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1)
바다새와 늑대 (30)화(31/347)
#30화
그때 내 눈에 어느 구절이 들어왔다. ‘바다에서 떠돌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인가?’
‘오로라의 괴이는 다른 바다 괴물들과는 그 궤가 다르다. 바다 괴물들이 태초부터 바다와 함께해 온, 위협적이지만 지극히 자연스러운 존재들이라면 오로라의 괴이는 비정상적이고 기이하며 의문스럽다…’
그때 프라세에게 한참 설명하던 도멤의 말에 간간이 끼어들며 시시덕거리던 키이엘로가 나를 보고 물었다.
“로트, 뭐 보는 거야?”
“잠시만…….”
나는 그의 말을 자르고 글을 계속 읽어 내렸다.
‘…본디 사망한 나이를 불문하고 죽은 인간의 넋은 천천히 돌고 돌아 다시 태어나는 법이다.(주석-이것은 민속 신앙일 뿐이나, 넋이라는 것이 남는다는 것은 시대를 통틀어 이어져 온 연구 결과이다) 그런데 유독 다른 곳도 아닌 바다에서만 넋이 길을 잃어 남는가?…’
‘…아주 오래된 고서에서도 괴이는 혼란스러운 존재다. 마치 이전의 바다에는 달랐다는 것처럼 말이다.(주석-이전의 바다는 전설일 뿐이지만 바다 생태계가 크게 변한 일이나 초월자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를 바탕으로, 어느 학자는 자신이 만나고 온 초월자가 분명히 ‘괴이는 이전엔 없었다’고 말했다 주장한다….’
“로트?”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문득 몸이 거의 바닥에 붙을 듯 기울었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허리를 세웠다. 너무 집중해서 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이런 랄티아 같은 행동을 하다니. 도멤이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진짜 글을 읽을 수 있구나!”
“그럼 거짓말인 줄 알았어?”
“내 말은, 이 두꺼운 책까지 술술 읽을 줄은 몰랐단 의미야. 베제도 이 책은 엄청 느리게 읽을걸?”
도멤의 말에 나는 내가 페이지를 세 장 정도 뒤로 넘겼음을 깨닫고 프라세가 펼쳤던 페이지로 다시 넘겼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 어깨를 으쓱였다. 흥미로운 내용이 있어서. 내 말에 도멤은 읽지도 못하는 글을 읽는 시늉을 하더니 흠흠,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흥미로운지고.”
“읽을 수는 있어?”
“꼬부라진 모양이 흥미롭다는 소리지.”
나는 그의 말에 가볍게 웃고 책을 베제 쪽으로 밀었다. 그러자 베제가 나에게 물었다.
“보고 싶으면 빌려줄까?”
“나야 좋지. 근데 이거 정말 네 책이야?”
“아니.”
나는 베제의 머리를 한 대 때렸다. 그럼 누구 건데? 내 말에 베제가 이상하게 머뭇거렸다. 그러자 가만히 있던 키이엘로와 도멤도 의심스럽다는 얼굴로 베제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결국 버티지 못한 베제가 실토했다.
“네토르 거야.”
동시에 내 얼굴이 파삭 일그러지자 베제가 손을 내저으며 날 설득했다.
“어, 그러지 마! 그러지 마. 그냥 내가 빌렸다고 치고 네가 보면 되는 거지. 다 읽으면 나한테 줘. 내가 도로 네토르한테 돌려줄 테니까.”
나는 그 말에 혹하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책은 흥미로웠고, 오로라뿐만 아닌 다른 챕터도 읽고 싶었고, 그런데 이 책이 네토르의 것이고……. 그때 도멤이 손뼉을 치더니 말했다.
“로트, 그럼 나한테 글자 좀 알려주라!”
“뭐? 갑자기?”
“그래! 베제도 그 책을 잘 못 읽는데 프라세랑 나한테는 글공부가 필요할 것 같거든. 그럼 베제보다 좋은 선생은 너야!”
나는 도멤의 말에 프라세를 보았다. 프라세는 아무렴 상관없는 것 같았다. 도멤이 눈을 빛내며 나를 보았다.
“나도 이제 까막눈은 떼야지! 프라세는 글공부가 필요하고. 너는 우릴 가르치면서 책도 읽고!”
그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발 담그고 물 구경하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나는 도멤의 말을 들으며 거참 입 하나는 폭풍 속에 빠져도 동동 뜨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키이엘로가 표정을 굳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에 내가 의아한 얼굴을 하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내 손에 잡혀있던 책을 누군가 확 채갔다.
“그렇게는 안 되지.”
네토르였다. 당황한 도멤이 엑,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과 함께 나와 네토르의 눈이 마주쳤다. 네토르의 적자색 눈동자가 적의를 넘실넘실 담고 나를 바라보았다.
“내 책이잖아, 베제. 다른 누구한테 또 빌려주고 하다가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어, 어……. 미안하다, 네토르.”
베제는 죄가 있어 별말은 못 하고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었다. 네토르가 서늘하게 웃으며 나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나에게 이 책을 빌리려면 직접 와서 싹싹 빌며 간청해야지.”
“어, 나는 그렇게까지 하면서 빌리진 않았는데…….”
“조용히 해.”
네토르가 베제에게 일갈하고는 책을 꽉 붙들어 옆구리에 끼웠다. 그러더니 가뿐하게 난 이만, 하며 자리를 벗어났다. 도멤이 쟤는 어째 성격이, 하며 조용히 속닥이다가 내가 네토르의 뒤에 대고 엿을 날리고 있는 것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어느 쪽이든 성격이…….
키이엘로가 혀를 찼다.
“순순히 빌려줄 마음은 없는 것 같네. 이러다 베제가 다른 이유로 다시 빌리더라도 누구랑 읽나 하나하나 감시하겠어.”
“재수 없어.”
“네토르는 이미 갔어, 로트. 그 상스러운 손짓 그만해…….”
나는 흥, 하고 가운뎃손가락을 보여주던 것을 내리고 발카가 네토르를 마구 욕하는 것을 음미했다. 그런 나를 보고 키이엘로는 희게 질린 얼굴을 했다. 텐 역시 엎드린 그대로 그르렁거렸다.
『네놈들이 제일 재수 없어…….』
물론 발카와 나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나는 도멤이 어색하게 웃는 것을 보고 가볍게 물었다.
“겸사겸사 글공부 할래?”
“무슨 겸사겸사? 겸사겸사할 일 중 하나가 증발했잖아.”
“뭐, 저건 이제 됐어. 미련이 싹 가셨거든. 애초에 난 책 읽는 걸 그다지 안 좋아해. 글공부는 신문이나 다른 걸 보고도 할 수 있잖아.”
사실 나는 이 말이 상당히 무례하게 들리진 않을까 생각했다. 도멤은 아닌 것 같아도 나보다 나이가 두어 살은 많고, 애초에 친근하고 동등한 관계에서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가르친다는 건 가끔 어색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뜻밖에 도멤은 얼굴을 펴며 웃었다.
“그럼 나야 좋지!”
시원스러운 대답에 오히려 내가 더 얼떨떨해졌다. 나는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새 신문을 구하면 바로 알려줄게. 베제가 내 말에 종이와 잉크를 빌려주겠다며 나섰다. 프라세는 도멤과 함께 배우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키이엘로는 해먹에 기대서 주먹을 보여줬다. 난 응원할게.
나는 대답했다. 필요 없어.
* * *
저녁을 먹고 나자 갑판 밖으로 나갈 시간이 되었다. 나는 검을 챙기라는 키이엘로의 말에 왜 이 시간에 밖에 나가야 하는지 눈치챘다. 나는 주변을 보다가 우투그루와 디겔, 네토르가 먼저 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들과 우리 셋을 보고 작게 물었다.
“이 외엔 더 없어?”
“나도 있어!”
베제! 나는 뿅 튀어나온 베제를 보고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적은 것 같은데……. 내 말에 키이엘로가 대꾸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잠시 후면 선장님도 오실 거야.”
“그래, 로트. 우리의 목표는 그냥 괴이를 내쫓는 것뿐이거든.”
그러더니 도멤은 주변을 보다가 신이 나서 나를 이끌었다. 로트, 이리 와봐! 내가 머뭇거리자 키이엘로도 웃으면서 나를 슬슬 밀었다. 가보자! 그 손짓에 얼떨결에 떠밀려 난간으로 간 나는 곧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렸다.
“멋지지?”
“좋을 때 나왔다! 하늘 좀 봐.”
도멤과 키이엘로가 웃으며 말하자 베제도 우리에게 붙어 따라오더니 감탄했다.
하늘은 노을빛으로 물들어있었다. 해가 담기고 있는 수평선은 샛노랗다 못해 하얗게 타고 있었고, 위로 갈수록 깊어지는 수면처럼 보랏빛으로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하늘이 수면에 거울처럼 비치고 있었다. 꽃나무 가지처럼 뻗어나간 구름이 바다 위에도 색색의 잎을 드리우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풍경이었다. 나는 거의 넋을 놓고 그 광경을 보다가 하하 웃었다.
“진짜 멋지다!”
도멤은 내가 인정하자 더 신이 나서 내 어깨를 두드리며 난간에 몸을 기댔다. 나는 도멤과 똑같이 난간에 몸을 기대고, 마치 하늘이 갈라지는 것처럼 배의 움직임에 느리게 갈리는 수면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키이엘로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그를 잡아끌었다.
“너도 이리 와서 봐봐.”
키이엘로는 조금 버티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내 손에 끌려 똑같이 난간에 매달려 바다를 보았다. 색색의 비단을 넓게 펼쳐둔 것 같은 풍경이었다. 나는 바다의 빛깔에 압도되어 한참을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음에 드나 봐? 키이엘로가 옆에서 내게 속삭였다.
마음에 들다마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다가 달궈진 바다 위로 밤의 너울이 내려오는 것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이런 광경 난생처음 봐. 이런 빛깔도 처음이고…….”
그러다가 문득 나는 선명한 황혼빛을 보는 키이엘로의 눈동자가 퍽 비슷한 빛깔로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내가 말을 멈추고 키이엘로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자 함께 경치를 구경하던 키이엘로가 의아한 듯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왜?
나는 들뜬 기분에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다, 네 눈이 딱 이런 빛깔이네.”
내 말에 키이엘로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았다. 그는 경황없는 낯을 하다가 고개를 홱 숙이고 뒷목을 양손으로 감싸 안았다. 왜 그래? 베제가 그런 키이엘로를 괴상하다는 듯 물었다. 아무것도……. 기어가듯 답하는 키이엘로의 귓바퀴가 노을 때문인지 새붉은 빛이었다.
낯부끄러운 소리를 들어서 그런 거라 생각한 나는 키이엘로의 등을 탕탕 두드리고 다시 관심을 바다로 돌렸다. 바람이 불지 않는 탓에 몸을 움직이는 대로 자늑자늑 닿는 공기의 느낌이 마치 붉은 석양이 얼음 가루처럼 부서져 뺨에 묻는 것 같았다. 기온은 쌀쌀하다 못해 추웠지만 움츠러들 찬 공기도 온화한 빛깔에 기를 못 쓰고 죽었다.
도멤이 웃으며 말했다.
“이런 구경도 때때로 좋은 것 같아.”
“맞아.”
나는 웃으며 갈라지는 물결을 바라보다가 문득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려 키이엘로를 보았다. 키이엘로는 나를 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몸을 떨며 깜짝 놀랐다. 그걸 의아하게 여길 새도 없이 발카가 물었다.
『바다가 마음에 들어, 로트?』
나는 왜인지 그 말에 일순 목이 턱 막힌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내 난간에 팔을 두고 턱을 괴며 말했다.
“응.”
작게 대꾸한 답이 들릴 거리에 있던 키이엘로가 눈을 들어 나를 보았다. 나는 내가 어떤 얼굴로 보였을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마저 대꾸했다.
“나는 역시 바다가 좋은 것 같아.”
항상 정신을 차리면 바다에 눈을 빼앗기고 말아. 그렇게 말하는 나를 키이엘로가 뜻 모를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