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02)
바다새와 늑대 (301)화(302/347)
#145
화
“이런 질문 좀 그럴 수 있는데, 너는 어머니 장례는 어떻게 했었어?”
“음…….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장례를 못 치렀지…. 릴리 이모가 갖고 있던 어머니 유품을 그 건물 안뜰에 묻고 작은 비석을 세우는 거로 적당히 하셨다고 뒤늦게 들었었어.”
“그 안뜰에?”
나는 마담 릴리의 건물을 떠올렸다. 그 안뜰은 낮에도 어둑한 골목에서 햇볕이 가장 잘 들고 꽃들이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몇 번 잡일을 하며 오가기도 하고 자주 볕을 쬐며 일행과 함께 있기도 했으나 비석을 본 기억은 없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그래서 넌 괜찮아?”
“으음…….”
키이엘로는 어색하게 웃었다.
“안 괜찮지, 물론…. 후회도 되지만 지금 와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러자 나는 문득 그 뱀들의 이야기가 단순히 나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계의 뱀이 지키는 순환이 있지 않기에 아버지처럼 길을 잃은 이들이 생긴 거라면 도멤이나 키이엘로의 죽은 가족들도 얼마든지 해당할 여지가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어쩐지 투정을 부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민망해졌다.
그때 키이엘로가 말했다.
“혹시 너무 응석 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 그만두려고 하는 건 아니지?”
“어?”
“서로 힘들거나 짐을 나누고 싶을 땐 얼마든지 이야기해도 된다고 했잖아. 물론 너희가 아니라 우투그루 녀석이 징징거리면 짜증 나서 한 대 갈겨주겠지만…….”
“참아줘라.”
“응.”
키이엘로는 내 시선을 피하며 짤막하게 대꾸했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내 얼굴을 보고 안도한 것 같은 그에게 내가 말했다.
“그냥… 난 그 뱀들 말에 휘둘리기 싫어, 알지?”
“잘 알지.”
“그런데 아버지가 그렇게… 되었다고 알고 나니까, 내가 내 기분에 휘둘려서 그걸 그냥 두 손 놓고 보고 있자니 아버지께 죄송해서….”
내 말에 키이엘로는 약간 어벙한 얼굴을 했다. 그에 나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알아, 좀 웃기는 이야기지.”
“아니, 아냐. 그렇게 생각 안 해.”
키이엘로는 열심히 손을 내젓더니 말했다.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것도 네가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어.”
“음….”
“물론 그게 마음대로 되겠냐마는, 그러니까…. 네 아버지께서는 네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걸 달가워하실 분은 아니시잖아.”
“……그렇지.”
“그리고 세계의 뱀이 이야기하는 건 정말 너 한 명에게 기댄다기엔 너무 큰일이니까.”
“말 잘했다, 키이엘로.”
불쑥 끼어든 목소리에 나와 키이엘로는 고개를 돌렸다. 도멤이 어깨에 자루를 걸친 채 문가에 기대 있었다. 키이엘로는 반갑다는 얼굴을 했고 나는 민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투그루는?”
“발카랑, 간드랑 물자를 확인하는 중이야. 나는 요르랑 잡일이라도 할까, 하다가 혼자 하기 외로워서 왔지.”
도멤은 우리에게 다가와 가까이 붙어 앉으며 자루의 주둥이를 열었다. 그 안에는 검은 해변에서 가져왔던 옥수수가 마른 채 들어있었다. 도멤은 그것을 무릎 사이에 끼우고 옥수수들의 상태를 살피며 내게 말했다.
“어쩐지 요즘 좀 피곤해 보인다, 싶었지. 미리 알아채지 못해서 미안해.”
“유난 떨지 마, 생각보다 그렇게 별일인 건 아니잖아.”
내 말에 도멤은 눈을 가늘게 뜨며 옥수수를 쥐고 삿대질하듯 내게 불쑥 들이밀었다.
“그게 왜 별일이 아냐? 고민이었던 거라면 말을 하지 그랬어.”
그런 그의 고개 옆으로 도멤의 목에 몸을 감은 요르가 찔끔한 기색으로 눈치를 보며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도멤이 말을 이었다.
“키이엘로 말이 맞아, 로트. 요르랑 간드가 요구하는 건 우리의 능력치를 뛰어넘는 어려운 일이야. 더군다나 네가 하기 싫은 일이잖아.”
“그거야 나도 알지.”
나는 짤막하게 말하고는 입을 다물고 한숨을 쉬었다. 도멤을 도와 옥수수를 살피는 키이엘로를 따라 자루로 손을 뻗자 도멤이 대번에 내 손을 찰싹 때렸다.
“넌 조타나 봐야지 어딜 잡일을 하려고 들어.”
“이게 무슨 소리야….”
“농담이야. 근데 비슷한 논리야. 너는 마땅히 할 일이 있고, 지금처럼 짬이 나면 우리 일도 도와줄 수 있지만, 주객전도가 되어선 안 되잖아.”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도멤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만약 나중에라도 네가 아버지 생각이 너무 크게 들어서 모험이라도 강행해보고 싶다면 언제든 말해. 우리야 할 일도 없고 노는 인력이니까 친구를 도와줘야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당장은 네가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길 추천할게.”
“역시 이런 건 도멤이 말을 잘한다니까.”
키이엘로는 부러 가벼운 어투로 말하며 웃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으나 여전히 어딘가 해소되지 못한 기분이 들었다. 도멤과 키이엘로의 말이 맞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은 납득하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도멤은 그런 나를 알아챈 듯했지만, 이유까지는 알지 못한 것 같았다. 유감스럽지만, 사실 나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나는 테이블 위에 펼쳐진 해도만 물끄러미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에 키이엘로가 입을 열었다.
“혹시 아버지 생각이 자꾸 마음에 걸리는 거라면 순순히 인정해, 로트.”
“뭐?”
“내 말이 좀 주제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음, 내 경험으로 치환해서 말하게 되어서 미안하지만, 아버지께 죄송하고 그가 그립다면, 그걸 굳이 억누르거나 부정하려고 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게 좋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랬거든.”
그 말에 나는 물론이고 도멤도 눈을 둥그렇게 떴다. 도멤은 당황한 얼굴로 키이엘로와 나를 번갈아 보다가 물었다.
“그런 기분이 들었어?”
“아니, 나는…….”
반사적으로 부정하려고 한 나는 멈칫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가 신경 쓰인다는 게 결국 키이엘로가 말한 그대로의 감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잔걱정이 많은 사람이 됐지? 지금 생각해봤자 소용없는 일은 밀어두고 눈앞의 일에 집중하던 것이 나였는데…….
결국엔 인정해야 했다. 최근의 나는 벼랑에 몰려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작든 크든 내가 감당하기 버거운 것이라는 생각이 있던 모양이다. 그러니 잡생각에 휘말리는 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요즘 너무 휘둘리는 것 같아.”
“우린 원래도 상황에 휘둘려왔지만, 생각까지 휘둘리는 건 말이 다르긴 하지.”
도멤은 그렇게 말하며 걱정스럽게 나를 보았다.
“걱정된다. 혹시 지금 제국으로 가는 것도 무리하는 건 아냐?”
“아니, 그건 아냐.”
나는 짧게 고민하고 굳건하게 대답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랄티아를 되찾기 위해서는 제국으로 가야 해. 위험하겠지만……. 더 떠돌면서 기다릴 여유도 없으니까.”
그것에 관해서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검은바다가 이미 랄티아를 쫓고 있다. 제국에 의해 내가 쫓기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랄티아가 언제 위험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런 생각까지 하자 나는 정말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의 뱀이 한 이야기는 정말로 명료하지 않은 채로 나를 휘둘리게만 하고 쓸데없는 잡생각에 빠지게만 한 것이다.
괜히 짜증이 나서 나는 도멤의 목덜미에 늘어진 요르를 노려보았다. 내 시선을 느낀 흰 뱀이 히익, 하며 물러나는 때, 키이엘로가 대뜸 물었다.
“발카랑은?”
“응?”
“발카랑도 뭔가 최근에 사이가 안 좋아진 것 같아, 로트.”
“아…….”
나는 잠시 고민했다. 발카에 관한 문제도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 온 화두였다. 그러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와 달리 발카에 관한 이야기를 당장 꺼내기엔 좀 꺼림칙했다. 그거 좀… 모양새가 이상해지지 않나……. 물론 발카는 도멤과 키이엘로가 자신에 관해 무어라 떠들든 그다지 크게 신경 쓰지는 않겠지만, 내가 그 바다새에 관한 이야기를 도멤과 키이엘로에게 한다는 것은 의미가 다를 것이 분명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