 타락하여 식인을 일삼고.』
『페낭가란, 원래도 교활하던 작자였으나 죽음의 범람을 두려워하게 되어 다른 곳으로 도주해 음습하게 기회를 보다 처단당했다.』
『그 외에 너희가 만난 수많은 괴물은 메흐의 죽음 이후 그와의 약속, 계약……. 그런 것을 어기고 세상 곳곳으로 흩어진 것들이다.』
뱀들의 말에 우리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니까, 정말로 수천 년 전의 일이 우리에게 너무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아버지에 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몰아낸 나는 문득 의아했다. 애초에 그런 것이 있었다면 신은…….
“신은 그 죽음을 무효화시킬 수 있던 건가? 전지전능하시니까?”
『우리도 자세히는 모른다. 우린 엄연히 따지면 신의 죽음 이후 태어난 것들이니까. 루루미와 에르노리, 벨라우라그보다도 어리지.』
“…….”
그렇게 들으니 왠지 정말로 이 뱀들이 어려 보였다. 상상 이상으로 루루미와 에르노리가 나이가 많다고 느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지만….
『짐작하기론, 아마 신이 그 죽음을 깔고 앉아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신의 반신욕에 이어서 이젠 변…….”
“도멤, 닥쳐.”
도멤의 말에 우투그루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러나 그런 보람이 없게도 키이엘로가 약간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변기…….”
“그러니까 말하지 말라고.”
기분 더러워지게…. 우투그루가 질색을 했으나 요르문간드는 다른 의미로 질색했다.
『진지하게 좀 들어!』
“진지하게 듣고 있어.”
『전혀 아닌 것 같다고! 너희가 어린애야? 변기니 뭐니 하는 이야기에 웃음꽃 피우게?』
“웃음꽃은 안 피웠는데.”
이야기꽃이라면 피울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어쨌든 요르문간드보다야 한참 어린 나이 이십 대들이지만, 낙엽만 굴러가도 웃거나 더러운 이야기에 좋아서 까르르 웃는 성장단계는 지난 지 오래였다. 우중충한 얼굴로 뱀들을 보고 있는 시커멓게 커버린 네 명을 마주한 요르는 혀만 끌끌 찼다.
『차라리 웃어….』
『웃으면 안 되지! 웃지 마, 웃기만 해봐.』
어쩌라는 거야. 보다 못한 우투그루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서……. 신이 죽기 이전에는 ‘죽음’이 없었단 거야?”
『따진다면 그렇게 볼 수 있겠지.』
『신은 창조물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자였다. 굳이 죽음을 다룰 필요도 없었을 거야.』
그럼 이 경우엔 변기가 아니라 방석이 되는 건가……. 어느 쪽이든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지만. 시답잖은 생각을 하는 나를 뒤로하고 키이엘로가 말했다.
“그냥 흥미로운 옛날이야기 듣는 기분이네. 우리와 연관이 없다더니 정말 그렇잖아.”
『그래, 우리가 뭐랬어?』
“그런데 그럼 왜 굳이 이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주는 거야?”
키이엘로의 날카로운 지적에 요르는 입을 벙긋거렸다. 간드 역시 좀처럼 대답하지 못하자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 뱀들은 종종 제멋대로 그다지 듣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떠들곤 했다. 대체로 우리는 귀를 막고 알아서 무시하며 지내왔지만, 뱀들의 태도는 마치 무언가를 말하지 못해 안달 난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도멤 역시 요르문간드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떴다.
“너희 또 이상한 소리 하려는 거 아니지?”
“애초에 왜 저 이야기가 우리와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들었잖아. 바다의 주인이 공석이라서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라는데.”
우투그루가 시니컬하게 말하며 눈을 굴렸다.
“모르겠어? 많은 역사 속에 전쟁이 있었고 재난과 질병이 있었던 이유를 말하면서 단순히 바다의 주인이 없어서라고 하고 있지. 잘 들어보면 원하는 바가 명확히 보이잖아.”
“똑똑한 척하지 말고 그냥 말해.”
내 말에 우투그루가 도끼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매섭게 본 것치고는 순순히 말을 이었다.
“자기들을 다시 이어붙여서 순환시키라고 은근히 종용하고 있는 거야.”
『우, 우리가 언제?』
『그런 결론을 알아서 도출해주다니 고맙기 짝이 없군.』
“시치미 떼지 마. 그게 아니라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말엔 다시 입을 다무는 뱀들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의자의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약간 방만한 자세를 한 채 난 뱀들을 향해 짧게 쏘아붙였다.
“너희도 그 푸른 사막인가 하는 곳이 어디인지 모른다며. 초월자들도 딱히 해결 방도가 없으니까 너희를 그대로 둔 거 아냐?”
『초월자들이 우리를 갈라뒀는데 어떻게 우리를 다시 이어붙일 생각을 하겠어?』
“그럼 그 초월자들이 기껏 너희를 갈라뒀는데 우리 같은 일개 인간이 이어붙이려고 들면 그자들이 가만히 있겠냐?”
내 말에 세계의 뱀들은 머뭇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말문이 막혀서 주춤댄다기보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말해도 되나 고민하는 몸짓에 가까웠다. 그 모습에 오히려 불안해진 것은 내 쪽이었다. 또 무슨 괴이쩍은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내 속을 긁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 불안감과는 달리 뱀들은 이야기를 그쯤에서 마쳤다. 그들이 더 이야기할 것 같지 않자 우리는 잠시 찜찜하다는 얼굴로 서로 시선을 주고받다가 각자의 일을 위해 움직였다.
게슈베르송으로 향하는 항로에는 별다른 애로사항이 없었다. 장마전선이 도달한 섬의 근처를 지날 적엔 비바람에 시달리긴 했으나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나는 그 대화 이후 좀처럼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아버지가 바다에서 돌아가신 일도 어렸던 내게는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그가 편안한 안식을 얻지 못하고 떠돌고 있다는 것까지 알진 못했던 일이다.
심지어 나는 당시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의 합동 장례식에 참석하지도 못했다. 쌍둥이 동생이 상주를 맡았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마땅한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 뒤늦게 후회가 되었다. 아버지에 관한 걸 랄티아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애초에 랄티아를 무사히 만날 수나 있을까? 우린 지금 제국을 향하고 있는데…….
내가 피곤해하는 것을 보고 발카는 그것이 자신과의 사이가 틀어진 것이 이유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굳이 정정해주진 않았다. 발카가 그때 폭풍이 오는 것을 알려주지 않은 탓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게 다시금 상기된 탓이었다.
복잡한 머리를 비우고자 나는 발카도 없이 홀로 조타실에 앉아 바다만 보고 있는 때가 많아졌다. 그러자 자연히 도멤과 키이엘로는 나를 걱정했다. 조타실에 들어와 있던 키이엘로가 내게 물었다.
“그때 그 이야기 별로였어?”
“뭐?”
“그 이후로 기운이 없는 것 같아서. 그런데 그건 정말로 우리랑 관련 없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내 눈치를 보았다. 그에 나는 잠시 짧게 고민했다. 이걸 말을 해, 말아? 말을 하기에도 애매하고 안 하기에도 애매하고……. 그러나 결국 나는 욕망에 패배하고 말았다. 누구에게든 조금 털어놓고 싶은 기분이 든 것이었다.
“그… 오로라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잖아.”
“응, 그랬지.”
뜻밖에도 키이엘로는 꽤 바람직한 청중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나는 전보다 편해진 기분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전에 내가 아버지에 관해 이야기했던 거, 기억나?”
그에 키이엘로는 잠시 의아한 얼굴을 하더니 이내 점차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보았다.
“세상에……. 오로라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완전히 잊고 있었어…. 미안해, 로트.”
“아, 아냐. 그럴 수 있는 일이지. 꽤 예전 일이기도 하고.”
“그 일 때문에 그렇게 기운 없던 거구나.”
그 말에 나는 좀 민망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그렇게 기운이 없었나? 좀 피곤해하는 건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대강 고개를 끄덕이며 목을 문질렀다.
“신경 쓰이게 한 건 미안하다. 지금 생각해도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좀….”
“무슨 그런 말을 해.”
키이엘로는 미간을 좁히며 입을 다물었다. 그는 잠시 할 말을 고르는 것 같더니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쓸었다.
“이거 오히려 내가 잘못 말한 거 같은데…. 이런 건 나보다는 도멤한테 말하는 게 더 나았을 텐데.”
“아냐, 누가 됐든 얘기하려고 했겠지.”
“음…….”
키이엘로는 겸연쩍은 얼굴로 나를 보다가 물었다.
“내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지금 네가 답답한 이유가 뭐야?”
“내가?”
“내 생각이지만, 넌 딱히 마음에 걸리는 게 없다면 당장의 일에 집중하는 것에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거든. 그런데 뭔가 걸리는 게 있어서 지금처럼 있는 게 아닌가 해서.”
나는 눈만 깜빡거렸다.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는데….
“너 나를 너무 대단하게 평가하는 거 아냐?”
“어? 어? 안 그래?”
“아니…….”
키이엘로는 나를 응시했다. 뭘 말해야 할지 잘 감을 못 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곳에 도멤이 있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물론, 도멤은 좋은 녀석이니까 좋은 말을 해주겠지만…. 누가 됐든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지. 하지만 막상 이야기를 해 보자고 멍석을 깔아주니 어디까지 말해도 좋은지 고민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 역시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