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312)
바다새와 늑대 (311)화(312/347)
#155
화
클레인스는 항구로 내달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테드의 무리는 화약 무기를 갖고 있음에도 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긴, 제국의 화약이 돌지 않는 이곳에서 총성이 울리면 테드는 비밀스러운 정보획득을 개나 주게 되는 것이다. 클레인스는 슬슬 차오르기 시작한 숨을 뱉어내며 항구까지 달렸다. 항구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저마다 무어라 떠드는 것이 왁자지껄하게 들려왔다.
클레인스는 그 사이에서 검은바다의 소리를 잡아내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마땅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클레인스는 내달리다가 항구의 구석,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바다로 뛰어들지 않는 이상 더 도망칠 수가 없었다. 그에 테드는 꼴사납게 허덕이면서도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왜 항구로 왔나, 응? 검은바다에게 도움이라도 구해보려고? 나 너 알아, 함저 구역에 있던 장님 새끼지.”
“…….”
클레인스는 부러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선원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던 테드의 성정을 생각하면 알아서 정보를 술술 털어놓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그의 생각과 그리 큰 차이 없이, 테드는 숨을 크게 내쉬며 가라앉히더니 입을 열었다.
“검은바다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제국에 협력하고 있어. 네가 가서 도움을 요청해도 소용없다는 말이야.”
“왜 제가 도움을 요청할 거라고 생각하죠?”
“그럼 왜 항구에서 검은바다를 찾는데?”
“이참에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만나서 구할까 싶었던 거지 그쪽을 피해서 도움을 구가하고자 간 게 아닙니다.”
“그래? 어쨌든, 더 떠들 것 없지. 순순히 잡…….”
테드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클레인스가 검을 빼든 것이다. 코앞에서 벼려진 날붙이가 보이자 다른 제국군들이 저마다 검을 뽑아냈다. 테드는 일순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당황했으나, 역시 더듬더듬 단도를 뽑아 들었다. 그러나 그는 싸우는 능력이라고는 쥐뿔도 없었다. 로트렐리와 비교한다고 하면 로트렐리에게 모욕적일 정도로, 랄티아와 비교하면 피스톨이 있는 랄티아가 한 수 위일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테드는 제 주위의 제국군을 보고 긴장을 풀었다. 제깟 게 멀쩡한 성인 남자 다섯을 어떻게 이기겠어. 심지어 저놈은 눈도 침침한 어린애였다. 테드는 비죽 웃으며 말했다.
“허튼짓 그만하고 투항해. 랄티아 그것의 일행이 너 하나는 아니지? 바른대로 불어.”
그러나 테드의 말에 돌아온 대답은 검날이었다. 클레인스도 테드는 몰라도 나머지 네 명을 한 번에, 비좁은 공간에서 상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곧장 테드부터 후벼팔 생각으로 달려들었다. 테드는 기겁하며 구르듯 옆으로 피했다. 그 몸짓에 테드의 무리 중 두엇이 휘말렸다. 제국군이 테드를 향해 타박하듯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클레인스는 항구를 내달렸다. 테드는 이를 갈며 외쳤다.
“다시 쫓는다!”
“조용히 해!”
테드를 향해 제국군 중 하나가 윽박질렀다. 그에 테드는 불쾌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제국군이 테드에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 정보를 얻으러 온 거야! 세라무티에서 크게 ‘제국군이 왔소’하고 광고할 생각이야?”
“이봐, 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 모양인데, 아까 말했잖아, 그 여자애는 로트렐… 수배된 마녀의 여동생이라고!”
“촌뜨기 새끼. 지금 우리는 세라무티의 여자들과 혁명단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 온 거야!”
제국군 한 명의 발언에 테드의 턱이 씰룩였다. 둘의 다툼에 다른 이들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멈칫거렸다. 테드는 그를 보며 이를 갈았다.
“이 멍청한 새끼가, 그 여자애를 잡으면 얼마나 큰 포상을 얻을 수 있는데…….”
“포상? 그런 것은 너나 받으라고. 제국 서부엔 내 어머니가 계셔! 서부 바다에서부터 전쟁이 시작되면 우리 어머니가 위험할 수 있다고! 그래서 난 이 일에 지원한 거야, 네 되지도 않는 대장놀음에 어울려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테드는 코웃음 쳤다. 이놈은 지금 내 앞이라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다. 나중에 필립이나 애시포드 남작 앞에서도 그럴 수 있나 볼 일이지. 그는 제국군을 비웃으며 말했다.
“서부에서 전쟁이 나면 어머니 볼 일도 생기고 좋겠네. 지금은 내가 대장이야. 알아들어? 지금은 당장 그놈을… 뭐야, 어디로 갔어?”
“너희 둘이 싸울 때 튀었다.”
“망할 놈이!”
테드는 대번에 제국군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는 별다른 타격은 없는 것 같았으나 확연히 불쾌한 얼굴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테드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 나중에 보자.”
그 뒤 성큼성큼 걸어가는 테드의 뒤로 무리가 뒤따랐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너 나중에 보자~, 저러네.’ 비아냥거리는 얼굴로 눈짓한 그들은 이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테드를 따라갔다.
클레인스는 항구를 뛰어가며 검을 도로 집어넣고 빠르게 주변을 살펴봤다. 검은 배의 실루엣이라도 보이길 바랄 뿐이었다. 그때 그는 하늘 위에서 팔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뭐가 떨어지나? 그는 대충 허공에 손을 내저어 떨어지는 것을 잡아챘다. 종이였다. 웬 종이가……. 눈이 나빠 읽지도 못하는 종이를 만지작거리던 그는 순간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종이가 날린다고? 주변의 소리를 들어보면 우연히 떨어진 것이 아니라 누가 작정이라도 한 듯 뿌리고 있었다. 전단지다! 클레인스는 다급하게 방향을 바꿨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테드 무리가 그의 추적을 멈춘 것 같으니 그에게는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소년에게는 아직 고난이 남아있었다. 그는 광장으로 향하는 모퉁이로 향하다가 멈칫 멈춰 섰다. 익숙한 목소리가 대화를 하며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제대로 된 것을 주문하고 싶다면 몇 달은 기다려야 한다는 거지… 이게 뭐지?”
“전단지 같은데요, 선장님.”
클루스도와 선원이었다. 클레인스는 뻣뻣하게 굳어서 갈등했다. 그에게 모습을 보일까? 그러면 검은바다의 위치와 하몬의 안위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서 랄티아가 소리를 질렀다. ‘똥멍청이 같고 누가 봐도 별로인 계획 생각하지 마세요!’
결국 상상 속 랄티아의 의견에 따라 클레인스는 몸을 숨겼다. 자신이 제대로 숨은 것인지 가늠할 수 없었으나 검은바다의 두 사람은 당장은 전단지를 살피느라 그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설렁설렁 전단지를 버리려던 그들은 내용을 보고 경악한 것 같았다. 정확히는 선원의 반응이 그랬다.
“제국과 혁명단이 전쟁을? 이거 난리가 나도 제대로 나겠는데요? 어, 어쩌면 좋습니까, 선장님?”
“그것보다 이걸 봐라.”
클레인스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클루스도는 전단지를 보며 말했다.
“랄티아가 이 섬에 있군. 혁명단에게 숨어있어서 여태 그렇게 발견되지 않았던 것인가?”
클레인스는 이 순간 랄티아와 비슷한 낭패감을 느꼈다. 인쇄소에 정보를 전하지 못했구나. 그것을 깨닫자 클레인스는 저절로 걱정이 들었다. 그럼 랄티아는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지? 랄티아가 의도하고 인쇄소에 전하지 않은 것이 아닐 테니 이건 분명히 예상치 못한 상황일 것이다. 애초에 마담 릴리와 로지안나는 어디로…….
“우리가 생각보다 바빠지겠군, 그래.”
클레인스는 클루스도의 목소리가 퍽 가깝게 들려오는 걸 느꼈다. 그는 서둘러 몸을 낮추며 완전히 숨을만한 곳을 물색했다. 그러나 클루스도의 목소리는 이미 머리 위에서 들리고 있었다.
“정말로, 많이 바빠지겠어.”
클레인스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피했다. 그가 기대고 있던 거리의 포대 자루 위로 클루스도의 손아귀가 콱 내려왔다. 클레인스는 곧장 뒤로 돌아 뛰었다. 그러자 클루스도가 선원에게 말했다.
“난 지금 배로 돌아가 선원들을 모집해 오겠다. 넌 당장 저 녀석을 쫓아.”
“아, 그, 쫓아서 잡으면 어떻게……?”
“무장해제 해두면 좋지만, 정 안 되면 칼부림 좀 해도 된다.”
클루스도의 말에 선원의 표정이 ‘부디 그렇게까지 되지 않길 바란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변했다. 어쨌거나 그는 클루스도의 명령에 따라 클레인스를 쫓기 시작했다. 클레인스는 테드 무리와의 추격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을 느꼈다. 검은바다에서 클루스도가 증원을 더 끌고 온다면 위험했다. 그는 검은바다를 아는 만큼, 그들이 맞닥뜨리면 얼마나 어려운 적인지 알았다. 클레인스는 빠르게 생각했다. 광장으로 향하자. 랄티아도 아마 광장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며 내달리던 그의 앞에 공교롭게도 테드의 무리가 있었다. 혁명단의 전단지를 심각하게 살피던 그들은 클레인스를 발견하고 외쳤다.
“놈이다!”
“쫓아, 당장!”
그리고 제국군 중 하나가 재킷 속에서 휘슬을 꺼내 불었다. 가느다란 소리가 울리는 것을 기민하게 알아챈 클레인스는 정말 상황 한 번 기가 막히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제국으로 전서구든 뭐든, 신호를 보낸 것이다. 제국이 세라무티에 있는 혁명단을 가만히 둘까? 제국이 저들을 괜히 보냈을 리도 없으니……. 오늘 안에 세라무티를 떠야 한다. 제국이 올 것이다!
그러나 클레인스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뒤에서 끼쳐오는 한기에 급하게 테드 무리의 옆으로 굴렀다. 검은바다의 선원이 휘두르는 봉에 테드의 무리 중 두엇이 나가떨어졌다. 테드가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
“이건 또 뭐야, 젠장…! 검은바다?”
“뭐야?”
선원은 테드가 자신을 알자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테드를 알아보지 못한 기색이었다. 그러나 클레인스가 다시 일어나 달려 나가기 시작하자, 선원은 그들을 무시하고 클레인스를 쫓았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그들을 멍하니 보던 테드가 급하게 제국군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뭘 얼빠져 있어! 검은바다에게 랄티아를 뺏기면 안 돼! 서둘러!”
“혁명단이 제국에게 전쟁을 선포했는데 지금…….”
“제국이 고작 그런 폭도들에게 당할 것 같아?! 급한 건 랄티아라고! 어서!”
테드의 등쌀에 결국 일행이 모조리 클레인스를 쫓아 달려갔다. 테드 역시 달려가려던 그때, 뒤에서 무장한 이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망할, 세라무티의 전사들인가? 테드가 긴장하며 망토를 여미는데, 길목의 끝에서 나타난 것은 전사들이 아닌 클루스도와 검은바다의 선원들이었다. 선장의 얼굴을 보자마자 테드는 얼른 도주했다. 자신은 검은바다와 꽤 안면을 쌓은 사이가 되었으니 지금 상황에 마주하면 퍽 곤란해질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테드의 안전이 말이다.
그 순간, 폭음이 울렸다. 우렁우렁한 소리에 위를 올려다본 테드는 아연실색했다. 머리 위에서 건물이 무너지는 중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