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05)
바다새와 늑대 (304)화(305/347)
#148
화
“그러고 보면 역시 너랑 우투그루랑 참 닮았어.”
“또 그 얘기예요?”
“우투그루도 지금은 좀 커서 예전보다 덜하지만, 딱 너 같던 때가 있다니까. 원래 그보다 더 예전에는 순한 녀석이었는데…….”
브레딕의 말에 묵묵히 곁에서 걸음을 옮기던 클레인스가 말을 거들었다.
“저야 어렸을 때라 잘 모르지만, 제가 처음 우투그루 형을 봤을 땐 순하다는 말이 어울리진 않는 사람이었는데요.”
“아냐, 정말 순했어.”
“그냥 브레딕 형의 추억 보정이 아닐까 싶어요.”
클레인스의 매정한 말에 브레딕은 상심한 시늉을 했다.
“옛날에 우투그루가 얼마나 착했는데. 나름 선장 아들이라고 마을에서 겉도는 애가 있으면 족족 챙겨주고, 애들 사이에 있는 일도 잘 중재하고, 사람들한테 친절하고…….”
“와, 진짜 상상 안 돼요.”
클레인스가 안 믿긴다는 얼굴이자 브레딕은 짧게 혀를 찼다. 초치지 말고. 그렇게 말한 브레딕은 예의 그 추억팔이를 이어나갔다.
“오죽하면 키이엘로가 왔을 때도 사감 없이 잘 대해줬겠냐. 솔직히 자기가 믿고 사랑하던 아버지가 밖에서 저랑 동갑인 아들이 하나 더 있었다고 생각하면……. 난 그렇게는 못 해.”
“그냥 그쪽이 심보가 더러운 거 아닌가요?”
랄티아는 저에게 친절하던 키이엘로와 냉한 인상의 금발 부선장을 떠올렸다. 솔직히 키이엘로 같은 사람은 처음 말을 붙이는 게 어려울 뿐 한 번 친해지면 끝도 없이 친해질 만한 인물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로트렐리와 키이엘로를 보면 랄티아의 통찰이 그리 틀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브레딕은 뭘 모르는 소리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너는 지금의 키이엘로만 봐서 그렇지. 걔가 마을에 처음 왔을 때를 봐야 해. 마을의 누구도 걔한테 말을 못 붙였어. 묘하기도 하고, 꺼림칙하기도 하고, 좀…….”
브레딕이 말을 잇기 전에 랄티아가 날카롭게 끼어들었다.
“그거 그냥 어린애를 차별했다는 소리로밖에 안 들려요.”
“야, 나도 그땐 애였거든. 청소년이었다고.”
브레딕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하긴, 네 말이 아주 틀리진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가 별 시답잖은 거로 걔를 거북해하니까 걔도 그걸 느낀 걸지도 모르겠어.”
지금의 키이엘로가 친구로 둔 것이 그의 배경이나 특이점으로 그를 평가하지 않는 수더분하고 호탕한 녀석들인 걸 생각하면 그리 틀리지 않은 가설이었다. 브레딕은 잠시 머쓱한 듯 목덜미를 쓸다가 도로 랄티아와 클레인스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을 이었다. 어느새 일행은 다시 벤치에 앉아 랄티아의 체력이 충전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어쨌든,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투그루에게만큼은 키이엘로가 거북할 수밖에 없는 관계잖아? 키이엘로 성격이 그리 둥글지 못하고 모나기도 했고. 그런데 그런 키이엘로한테 가장 먼저 말을 트고 친해진 것도 우투그루였다고.”
“따까리 삼고 싶었나?”
“일리 있어요.”
발칙한 십 대의 반응에 브레딕은 이 이야기를 계속해야 하나 싶었다. 그러나 그는 미약하게 희망을 맛봤다. 얼마 전에 만난 마담 릴리가 우투그루를 향해 내놓은 우호적인 평가가 브레딕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는 어렸을 적의 우투그루를 회상했다. 그때의 우투그루는 퍽 활발하고 어른스러운 녀석이었다. 의젓하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키이엘로가 마을에 오고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순식간에 퍼진 이후, 우투그루는 처음엔 머뭇거리는 것 같았으나 클루스도의 격려를 받고 키이엘로에게 먼저 다가갔다.
“이렇게만 들으면 쉬운 일 같지만 보기보다 어려운 일이었어.”
“키이엘로 형이 어려운 사람이라서요?”
“그 지점은 동의하는 모양이다?”
“로트 누나랑 어울리기 전의 최근까지도 좀 그런 편이었잖아요.”
랄티아는 몰랐던 이야기였기에 ‘그런가?’하고 넘겼다. 브레딕은 클레인스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런 것도 있지만, 뭐랄까… 걔는 그, 늑대가 있잖아.”
“아.”
“그런 커다란 늑대를 뭐 목줄을 한 것도 아니고 입마개를 한 것도 아니고…. 다들 혹시나 물릴까 싶어 다가가지 못했지.”
랄티아는 그것을 들으며 로트렐리를 떠올렸다. 로트렐리의 말에 따르면 발카의 원래 크기는 거의 집채만 하다지만, 실제로 보아온 바다새는 작은 독수리나 올빼미 정도의 크기였다. 어린아이들이야 새에게 손이라도 쪼일까 무서워했지만, 어른들은 발카에게서 딱히 위압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키이엘로에게는 텐의 존재가 타인으로부터 경계를 사게 되었다지만 로트렐리에게는 역으로 그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랄티아의 상념을 가르고 브레딕은 말을 이었다.
“키이엘로부터도 사람에게 딱히 살갑지 않은 녀석이기도 했고 말이야. 어쨌든, 여러 이유로 그 녀석에게 다가가는 일은 어려웠다는 뜻이야.”
“그리고 위대한 우투그루는 그런 그에게 기꺼이 말을 걸어 구제한 용자라는 뜻이군요.”
“그렇게 말하니까 뭔가 어조가 이상하잖아.”
랄티아는 어깨만 으쓱였다. 사실 브레딕의 우투그루를 향한 묘한 신뢰는 랄티아가 말한 바와 비슷했다. 클레인스는 랄티아를 보며 물었다.
“이제 다 쉬었어요?”
그렇다고 말하면 ‘그럼 다음 운동 갑니다’ 하고 움직이려는 생각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말이었다, 랄티아는 대번에 희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망할, 그냥 이야기 더 듣기로 해요.”
“아냐, 이야기는 걸어가면서도 할 수 있잖아.”
어림없다는 듯 브레딕이 웃으며 랄티아를 일으켰다. 그들의 손에 끌려가며 랄티아는 속으로 온갖 욕을 다 지껄였다. 망할 인간들, 피도 눈물도 없는 것들, 어쩌고저쩌고……. 결국 브레딕의 이야기는 듣는 체 마는 체하며 랄티아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숙소에 돌아왔다. 그런 일행에게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본 네토르가 층계참에서 말했다.
“오늘도 근력 키우기는 잘하고 왔냐?”
랄티아는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언니가 왜 종종 대답할 가치가 없는 말을 무시하지 않고 이렇게 욕으로 대답해줬는지 이제 알 것 같네. 그냥 무시하기엔 기분이 더럽잖아. 그런 생각을 하는 랄티아를 향해 네토르는 혀만 쯧쯧 찼다.
“하는 짓이 점점 제 언니를 닮아가네. 그러지 마라, 좀.”
“뭐요, 왜요.”
“으. 진짜 그렇게 굴지 마, 소름 끼치니까.”
네토르가 질색하는 것에 눈만 굴리는 랄티아의 뒤로 브레딕이 반색하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웬일로 먼저 말을 거네? 무슨 일 있었어?”
“혁명단 일이야.”
네토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1층의 라운지로 내려와 일행들에게 쪽지를 건네줬다. 쪽지에는 에퀘야의 호방한 글씨체가 남아있었다. 빠르게 그것을 읽어내린 랄티아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벌써 준비가 끝났다고요?”
“그래, 내일쯤엔 정말로 혁명단의 선전포고가 대대적으로 공표되겠지. 우리가 여기에서 때아닌 여름휴가를 맞이한 게 벌써 며칠째라고 생각하는 거야?”
네토르의 비아냥거리는 말에 어깨만 으쓱인 랄티아는 브레딕을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브레딕의 표정은 묘하게 굳어있었다. 랄티아는 그에게 물었다.
“어쩔 거예요? 이제 정말 무를 수 없게 될 것 같은데. 참고로 전 이미 전단지 초고를 보내둔 상황이에요.”
“…아, 세상에. 마음의 준비를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딱히 그런 건 아니었나 봐.”
브레딕은 성마르게 제 얼굴을 문지르고는 랄티아를 보았다. 랄티아는 나름의 자비를 베풀어 그가 생각할 시간을 주기로 했다. 어차피 일이 닥치면 지금밖에 생각할 시간은 없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랄티아는 그를 내버려두고 네토르에게 물었다.
“헤더는요?”
“에퀘야가 이 쪽지를 전해줄 때 같이 갔어.”
“요즘 그쪽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네요.”
정말로 아예 혁명단에 몸담을 생각인가? 그러나 랄티아는 헤더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헤더가 그러지 않길 바라는 것인지 차라리 완전히 가버리길 바라는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여전히 헤더와 랄티아의 사이는 거북하기만 했다. 그때 브레딕이 말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