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10)
바다새와 늑대 (309)화(310/347)
#153
화
당황한 그들의 물음에 세계의 뱀은 느리게 기어와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그래, 루루미는 바다의 주인을 죽였다. 그러나 그것은 메흐가 아냐.』
“……이게 무슨…….”
“그럼 메흐가 바다의 주인이 아니었단 거야?”
키이엘로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으나 요르문간드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 역시 바다의 주인이었다.』
“이게 다 무슨 소리야?”
우투그루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동감이었다. 그럼 바다의 주인이 여러 명이었다는 것인가? 그럼 메흐를 죽인 것은 누구란 말인가? 그런 그들의 의문을 풀기 위해 세계의 뱀이 입을 다시금 열었다.
『메흐를 죽인 것은 루루미가 죽인 자다. 그의 이름은 네르갈. 죽음에서 태어난 자, 뒤섞인 자였지.』
그가 메흐를 배반해 그를 찔러 죽였고, 그것에 분노한 루루미가 네르갈을 찢어 죽였다. 뱀의 말에 일행은 어안이 벙벙해져 입만 벌리고 있었다. 동시에 모두의 뇌리에 스치는 단어가 있었다.
에르노리가 경고했던 ‘배반자’.
『네르갈은 메흐를 죽이고 바다의 주인이 되었어. 그 새벽의 아주 잠깐뿐이었지만 말이지…….』
『메흐에게는 애석한 일이나 그가 메흐의 자리를 차지했으니 세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메흐가 죽는 순간, 그의 죽음을 알아챈 초월자들이 분노해 네르갈을 죽이고, 메흐를 부활시키고자 황급히 우리를 갈라냈다.』
아, 이것을 말할 수 있다니! 너희가 모르는 새 세상은 착실하게 운명의 수레바퀴 안으로 굴러온 모양이군! 세계는 세계의 법칙 없이도 어느 정도 인과를 갖기 마련이다! 요르문간드는 얄망궂게 웃으며 저주 같은 찬사를 쏟아냈다. 일행은 말문이 막혀 뱀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뱀들은 마치 여태껏 입이 근질거렸다는 것처럼, 혹은 하소연할 이들이 드디어 나타난 이들처럼 말했다.
『초월자들은 죄를 저질렀다! 그대로 있었다면 메흐만이 죽고 세계는 멀쩡했을 거야. 그러나 그들은 메흐 외의 지배자를 용납하지 못했어!』
반면 일행은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가장 첫 번째로, 그들은 네르갈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루루미는 그럼 메흐를 죽였다는 오명을 쓰고 있단 이야기인가? 어쩌면 그간 시종일관 이야기를 꺼내대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 그런 깨달음이 뒤늦게 로트렐리의 머리를 스쳤다. 그때 간드가 웅변이라도 하는 듯한 어조로 외쳤다.
『네르갈, 그 역시 탐욕스러운 작자였고 메흐를 죽인 것은 잘못이나 우리는 세계와 전체의 법칙을 위해 움직인다. 그것이 메흐가 바랐던 것이고, 그것이 우리의 방식이야!』
그러자 요르가 뒤이어 똑같은 어조로 목소리를 울렸다.
『하지만 우둔한 초월자들은 그것을 몰랐지. 그리하여 모든 것을 자신들의 손으로 망친 뒤에야 후회했지!』
『어리석은 루루미여! 신이 너희에게 내렸던 저주를 잊었느냐!』
『혹은 기억하고 있기에 이런 죄를 저질렀느냐!』
『세계를 망친 죄, 바다에 묻힌 존재가 너희를 비웃을 것이다!』
점차 격해지는 요르문간드의 외침은 우렁우렁 울려 온몸을 저리게 만들었다. 그들은 모두가 압도된 상태로 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로트렐리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말려들었다.’ 뱀들에게 완전히 말려든 것이다.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또 알게 된 것이다. 그런 생각이 스치자 로트렐리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그만 닥쳐!”
그러자 뱀들의 위압감이 한순간 맥이 풀리듯 사라졌다. 반사적으로 입을 다문 뱀들을 보며 로트렐리는 그들이 똬리를 틀고 앉은 테이블을 발로 콱 걷어찼다. 그러자 뱀들은 전기에 쏘인 것처럼 펄쩍 뛰며 서로 꼬여 구석에 웅크렸다.
“그딴 이야기를 하려고 그간 우리에게 시답잖은 옛 전설을 떠든 거야? 우리가 경계를 풀기를 기다리면서? 이 망할 새끼들아, 좋냐? 뜻대로 되니까 기분 한 번 째지지?”
『아, 아니, 우린…….』
『우리 역시 우리의 언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그러나 조급증이 인 것이다, 언제쯤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갈지…….』
『그,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너희에게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 알아야…….』
뱀들이 구차하게 입을 열자 로트렐리는 다시 테이블을 걷어찼다. 그러자 뱀들은 또다시 공중에 펄쩍 뛰어오르더니 완전히 졸아붙은 채 입을 다물었다. 도멤이 뱀들과 그녀를 번갈아 보다가 소심하게 말렸다.
“로, 로트, 화내지 마…….”
“이 망할 뱀 새끼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계속 우리를 등쳐먹으려 들잖아.”
“그렇긴 했지.”
도멤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침착하게 말했다. 그래, 넌 좀 화내도 될 것 같아. 그에 요르와 간드가 입을 벌리며 도멤을 보았다. 반면 로트렐리의 얼굴은 완전히 차가운 빙하를 보는 것처럼 얼어붙어 있었다. 그것을 보자 세계의 뱀들은 때에 맞지 않게 내심 감탄했다.
정말이지 메흐와 닮은 자다.
“난 너희의 그딴 뭣 같은 이야기에 관심 없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 난 내 동생 찾는 일이 더 중요해.”
『하지만…….』
네가 바라지 않아도 이미 항로는 그곳으로 흘러간다, 그렇게 말하려는 요르보다도 로트렐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난 안 그래도 신경 써야 하는 게 많아. 다신 이딴 짓 하지 마. 마지막 경고다.”
절대 농담 같지 않은 서슬 퍼런 말투에 요르와 간드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로트렐리는 그런 세계의 뱀들을 응시하다가 덧붙였다.
“한 번만 더 이런 헛소리를 하면 그때는 세계의 뱀이고 뭐고 찢어 죽일 줄 알아.”
그렇게 을러낸 로트렐리는 자리를 박차고 선실을 나섰다. 잠시 침묵에 잠겨있던 그들 사이로 도멤이 먼저 나서 세계의 뱀들을 각각 들었다. 그는 옅게 한숨을 쉬었다.
“기껏 마음 풀렸다 싶었는데 왜 또 애먼 애를 건드는 거야.”
『…….』
뱀들은 별말 없이 도멤의 팔에 몸을 감았다. 우투그루는 혀만 끌끌 차다가 말했다.
“저것들은 정말로 로트렐리 손에 찢기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해.”
그러나 이쯤 되자 아무리 그들이라고 해서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었다. 무언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로서는 막을 수 없고, 알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이, 마치 해일처럼 일어나 항해하는 그들을 집어삼키려고 하고 있었다. 키이엘로는 그 불길한 감각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런 폭풍 속에서, 그들의 배는 착실하게 게슈베르송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