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11)
바다새와 늑대 (310)화(311/347)
#154
화
“도망가요!”
금세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클레인스가 랄티아의 팔을 잡고 뛰쳐나갔다. 나동그라져 있던 탓에 랄티아는 거의 끌려가듯 클레인스를 따라갔다. 그러자 곧장 테드를 위시한 제국군이 그들을 뒤쫓아왔다. 클레인스는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랄티아에게 빠르게 물었다.
“누구예요? 목소리가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했는데…….”
“테드, 테드예요. 누군지 기억나요?”
“음, 아뇨.”
“검은바다에 올라탔던 저와 언니의 동향 출신이요!”
클레인스는 그제야 아, 하며 아는 체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알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었다. 랄티아는 필사적으로 클레인스를 따라 뛰며 생각했다. 테드의 차림을 보건대, 그가 제국에 붙은 모양이었다. 눈썰미가 좋은 랄티아는 테드가 입은 로브 아래의 제국 휘장을 금방 알아보았다. 그런데 그렇다면 왜 자신에 관한 정보가 제국에 풀리지 않았지? 애초에 왜 이곳으로 왔지? 제국은 세라무티를 방치하던 게 아니었나?
테드와 제국군을 피하기 위해 클레인스와 랄티아는 결국 왔던 길을 되돌아 광장으로 도주했다. 원래도 북적이던 광장은 이젠 거의 시장통으로 보일 정도로 붐비고 있었다. 랄티아는 낭패감을 맛보았다. 검은바다 역시 세라무티에 있고, 테드가 몸담은 제국의 세력 역시 자신을 쫓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선전포고해버리면 자신과 언니의 정보가 사방으로 날아다닐 것이다. 낭패였다. 정말로 낭패다!
그때 클레인스가 인파에 치여 랄티아를 놓쳤다. 랄티아는 그 바람에 휘청이다가 가까스로 바로 섰다. 거의 넘어질 뻔했다. 사실 광장의 중앙까지 뛰어온 것만으로 랄티아의 다리는 후들거리는 중이었다.
“랄…….”
클레인스가 랄티아를 찾기 위해 소리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테드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랄티아를 크게 부르면 자칫 테드에게 들킬 수 있었다. 그러나 클레인스는 눈으로는 랄티아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주변을 살피다가 문득 광장을 둘러싼 건물에 널린 러그를 발견했다. 그는 손으로 대강 짚어 부피감을 가늠한 뒤 그것을 냅다 뭉쳐 안아 들었다. 대충 사람 한 명 정도의 실루엣이 만들어지자 클레인스는 인파를 벗어나 소리를 들었다.
테드는 인파를 뒤지려다가 포기하고 나오는 중인 것 같았다. 무어라 욕설을 거칠게 내뱉는 그와 달리 랄티아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인파의 소음에 묻힌 것 같았다. 클레인스는 일부러 테드의 주변으로 뛰어갔다. 그를 발견한 테드가 서라며 소리를 질렀다. 클레인스는 다급한 행색으로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된 이상 소년은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항구로 가자. 가서 검은바다와 저 제국군이 연관이 있는지 알아내고, 하몬의 안위도 살펴야겠다. 자신이 제국군을 몰아 데려왔으니 랄티아는 그대로 인쇄소로 향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랄티아가 못 간다고 해도 마담 릴리와 로지안나가 혁명단에 그 정보를 전하기로 했으니까……. 클레인스는 서둘러 골목을 가로질렀다. 테드를 앞세운 제국군은 착실히 그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문득 의아했다. 암만 테드가 제국에 붙었다고는 해도 제국군을 통솔할 권력자는 되지 못할 텐데?
그러나 클레인스의 생각과 달리 테드는 애시포드 남작의 소속이라는 점을 착실히 이용해서 세라무티의 정보팀에 한해서는 지휘권을 일부분 넘겨받은 상태였다. 이른바 호가호위였다. 테드는 안 그래도 아침에 검은바다가 정박한 것을 본 상태였다. 적당히 임무를 수행한 시늉을 해서 랄티아의 정보를 막 알아낸 것처럼 애시포드 남작에게 보내 점수를 얻으려던 그에게는 호재였다. 그런데 그에 더해서 랄티아 본인이 세라무티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왕이면 잡아서 가면 더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클레인스를 쫓던 테드는 문득 클레인스가 안은 것이 풀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에 눈을 가늘게 뜨고 그것을 본 테드는 입 밖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망할, 속임수다! 저 녀석에게는 그 여자애가 없어!”
클레인스도 그 외침을 곧장 들었다. 클레인스는 당장 뒤로 돌아, 안고 있던 러그를 냅다 내던졌다. 두꺼운 러그에 얻어맞은 제국군이 넘어지자 러그에 맞지 않은 몇이 그를 쫓기 시작했다. 테드 역시 러그를 쳐 내고 일어나 짧게 생각했다. 저 망할 놈을 잡으면 랄티아가 있는 곳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한편 광장에 홀로 남은 랄티아는 숨을 몰아쉬다가 클레인스가 러그를 안고 테드 무리를 따돌리는 것을 보았다. 기민하게 상황을 파악한 랄티아는 인쇄소로 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계획과 그것의 실현에는 꽤 큰 격차가 존재하는 법이다. 랄티아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섰으나 인쇄소까지 뛰어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망할, 진짜 망할 몸뚱이……. 근육이 없어서 운동을 못 하고, 운동을 못 하니 근육이 없다. 약골의 악순환에 갇힌 지 오래인 랄티아는 대신 빠르게 생각했다.
인쇄소보다 가까운 곳에 혁명단의 본거지가 있지. 그곳으로 가서 선전포고를 미룰 수 있다면……. 랄티아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다리가 아직도 후들거렸으나 어느 정도 뛰기도 했다. 그렇게 도착한 혁명단의 본거지에서 랄티아는 가장 먼저 헤더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러나 헤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랄티아는 별수 없이 당장 보이는 단원에게 다가갔다.
“에퀘야, 그러니까, 대장 어디에 있나요?”
“아마 지금쯤 선전포고를 위해 나가셨을 거다.”
“예?”
숨을 몰아쉬며 물었던 랄티아는 희게 질린 얼굴로 되물었다. 오는 길에 에퀘야와 마주치지 못했는데? 그러자 단원이 말했다.
“정말 만에 하나 정보가 새어 나갔을 때를 대비해서 나가는 시간과 가는 길을 최측근만 알아두기로 했거든.”
“그럼, 그러면 지금…….”
단원은 당황하는 랄티아를 의아하게 보다가 창밖으로 해를 보았다. 태양은 이미 머리꼭지 위로 올라온 지 오래였다.
“곧 시간이니까 아마 도착하지 않으셨을까? 아쉽게도 나는 건물 경비 담당이라 연설을 보지는 못하겠지만……, 어라, 얘, 잠시만!”
랄티아는 더 듣지 않고 도로 뛰쳐나왔다. 다리가 아직 덜 쉬었다며 고통을 호소했으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정말이지 일이 다 왜 이렇게 된 거지? 금방이라도 속을 게워낼 것처럼 달려 나간 랄티아는 연설이 있기로 한 광장에서 이미 연단에 오른 에퀘야를 보았다. 헤더는 연단 아래에서 무언가 고민하는 기색으로 서 있었다. 그것을 보자 랄티아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짜증과 억울함, 설움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누구는 이렇게 고생하면서 달리고 있는데 상황 파악도 못 하고…….
거기까지 생각한 랄티아는 문득 의아함을 느꼈다. 마담 릴리와 로지안나가 상황을 전하러 먼저 가지 않았나? 왜 계획을 그대로 옮기지? 어쩌면 전단지 계획을 포기하고 선전포고만 할 생각인가? 인쇄소에는 이미 언질이 들어갔을 수도……. 하지만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었다. 랄티아는 헤더에게 달려가 그녀를 붙잡았다. 갑자기 붙드는 손길에 깜짝 놀란 헤더가 눈을 크게 뜨고 랄티아를 보았다.
“랄티아? 왜 여기에서…….”
“아까 마담 릴리와 로지안나에게 이야기를 들었어요?”
“뭐? 무슨 이야기?”
랄티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헤더의 반응에 불안감을 느꼈다. 마담 릴리와 로지안나는 어디로 증발한 거야? 왜 헤더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숨을 허덕이며 잔기침까지 하던 랄티아는 급하게 헤더를 붙잡고 말했다.
“검은바다가 세라무티에 정박했어요. 당장 연설과 전단지 배포를 멈춰야 해요. 아니면 당장 도망가든가!”
“뭐, 뭐?”
“얼빠지게 굴 때가 아니에요! 에퀘야에게 알려야….”
“동지들이여!”
그러나 랄티아가 말을 더 잇기도 전에, 에퀘야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광장에 울렸다. 랄티아는 온몸의 피가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오늘이 되어서야 그대들에게 전한다. 혁명의 의지를, 자유를 향한 외침을! 여기 모인 이들 중엔 나를 아는 자도, 모르는 자도 있겠지. 그러니 다시금 소개한다.”
랄티아는 문득 군중을 훑어보는 에퀘야의 시선이 잠시 랄티아에게 닿은 것을 느꼈다. 랄티아는 문득, 불쑥 치솟는 의심을 참지 못했다. 랄티아는 헤더를 쏘아보았다.
“정말로 아무런 정보도 듣지 못한 게 맞아요?”
“뭐?”
“나, 서부 바다의 혁명대장, 에퀘야 싱 게르밀라!”
헤더의 당황한 물음과 함께 에퀘야의 연설이 우렁차게 귓가를 때렸다.
“무도한 제국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녀의 외침에 호응하여 군중이 환호를 질렀다. 그러나 랄티아는 역으로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영광스러운 세라무티의 전사들이여, 혁명의 불길을 담은 형제자매들이여……. 에퀘야의 연설이 이어지는 것과 함께 전단지가 나돌았다. 기자로 보이는 이들은 전서구를 날리기 위해 수첩에 무언가를 바삐 적으며 달려갔다. 아수라장처럼만 느껴지는 상황 속에서 패닉에 빠진 랄티아의 어깨를 헤더가 강하게 쥐었다.
“랄티아! 진정하고 말해봐. 무슨 일이야?”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