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08)
바다새와 늑대 (307)화(308/347)
#151
화
랄티아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때 클레인스가 입을 열었다.
“혹시 거기에서 하몬을……, 아니, 아니에요.”
소년 역시 경황이 없는 듯 짧게 횡설수설하다가 랄티아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검은바다가 온 게 사실이라면 어쩌면 제국도 오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들이 제국과 손을 잡으려는 것 같다고 했잖아요.”
그 말에 랄티아는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클레인스의 말엔 일리가 있었다. 만약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전단지가 퍼진다면 완전히 자충수였다. 랄티아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
“인쇄소에 알려야 해요.”
“우리가 가마.”
마담 릴리가 서둘러 말했다. 로지안나 역시 그에 동의하며 랄티아를 떠밀었다.
“너는 혹시 모르니까 혁명단 쪽으로 가 있어. 랄티아는 이곳에 남고.”
“뭐라고요? 왜요?”
“정말로 일이 틀어진다면 차라리 빨리 도피할 수 있도록 혁명단과 협력하는 편이 나아. 클레인스가 가서 전하면 되겠지.”
로지안나는 그렇게만 말하고 마담 릴리와 함께 다시금 급한 걸음을 재촉하려 했다. 그러자 단번에 랄티아가 그들을 붙잡았다.
“아뇨, 차라리 저와 클레인스가 인쇄소로 갈게요.”
“뭐?”
“일행이 그렇게 갈기갈기 갈라지는 것보단 뭉쳐있는 편이 일을 진행하기에 편해요. 저와 클레인스가 인쇄소로 가서 전단지를 막을 테니 그쪽은 혁명단으로 가서 우리 사정을 알리고…. 혹시나 헤더가 신경 쓴다면 우리가 인쇄소에 있단 걸 알려주세요.”
그 말에 로지안나는 짧게 고민했으나 마담 릴리는 순순히 수긍했다. 항구에서 건물까지 달려오며 지치기도 했으니 랄티아의 의견대로 하는 것이 더 좋기도 했다. 로지안나와 마담 릴리가 나가자 랄티아는 클레인스를 보았다. 소년은 침착한 얼굴로 랄티아 쪽으로 고개를 향하고 있었다.
“인쇄소로 가자는 거죠?”
“네.”
“좋아요, 이번엔 급하니까 쉬어가진 못해요.”
클레인스는 혹시 몰라 꺼내두었던 검을 패검하고 랄티아의 손에 그녀의 피스톨과 마장석 주머니를 쥐여 주었다. 손바닥에서 묘하게 떠밀리는 것 같은 감각을 주는 마장석 주머니를 꾹 쥐어 챙긴 랄티아에게 클레인스는 건물의 문을 열며 말했다.
“가죠.”
둘은 건물을 박차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해는 정오를 향해 떠오르고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혁명단이 선전포고를 시작하게 되면 그땐 정보가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애초에 먼저 스스로를 드러낸다는 것은 로트렐리와 제국, 그리고 검은바다의 거리가 똑같이 모두 랄티아와 멀다고 여겼기 때문에 가능한 작전이었다. 검은바다가 왜 세라무티로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한 존재로 인한 변수가 너무나도 많았다.
랄티아와 클레인스는 한적하던 건물 근처의 들판을 나와 북적이는 시내로 섞여들었다. 이미 몇몇 소식이 빠른 자들이 혁명단이 은근히 흘린 정보를 듣고 곧 있을 연설을 보기 위해 광장으로 몰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그사이 테러나 바깥 군도의 공격이 이어질까 무장한 사람들도 몇몇 보였다. 랄티아는 빠르게 목 끝까지 차오른 숨에 헐떡이며 서둘러 달렸다. 그러자 클레인스가 그런 랄티아를 안아 들고 달렸다.
이쯤 되자 그에게 안기는 것이 익숙해진 랄티아가 서둘러 길을 외쳤다.
“왼쪽 골목으로 꺾어요, 지금!”
인파가 몰리기 시작한 길가를 피해 골목으로 접어든 클레인스는 모퉁이를 향하다 말고 멈칫 멈춰 섰다. 그러나 그가 기척을 알아채고 멈춘 것과 달리 반대편 모퉁이에서 오던 사람은 그대로 전진해 그들과 부딪히고 말았다. 졸지에 사람 둘 사이에 치인 랄티아가 짧게 비명을 질렀다. 클레인스 역시 휘청이며 뒤로 재빠르게 물러섰다.
“으, 앞 좀 잘 보고 다닐 것이지…….”
“저한테 하는 말은 아니죠?”
“당연히 저 쪽에게 하는 말이죠. 됐어요, 우린 마저 갈 길 가야…….”
그러나 랄티아는 말을 잇다 말고 입을 벌렸다. 부딪힌 상대 역시 앓는 소리를 내다가 고개를 들고는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이내 그는 입꼬리를 히죽 올리며 웃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그는 얇은 여름 망토 아래로 깔끔한 제복을 입고 있었다. 번쩍이는 훈장도, 소속을 나타내는 인장도 없었으나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저런 의복을 어디에서 입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뒤에 있는 자들도 다들 같은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제국군이었다.
“오랜만이다, 랄티아?”
이제는 세라무티의 정세를 살피는 정찰꾼으로 보내진 자, 애시포드 남작에게 속한 군인. 테드가 흐트러진 갈색 머리 아래로 약간의 희열에 찬 웃음을 지었다.
* * *
게슈베르송으로 가까이 왔다고 생각될 때 즈음이었다. 항해는 이상할 정도로 평온했다. 그간 해적질을 하며 괴이쩍은 바다를 오갔는데, 그런 항로가 아니면 이렇게 평화로울 수 있군. 로트렐리는 태평하게 생각하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일행이 모여서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뱀들은 또다시 다른 화두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쯤 되자 그들은 다들 그 뱀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뱀들은 시시때때로 이전의 바다에 관한 이야기를 해댔던 것이다.
이번 이야기의 시작은 이랬다.
『바다의 주인, 메흐가 있을 적에는 초월자들이 모두 사이가 좋았어.』
“저 녀석들, 결국 전에 물었던 말에는 대답을 안 하잖아. 분명 무슨 의도가 있어서 우리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대는 거라니까.”
“뭐 어때, 의도가 있어도 우리가 안 하겠다고 배짱 놓으면 얘네는 아무것도 못 하잖아.”
우투그루의 차가운 말에 도멤이 실실 웃으며 요르문간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검은 뱀은 그것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것처럼 고개를 움칫거리며 도멤의 손길을 피했으나 요르는 오히려 그것을 달가워하는 것처럼 얌전히 쓰다듬을 받았다. 그것을 정말 할 말 많은 눈으로 보던 키이엘로가 뱀들에게 물었다.
“왜 밥 먹던 중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의아하긴 한데, 뭐. 어쨌든 물어보자. 지금은 사이가 안 좋아?”
『많이 변했지.』
로트렐리는 에르노리와 루루미를 떠올렸다. 잘은 몰라도 내기를 할 정도로 사이는 좋은 것 같던데……. 하긴 대단한 것처럼 말해봐도 그녀가 만난 초월자는 딱 그 둘이 전부였다. 다른 초월자들의 이야기는 당연히 모르지, 하고 순순히 생각하는 로트렐리를 뒤로하고 간드가 입을 열었다.
『메흐와 루루미가 초월자가 되기 전부터 아는 사이라는 것은 알고 있나?』
“우리가 그걸 알 일이 뭐가 있고 알 필요가 뭐가 있어….”
『메흐는 모든 초월자들의 구심점이었다. 루루미의 내력을 생각하면 그건 꽤 대단한 일이었다.』
『신이 죽은 이후 넘친 바다를 다시 가라앉히기 위해 그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수많은 이들을 만났고 몇몇 초월자들은 그에 의해 초월자가 되었지.』
뱀들은 전과 달리 조금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정확히 어떤 식으로 초월자가 서로 만나고 어울릴 수 있었는지까지는 우리도 모른다.』
『다만 모든 초월자들은 메흐를 사랑했고 그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자였다는 사실이지.』
이 말을 듣는 일행의 감상은 이랬다. ‘거참 대단한 평가네…….’ 이쯤 되면 그들은 메흐가 대체 어떤 인물이었기에 이런 평가가 나오는 것인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의 형상만을 보았을 때는 확실히 아름다운 자였으나 사실 아름답기로 친다면 키이엘로가 한 수 위였다. 그렇다면 외모 탓은 아니고…. 그렇게 키이엘로를 제외한 모두의 머리에서 ‘메흐가 사랑받은 이유라고 생각되는 것’ 중 하나가 탈락하고 있었다.
『초월자들은 서로 티격태격하기도 했지만 메흐만을 사랑한 게 아니야. 그들은 메흐에 의해 서로를 알게 되었으나 서로 돈독하게 지냈지.』
『그러나 한 번의 배반이 모든 것을 어그러뜨렸다.』
『어느 새벽의 배신, 메흐의 죽음으로 초월자들의 사이는 분열되었고, 그렇게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그 이야기야 그들도 아는 이야기였다. 다만 로트렐리는 의아했다. 루루미는 메흐에게 크게 유감이 없어 보였는데도 그를 죽였다. 대체 왜였을까? 만약 그녀가 정말로 초월자든 뭐든 그런 것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속없이 저렴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려 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는 정말 스스로가 초월자들과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려고 했으나 뱀들의 생각은 달랐으니 로트렐리는 그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금 바닷물로 치료된 손과 어깨를 떠올렸다가 아버지를 떠올렸다가 발카를 떠올렸다. 로트렐리는 이렇듯 이미 벌어져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자꾸 자신을 괴롭히는 것을 못 견뎌 했다. 그나마 그녀는 전에 도멤, 키이엘로와 나눴던 대화를 상기하며 불쾌감을 몰아내려 애썼다. 그녀는 속으로 끙 소리를 내며 뱀들의 이야기에서 애써 의식을 돌렸다. 그러나 그런 일은 모조리 로트렐리만의 사정이긴 했다. 이를테면 우투그루는 시큰둥한 기색이었으나 일행 중 가장 뱀들의 이야기를 시간 때우는 용도로 잘 활용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메흐를 살리고자 초월자들이 너희를 나눠둔 거라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